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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터를 지켜야 합니다 (시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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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를 지켜야 합니다 (시 11:1~7) 

지난 5월 12일 날 중국 쓰샨성에서 진도 8.0 규모의 강진이 일어났습니다. 한 달이 지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쓸지 모를 정도로 비참한 자리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도 보셨지만,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수많은 집들이 폐허가 되다시피 했는데 이 강진의 위력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 250여 개의 터진 것 같은 엄청난 위력이었다하니 그 피해가 어떤 것인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까? 통계를 보니까 현재 사망자와 실종자가 10만 명이 넘어서고 있고 부상자도 수 십만 명에 이르고 앞으로 얼마나 늘어나게 될지 정확히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사고들을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그 속으로 함몰 될 때도 있습니다. 또 공사를 하다가 옆에 있던 집들이 기울어서 무너지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 않습니까? 또 어떤 때는 갑자기 지하철이 멈추기도 하고 전기가 끊어져서 정전 때문에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충격을 주기도하고 그렇지만, 우리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거나 무너뜨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불편함이 있지만 대체할 수 있고 다른 것을 통해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번 지진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 무너져버렸고 사랑하는 가족마져 무너진 땅 속에 다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그 순간 그들은 꿈도 소망도 미래마져도 다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한꺼번에 사라져버리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땅이 무너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터가 무너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터가 무너지면 절망밖에 남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모든 것이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터는 흔들리면 안됩니다. 터가 흔들리면 손쓸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터'라고 하는 이 단어가 '샷트'라고 하는 히브리어를 쓰는데 이 단어의 원래 뜻이 규율, 기강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11:3절에서는 국가의 존재 및 번영을 유지해 갈 수 있는 기초적인 법과 질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터가 무너진다고 말하는 것은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법과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여러분 이 시편 11편을 기록할 때 다윗이 경험했던 그 시대상황이 터조차 무너지는, 기본적인 질서조차 무너지는 그래서 부패가 만연하고 정의가 상실되어서 어떤 희망도 바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이 사회가 어렵습니다. 고유가로 인해 점점 더 살아가는 게 버겁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세계는 한 지붕 안에 있기에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한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우리 역시 광우병 위험으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출범한지 얼마 안 되는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시대마다 다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늘 문제가 발생하고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사회지만 그 사회를 지탱하는 기초는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질서 가장 기초적인 법조차 무너져버린다고 하면 그때부터 그 사회는 무정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사회가 지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구성원들이 고통과 좌절과 절망 속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터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터는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기업이든지 단체든지 가정이든지 반드시 지켜야 될 무너지면 안 되는 터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도 무너지면 안 되는 영적인 터가 있습니다. 교회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려움이 있어도 그래도 무너지면 안 되는 터는 있어야합니다. 그 터를 놓치면, 그 터를 지키지 못하고 그 터가 무너지면, 교회 존재 자체가 무너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될 영적인 터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음 주가 되면 우리 교회가 39주년을 준비하며 우리가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지켜야 될 영적인 기초적인 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도 아시지만 교회가 하는 일은 모두가 다 중요합니다. 교회가 하는 일 중에 중요하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중요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 기초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무너지면 안 되는 터가 있습니다. 이 터가 무엇인가 교회가 지켜야 될 터 3가지를 말씀을 드리길 원합니다.

첫 번째, 교회가 지켜야 될 터는 사명의 터입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 말씀에 보니까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은 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회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세워졌다 라는 말입니다. 사도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서 보냄을 받아서 예수님께 주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전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말씀이 전해진 그 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여러분 사도들이 예수님께 받은 말씀이 무엇일까요? 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핵심을 요약하면 마28:19-20절에 있는 대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제자를 만들어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만들어라 그렇게 말씀한 것이죠. 이것이 사도들이 받는 대 사명입니다. 사도들은 사명을 받고 가서 복음을 전했고 제자를 만들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사도의 터 위에 세워졌다 라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의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교회가 낡게 되면 교회 건물에 벽돌도 무너지고, 창문에 때가 끼고 하는 현상이 있지 않습니까? 좀 더 오래되면 벽에 균열이 가고 물이 새고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고 또 실내 인테리어도 낡게 되고 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외형적인 것 그거 무너지는 거 별 문제 아닙니다.

여러분 외형적인 어떤 일들이 무너지는 것 크게 보이지만 그것이 큰 일이 아니라 정말 교회가 문제인 것은 교회를 통해서 더 이상 복음이 전해지지 않고 제자가 만들어지지 않을 때 교회는 터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음주 창립 주일을 맞고 여러 가지를 준비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한 생명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에 집중을 해야합니다. 여기다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아름답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당당한 터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세워야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말 가운데 재미있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영어로는 '붉다' 라는 단어가 red라는 단어 하나를 쓰는데 우리나라에는 붉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가 굉장히 많습니다. '붉다. 검붉다. 불그스름하다. 불그니 죽죽하다. 불구치치하다. 새빨갛다. 시뻘겋다.' 열 개 이상도 있습니다. 굉장히 많이 만들 수가 있습니다. 이게 붉으면 붉은 것이지 표현이 다양하기 때문에 감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뭐 그렇게 좋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죠. 언어가 풍성하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죠. 그런데 이것이 우리 민족의 정확하지 않은 어떤 민족성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한국 교회성도들이 말입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붉어야 되는데 예수의 보혈로 붉어야 하는데 불그스름하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붉어야 하는데 뭔가 좀 석여있다는 것입니다. 붉으티티하고 불그스름하고 그런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가운데도 보면 신앙의 색깔이 분명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순수하지 않고 섞이는 것을 싫어하시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분명하기를 원하세요. 확실하기를 원하세요. 하나님은 미지근한 것 싫어하십니다. 뜨겁던지, 차겁던지 해라. 미지근한 것은 내가 입에서 토해 버릴 것이다.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오늘 날 교회는 많은데 왜 세상 앞에 왜 영향력이 없을까요? 왜 약할까요? 순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고백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사명적 삶이 없어요. 헌신을 주저하고 희생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기력한 모습을 세상 앞에 보입니다. 보세요. 구 소련이나 지금의 중국이 공산화 될 때, 나라 백성의 전체 가운데 3% 미만만이 열렬한 공산당원들이예요. 그 3% 미만들이 완전히 붉은 사상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 3%가 한나라를 뒤집어 놓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바닷물이 엄청난 양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바닷물을 썩지 않게 만드는 것은 2.8%의 순수한 소금입니다. 그 소금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네비게이토'라는 선교단체를 설립한 '도슨 트론트맨'이라는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99%헌신하는 아흔 아홉 명의 사람을 통해 일하는 것보다 100% 헌신하는 그 한 사람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이루실 수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역사는 순수한 사명을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교회가 지켜야 할 터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터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기도의 터를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1:17절에 보니까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교회는 '사역하는 집이다. 교회는 봉사하는 집이다. 교회는 교육하는 집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기도의 불이 꺼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기도의 자리가 비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 속한 성도들의 무릎이 약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터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특새 기간 동안에도 기도할 때 보여야 할 분이 안보입니다. 오셔야 할 분이 안 오셨어요. 여러분의 자리가 비어있는 것입니다. 내가 채워야 할 그 자리는 내가 오기 전까지는 채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비어져 있는 그 자리만큼 교회의 기도의 터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별 문제 없다고 느끼시죠? 우리교회는 시스템 자체가 구조자체가 굉장히 건강하기 때문에 여간한 문제는 문제같이 안 느껴져요. 여간한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교회는 잘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터가 무너졌는데 우리 교회가 정말 문제가 없습니까? 단기간에는 표시가 잘 안나죠. 왜 그럴까요? 기도의 짐을 더 많이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더 많은 기도의 짐들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안 무너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영적 짐들을 계속 감당하는 사람들이 지쳐가기 시작하면 그 기도의 짐이 무거워서 기도의 자리가 무너지면 기도의 공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어딘가에는 균열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균열은 처음에 잡지 않으면 나중에는 겉잡을 수 없습니다. 급격하게 붕괴하고 급격하게 무너지고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어느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사역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역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역입니다. 교회학교 교사에게 가장 위대한 사역은 가르치는 순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어린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게 될 때에 이미 위대한 역사는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에 그곳에 가장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기도는 사역의 준비가 아니라 사역의 시작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기도로 내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내가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사역은 기도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가장 무서운 적은 기도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기도하지 않고 성공하면 성공 때문에 망합니다. 실패가운데 기도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가장 비참한 실패에 내가 빠져있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 눈에 내가 실패자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도할 수 있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실패가운데 살아 계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하면 실패 같은 성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생명을 거는 기도, 땀이 피가 되는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있다고 하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찢어져 가는 가정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냥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비틀거리는 역사, 목표를 알지 못하고 질주하는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되는 것입니까? 무너져 가는 기업을 바라만 보며 울며 역사를 한탄만 하고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방황하는 내 자식들을 바라보며 침체되어져 가는 영적인 이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는 구경꾼으로 전락해도 좋더란 말더란 말입니까? 핏방울이 땀방울이 되도록 절규하며 비명이라도 질러야 되는 때가 아닐런지요? 한국교회가 한계가 없는 부흥을 보길 원한다면 비상한 기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민족을 살려 주소서. 한국교회에 부흥을 주소서. 몸부림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느끼지 않습니까? 이 기도의 터가 무너지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세 번째로 교회가 지켜야 될 터가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 될 삶의 기초, 가장 근본이 무엇일까요? 저는 주저 없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마22:37-38절 말씀 우리 같이 한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이것이 최고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여러분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될, 반드시 성도다 지켜야 될 터, 기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가 행하는 모든 신앙 생활의 기초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 내면의 기초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의 기초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과 생명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향하여서 최상의 것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무너지면 설레임이 무너집니다. 예배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게 되면 하나님의 존전에 섰을 때 사랑하는 연인 앞에 섰을 때 느끼게 되는 그 설레임 영적 떨림 그런 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예배가 의무가 됩니다. 예배가 무거운 짐이 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섬김과 봉사는 사랑의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왜 섬기는 것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기다리게 됩니다. 사랑하면 실망하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관계가 무너지면 터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터가 무너지면 성도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2:2-3절의 말씀을 보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위해서 많은 수고와 인내를 감당했습니다. 교회를 공격하는 거짓교사를 분별하고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했고 복음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공격당하고 고통 받으면서도 견디고 참아냈습니다. 주의 진리를 지키는데 열심히 있었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모범된 성도예요 얼마나 칭찬받을 만한 성도입니까 그들이 많은 것을 했어요. 

그런데 한 가지를 못했습니다. 4절에 보니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참았습니다. 열심히 있었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못했습니다. 사랑을 지키지 못한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은 사랑하나 지키지 못했는데 '모든 것을 지키지 못했다'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에베소 교회를 호되게 닦아세웁니다. 5절에 보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무슨 말입니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더 이상 너희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주님을 향한 사랑은 모든 것을 잃어도 성도가 끝까지 지켜야 될 성도의 터인 것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찾아오셔서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 내 인생의 곤고와 어려운 때에 시험과 환란 때에 나에게 오셔서 나를 일으키시고, 시험에서 나를 건지시고 나의 발을 높은 곳에 세우셨던 그 하나님, 지금도 여전히 내 속에서 주님을 향한 불붙는 사랑이 계속, 계속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을 넘치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 앞에 전심을 다해 그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터가 있습니다. 사명의 터 지켜야 합니다. 기도의 터를 지켜야 합니다. 성도의 누리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의 이 기초 터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39주년을 준비하며 자칫하면 안주하기 쉽기에 다시 한번 우리의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이 원하는 축복의 땅을 향하여 우리 인생의 진정한 진리의 터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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