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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베스의 하나님 (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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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하나님 (대상 4:9~10)

여러분! 성경을 읽으시다가 지루하다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어디입니까? 대부분은 족보가 나오는 부분일 것입니다. 창세기 5장에 아담의 족보가 나오고, 10장에는 노아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족보는 누구는 누구를 낳고, 낳고, 낳고 하다가 끝납니다. 읽다가 보면 그 이름이 그 이름 같고, 금방 읽었는데 또 읽어도 또 읽었는지도 모르는 부분이 족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역대상은 더 지루합니다. 장장 족보가 1장부터 8장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분은 역대상을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계속 누구는 누구를 낳고 이렇게 계속 읽다가 유독 야베스에만 와서는 야베스는 누구를 낳고 이렇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전의 성경에는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오늘 우리가 읽은 4장에 나오는 유다 자손의 족보는 유다 자손이 누구인지 밝히려고만 나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다 지파가 다른 지파보다 더 월등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은 지파임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족보에 나오는 이름들은 다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기록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기억에 남을 만한 이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훌륭한 사람들 이름을 나열하다 말고, 야베스에 와서는 잠깐! 야베스는 이 사람들 보다 더 훌륭한 사람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는 말이 9절 말씀인 것입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더 귀중한 자라! 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이라! 

저와 여러분도 야베스와 같이 더 훌륭한 사람,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 받는 사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야베스가 어떤 인물이었기에, 훌륭한 사람 중에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여러분! 부자집에 태어나 고생 없이 학교 잘 다니다가 시험봐서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거봐! 부모를 잘 만나서 성공했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야베스도 부모 잘 만나서 부자집에 태어나 성공했다면 별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수고, 고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에는 뜻이 있습니다. 야곱 - '움켜 잡는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름대로 형의 것을 빼앗아 가로채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에는 고통, 수고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문자적인 의미로는 '고통을 불러오다' 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여러분! 누가 여러분에게, 당신만 옆에 오면 되는 것이 없어. 당신만 오면 재수 없어. 라고 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고통이 되겠습니까? 야베스의 이름에는 '고통을 불러오는 자다'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베스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야베스를 낳을 때 너무 산고가 컸던지, 아니면 전쟁 통에 숨어 있을 때 아이가 생겨서 낳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야베스 때문에 어머니와 가정이 너무 힘들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출발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순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이름대로라면 이제 야베스의 앞날에는 먹구름만 끼어 있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가는 곳마다 고통이 임하고, 실패가 따라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야베스는 축복은 커녕 고통을 주는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야베스를 본문에서 뭐라고 합니까?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야베스는 자신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했습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제거해 버렸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도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존귀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환경과 운명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가난하다고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 배웠다고 기죽어 살지도 않습니다. 몸이 병들었다고 인생을 실패하지도 않습니다. 
고린도 후서 4장 7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예수 그리스도)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서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은 운명도 바꾸는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예전에 단군교 교주로 있었던 김해경씨가 쓴 [주여! 사탄의 왕관을 벗었나이다]라는 책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단군교에 심취해서 귀신에 붙들려 살 때 김해경씨가 사주, 팔자를 잘 보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관상을 보면 절대로 틀린 적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을 만났는데, 관상을 봐서는 이 사람은 반드시 쫄딱 망해서 거지가 되어 있어야 정상인데, 양복을 입고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어서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답니다. 당신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했더니, 사업을 하는데, 자신은 하나님을 믿어 지금 사업이 잘 되고 있다고 하는 예기를 듣고, 그럼 그렇지 했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절대로 사주, 팔자에서 벗어날 수 없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그의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면 사주, 팔자, 관상도 바뀔 줄로 믿습니다. 운명을 믿지 마세요. 모든 것이 하나님 손안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야베스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0절에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어.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고, 아브라함을 복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종살이를 하며 그 압제와 고통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응답하시고 건져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건너게 하시며, 쫓아오는 바로의 군대를 바다에 수장시킨 하나님, 살아계신 그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킨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뒷꿈치를 잡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 자라고 말씀 드렸는데, 약싹 빠르고 자기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야곱을, 얍복강 나루터에서 만나 주시고,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신 그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을 변화 시킨 하나님은 야베스도 바꿀 수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고 계십니까? 정말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맞습니까? 야곱을 변화시키고, 야베스를 축복하신 그 하나님이 맞습니까? 전능하셔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시며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임을 믿으십니까? 

정말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야베스가 믿었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맞다면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의 인생도 바뀌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의 삶도 야베스와 같이 어둠의 그늘이 앞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절대로 야베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태어났다면 제 이름이 야베스라고 지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가난한 농사꾼 집안의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 있을 때, 저의 큰 누나는 시집을 가서 첫째를 낳았습니다. 딸이 시집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나이 많은 엄마가 또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사위 볼 면목도 없고, 딸 보기도 민망 스럽고 무엇보다 식구는 많은데 먹을 것은 없는 상황에 제가 생긴 것입니다. 제가 엄마 뱃속에 들어선 것은 우리 가정에 기쁨이 아니라 어두움었습니다.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어머니는 아이를 지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했다고 합니다. 간장도 마셔보고, 언덕에서 굴러도 보았답니다. 민간 요법으로 아이를 낙태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저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생사의 고비 가운데 끈질기게 살아남은 자입니다. 아마 이때 저의 어머니가 간장을 많이 마셔서 제 얼굴이 까만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이렇게 암울한 환경에서 자라던 제가 6학년 때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중학교 1학년 때가 되어 교회에서 연합 부흥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오신 강사 목사님께서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시는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한끼 만 먹으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야만 하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 엘리야를 보내어 3년 6개월 동안 그의 집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엘리야가 너무 힘들어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은 까마귀를 보내어 엘리야를 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까마귀를 보내시고, 지켜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하는 설교를 듣고 제가 아멘 했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저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옵소서. 하며 기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날 저는 엘리야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오늘 이렇게 목사가 되어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역사하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믿었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지금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야베스의 인생이 바뀐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기에 고통을 주는 자가, 존귀한 자로 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변화시키고, 복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복이라는 단어는 무릎을 꿇다라는 단어인 "바라크"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언제 복이 주어지느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이 꼭 필요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표현이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요,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로 하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만나 주시고, 기도하는 자를 통해 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얍복 나루터에서 생명을 걸고 기도할 때 만나 주시고, 그를 변화 시켜 주셨습니다. 한나 라는 여인은 자식이 없어 사람들로부터 무시 당하고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는데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했는지, 술 취한 여인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께 전심으로 간구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무릎 꿇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야베스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먼저 나에게 복을 주시려거든, 
하나님께 복을 구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저를 존귀한 자로 삼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잘 되길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복을 구할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두 번째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이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업의 성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더 잘 되길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 부흥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야베스가 지역을 넓히시고 하는 말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구한 것이 아닙니다. 야베스는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점령하고 죽은 다음 사사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나안 땅을 다 취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지역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내가 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기도하십시오. 저의 사업에 복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음을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라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기 위해서 입니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행전 11장 21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하나님의 손이 함께 했다는 말은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며, 말씀을 전할 때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손이 함께 하시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불안하고, 경제가 어렵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된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가 그렇게 말했다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자신의 환경을 바꾸었습니다.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면 암울한 우리의 사업도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약한 몸도 고침 받으리라 믿습니다. 

엊그제 텔레비전을 보는데, 포도원 교회 김문훈 목사님이 나오셔서, 포도원 교회는 도저히 성장학적으로는 부흥 할 수 없는 교회인데,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니까 부흥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자신도 병으로 나약하고, 경상도 사투리나 쓰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니까 지금은 너무나 크게 쓰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주전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 주인공 의식. 
전: 전문가 의식. 
자 : 자신감. 믿음이 배짱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임재를 구한다면,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면 세상 사람의 눈에는 도저히 안되는 것 같지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는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주의 손이 함께하여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저와 여러분도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내려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저의 누님은 오늘 야베스의 기도를 매일 한다고 합니다. 
회사 문을 여는 동시에 야베스의 기도를 합니다. 

모든 성도님들도 야베스의 기도를 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베스가 자신의 환경을 넘어, 존귀한 자가 된 복을 우리 모두 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의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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