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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 발바닥 사건 (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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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사건 (수 1:1~9)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화적 명령으로 
창1: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고 합니다. 

두 번째는 선교적 명령으로
마28:19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명령을 이루어 나가시는데 
         반드시 발바닥 사건을 전개해 나가십니다. 

6월 선교의 달을 맞이하여
    발바닥 사건에 눈이 뜨여 지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땅의 첩경이라 할 수 있는 여리고성 정복은 
       발바닥 사건의 가장 대표적인 현장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말씀입니다.

1. 왜 발바닥 사건이라고 할까요?(3절)

3절에 [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 라고 하시며 
가나안 땅이 다 너희 지경이 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발바닥 사건은 모세 이전으로 거슬려 올라갑니다.
가나안 축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입니다.
그래서 창12: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복의 근원 삼겠다 하시고는 
창13:14절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헤어져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을 때
            [ 너는 눈을 들어 어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17절 [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 발바닥 사건이 모세에게 이어집니다. 

신11:24절 [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 소유가 되리니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에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수1:3절 [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 합니다.

발바닥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의 파트너 갈렙이 헤브론을 정복할 때도
수14:9절「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고 하며
            헤브론 산지를 내가 정복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발바닥 사건은 
비단 구약시대뿐만이 아니라 신약에서도 그대로 진행됩니다. 
사도행전의 바울의 선교의 발걸음 역시 발바닥 사건입니다.         
  
행16: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을 밟으면 빌립보 교회가 태어납니다.          
행17: 데살로니가 성을 밟으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태어납니다.
행18: 에베소 지방을 지나면 에베소 교회가 생깁니다.

비록 바울이 빈손으로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그 땅을 밟으니 하나님께서 부쳐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즈벡 타슈켄트 교회설립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정길집사를 만나서 타슈켄트 장로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역사는 발바닥 사건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충만하고 정복하는 정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선교적 차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발바닥 사건입니다. 
여기에 눈이 뜨여지시기 바랍니다. 

그럼 왜 하나님이 모세에게 너희 발걸음이 아니고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다 고 합니까?


2. 발바닥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데 우리의 신앙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참조/출3:5절, 수5:15절)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일찍이 시내산 기슭 불붙는 가시떨기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
출3:5절 [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고 합니다.
그리고 여리고성 정복을 앞두고                               
        여호수아 앞에 나타나신 여호와의 군대장관-예수님이죠

수5:16절 [ 네 발에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 
         신을 벗어야만 발바닥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신 곳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 무엇을 말합니까? 
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어라 고 합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발바닥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데 
       우리의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신을 벗어라 는 것은 하나님 앞에선 우리의 신분을 말합니다.

고대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바로 <종의 신분>을 말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주인 되고 나는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대장 되고 나는 졸병 되라는 거지요.
       그리고 대장 되신 예수님 따라가면 됩니다.
여리고성 무너질 때, 기드온300용사 미디안135000물리칠 때
         따라가면서 와! 와! 고함만 지르면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이름 앞세우고 부르짖으면 됩니다. 
찬351장 2절                                                 
「 원수 마귀 모두 쫓겨 가기는 예수 이름 듣고 겁이 남이라
   우리 찬송 듣고 지옥 떨리니 형제들아 주를 찬송 합시다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예수님 대장 되고 나는 졸병 되어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 앞에 발바닥 사건이 전개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 신앙생활 단순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신만 벗으면 됩니다. 순종의 자세만 취하면 됩니다. 
다음은 대장되신 주님께서 싸우시고 무너지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인도에서 한 평생을 선교사로 산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
그가 쓴 책 가운데 `디바인 예스(Divine Yes)`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가 69세 때 중풍 에 걸려서 보스턴 병원에 입원하고 
      5개월 동안 있는 동안에 이 책을 썼 습니다. 
디바인 예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예`하는 것이죠, 
하나님 의 말씀에는 언제나 `예`가 있을 뿐이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는 중풍으로 누워 있으면서도 간호원에게 부탁했답니다. 
`내가 잠에서 깰 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렇게 나에게 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는 그렇게 듣고 일어났습니다.
그때 깨닫게 된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예’만 하면 되는구나! 
그 후 20년 동안을 선교사로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발바닥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5절에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시면서
여호수아에게 당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3. 발바닥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당부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5-6, 9절)

6절 [ 강하고 담대하라 ] 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발바닥 사건을 상기시키시며
본문에서 6절, 7절, 9절 세 번이나 강하고 담대하라 고 합니다.  
왜 강하고 담대하라고 합니까? 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합니까?
발바닥 사건은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선교도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담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내일교회가 선교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동기
89년도 교회당 건축 중 목에 폴립현상이 생겨 
휴가를 내어 세계를 돌아보니 우리도 선교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와요.

전주 안디옥 교회 이동휘목사-그냥 하는 거예요!
그리고 동신교회 김창렴목사 마6:33절 말씀 붙들고 선교했더니
        하나님께서 동신교회 복을 주셨다는 간증
하나님 우리도 말씀 주세요.< 수1:3 발바닥 사건>
그래서 말씀 붙들고 그냥 하는 거예요.
* 러시아 무비자 방문- 크라스노다르

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합니까?
이스라엘이 나아가는 길에  요단강이 가로 놓여 있고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고 아낙 자손들이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가지도 이스라엘에게는 역부족입니다.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으로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대책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책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요단강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은 무너지고 대적들은 쫓겨 나갑니다.     
그러니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 함께 하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발바닥 사건의 대표적 사건이 수13, 14장의 
모세가 12탐정군을 가나안 땅에 정탐을 <가데스 바네아 사건>입니다.

수14:9절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하나님 백성은 승리합니다           
그러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고 합니다.

그런데 발바닥 사건은 발바닥으로 밟는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발바닥으로 밟아 정복하더라도 그곳에서 형통해야 합니다.


4. 발바닥 사건의 형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7-8절)
그 형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7절 [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 고 합니다.
8절 [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

선교사 파송 했다고 다 된 것은 아닙니다.
교회당 건축했다고 다 된 것은 아닙니다.
대학 시험에 합격했다고 다 된 것 아닙니다. 
좋은 직장 들어갔다고 다 된 것 아닙니다. 돈 벌었다고 다 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형통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 형통의 비결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말씀의 사람이 되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 - 바른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형통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형통 - 영어 성경에는 good success - 성공이 라고 합니다. 
그럼 뭐가 형통이고 뭐가 성공입니까?
형통이란 성공이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 하나님 말씀에 붙들려 져야 합니다.
2) 그 말씀이 중심이 되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 - 바른 삶입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마는 
<레그손 카이라>라는 케임브리지 대학 정치학 교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에게는 살아있는 전설 같은 인물이라고 합니다.
레그손 카이라는 1964년 동아프리카 말라위로부터 독립한 
       니아살렌드란 나라의 카롱가라는 마을 출신으로
그 부모들이 둘 다 문맹이었기 때문에
   1958년 10월 열여섯인지 열일곱인지 모르지만 미국 선교사를 만납니다.
그 선교사로부터 책 두 권을 빌려 읽고는 도전을 받습니다.

<아브라함 링컨>과 노예출신 흑인 땅콩 박사 <부커 T 워싱턴>의 전기를 읽고  
이 사람들이 역할모델이 되어 레그손은 
   나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그러기 위해서 최고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고 결심하고
5일치 식량과 자신의 두 가지 보물, 성경책과 천로역정을 가지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미국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떠납니다.
먼저 4800km 나 떨어진 이집트 카이로 가기로 하고 길을 떠났는데
15개월 만에 총거리의 3분지 1인 1600km 를 걸어 
       우간다 캄팔라에 도착하여 생존기술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는 그 도서관에서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미국대학을 열람하여
         입학 원서를 냅니다.
어떻게 배 삯을 구하며 입학금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마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 워싱턴 주 스캐짓벨리 대학에 
     장학생으로 초청받아 그 곳에서 공부하고 
     결국은 케임브리지 대학 정치학 교수요 유명한 작가가 됩니다.
레그손은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내게는 두 가지 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성경말씀이고 하나는 천로역정이다 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험난한 밀림을 걸어오면서 수많은 위험이 따랐지마는 
        그는 성경말씀과 천로역정을 읽고 또 읽었던 것입니다.

저도 장담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화에 밀려나지 않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는 비결 
두 가지 보물을 손에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2) 책을 손에 놓지 않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형통케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형통케 하면 사람들 목전에서 그를 크게 하십니다.
수4:14절 [ 그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같이 하였더라 ] 
하나님이 그 사람을 형통케 하시면 그 이름이 창대케 됩니다.       
수6:27절 [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 
하나님이 그 사람을 형통케 하시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사람들의 도움을 얻습니다.
느1:11절에 보면 느헤미야가 바벨론에 포로되어 갔지만             
[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 
이와 같이 형통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되어 
                형통한 길로 들어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에도 발바닥 사건이 일어나 
       그 발바닥 사건이 축복의 사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발바닥 사건은 축복의 사건입니다. 어떻게 내가 이 축복의 사건 속에              
포함될 수 있습니까?(참조/수2장 기생라합)

발바닥 사건이 우리에게 축복이 사건이 되자면 먼저 복음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골2:3절 [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져 있느니라 ]

그렇습니다. 복음은 우주 만물 역사의 중심입니다.
세계의 역사는 복음에 들러리 쓰고 있습니다.
즉 < 역사관>이 바로 되어져야 세계가 바로 되어질 수 있습니다.
보세요,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복음에 들러리 서고 있습니다.

B.C331 헬라의 알렉산더 헬레니즘
B.C34 로마의 시저 로마제국
그러나 로마는 문화가 없고 그리스 로마문화 즉 그레꼬망형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한 제국이 흥하고 망하고 한 영웅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약 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된 것과 
          행16: 바울의 유럽전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근대사도 마찬가지이다
18C 영국 「산업혁명 해지지 않는 나라」「요람에서 요람까지」
19세기 중반 미국 남북전쟁 이후 모이면 선교사 파송
1960 년 존F. 케네디 대통령 고등학교 성경시간 없앰

이제는 대한민국이 선교의 마지막 주자입니다.
왜? 그토록 흩어 놓았나?
 만주 시베리아 1937 스탈린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 흑해 근방까지
 유럽 나토군 주둔 위안부 교회, 홀트 양자회 북유럽
60 년대 남미 이민, 월남 라이 따이한
88 올림픽 이후 해외 유학생

왜 이렇게 우리 민족을 세계로 흩어 놓았나?
창45:5절「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 하실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었나이다」

* 복음에 합류하면 흥하고 역류하면 망한다-이것이 세계역사이다.
 일본은?- 답이 있지요(최병락 교수).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에 협력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발바닥 사건이 내게 축복의 사건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발바닥 사건을 전개해 나가실 때         
      하나님께서 꼭 돕는 자의 사명을 가진 손길을 예비해 놓으십니다.

여호수아 여리고성 점령할 때
수2장에 기생라합을 돕는 자로 예비해 놓았습니다.
        그후 기생 라합이 받은 축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지요
히11:31절에 믿음의 장자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축복인데
마1:5절에 예수님 가문에 속했다는 것 축복 중에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약도 마찬가지이다.
행16: 빌립보 교회 루디아를 예비해 놓으시고 빌립보 교회를 세우시고
행18: 아굴라 브리스길라를 예비해 놓으시고 
     에베소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여호수아 갈렙도 신앙의 대단한 인물들이지만 
돕는 자 기생 라합도 같은 선진의 반열에 올라 있다는 것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선지자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와 같은 상급을 받는 다는 사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대통령보다 한 해 앞서
199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국경 없는 의사회`는        
지구상 어디나 전쟁이나 기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가 
      의료활동과 긴급 구호활동을 펼칩니다. 
현지 활동을 벌이는 의사들, 간호사 등을 위해 
    2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돕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1년 예산은 5억 프랑(약 900억원)에 이르는데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본부가 벨기에 브루셀 있는데 
  그중 80%이상을 시민들이 내는 기부금으로 충당합니다. 
매달 자동이체를 하는 사람이 10만 명에 이르고 
지금까지 총 백만 명이 기부금을 냈다고 합니다. 
프랑스 시민사회의 건강성은 이런 데서 발견됩니다.

저는 현지에서 직접 연대활동을 펴는 의사, 간호사들도 훌륭하지만, 
소리 없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적거나 많거나 기부금을 내는 시민들이 
`국경없는 의사`의 실제 주인이며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금을 내는 시민들이 없다면 의사, 간호사들의 활동은 거의 불가능하며, 
또 그들은 치료와 구호 받는 사람들과 직접 마주치지 않으면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다.

총회 선교사 훈련원에 가서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선교사님 한 분이 나와서 하는 말이 
    선교 후원 아무리 강조하는 것보다 
         교인들이 선교현지에 한번 방문하고 나면 
          입고 있는 옷이라도 벗어 주고 간다고 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교회가 선교하려면 
꼭 교인들을 선교지에 방문하든지 단기 선교사로 보내라
그러면 선교후원은 하지 말라고 해도 앞장서서 하게 된다. 


< 결론 >                                                     

6월 선교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의 선교 역시 발바닥 사건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선교 - 우리는 선택의 문제로 생각합니다만 
        교회는 선교는 생명이요 기능입니다. 
교회가 선교를 외면하면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기능을 잃어버립니다.
        기능 잃어버린 기관은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신학자 <부르너>는 
「불은 연소에 의해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에 의해 존재한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학자 은
「선교 비전을 상실한 교회는 더 이상 그 자신을 
              교회라고 칭할 권한이 없다」고 역설합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선교는 Misso Dei 즉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나타내실 때에 
          반드시 발바닥 사건을 통해 나타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
        다 하나님의 역사요 발바닥 사건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교회를 세우는 일 바로 발바닥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발바닥 사건의 주인공과 돕는 자의 손길이 
     많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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