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새이름 새인생(1) :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창 17:1~16)

이름을 바꾼 사람들 

부모가 자식을 낳아 이름을 지어줄 때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짓습니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 이름을 함부로 짓겠습니까? 저도 성도들 자녀 이름을 몇 번 지어본 일이 있습니다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름 뜻도 좋아야하고 부르기도 쉬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어떨 때는 뜻은 좋은데 부르기가 너무 어렵고, 어떨 때는 이름은 참 좋은데 성과 붙여 읽으면 아주 어색한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경을 쓰고 심혈을 기울여 이름을 짓건만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이상한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사자는 자기 마음에도 들지 않는 이름을 부모님이 지어주었다고 해서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법이 까다로워서 자기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도 바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만 이제는 법이 바뀌어 누구든지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면 개명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개명신청에 올라온 이름들을 보면 참 희한한 이름도 많습니다. 딸만 많이 낳아서 이젠 딸은 끝이라는 뜻으로 끝순이, 말자, 말순이 등으로 이름을 지은 경우가 많습니다. 제 형수님 이름도 ‘말희’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아들을 간절히 원한다며 딸 이름을 원할 원(願) 사내 남(男) 자를 써서 ‘원남이’라고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도 이제 언제든지 이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심지어 누가 들어도 웃음이 나올만한 이름도 있습니다. 나죽자, 김치국, 임신중, 김창녀, 노숙자, 김광녀 등등 이름 뜻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성과 붙여 읽으면 영락없이 놀림감이 될 만한 이름들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야 이런 이름을 들으면 웃고 지나가거나 놀림감으로 삼곤 하지만 당사자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평생 이런 이름을 갖고 살며 받은 그 아픔과 설움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법이 바뀌어 이런 분들이 이름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실제 이런 분들 중에 개명신청이 받아들여져 바뀐 이름을 들고는 한 바탕 목 놓아 우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름 때문에 얼마나 한이 맺혀서 그렇겠습니까? 단순히 이름 하나 바꾼 정도가 아니라 이름을 바꿈으로 그야말로 새로운 인생이 열리고 새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유는 다르지만 이름을 바꾼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자기 맘대로 바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또 이름 때문에 한이 맺혀서 바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바꾼 주체나 까닭은 다르지만 한 가지는 같습니다. 앞에 설명한 이름에 한이 맺힌 분들이나 성경에서 이름을 바꾼 분들이나 모두가 이름을 바꿈으로서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이름 몇 글자 바꾸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인생의 목적이 바뀌고, 살아갈 이유가 바뀌는 한바탕 천지개벽한 일이 일어나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 이름 바뀐 분들은 누가 있습니까? 오늘 함께 살펴보겠지만 구약에는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바뀐 경우가 나오고,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뀐 경우도 나오지요. 신약으로 넘어가면 바요나 시몬이 베드로로 바뀝니다. 사울은 바울로 바뀝니다. 앞으로 다섯 주 동안 이 이름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분들이 왜 이름을 바꾸게 되었는지, 누가 바꾸도록 시켰는지, 바뀐 이름의 뜻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알아보다 보면 우리는 아주 큰 신앙의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그 다섯 주 중에서 첫 번째로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격과 삶이 바뀌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며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람은 이 약속을 믿고 정든 하란 땅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요. 이때가 그의 나이 칠십 오세 때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창세기 17장에 가면 아브라함의 나이 구십 구세가 되었을 때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브람이라는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세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름이란 단순히 이름 석 자의 의미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과 본질 전체를 일컫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름을 지을 때 그 이름 속에 “너는 자라서 꼭 이런 사람이 되어라” 하는 뜻을 담아 짓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이름에는 저마다 이런 소망을 담은 깊은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 글자를 바꾸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내 삶 전체가 달라지고, 인격이 달라지고, 삶의 목적과 존재이유가 달라진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아브람’이란 ‘높으신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옛 사람들은 주로 한 집안이 다 모여 사는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한 집에 보통 3~4대가 다 함께 모여 살았지요. 그래서 그 대가족에는 반드시 가장 높은 어르신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는 한 집안의 가장일 뿐 아니라 그 대가족 전체를 이끌어가는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아브람’이란 바로 이 대가족 혹은 씨족 전체의 아버지, 대표자를 뜻하는 말인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한 집안의 가장’이요 ‘우리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시는데 ‘아브라함’이란 오늘 본문 5절에도 나온 것처럼 ‘여러 민족의 아버지’ 또는 우리가 예전에 보던 개역성경에 나온 것처럼 ‘열국(列國)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신 것은 그를 한 집안의 아버지요 가장 수준에서 여러 민족, 모든 나라의 조상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이름을 바꿈으로 그의 삶은 한 가정을 잘 꾸리고, 우리 집안을 잘 살게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모든 민족의 조상이 되고, 모든 민족을 잘되게 하는 엄청난 수준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삶의 수준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진 것이지요.


복의 영향력이 넓어지다

둘째, 이렇게 아브람의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뀐 것은 또한 그의 지경이 넓어지고 영향력이 넓어진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역대상 4장에 보면 그 유명한 ‘야베스의 기도’가 나오는데 야베스는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고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 백성이나 택하신 사람에게 복을 주실 때 어떤 복을 주로 주시느냐? 그의 지경을 넓혀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경이란 본디 땅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차지한 땅을 더 넓혀주신다는 뜻이지요. 이 말을 들으면 복부인이나 부동산 투기하는 분들은 좋아하실 겁니다만 죄송하지만 오늘날 이 말은 정말 땅을 넓혀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향력’을 넓혀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영향력이냐? 바로 ‘복의 영향력’입니다.

창세기 12장 2절과 3절을 다시 한 번 보세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2절에 나오는 ‘복’을 옛날 우리가 보던 개역성경에는 ‘복의 근원’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전에는 아브람이 끼칠 수 있는 복의 지경, 복의 영향력이 고작 우리 가정, 우리 집안 정도였습니다. 그 이름 뜻처럼 아브람은 우리 집안만 복 받고 잘 살게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다릅니다. 우리 집안만 아니라 열국, 모든 민족이 나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는 ‘복의 근원’야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 한 사람 때문에 내 후손 모두가 복을 받고, 모든 민족이 복을 받고, 내 주변 모든 사람이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의 영향력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는 나만 복 받고, 내 집안과 식구만 잘 살고 잘 먹으면 그만이었지만, 예수 믿고 내 삶의 변화된 후에는 복의 지경과 영향력이 엄청나게 넓어져서 나 한 사람 때문에 온 집안이 복을 받고, 교회가 복을 받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야 좋은 믿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옵소서. 내 자녀가 자기만 출세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복의 지경과 영향력이 넓어져서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복 받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옵소서” 하고 말입니다.


이름만 아니라 삶이 바뀌다

셋째, 하나님은 왜 처음에 아브람을 부르실 때부터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지 않으신 것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기왕 바꾸실 것이라면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며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약속하실 때 이름을 바꾸시는 것이 더 좋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처음부터 이름을 바꾸지 않고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은 후 17장에 가서야 비로소 이름을 바꾸게 하셨는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신 12장과 이름을 바꾸게 하신 17장 사이에 24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우선 아브람은 두 번이나 치명적인 실수를 합니다.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갔는데 아내 사래가 얼굴이 예쁘니까 애굽 사람들이 자기를 해칠까봐 누이라고 속였다가 결국 바로에게 빼앗길 뻔하지 않습니까? 같은 남자로서도 참 창피한 일입니다. 자기 살겠다고 아내를 팔아넘기다니 얼마나 치사합니까? 아마 이 사건 이후로 아브람은 아내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살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분명히 아들과 수많은 자손을 주시마 약속하셨는데도 그것을 못 기다리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후손을 얻으려고 합니다. 아내의 여종인 하갈이라는 애굽 여인을 취해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지 않습니까? 이 두 번의 치명적인 실수 때문에 아브람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하나님 앞에서나 아내 앞에서 고개를 못 드는 부끄러운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런 부끄러운 실수만 한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아주 의젓하고 믿음의 조상다운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조카 롯과 함께 살다가 헤어지게 되었을 때 얼마든지 이 삼촌이 어른이니까 살 땅을 먼저 선택하겠다고 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조카에게 우선권을 주고 의젓하게 양보를 합니다. 또 이방 왕들에게 포로로 끌려간 조카를 구하기 위해 집에서 훈련한 삼백 십 팔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쫒아가 구해오다가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기까지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아들과 많은 자손을 약속받을 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귀한 믿음까지 드러내게 됩니다. 이 24년 동안 어쩌면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았을까요? 그야말로 아브람은 한편으로는 의젓한 인격과 아름다운 믿음으로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그 다음엔 인간적인 실수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을 벌려 땅에 떨어지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들을 겪게 하신 후에 그 이름을 바꾸신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름을 바꾸게 하시지 않고 실수도 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그 실수를 극복하게도 하시면서 차근차근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름만 바꾼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 이름을 영화배우 장동건으로 바꾼다고 해서 제가 잘 갑자기 생겨집니까? 여러분 이름을 재벌총수 이건희라고 바꾼다고 해서 제가 갑자기 부자가 됩니까? 그건 아니지요? 이름 세 글자 바꾼다고 해서 제가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이름 바꾼다고 해서 신앙이 갑자기 좋아지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 믿고 난 후 자기 이름을 성경에 나오는 이름으로 바꾸는 분도 있습니다. 다윗이라고 바꾸기도 하고 바울이라고 바꾸기도 합니다. 물론 나도 다윗처럼 바울처럼 하나님 잘 믿고 싶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이름만 바꾼다고 해서 정말 우리 신앙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름 세 글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바뀐 이름에 걸맞게 우리가 정말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게 하지 않고 이런 우여곡절을 다 겪게 하시고, 실수도 하고 또 믿음으로 다시 일어나게도 하시고, 또 실수하고, 다시 극복하고 하게 하시면서 아브람의 믿음을 점점 더 연단시키고 훈련시켜 정말 아브라함, 많은 민족 열국의 아버지요 믿음의 조상답게 바꾸어 가신 후에 구십 구세에 비로소 그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게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름이 바뀌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이름에 걸맞은 믿음과 인격을 갖추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한 집안의 아버지요 가장인 ‘아브람’에서 열국의 아버지요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이 되려면 그에 걸맞은 인격과 믿음을 갖추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가 정말 우리의 지경이 넓어지고, 영향력이 커지고, 나 한 사람과 내 집안만 복을 받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일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변하고 내가 자격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내가 안변하고 내가 자격도 못 갖추고서 이런 큰 복을 받고 능력을 갖기 원하는 것은 이름 세 글자만 바꾸고 하루아침에 잘생긴 영화배우나 재벌이 되기 원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일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저와 우리 성도들 모두가 정말 위대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 같은 신앙의 거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지경을 넓히고 영향력을 넓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는 복의 근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중에서 이런 사람이 많이 나와야 내 가정이 변하고, 우리 교회가 변하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이 변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믿음이 더 커져야 합니다. 인격이 변하고 삶의 목적과 이유가 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뿐 아니라 우리의 전 인격과 신앙이 변하고 이런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갈 수 있는 법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우리 교회가 이렇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사래에서 사라로

이제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사라로 이름이 바뀐 이유를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셨을 뿐 아니라 그 아내 사래 또한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그러면서 16절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람이 한 집안의 아버지라는 뜻인 것처럼 사래 또한 한 집안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남편의 이름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 열국의 아비’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꾸신 것처럼 아내 또한 ‘여러 민족의 어머니, 열국의 어미’라는 뜻을 가진 ‘사라’로 바뀌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앞서 우리가 이름을 바꾸려면 믿음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고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야 한다고 했는데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뀌려면 부부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가정이 바뀌고 삶이 바뀝니다. 그만큼 부부가 중요하고 가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에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분명 부부를 하나 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육체적으로만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생각이 하나가 되고, 가치관이 하나가 되고, 비전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생각과 가치관과 비전이 하나 되지 못하고 단순히 육체적으로만 결합하여 하나가 된다면 진정한 부부가 아니요 그 부부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편 아브라함만 이름을 바꾸신 것이 아니라 아내인 사라 또한 이름을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남편이 한 집안의 가장 수준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열국의 아버지요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아내 또한 한 집안의 어머니 수준이 아니라 열국의 어머니요 믿음의 조상이며 복의 근원이 되어야 비로소 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이미 결혼한 분들과 앞으로 결혼할 분들은 다 명심하세요. 먼저 내 신앙이 자라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나만 잘 믿는 것이 아니라 내 남편이나 아내도 같은 수준으로 자라야 합니다. 그래서 안 믿은 남편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 저 사람 예수 믿게 해주세요” 수준으로 기도하지 말고 아예 “하나님, 저 남편이 아브라함 수준으로 믿게 하시고 저는 사라 수준으로 믿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부가 함께 변하고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그리고 자녀와 온 가정이 함께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위대한 믿음의 가정으로 성장해 가야 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늘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배우자와 자녀가 기왕 예수 믿었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처럼 위대한 신앙인이요 복의 근원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짧은주소 : https://goo.gl/vKcLxw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글쓴이
36293 설교 실패할 수 없는 우리 삶 (창 45:1~8; 롬 8:28~30) file 2010.07.03 215 운영자
36292 설교 한이 없는 기회 (창 26:12~22) file 2010.07.03 270 운영자
36291 설교 하나님의 사랑 (눅 15:11~24) file 2010.07.03 290 운영자
36290 설교 제자가 되는 길 (눅 14:25~35) file 2010.07.03 361 운영자
36289 설교 예수님의 선교 활동을 도운 사람들 (눅 8:1~3) file 2010.07.03 411 운영자
36288 설교 비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 (막 10;46~52) file 2010.07.03 542 운영자
36287 설교 광풍에서 항구로 (시 107:23~32) file 2010.07.03 286 운영자
36286 설교 [교회체육대회]목자의 품 안에서 놀이하라 (시 23:1~6) file 2010.07.03 597 운영자
36285 설교 우리 영혼의 치료자 (마 9:9~13) file 2010.07.03 275 운영자
36284 설교 삶의 위기, 그 해결책은 예수 (행 16:31) file 2010.07.03 337 운영자
36283 설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겔 11:19~20) file 2010.07.03 270 운영자
36282 설교 목자없는 양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마 9:35~38) file 2010.07.03 402 운영자
36281 설교 [부부주일] 행복한 부부 (삼하 6:16~23) file 2010.07.03 395 운영자
36280 설교 미혹되지 말라 (살후 2:1~4) file 2010.07.03 281 운영자
36279 설교 내 곁에 계신 하나님 (요 1:10) file 2010.07.03 291 운영자
» 설교 새 이름 새 인생(1) :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창.. file 2010.07.03 3309 운영자
36277 설교 가치 있는 자 (사 43:4~5a) file 2010.07.03 325 운영자
36276 설교 고백 신앙 (롬 10:9~13) file 2010.07.03 258 운영자
36275 설교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느 6:1~9) file 2010.07.03 257 운영자
36274 설교 달리다굼 (막 5:35~43) file 2010.07.03 650 운영자
Board Pagination Prev 1 ... 3658 3659 3660 3661 3662 3663 3664 3665 3666 3667 ... 5477 Next
/ 5477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