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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가 되는 길 (눅 14: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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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되는 길 (눅 14:25~35) 

오늘 말씀은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하는 말로 시작됩니다. 
갈수록 더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 우선 구경꾼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기적을 보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만 생각할 뿐 자기 삶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저 호기심에서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복받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부자가 되고 싶고, 병든 자는 건강하고 싶고, 낮은 자는 높임을 받고 싶고, 입시를 앞둔 자는 시험에 합격하고 싶은 이유로 예수님을 따릅니다. 복받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니 나도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이 가자고 하니 억지로 끌려 나오기도 합니다.

㉣ 어떤 사람들은 좋지 않는 마음으로 뭐 '예수님을 책잡을 것이 없는가, 흠잡을 것이 없는가' 하는 고약한 동기로 따르기도 합니다. 

㉤ 그 중에 몇몇 사람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는 확실한 신앙과 고백을 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번쯤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나는 왜 교회에 나오느냐? 왜 나는 예수님을 믿느냐? 어떤 동기와 이유에서인가?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가는 앞으로의 신앙 생활의 모습을 결정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래도 안 믿는 것보다 무슨 이유로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따르다보면 말씀을 통해서 변화받고 새롭게 되어 바른 믿음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 성자 프랜시스에게 제자가 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프랜시스는 그들을 본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당에 있는 밭으로 가서 배추를 뽑아서 거꾸로 심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어떻게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는 말인가? 이게 무슨 말인가?
모두 불평을 하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한 사람은 배추를 뽑아 잎사귀를 땅 속에 묻고 뿌리가 드러나도록 거꾸로 심었습니다. 
프랜시스가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자가 되는 것보다 선생이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 소리하지 않고 배추를 거꾸로 심은 이 사람만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누구나 교회의 일원이 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일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무리가 있었는가 하면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마찬가지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무리와 제자입니다. 
본문은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쫓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특별히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고 제시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 곁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댔습니다. 그들이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모두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따른 사람들은 아닙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제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제자를 ‘스승을 따르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따른 사람들이 다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분명히 모든 무리에게 이르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면 아마 그 말씀조차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를 나누시는데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계십니다.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성(性)입니다. 천국백성과 지옥백성을 구분하는 기준은 믿음입니다. 어떤 돼먹지 못한 호텔 종업원은 고급 승용차냐 봉고차냐를 가지고 사람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사람을 나눌 때는 기준이 있습니다. 사람의 기준은 때로는 말도 안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한 기준에 따라 무리와 제자를 나누십니다. 
분명하고 정당하고 의로운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은 자기 중심적이냐? 예수 중심적이냐?입니다. 
무리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무리는 자신의 이익이 있기에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익이 없다면 손해가 된다면 언제라도 돌아서는 사람이 무리입니다.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런 사람들은 바로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철저히 예수님 중심으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위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무리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제자입니다. 
바울은 ‘제자'란 말을 '군사'로 바꾸어 교훈합니다. 
[딤후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자신이 기쁘기 위해 예수님을 쫓는 자는 무리일 뿐입니다.

◈ 오늘 본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구절은 ??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라는 구절입니다. 
26, 27, 33절에 세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1. 주님을 가장 사랑해야 합니다 (26)
26절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본문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구절입니다. 
제대로 제자 구실을 하려면 부모에겐 불효자가 되고, 처자에겐 불성실한 사람이 되고, 
형제들에게도 몰인정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쓰여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살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목숨을 미워하라는 말을 문자대로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제자가 되는 첫 조건이 너무 심하게 느껴집니다. 도대체 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두려운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학생부는 2월 28일에 있을 예술의 밤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 7시면 자발적으로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학생들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자기들 스스로 이상하다고 합니다. 온 성도님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예술제의 주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입니다. 
영어로 The one 부제- 더 이상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이 너와 함께 있다면

만약 연습을 하는 것이 제 마음에 안들고 모이면 싸우기만 한다고 가정하고 제가 
“야 그렇게 하려면 하지마! 다 집어치워!” 이렇게 말을 했다고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듣고 예 알겠습니다. 취소하겠습니다. 하고 그만 두면 되겠습니까?
설교 시간에 떠드는 아이에게 야 떠들려면 오지마 이렇게 했다고 예 안올께요 하면 제 소원대로 된 것입니까? 
제 마음은 예술제 준비를 좀 더 열심히 잘 하라는 마음입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잘 들으라는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은 뜨거운 신앙생활을 하도록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신앙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 난 신앙 생활 그만 해야 겠다 생각하는 사람은 참 난감합니다. 
열심이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좀더 열심을 내야지, 교회 안 나오겠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본문으로 돌아와서 26절 속에 숨어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모든 가족이나,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해야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둘 다를 사랑하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 동가숙 서가식이란 말이 있습니다. 
신랑감을 고르는데 동쪽 집 신랑감은 장래성이 있는 유망한 젊은이인데, 가난합니다. 
서쪽 집은 큰 부자인데 사람이 좀 모자랍니다. '어느 집에 시집가겠니?' 물으니까 
딸이 대답합니다. '동쪽 집에서 잠자고 서쪽 집에 가서 밥먹을래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참 아깝지만 결정적인 때는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쪽 저쪽 다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다음에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 해(害)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이런 결단과 결심이 있은 다음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각오가 생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제일 사랑한다는 말은 뒤집으면 자기와 자기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그래야 진정한 제자란 말입니다.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자가 제자입니다. 
자신의 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복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제자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부모, 형제, 처자식,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독선적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생각?? 그러나 이것은 독선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마음이 좋은 남편이라고 자기 부인이 여러 남자와 사랑을 하는데 잘한다고 그냥 두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27)

27절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제자의 조건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주님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고통 당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십자가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겪은 개인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어려움, 물질적인 손해를 자기 십자가라고 말하지만 엄밀하게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고통이고 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십자가는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주님의 십자가에 비추어서 해석해야 합니다. 

① 십자가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성경의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죄의 삯은 사망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피가 곧 생명이니 피를 통해서만 죄를 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는 방법은 피를 뿌려야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 죽으면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 십자가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피흘려 죽지 않으면 사람들은 영원히 죄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② 십자가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간격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중간에 막힌 담을 헐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죄로 죽을 인생을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을 바꾸었습니다. 
운명과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시키시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③ 십자가는 마귀를 꺾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요일3:8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 어떤 사람이 고통스런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항상 불평을 하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주님께서 십자가를 여럿 보여 주시면서 하나만 고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금 십자가도 있고, 은 십자가도 있고, 나무로 된 십자가도 있었습니다. 
크기도 제 각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맞는 십자가를 하나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얼른 금으로 된 십자가를 골라지려고 하는데 너무 무거웠습니다. 은으로 된 것도 마찬가지로 무거웠습니다. 나무 십자가는 마음에 안 들어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가장 네게 어울리는 십자가를 골라 주겠다 하시면서 나무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욕심이 난 그는 "아닙니다. 주님, 나는 금으로 된 십자가를 지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아직은 그런 십자가는 견디지 못하여 줄 수 없고 앞으로 이 나무 십자가를 잘 지면 나중에는 금 십자가도 주마" 하셨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맞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입니다. 
지금 어려운 상황이 너무 힘이 드십니까? 불평스러우십니까? 
주님이 나에게 딱 알맞은 십자가를 주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다른 사람이 져줄 수 없는, 자신이 져야만 하는 책임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남에게 떠맡기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투철한 책임감이 바로 제자의 조건입니다. 
날마다 순교자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날마다 내가 죽어야 가정이 화목하고 이 직장과 사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우리는 기분이 좋으면 양보도 하고, 봉사도 하고, 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자기를 십자가에 죽이지 못하여 반항하고 혈기를 부립니다. 살았다 죽었다 변덕이 심합니다. 
변하지 말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날마다 십자가를 바로 지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십자가에 죽으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처럼 부활의 축복이 옵니다. 
참된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며 날마다 죽는 사람입니다. 


3.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33)

33절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모든 소유를 버린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재산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땅문서나 집문서, 통장이나 지갑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 '버리라'는 말은 소유권을 포기하라는 말입니다. 
누구의 소유로 있던 것의 소유자가 그 권리를 포기하면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마찬가지로 내 소유권을 포기하고 주님의 소유권으로 이양하라는 말입니다. 
가족도, 친척도, 자신의 목숨까지도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라고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런 소유권 이전을 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참 제자는 자신이 종으로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사용하며 사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로서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만물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제자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여러분의 소유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활용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몇 푼 안 되는 것을 내 것이라 우기며 사는 가난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주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청지기가 되어 충성을 다하는 종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잘 관리하는 제자입니다. 

◈ 창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곧 주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불평하지 않고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창22:12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참 제자로서 인정받는 장면입니다.

욥의 고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욥1:21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은 제자입니다. 
진정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오늘은 만나고 내일을 헤어지는 만남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병고침을 받고는 그 은혜를 곧 잊어버리는 만남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무엇을 좀 배우고는 다시 돌아가는 그런 만남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교인이나 성도만이 아닌 예수님의 제자를 원하셨습니다. 
나의 제자가 되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 재미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날카로운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15장 1-2절입니다. 모든 죄인과 세리 -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왔습니다.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 원망하였습니다. 
어설픈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에게 만족하여 주님의 말씀을 싫어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제자로 사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가장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갈등의 상황이 될 때 하나님을 선택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기 바랍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당하는 고통과 아픔이 십자가입니다. 
지금의 십자가가 적당한 십자가입니다. 남에게 미루지 말고 힘들어도 지시기 바랍니다.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가 되기 바랍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소유권을 이전등기 하시기 바랍니다. 

내 것이라고 우기는 가난한 사람이 되지말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보다 더 부자는 없습니다.

내가 낮아져야 예수님이 높아진다. 
내가 없어져야 예수님이 나타난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살아난다.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얻기 위해 
언젠가 놓아야 하는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에과도르 선교사 엘리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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