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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민 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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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민 13:1~10)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수13:8)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상이 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축복하시며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하신 일을 받아드리고 순종하며 그 분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데스에서 모세에게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된 자 한 사람씩 뽑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탐색지역의 땅의 상태와 거주민의 상태를 자세하게 정탐하도록 하셨습니다.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 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수13:17-20) 

  하나님께서 정탐꾼들을 먼저 보내게 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을 미리 확인하게 하고, 나아가 그들이 본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생하게 증거하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하시므로 시내 광야를 떠나 바란 광야 가데스에 오기까지 지쳐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무시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먼저 가나안 땅이 비옥한 땅임을 보고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수13:27-29)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그 땅의 비옥함을 나타낼 수 있는 증거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꺾어서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둘러메고, 석류와 무화과 열매와 함께 가져왔습니다.
  이들의 보고는 객관적이고 실제적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대한 보고자들의 평가와 견해는 달랐습니다.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견해를 같이한 갈렙은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 곳으로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수13:30)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그들이 정탐한 가나안 땅에 대하여 악평하면서(새번역/ 나쁜 소문을 퍼드리면서) 자신들의 견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수13:31)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수13:32-33)고 했습니다. 

  믿음은 결코 현실과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수의 객관적인 판단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은 결코 이성에 의한 합리적 주장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실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믿음은 객관적 사실만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객관적 사실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확인하고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이성의 합리적 판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적이고 실제적으로 현실을 잘 살펴보았습니다. 그러기의 그들 다수의 주장을 객관적 판단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엔 절망만 있었지 희망이 없었습니다. 기대감도 없었습니다. 감격이 없었습니다. 보람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가나안 땅을 악평하면서 약속의 땅에 대하여 비판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만 그들의 객관적이고 논리적 보고가 부정적 선동을 뒷받침하기위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보기에도 자신들이 아낙자손과 비교해서 메뚜기와 같을 뿐이라면서 자기비하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갈렙의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 는 주장은 이들의 비판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실종된 곳엔 불신앙의 행동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온 회중은 아우성치며 밤새도록 통곡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하고 반역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대한 풍요를 증언하게 하심으로 희망과 감격을 나누고자 정탐군을 보낸 가데스가 절망과 탄식과 슬픔의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데스는 무리꾼들의 선동과 반역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신의 자리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런 불신앙의 역사 속에서 자기의 옷을 찢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수14:7-9)

   믿음은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무엇임을 고백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땅을 주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땅의 거민이 강하냐와 그렇지 못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신다면 우리를 그 땅의 주인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저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4:18-24)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외의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의심하거나 약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믿음은 견고해 집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행동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믿는 사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이루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이 일들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성전건축’의 과정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 없는 우리에게 지역의 뉴-타운 개발이라는 환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전건축을 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건축을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교회는 성전건축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사인으로 믿고, 기도하면서 1평 봉헌 헌금으로 부족한 대지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기초설계를 마쳤습니다. 

  지금, 우리교회는 마치 가데스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대지확장에 따른 세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설계를 끝내야 합니다. 조합과 협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당장 재정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건축에 준비되어 있지 못함으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10명의 정탐꾼과 같아서는 아니 됩니다. 아론과 여호수아처럼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믿음으로 싸워야 합니다. 성전건축의 역사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615예수 행복 3000’ 이라는 초청예배를 준비하면서 전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성전이 헐리기 전 6월15일은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3000명의 사람들 이 모여 예배드리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가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615 예수행복 3000’은 예수님의 약속으로 믿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으로 이일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믿음은 순종을 따르게 합니다. 믿음은 주님과 함께 행동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정복의 역사에 참여한 것처럼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참여하게 합니다. 이 모든 일은 주님께서 해 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의 승패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와 성도가 되는데서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결론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지못한 10명의 정탐꾼들과 그들의 주장에 선동된 21세 이상의 불신앙의 백성들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하루를 1년으로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며 죽어갔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지 못하고 가나안 입성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29-35절)

  그러나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20세 이하의 아이들과 함께 가나안 입성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순종함으로 믿음을 보이십시오. 믿음의 있기에 하나님과 함께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하나님이 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으로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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