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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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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최근에 미얀마에서 사이클론이 발생해서 전 세계가 놀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연이어 중국 쓰촨성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또다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생겼습니다. 수만으로 시작된 신문 보도가 시간이 갈수록 수십만, 수백만 이런 식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몇 년 전 동남이 일대를 휩쓸었던 쓰나미로 전 세계가 경악했는데, 이런 대재앙이 갈수록 빈번하게 심하게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뿐 아니라 최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들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국제 곡물 가격 급상승, 국제 유가 급상승, AI 조류 독감, 광우병, ...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가 닥칠 것이고, 그로 인해서 전쟁도 일어날 수 있다, ... 이런 등등의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절로 튀어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말세야, 말세!” 그렇습니다! 정말 말세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불안에 떨며 살아야 될까요? 아니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려니 하고 체념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도 저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때일수록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과연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게 중요합니다. 성경은 개인 인생의 매뉴얼일 뿐 아니라, 세계 인류 역사의 지침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말세를 사는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가다듬고 이 어려운 시대에 가장 복되고 존귀한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종말이 임박한 시대 : 말세지말

먼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들을 정리해 보면 좋겠습니다. 말세, 종말, 말세지말, ... 이런 말들을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조금씩 의미가 다릅니다. 이 용어들 중에서 ‘말세지말’이란 말이 오늘 이 시대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말세라는 말을 살펴보면, 말세(末世)는 예수님의 탄생(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Period)을 가리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세 하면 세상이 곧 끝나는 때를 가리키는 말로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1세기에도 말세, 지금도 말세라고 계속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세계 인류 역사가 마지막을 고하게 되는데 그 마지막 시점(Point)을 종말(終末)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종말을 가리켜 헬라어 알파벳 마지막 글자(ω)를 사용해서 ‘오메가 포인트’(ω Poin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말세지말(末世之末)이란 말은 무엇입니까? 말세 기간 중에서 종말이 아주 임박한 시기(Terminal Age)를 가리킵니다. 오늘 이 시대가 바로 말세지말인 것입니다. 


[2] 말세지말의 징조 : 각종 징조의 가속화, 세계복음화

말세지말의 시기에는 말세의 징조가 점점 심각하게, 가속화되어 나타납니다. 이런 내용이 바로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예루살렘 성전을 둘러보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말세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래서 흔히 마태복음 24장을 가리켜 말세훈(末世訓) 혹은 소계시록(小啓示錄)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을 때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세에 관해 예언하셨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세는 종말까지의 ‘긴 기간’입니다. 그 사이에 일어날 일들을 언급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내용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예언의 복합성’이라 부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이 기간 중에 일어날 여러 사건들에 대한 예언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의 훼파(주후 70년 성취)가 있을 것임을 먼저 언급하십니다. 정말 주후 70년에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로마 군인들에 의해 짓밟히고, 내부의 혼란도 발생하면서 기근과 학살로 무려 100만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예언은 이것만 포함한 게 아닙니다. 그 후 종말 이전까지 유사한 사건들이 계속 발생할 것을 언급합니다. 실제로 과거 2천년 역사를 보면 무수한 재앙들이 일어났습니다. 난리와 전쟁, 기근과 지진 등 ... 이게 바로 말세의 징조들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을 언급합니다. 

그래서 말세의 징조들이 발생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곧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종말이 닥치겠구나 ... ”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재림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아, 재림이 없나? 종말이 없나?” 그렇지 않죠. 그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해 보면 예루살렘 멸망은 그 시초에 불과합니다. 갈수록 말세의 징조들이 가속화됩니다. 

① 각종 징조의 가속화 :

말세의 각종들이 마태복음 24장에 열거되어 있는데, 어떤 것들입니까? 전쟁과 난리, 기근과 지진, 인간성 파괴, 종교의 혼돈, 천체의 변동과 기상 이변 등입니다. 

마24:7~8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전쟁과 난리입니다. 각종 재앙들입니다. 

마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인간성의 파괴입니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마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마24:23~24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종교의 혼돈 즉 영적인 혼란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특히 말세지말에는 성경적인 바른 교회를 만나 신앙생활 하는 게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이단의 세력에 미혹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우주천체가 흔들립니다. 시간 이변이 생깁니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가 여실히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현상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후 1세기부터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 징조의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고, 그 빈도가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최근에 그 강도가 극도로 심화되고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현상을 음악 용어로 설명한다면 ‘크레센도’(crescendo)를 생각하면 됩니다. 점점 세게 나타나다가 언젠가 불현듯 예수님의 재림이 이뤄지고 인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② 종말과 세계복음화 : 

그런데 종말이 임박했다는 가장 결정적인 징조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세계 복음화입니다.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가 복음 전파는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선교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상에 2만 4천 종족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 복음이 미치지 못한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은 선교학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이제 7천~6천 종족 이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도시화 현상과 정보화 현상으로 문자 그대로 지구촌(Global Village)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세계 복음화는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이 시대는 말세지말이요, 종말이 임박한 때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면에서 종말이 임박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위에 언급한 인류역사적인 종말도 중요하지만, 개인적 종말도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죽음으로 닥쳐옵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는 정말 임박한 종말인 것입니다. 젊다고 건강하다고 설마 하고 방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종말이든, 개인적 종말이든 그 임박성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말세지말을 사는 성도의 자세 : 종말론적 신앙 

이런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과연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마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예수 그리스도)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말세의 징조들이 하나하나 이뤄지고 점점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종말이 임박한 줄을 감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종말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을 가리켜 흔히 ‘종말론적 신앙’ 부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들갑떨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단들이 대개 그렇죠. 어떤 이단들은 재림의 연월일시(年月日時)까지 정해놓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자기들이 계시를 받았다며 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마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런데도 재림의 연월일시를 주장하는 자들을 가리켜 시한부 종말론(時限附終末論)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재림의 정확한 연월일시는 모르고 다만 임박함을 예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재림을 예측하는 시계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시침(時針)과 분침(分針)입니다. 시침은 세계복음화 진천 상황입니다.(마24:14) 그리고 분침은 마지막 이스라엘의 회심입니다.(롬11:25~27) 

만일 재림의 정확한 일시를 알려주면 인간의 본성 상 아마 당일치기로 신앙생활을 할 겁니다. 그 전날까지 진탕 놀다가 마지막에 잘 하는 척 할 겁니다. 그런 본성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지 않는 겁니다. 말하자면 항상 잘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종말을 의식하는 가장 지혜로운 모습은 항상 깨어 있는 ‘건강한 긴장감’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재림할지 모르니까, 개인의 종말이 언제일지 모르니까 항상 깨어 있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언제 주님을 만나도 당당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겁니다.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게 바로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구체적으로 영적으로 깨어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세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 성결의 생활, 복음의 전파 등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언제 예수님이 오셔도, 부르심을 받아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확신하십니까? 그러면 아무 염려 없습니다. 언제 주님이 부르셔도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그러므로 성결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정결한 신부로 자신을 살피며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약혼한 신부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잘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전도(동일문화권 복음전파)요 선교(타문화권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마24:45~46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이 말씀대로 부지런히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다 주님을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자세로 복음 전파와 세계 선교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성도를 가리켜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World Christian), 그러 교회를 가리켜 ‘세계를 품은 교회’(World Chuch)라고 부릅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성도가 선교지로 나가야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각각 부르시는 대로 가든지 보내든지(Go or Send) 하면 됩니다. ‘가는 선교사’(Going Missionary) 혹은 ‘보내는 선교사’(Sending Missionary)가 되면 됩니다. 물론 보내는 선교사를 정식 선교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선교의 사명에 동일한 책임을 갖고 동참한다는 점에서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이제 오늘부터 4일간 <제17회 신반포 선교축제>가 있습니다. 매년 주제가 다릅니다. 선교에 관해 공부하고 재인식하는 좋은 기회입니다. 여러분, 이번 주제가 무엇이죠? ‘제2의 벤처 인생, 전문인 선교’입니다. 

요즘 시니어 세대들은 은퇴한 후에도 젊고 유능합니다. 그래서 최근 시니어 선교(Senior Mission)가 자주 강조되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있어요. SM5, SM6, SM7 ... 자동차 모델명은 아니고, 어느 선교신학자가 명명한 것으로 연령대별 시니어 선교사를 가리킵니다. 50대에 시니어 선교사로 헌신하는 분을 SM5, 60대에 헌신하는 분을 SM6, 그리고 70대에 헌신하는 분을 SM7이라 부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 청년들이 1년, 2년, 혹은 장기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시니어들도 이미 그랬습니다. 의료 사역, 교수 사역으로 몇 년씩 다녀오신 분이 계시고, 한 달씩 선교지에 가서 자작 교회당을 건축하고 오신 분도 계십니다. 선교지에서 사업을 하면서 선교 사역에 크게 기여하는 분도 계십니다. 앞으로 우리 가운데서도 주님이 부르시면 응답함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동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군대 안 가도 세금을 내고 기타 국민의 의무를 감당해야 되는 것처럼, 보내는 선교의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면 됩니다. 선교에는 면제는 없습니다! 다만 자기 스스로 기피할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내는 선교 사명은 어떤 것들일까요? 편.물.기.(편지, 물질, 기도)입니다. 
이런 것들이 직접 선교지에 나가 사역하는 분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선교사들이 현지에 있다 보면 외로움을 많이 느낍니다. 그때 보내주는 편지 한통, 이메일 한 통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물질을 드리면 그것들이 모아져 선교지에 보내질 때 성경책이 되고 전도지가 되도 자동차가 되고 기름이 되고 교회당이 되고 병원이 됩니다. 그동안 많은 성도들이 선교를 위한 헌금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의 귀한 헌금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90세가 넘은 최고령 권사님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분은 이따금 거액의 선교헌금을 하십니다. 한번은 제가 여쭈었습니다. “권사님, 어르신이 무슨 돈이 있다고 계속 헌금을 하세요?”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이랬습니다. “언제 천국 갈지 모르는데 하나님 나라 확장 위해 부지런히 해야죠. 세계 역사를 보면 선교 많이 한 나라들이 모두 강대국이 됐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죠!”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또 이런 식으로도 선교에 동참할 수 있을 겁니다. ‘영파선교회’(靈波宣敎會) 이야기입니다. 故 박용묵 목사님(대길교회) 후손들이 선교에 동참하다 주변의 지인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선교회로 발전한 것입니다. 국내외 선교 활동을 하는데, 특별히 오늘 파송식을 하는 로수길, 변상이 선교사님 사역하시는 인도 캘커타에 매년 설날 연휴에 의료 선교를 갑니다. 이런 가문이 정말 크리스천 명문가입니다. 

이런 경우가 힘들다고 생각하면 교회를 통해서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이 선교사 한 분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선교 후원하는 전통이 이어지면 얼마나 멋집니까?

우리가 선교에 헌신하면 결코 손해 보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을 하는데 어찌 잘못 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보증하십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하나님)의 나라와 그(=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장충교회 장근조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산돌하우스’라는 선교사 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초등부 부장 시절 선교사님을 영접하러 김포공항(인천공항 생기기 전) 근처에 갔습니다. 선교사님이 전날 귀국해서 싸구려 여인숙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모기에 물려서 눈이 붓고, 밤새 잠을 못자서 피곤이 꽉 찼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지하 셋방 사는 처지여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날 밤 식구들끼리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에 건물을 그렸습니다. 강남에 7층 단독건물을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쓴 겁니다. 그로부터 3년간 매일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이뤄졌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선교하는 성도와 개인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영광입니다. 한번 왔다 가는 인생, 짧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장차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천국의 스타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단12:3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성도 여러분! 종말이 가깝습니다. 우리 인생도 얼마 남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종말이 가까운 말세지말에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요?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고, 정결한 신부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그래서 주님 만나는 그날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기쁨과 자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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