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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7층 짜리 믿음의 집 (벧후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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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 짜리 믿음의 집 (벧후 1:5~11)

옛날 미국의 어떤 믿음의 부부가 아들과 함께 서커스 구경을 갔습니다. 아주 어려운 시절인지라 큰 맘 먹지 않고는 갈수 없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줄을 서서 표를 사려하는데 마침 줄 앞에 8명의 자녀를 데리고 와서 줄을 선 어느 흑인 가정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가정도 모처럼 온가족이 서커스 구경을 왔는지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 당당히 서 있었고 자식들은 서커스 구경에 흥분해 있었습니다. 이제 순서가 되어 앞에 있는 그 가정의 남편이 표를 사려는데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돈이 모자란 것입니다. 남편은 입장권이 그렇게 비싼 줄 생각을 못한 것입니다. 그때 뒤에 서있던 믿음의 부부 남편이 눈치를 채고는 얼른 호주머니에서 20달러짜리를 꺼내 그 당황해 하는 아버지 앞에 가서 땅에서 줍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돈이 여기 떨어져 있군요. 선생님 돈을 이렇게 흘리시면 어쩝니까?” 하면서 그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때 앞에 선 흑인 아빠는 눈치를 챘습니다. 

그러면서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하면서 손을 잡고는 아이들과 함께 표를 사가지고 그 서커스 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날 그 뒤에 섰던 믿음의 부부는 서커스 구경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서커스를 본 것 보다는 더 기뻤습니다. 

여러분, 이 모습이 참 믿음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사람을 향해 베푸는 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고 그 서커스를 보고 싶으나 한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는 믿음을 볼수 있고 형제우애와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 사람과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주님이 들어와 있기에 그렇습니다. 주님이 들어와 계시다는 말은 주의 성령이 내속에 계신다는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이 네게 들어와 계시다는 것입니다. 내속에 하나님이 거하고 예수님이 함께 하는데 어떻게 세상 사람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과는 생각도 달라야 하고 삶의 방식도 달라야 하고 삶의 가치관도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도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하면서도 세상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살고 있다면 심각하게 구원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저는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우리의 믿는 성도의 삶이 마치 건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집을 지어 보셨나요? 저는 교회를 건축할 때 자세히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이죠? 

제일 먼저는 설계도를 그립니다. 그리고 관할기관에 허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공사를 시작하는데 제일 먼저 하는 과정은 기초를 닦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위에 집을 지어갑니다. 골조를 세워 기둥을 만들고 벽돌을 쌓으면서 한 층 한 층 쌓아갑니다.  

우리 성도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신앙 생활하는 것도 일종의 믿음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집을 지어야 할까요? 

저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 성도는 7층짜리 믿음의 집을 짓는 사람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7층짜리 믿음의 집, 이것이 무엇일까요?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어야 할 집은 어떤 집일까요? 

1.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집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다 같이 읽습니다.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긴 성경구절이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는데 이 약속은 우리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닮아 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그 것, 그 성화의 구원을 세워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성화를 이루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집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의 집은 어떤 과정과 단계로 지어가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여기에 단계가 있고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단계가 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아주 심오하고 깊은 차원의 단계가 있습니다. 

5절~7절을 보세요.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여기 잘 보세요. 
먼저는 예수를 구주로 믿기에 우리 모두는 믿음이라는 기초위에 집을 세워 가는데 그 위에 어떤 단계의 집을 지어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 칠층입니다. 8가지이지만 믿음은 기초라 할 수 있으니 그 위에 7층집을 짓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기초에다가 덕-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우애-사랑이라는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이 “단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집이 지붕부터 짓는 집이 있나요? 
어떤 집이 기초 없이 지는 경우가 있나요? 
믿음 위에 덕이 올려 져야 하고, 덕 위에 지식이 올려 져야 하고, 지식 위에 절제가 올려 져야 합니다. 이런 순서와 단계가 반드시 지켜질 수는 없으나 어떻든 이런 단계가 무시되면 공사가 힘들어집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단계 중 한 단계에서만 부실공사가 이루어져도 어느 날 환난과 핍박이라는 지진이 닥치면 맥을 못 추고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도는 믿음의 단계와 수준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만 이해하면 모든 성도를 품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고 다 같은 성도 아닙니다. 성도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 사람은 몇 단계, 이 사람은 몇 단계 할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분별력이 없는 초보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오래 나왔으나 아직도 일층에서 헤매는 성도도 있습니다. 반면에 몇 년 안 되었는데 몇 계단 확 올라가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앙은 부단히 성장을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모태에서 태어날 때는 우리가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태어났으면 부지런히 먹고 운동하고 해야 성장합니다. 배고프면 울어대야 합니다. 그래야 한번이라도 더 얻어먹고 크게 됩니다. 주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주세요 하면 성장이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힘쓰듯이 영적 성장과 건강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여 믿음의 집을 지어가기를 축원합니다. 


2. 신앙의 집은 어떤 층으로 지어져야 하나요? 

오늘 우리는 내 신앙의 단계를 알아야 내 믿음의 집을 바로 세워 갈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7층의 믿음의 집은 이렇게 세워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층은 믿음위에 세워진 “덕(德)층”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믿음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아직 성도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또 믿음으로 축복 받고, 믿음으로 성결을 얻고 영생을 얻어 천국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만큼 ‘믿음’은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일 때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살아있는 믿음’ ‘움직이는 믿음' 즉 ‘행동하는 믿음’은 뭘 말할까요? 바로 이것이 “믿음위에 덕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덕은 다른 사람의 약점과 부족함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마치 보자기로 모든 것을 싸고 덮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게 부족하니 우리 신앙이 부실공사가 됩니다. 이게 부족하니 우리 기독교인의 믿음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삼국지에 의하면 유비가 관우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그런데도 형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가 갖고 있던  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덕은 지략과 용맹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에 덕을 더하여 원숙한 믿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층은 덕위에 세운 지식(知識)층 입니다. 

이 지식은 믿음의 기초와 덕의 터전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지식은 아무 쓸모 짝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을 가진 사람이 덕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깨달아 알아야 제대로 된 순서라는 것이다. 

여기 지식이라는 단어는 knowledge 라는 단어를 쓴 영어성경도 있고 또 다른 성경에서는 understanding 이란 단어로 쓰인 성경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지식은 이해되는 지식을 말합니다. 말씀이 이해되는 지식, 성경을 보다 더 잘 아는 지식을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덕이 없는 지식으로 그것을 신앙생활로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은 있는데 덕이 없다면 그 지식은 마귀가 잘 이용하는 지식입니다. 
결국 믿음이 없이, 덕이 없이 지식만 있으면 마귀의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눈먼 소경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잘 배워 덕위에 지식을 갖추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 지식이 없으면 성숙한 믿음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단의 유혹에 빠지기 쉬습니다. 작은 어려움이 찾아와도 쉽게 흔들려 신앙의 삶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층은 지식위에 세운 절제(節制)층입니다.  

절제가 뭡니까? 이것은 “통제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지나침이나 부족함이 없이 적절히 조절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self-control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사람이 누굽니까? 남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이 절제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이것 고장 나면 심각해집니다. 
이게 고장 난 사람들이 누굽니까? 중독자들입니다. 알코올 중독, 담배, 마약중독, 절도와 강도들입니다. 자기가 통제가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이정도 되면 이제 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절제를 갖춘 능력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층은 절제위에 세워진 인내(忍耐)층입니다. 

이 정도 되면 신앙이 高手에 접어 든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절제에 인내’를 더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인내의 생활이 없이는 참된 절제의 생활이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내가 무너지면 절제도 무너집니다. 그러기에 절제와 인내는 서로 돕는 동지와 친구입니다. 이 둘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내를 상당히 중요한 덕목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에게서 이 두 가지 모습이 보이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예로부터 위대한 인물들은 인내로서 성공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구약에서 이삭은 온유와 인내의 모범자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요셉은 인내로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욥은 인내로서 승리한 대표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내함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층은 인내위에 세워진 경건(敬虔)층 입니다.  

이 전도되면 이제 신앙의 성숙자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여러분! 경건이 뭡니까? “예의”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할 태도요 도리라고 하면 ‘경건’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 지켜야 하는 태도요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경건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경건입니다. 
그래서 딤전 4:7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했습니다. 

이 말은 ‘경건’이라는 것은 단시간에 저절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땀 흘려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생활훈련입니다. 

참경건의 모델은 예수님이고 그것의 극치의 모습은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순종입니다. 이 경건은 사람은 잘 알아주지 않습니다. 별로 표가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딤전 4:8에는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경건의 모양도 있어야 하고 능력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6층은 경건위에 세워진 형제우애(兄弟友愛)층입니다. 

이정도 되면 성인에 속합니다. 

왜요? 7절에 보면 경건에 형제우애를 더하라고 하셨는데 이 형제우애는 구역성경에는 "화목"이라고 번역되었던 말씀입니다. 주변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어지간한 사람과는 다 하나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요? 편합니다. 즐겁습니다. 왠지 가까이 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가정을 하나님이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 간에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화목입니다. 

화음이 뭐지요? 악기가 연주될 때 한 가지 음만으로는 결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음들이 함께 어울릴 때, 그 음들이 조화를 이룰 때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형제 우애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해주며, 어울리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넘칠 때 교회는 행복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7층은 형제우애 위에 세워진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며, 성령의 열매 중에서도 가장 먼저가 사랑입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예수님 같다고 하고 ‘성자’라 불릴 정도입니다. 

왜요? 사랑은 신앙의 결정체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출발하여 사랑으로 결말을 짓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사랑 이상의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의 마지막에 사랑을 더하면 모든 것이 원만하여지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조금 부족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풍성하여 이를 덮어준다면 이를 충분히 메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4:8에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했고 골3:14에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히 매는 띠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이 풍성하여지면 누구든지 이 사랑의 날개아래 평안을 누릴 수 있고 이 사랑을 힘입어 이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모든 단계는 노력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집이 몇 층까지 세워진 상태입니까? 

너무 낮은 단계라고 한숨 쉬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성장이란 계단을 오르듯이 하나씩 더하여 성장하는 생활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7절 마지막 단어 문제입니다. “공급하라” 그러면 누가 공급해야 합니까? 

5절 초반에 보면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뭡니까?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입니다. 

이 정도는 외워보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더욱 힘쓰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시지만 우리의 노력과 힘씀이 없으면 결코 이런 것은 우리 것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신앙의 성장은 우리의 힘씀이 필요합니다. 노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왜 부르셨는지, 그리고 왜 택하셨는지를 알고 그 사명과 은혜를 확고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력하고 힘쓰지 않으면 성장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해야 우리가 실족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집이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집이 건축되길 원합니다. 내 믿음의 집을 돌아보세요. 어느 분야가 부실합니까? 그 분야에 대한 긴급 수리작업이 이루어지길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노력과 수고가 없다면 우리의 믿음의 집은 중국에서 지진으로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집들처럼 우리 신앙도 무너질 것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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