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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힘써 지키라 (엡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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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 지키라 (엡 4:1~3)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을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고 고개 끄덕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멘’ 한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성공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Jesus Christ!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시작된 아버지들의 회개운동인 
‘프라미스 키퍼스’(promise keepers,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 모임은
미국의 영적 흐름을 주도할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단일 대회로는 최대 인파 140여 만 명의 남성이 워싱턴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때 사회자가 회중을 향하여 “여러분의 교파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참석자들이 여기저기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 등 … 
소속된 교단을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하지만 140만 명이 각자의 소리를 내니까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이 됐습니다. 
그 때 다시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믿고, 누구 때문에 이곳에 모였습니까?”
그 때 또렷한 하나의 대답이 들렸습니다.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 <2007-10-22 국민일보 참조>

예수 믿는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축복하고 격려해야 할 사람들이
- 서로를 믿지 못하며 비난하고
- 적으로 여기고 싸우는 모습을 보입니다. 
- 목사가 목사를 비난하고
- 목사가 교인을/교인이 목사를 비난하고
- 교인과 교인이 헐뜯고 갈라서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말은 하지만 … 서글픈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 5:9)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화평을 만드는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평화를 깹니다. 화목을 깹니다.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 화평을 만드는 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 되게 하신 것을 …

오늘 본문 1절 말씀에는“ …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합당하게’는 말은
‘또 하나의 다른 들보를 세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천장이나 바닥에 대는 지지대를 ‘들보’라고 합니다.
-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부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들보/지지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성경책이 비스듬하게 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비스듬하게 설 수 있습니다. 지지하는 나무 하나만 대면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남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 희생하고 
지지대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에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2~3절 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3)고 했습니다. 

하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간혹,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하는 신앙생활은 불이 붙기도 힘들고, 
불이 붙었다하더라도 오래타지 못하고 꺼지고 맙니다. 
시편 133편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고 동거한다’는 것은
남을 찌르기 쉬운 자기의 가시는 자르고/꺾어 서로 얽혀있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 안에서 서로 묶여있는 것이/서로 얽혀 있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 되어 살고‘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

빌립보서 2장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다툼’과 ‘허영’입니다.

다툼: selfish ambition(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다투게 됨.
자기 욕망 채우려고 남을 무시하고 밀어 붙이는 것 
허영: 자만, 덧없는 마음. (vain conceit : 공허한, 허영, 자부심) 
거짓말로 자기를 감추고 자기를 높이는 것

이런 ‘다툼’과 ‘허영’을 깨는 힘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겸손’을 ‘스스로 낮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 우리는‘죄의 종’이었습니다. (롬6:17)
불순종의 아들이고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2:2~3)
그런데도 우리 속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교만한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는데
우리는 자기보다 남을‘낮게’ 여기는 교만이 문제입니다. 

다툼과 허영으로 가득 찬 교만한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러니 이기적인 욕망(selfish ambition)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공허한 자부심(vain conceit)으로/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여 
자신을 높이려 애쓰는 것입니다.

누가복음(18:9~14)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보면
‘나’만 드러내기 위해 ‘나’만 강조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 ”(눅 18:11~12)
이처럼 교만한 자의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없고 자신의 잘남만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삶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보다 남을 못났다고 여겨 낮춰 보고 차별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쓰시고 겸손한 사람을 존귀케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5~6절에
“ …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고 했습니다.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겸손하여 
평안을 이루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온유해야 … 

그리고 온유해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온유(溫:따뜻할 온, 柔:부드러울 유)는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뜻입니다. 
영어성경(NIV)에는‘gentle-온화한, 친절한’이라고 했습니다. 
양복에 넥타이 매고 구두를 신어야 젠틀맨이 아닙니다.
온화하고 친절한 사람이 젠틀맨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죽은 시체는 차갑고 딱딱합니다.
시체는 언제 만져 봐도 차갑습니다.
영안실 냉장실 안에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숨이 끊기고 혈액순환이 멈춰지면 우리의 육신은 차가워지고 딱딱하게 굳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아니면 ‘차갑고 딱딱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차고 딱딱하다는 것은 죽었다는 뜻과 같습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감싸 안을 수 있는 따뜻함/포근함이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따뜻한 말로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언뜻 보면, 온유한 사람은 손해를 보면서도 
화낼 줄 모르는 나약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그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우리 주변엔 시도 때도 없이 분을 폭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보십시오. 그런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부드러운 사람/따뜻한 사람/착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평안을 이루며 기쁘게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 온유함으로 평안을 이루며 사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에
“ …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시37:11)했습니다.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는 복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래 참아야 … 

그리고 오래 참아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을 설명하는 첫 마디가 “오래 참고”입니다.
이 세상에 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는 오 ~~~ 래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 ~~~~ 래 참지 못하니까 분쟁이 생기고, 화목하지 못하고, 갈라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부분에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 신앙 생활하는 여러분이 조금 더 참읍시다. 조금 더 견딥시다.
- 예수 잘 믿는 내가 오 ~~~ 래 참자.
- 더 잘 믿는 내가 오 ~~~ 래 참자.
- 나이 먹은 내가
- 마음 착한 내가
- 잘 생긴 내가
- 더 예쁜 내가 … 먼저 참읍시다. 
그래야 하나 될 수 있고 화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래 참아야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향해 
오래 참아 주셨기 때문입니다.(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시키실 때도 3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3년의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도망갔고, 예수님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돈 받고 선생님을 팔아넘기고,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간 가룟 유다 같은 제자도 있었습니다. 
① 아무리 자비로운 하나님이시지만
유다의 손발을 묶어 두지는 않으셨습니다.
② 유다는 제 길로 갔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남은 이들에게/제자들에게 또 일 맡기시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고부간에, 시누올케 간에 ~
목사에게/성도에게 … 서로 서로 좀 참아 주십시다. 오래 ~~.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하는 것까지야 어떻게 할 수 없지만 …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는 자들은 권하고 
그래도 안되면 저희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성경도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롬16:17~18)
멀리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멀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 하나는 내가 떠나는 것
- 다른 하나는 그를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와 장소, 상황 그리고 거치는 자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해야 합니다. 

- 학교/직장에서 공공에 해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 계속 피해를 준다면 권해야 합니다. 
또 권하고 권해야 합니다. 참고 참고 참다가 …
그래도 안되면 타인을 위해 퇴학 또는 퇴출을 시키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어떤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까? 
모일 때마다 하나님 뜻에 맞지 않고 죄의 길로 끌고 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권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권하고 권하고 권해야 합니다.
그래도 변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자신을 위해 그 모임에서 탈퇴해야 합니다.

그것이 멀리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무조건 함께 하면서 모든 일에 참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일에 하나 되라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용납해야 … 

서로 용납해야 하나 됩니다. 받아 들여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7절에
“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양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시네 / 내 모습 이대로 받으셨네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시네 / 나도 널 사랑하며 섬기리"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 그대로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을 때 
‘성격 고치고 와라, 얼굴 고치고 와라’… 등 
우리에게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모습 그대로 … 
못난 모습 그대로 … 사랑으로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핵심은 있는 그대로를 용납해 주는 것입니다. 

부잣집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독립해서 살고 싶은데 … 도리에는 어긋나지만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주실 수 없겠습니까?’ 청합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재산을 나눠 주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돈을 받아 들고 나간 아들은 자기 멋대로 삽니다.
자신이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라 다 쓰고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잠 잘 곳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도 많은데, 종노릇이라도 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아버지 집에 종살이라도 하러 가자고 결심하고 집에 갔습니다.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늘 궁금한 아버지는 
행여나 아들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 하는 마음에 늘 먼 곳을 쳐다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터덜터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아들을 본 아버지가 ‘야 이놈아 ~ 씻어라. 옷 갈아입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씻기고 옷 갈아입힌 다음에 끌어안은 것이 아니라
먼저 끌어안고 씻기고 옷 갈아 입혔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회개하면 / 돌아서면 원래의 자리를 찾으려는 욕심도 버리고
‘그냥 받아 주기만 하면 고맙겠습니다.’하는 마음으로 
가기만 하면 끌어안고 받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힘써 지키라

오늘 본문 3절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 하나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용납함으로 하나됨을 지켜가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하나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받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 적을 두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저를 좋아하시기 바랍니다.

David Murrow라는 사람이 쓴 책 
「Why Man Hate Going to Church」라는 책에 보니까
(왜 남자들이 교회에 가기 싫어하는가?)
“남자는 여자보다 집중하는 시간이 짧다”고 합니다.
TV 볼 때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돌리는 남자가 정상이랍니다.
남자는 집중하는 시간이 짧다고 합니다. 고작 6~8분 정도 된대요.
그러니 남자가 리모컨 들고 이리 저리 채널을 돌려도 여자분들 참아 주세요.
그런데도 그런 남자들이 이렇게 긴 설교를 듣고 계시니 감사한 일이지요.

탐과 요아니 슐츠(Tom and Joani Schultz)가 설교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보니까
- 겨우 12%의 사람들이 설교 내용을 기억하고
- 87% 사람들은 설교 중에 딴 생각을 하고
- 35% 사람들은 설교가 너무 길다고 한답니다.


제가 이 책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결심했을 것 같습니까?
- 100명 중에 12명 기억하는 설교 대충 준비하자? 아니요.
- 87%가 설교 중에 다른 생각 한다는데 너무 열 내지 말자? 
그랬을 것 같습니까? 아니요.
- 35% 설교가 길다고 생각한다는데 
남자들이 버틸 수 있는 8분 정도에 끝내자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니 …
설교 - 더 잘 준비하자
- 더 열심히/열정적으로 설교하자
- 길 ~ 더라도, 꼭 전할 말씀은 전하자 … 고 결심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적을 두고 있으니 저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게 하신 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인천에 ○○교회 목사님의 목소리가 별로 안 좋습니다.
설교를 들으려면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 교인들은 그 목사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기운이 난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식으면 그 목소리가 짜증날 것입니다.

힘들어도 속상한 일이 있어도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우리는 하나 되어 함께 걷네 / 하늘 아버지 사랑 안에서 
우리는 기다리며 기도하네 / 우리의 삶에 사랑 넘치도록”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 되어 함께 걷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 되기 위하여, 가족이 하나 되기 위하여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하여, 민족이 하나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뜻을 지켜가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귀로 듣고 흩어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게 하시고
삶에 하나됨을 실천하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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