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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고의 친구 (요 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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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친구 (요 15:11~17)

1. 이런 친구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좋은 친구’라고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지요? ‘스티븐 존슨’이라는 사람은 친구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부르면 당장에 달려올 친구가 있습니까? 없다면 당신은 친구가 없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기쁠 때, 함께 기뻐할 사람이 있습니까?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당신에게 기쁜 일이 있을 때, 찾아가서 붙들고 얘기하면, ‘그래, 그래, 그거 참 좋겠다’ 하며 시기나 질투 없이 함께 기뻐해 주고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또한 당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선뜻 당신에게 돈을 빌려주고, 만일 자신에게 돈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꿔서라도 빌려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면, 당신은 친구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명한 과학자였던 퀴리 부인은 “역경에 처할 때 진정한 친구의 숫자를 세어 볼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많은 것 같지만, 고통을 당할 때나 역경을 만났을 때 비로소 진짜 친구가 몇 명이냐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에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친구 두 사람이 전쟁에 함께 징집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이 훈련을 받았고, 같은 부대에 배치되어 같은 전선에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한창 전투가 진행 중이던 어느 날, 두 사람 중 한 친구가 참호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적진과 아군 사이에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고립된 그의 머리 위로 총탄과 포탄이 끊임없이 쌩쌩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아군들도 어쩔 도리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머지 한 사람은 자신의 친구가 없어진 것을 알았고, 지금 참호 밖에 고립된 그 병사가 자신의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친구는 그곳으로 달려가기 위해 벌떡 일어섰습니다. 이것을 본 분대장이 가로막았습니다. “지금 나가면 너도 위험해 진다.” 그러나 분대장의 시선이 다른 데로 쏠린 틈을 이용해서, 그는 재빨리 참호를 나와서 친구가 있는 곳을 향해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친구에게 접근해서 그 친구를 들쳐 업고 참호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참호로 돌아왔을 때, 그는 총탄과 포탄의 파편에 맞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었고, 생명도 보장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그가 데리고 온 친구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분대장은 야단을 쳤습니다. “이런 병신 같은 놈. 이 바보 같은 녀석아. 네 친구는 이미 죽었단 말이야. 그리고 너도 죽어가고 있어. 자네가 이렇게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때 죽은 친구를 들쳐 업고 왔던 병사가 분대장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무슨 의미가 있느냐? 친구는 이미 죽었고 저도 부상을 입었으니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분대장님은 제 친구가 죽기 직전에 했던 얘기를 듣지 못하셨지 않습니까?” 
“그래, 자네 친구가 뭐라고 말했나?” 
“제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짐, 나는 네가 올 줄 알았어. 짐, 나는 네가 올 줄 알았어.“ 
”이것이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친구입니다. 친구는 고통의 순간에 그의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친구 한 사람 정도는 있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그 한 가운데, 아님 실제로 여러분이 생사가 오가는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여러분에게 달려와 줄 수 있는 그런 친구 한 사람 정도는 있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런 친구가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친구보다 더한 친구가 되어주시겠다고 나선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친구에 관한 말씀입니다. 


2. 우리 친구 예수님

1)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친구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앞에 놓고, ‘너희는 곧 나의 친구다’ 라고 말씀하십니다(14,15).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자신과 같은 지위로 우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바로 이런 면에서 이 말씀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시 제자는 스승의 종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승과 제자는 결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중국영화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한 여자 고수에게 어떤 청년이 무술을 배웁니다. 무술 수련이 계속 되는 과정에서 스승과 제자인 남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게 된 주변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것은 패륜이다. 스승을 사랑하고 스승과 결혼하려는 것은 마치 어버이를 범하는 것과 같은 죄악이다”라고 하면서, 두 주인공의 결합을 막으면서 벌어지는 불행한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상황과 비슷한 스승과 제자 간의 윤리의식을 볼 수 있는 이야기이지요. 

제자는 스승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님이 단순한 스승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입니다. 창조주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인형을 만들고서 그 인형을 향해 친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어린 아이들의 동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무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제부터는 ․․․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1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설교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는 내 친구라’는 말씀을 처음에 들으면 감동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정말 예수님께서 내 친구시란 말인가?’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다가 또 다른 의문이 하나 더 생깁니다. ‘내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나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어떻게 나 같은 존재가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 말씀은 너무나 놀라운 선언이라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친구라는 말을 사용할 때, 친구의 종류는 여러 가지입니다. 어린 시절의 친구나 학교 동창,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는가 하면, 대충 알고만 지냈던 친구도 있습니다. 당시는 몰랐다가 나중에야 같은 학교 혹은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친구도 있습니다. 남자들에게는 아주 절친한 친구가 군대 동기이며, 나이 들어 만난 직장 동료도 있습니다. 이웃에 살기에 친구가 된 사람, 자녀들의 같은 반 아이의 엄마기에 친구가 된 사람, 운동하면서 만난 친구, 계에서 만난 친구, 교회에서 만난 친구 ․․․ 등으로 친구란 정말 다양합니다. 그리고 친구 사이의 우정도 여러 가지입니다. 

한 번 씩 생각나는 친구, 아주 절친하여 늘 정기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친구, 비밀 한 두 가지 정도는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친구, ‧‧‧. 이처럼 우정이라는 것도 다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있어서 친구의 의미, 우정의 의미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특별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친구란 그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육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뜻만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이라고 하는 것은 ‘프쉬케’라는 말로서, 정신이고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할 때, 그 목숨은 이 몸뚱아리를 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온 정신과 영혼까지 다 바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이제부터는 ‧‧‧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15)”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육신과 온 마음과 영혼까지 버려줄 수 있는 친구가 되시겠다는 뜻입니다. 아멘!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에는 여러분을 향한 또 다른 약속이 하나 더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버려 친구가 되신 것은 과거의 한 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여러분을 위하여 목숨, 마음, 영혼, 그 이상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안고 가는 인생의 짐이나 고통을 얼마든지 해결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이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와 친구가 되어주마 하시는 이 위대한 제안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이 놀라운 제안, 즉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주시겠다는 것, 그리고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시겠다는 말씀을 받으시고 그대로 믿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우리에게 비밀을 알려주는 친구

오늘 본문이 말하는 친구의 두 번째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친구는 모든 비밀을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친구란 비밀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뭔가 감추는 것이 있다고 느껴지면 아무리 친구라도 꺼림칙합니다. 그렇게 믿었던 친구가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배신감마저 들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곧바로 신학대학원 시험을 준비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 다른 시험을 하나 준비했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시험을 약 두 주간 앞두고 부산으로 내려와 신대원 시험을 준비하는데,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랑 같이 공부를 하는데, 이 친구가 시험 족보랑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보여주지를 않는 겁니다. 자료가 없다고 하길래 없는 줄 알았더니, 시험이 끝나자 답을 확인하겠다면서 가방에서 그 많은 자료를 내 놓는 것을 보면서, 그만 저의 마음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친구는 비밀이 없는 사이, 아니 도리어 적극적으로 비밀을 알려주는 친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밀은 신비하고, 이상하고, 알쏭달쏭한 어떤 것을 말합니다. 때론 불확실하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개인에게 있어서 평생을 자신의 가슴에만 묻어두어야 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조직이나 단체 혹 국가적인 비밀도 있습니다. 기업의 프로젝트나 제품 개발에 관한 비밀, 국가의 외교적인 비밀이나 군사적인 비밀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하는 비밀은 아주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꼭꼭 숨겨두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본문이 비밀이란 어떤 것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비밀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어디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시는가? 인간의 시간과 역사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등에 관한 지식입니다. 즉 성경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 전체에 대하여 세워놓으신 계획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왜곡된 우주와 자연의 질서가 예수님 안에서 회복될 것이며, 모든 것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로 통일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에게는 비밀이 아닙니다. 다 알고 믿고 있는 것들이지요. 그러나 예수님 당시나 초대교회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로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하나님에 관한 것,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던 것들, 하나님의 머리 속에 있던 것들, 하나님의 하실 일에 관한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 전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비밀은 가까운 친구에게나 이야기할 수 있지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말한다면, 그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비밀이 평범한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아는 것이라면 별 기대도 안 되고 감동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만약 아주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 인생과 우주와 앞으로 펼쳐질 하나님의 경영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전 우주와 온 세상과 지난 역사와 앞으로 될 일에 관한 모든 것,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실만한 친구로 여기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이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려고 계획하셨습니다(창18장). 그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부르셨던 하나님은 당신의 친구인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하실 큰 일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감히 친구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로 여겨서, 하늘의 비밀을 보이시고 알게 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나와, 내 가정과, 이 땅에 관한 비밀이나, 미래의 일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영의 세계, 그 이상의 신비한 일들도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15).”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의 가슴을 뜨겁게 하지 않습니까? 인생과 만물과 우주의 비밀을 가지신 예수님을 친구로 두신 여러분은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아멘!


3. 참 좋은 나의 친구!

기독교의 위대한 스승 중의 한 사람이자 유명한 대설교자였던 크리소스톰(345-407)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당시 왕후 유도시아의 미움을 받아 오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유배지에서 나그네로서 인생을 마친 사람입니다. 크리소스톰이 유배기간을 끝내고 도시로 돌아오는 날에는, 전 시민이 그를 열렬히 환영하며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크리소스톰은 왕후 앞에 끌려가, 왕후의 비위를 거슬리는 설교는 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를 받아야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왕후는 노발대발하며 "내가 너를 저 바다 한 가운데로 유배를 보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면 크리소스톰은 "감사합니다. 나를 바다 가운데로 보내시면 내가 사도 요한 같이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너를 깊은 산중으로 보내버리겠다."라고 하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엘리야 같이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너를 죽여버리겠다"라고 하면, 그의 대답은 "그것은 내 평생 소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너를 너의 많은 친구로부터 떼어놓겠다"라고 하면, "나는 이미 당신 때문에 세상의 친구를 다 잃었습니다. 그 덕분에 당신이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참 친구 한 분을 만났으니 그 분이 내 친구 예수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폰터스 사막에서 노끈에 끌려 이리 저리로 끌려 다니다가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크리스스톰에게 마지막까지 남은 친구는 오직 예수님 뿐이었습니다.

‘친구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내가 누구냐’ 하는 것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훌륭한 친구를 가진 사람은 자신도 그런 대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제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군단 사령부 헌병대 대위로 있었습니다. 그게 제법 제게 힘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먹혔습니다. “내 친구가 군단 본부 헌병대 이 대위야” 하면 다들 인정을 해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검사로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그 검사인 친구와 동료검사들이 모이는 자리를 주선하고, 그들과 친해지면서 같이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이 사람도 검사인줄 알고 검사대접을 했습니다. 그가 노린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사람을 친구로 가진 사람은 그 사람도 위대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돈 많은 부자입니까?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입니까? 뛰어난 학자입니까? 여러분들이 친구로 삼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가장 위대하신 분을 친구로 삼고 있습니다. 아니 그가 먼저 다가 오셔서 여러분에게 친구가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을 친구로 삼은 여러분들은 어깨에 힘을 주시고 당당하게 걸어도 좋습니다. 어디 가서 큰 소리쳐도 좋습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친구를 가졌고, 아니 그보다 훨씬 위대하고 크신 분이신 예수님이 여러분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 곁에 다가가셔서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친구가 되시겠다는 것은 여러분을 위하여 목숨과 그 이상의 모든 것이라도 아끼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친구되신 예수님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 지식, 하나님의 하실 일, 하나님의 경륜 등, 그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주시려는 분입니다. 즉 예수님이 생각하신 친구는 비밀이 하나도 없는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주신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힘차게 남은 생애를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친구로 둔 여러분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결코 작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도 위대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위대한 사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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