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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이상적인 가정 (시 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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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가정 (시 112:1~3)

하나님께서 가정(家庭)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창 1:27).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왕(다스림과 통치)적 사명을 주셨습니다. 선지자(생육과 번성)적 사명을 주셨습니다. 제사장(땅에 충만)적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른바 문화적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남자를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창 2:18).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창 2:24). 가정은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연합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상적인 가정'은 

Ⅰ. 신적(神的)요소가 있는 가정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가정은 성부 하나님의 창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의 구속으로 새롭게 되고 성령 안에서 신령하고 거룩한 안식처가 되어 갑니다. 

1) 믿음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믿음은 인간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인간들의 노력이나 인간의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요 1:13). 

2) 신앙고백이 있는 가정입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마 16:16).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고 했습니다(마 16:17). 

3) 예배가 있는 가정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9절에 『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은 바로 예배하는 교회였습니다. 고넬료의 집이 교회였습니다(행 10:1-4). 루디아의 집이 교회였습니다(행 16:14-15). 빌레몬의 집이 교회였습니다(몬 1:2).
그리스도인들의 집은 찬송과 기도와 말씀이 그 집 안에 언제나 충만해야 합니다. 

4) 성령이 충만하여 사랑이 넘치는 가정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실천이 곧 사랑실천으로 등식화되고 있습니다(출 20:3-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했습니다(마22:37-40). 

'이상적인 가정'은 


Ⅱ. 인적(人的)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인적요소는 기독교윤리(Christian Ethics)의 실천입니다. 

1) 어버이에 대한 효(孝) 윤리실천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7절에 『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2-3절에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0절에 『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공경'이란 뜻은 간(肝)이란 의미입니다. 부모를 언제나 간처럼 무겁고 귀중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부모와 자식사이를 이른바 천륜(天倫)이라고 합니다. '자효쌍친락 가화만사성'(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효를 행해야만 그 가정이 어떤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옛 말에 이애처자지심 사친즉곡진기효((以愛妻子之心 事親則曲盡其孝)라 이 말은 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기면 효성이 지극하고라는 말입니다. 


2) 부부에 대한 애정윤리 실천입니다. 

(1) 일부일처의 원리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장 23절에 『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4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합입니다. 따라서 부부는 한 몸이라는 대전제를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2) 연합의 원리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5절에 『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30절에 『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창 2:21-25). 부부는 어떤 경우에서도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고린도전서 7장 5절에 『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3) 사랑과 순종의 윤리입니다. 
에베소서 5장 28절에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를 자기 목숨을 걸고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목숨을 다하여 순종하는 것이 부부윤리의 철학입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마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인 교회를 사랑하듯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괴물(Monster)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라도 아브라함을 주(主)라고 했습니다(벧전 3:6). 탈무드에는 아내는 남편이 문둥이가 되기 전에 떠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문둥이 남편과는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도록 격리시켜야 되는 것이 당시의 관례이기 때문입니다. 
'치인외부현녀경부'(癡人畏婦賢女敬夫)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가정을 잘 다스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아내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은 아내를 통솔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명한 여자는 남편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남편을 소중하게 받들고 공경할 줄 안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감독직을 얻으려면 자기 집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딤전 3:5). 

(4) 성결의 윤리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히 13:4).
수(隋)나라 학자인 문중자(文仲子)는 말하기를 '혼취이논재이로지도야'(婚娶而論財夷虜之道也)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혼인에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 즉 야만적인 길이라고 했습니다. 
성스러운 남녀의 결합에서 상대의 인물보다 재물이나 자신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닌 부모로부터 받은 환경적 조건을 논한다는 것은 비굴하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의 결혼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어떤 경우든지 성결의 윤리가 파괴되면 온전한 결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상적인 가정'은

Ⅲ. 그리스도의 사랑실천의 산실이어야 합니다. 

1) 선교적 사명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4-15절에 『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가정은 교회의 출발이었습니다. 초대교회 가정은 선교의 산실이었습니다. 

2) 빛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요일 1:5). 예수님은 빛이십니다(요 8:12). 그는 참 빛입니다. 구원의 빛이십니다(요 1:9). 그는 구속의 빛이십니다(요 1:4). 
우리는 그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입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7절에 『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했습니다(롬 2:19). 그리스도인은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했습니다(엡 5:8). 우리는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입니다(살전 5:5). 

3) 소금의 사명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고 했습니다. 
소금은 언약의 상징입니다(민 18:19). 소금언약은 동맹언약입니다(대하 13:15). 맛의 절정인 본래의 맛입니다. 본래를 잃어버린 곳에 소금을 쳐서 맛을 찾게 하는 사명입니다. 우리의 본래는 하늘나라입니다. 우리의 본래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본래는 예배하는 피조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자고나면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공할만한 참변은 모두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환난의 불감증에서 벗어나 현실적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상천외한 일들은 성경에서 이미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면 말세의 징조입니다.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에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시편 49편 7-9절에도 『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화학자들에게 물어보면 사람을 구성하는 탄소, 수소 등을 돈으로 따져볼 때 100달러도 안 된다고 합니다. 영혼은 화학의 원소로 구성되지 아니했으니 나머지는 영혼의 값이란 말입니까?

파우스트는 세상의 비밀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으니 세상의 지식이 그 댓가인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입니까? 엄밀히 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우리를 구해내셨기 때문에 속량 받은 인간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가치는 곧 십자가의 가치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가치입니다. 
우리의 가정에는 신적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는 인적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정의 순(順)기능입니다. 
우리 가정은 마냥 평안만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현실과의 긴장감이 녹아져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가정에 기도가 있고 회개가 있고 천국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마추어들이 아닙니다. 취미로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프로들입니다. 왜냐하면 프로들이 그렇듯이 우리의 삶은 일거수일투족이 금세와 내세의 상급으로 직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말에는 남들에게 없는 능력이 있고 우리의 문장에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기가 흘러야 합니다. 수(水)를 쓰면 물이 흐르고 화(花)자를 쓰면 꽃이 되어야 합니다. 붓도 없고 물감도 없을 때 손가락을 깨물어 방울방울 흐르는 선홍빛 피를 물감삼아 한 송이 꽃을 그리면 향기도 없고 모양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손끝에 저미는 아픔으로 느끼게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봅시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이여/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옵소서/ 밤비에 새 잎이 나가던 나인가도 여기소서."
고죽(孤竹) 최경창과 홍랑의 시문(詩文)을 타고 흐르는 러브스토리는 비록 비극이라도 좋지 않습니까.
실제 1999년 3월 영국의 탬즈강 어귀에서 고기를 잡던 한 어부의 그물에 병 하나가 걸렸는데 그 안에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쓴 러브스토리가 있었습니다. 
"군함 위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소. 당신에게 이 편지가 전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을 병 속에 담아 바다에 띄우오. 만약 이 편지가 당신 품으로 가거든 받은 날짜와 시간을 써서 소중히 간직하며 기다려 주오. 사랑하는 이여 그만 안녕.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1914년 9월 X일." 
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아내 콘스탄체에게 모차르트의 러브레터는 어느새 오선지에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신 주위엔 나의 입맞춤이 무수히 흩어져 날아다니고 있지 않소?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도 당신의 입맞춤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고 있는 게 보이오. 어서 그 놈들을 잡아요! 하하‥ 방금 세 마리를 잡았는데 맛이 기가 막히군…"
우리 신랑 예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러브레터를 보내고 계십니다. 인간들에게는 장소의 한계, 시간의 한계가 있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의 간격을 두지 아니하시고 가까이에서 속삭이고 계십니다. 나는 너와 결혼했다고… 그리고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하노라고…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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