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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 가라 (눅 5: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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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가라 (눅 5:17~26)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누가복음 5:17-26

오늘은 장애인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21년 전에 사랑부를 설립하여 주일마다 장애우를 위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주중에도 “사랑의 학교”에서 많은 장애우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장애우를 둔 부모들은 가슴이 아픕니다. 현재의 고통도 크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녀들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며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장애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육체적 장애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장애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육체적 장애뿐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인 장애, 학습 장애, 성격 장애도 있습니다.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은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은 무려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OECD국가에서는 장애인을 인구의 최소 10%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문명국가일수록 집계되는 장애인의 수가 많습니다. 작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장애인으로 분류하여 국가와 사회가 돌보려고 노력하니까요.

200만의 장애인 가운데 88%가 후천적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몸으로 태어났으나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얼마 전부터 저희 집 골목에 전에 없던 차들이 많이 주차해있습니다. ‘왜 이렇게 차들이 많이 생겼나?’ 궁금해서 알아보았더니, 지난 1년 동안 부산 시민 400만 명이 구입한 자동차 대수와 분당 사람들이 구입한 자동차 대수가 똑같답니다. 이렇게 차가 많이 늘어나면서 자동차 사고도 비례해서 많아지고 장애인도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종종 장애인들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56세 된 어느 사이비 종교 지도자는 정신지체자들을 수용하면서 그들을 감금하고 노동력과 돈을 갈취했습니다. 장애인들을 괴롭히는 일들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18년 동안 지적장애인 부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들을 위해 정부에서 주는 생계비마저 횡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참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장애 중에는 육신의 장애뿐 아니라 영혼의 장애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고, 만져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이 세계, 아름다운 꽃과 해와 달과 별과 생명체들을 보면서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어나서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영적인 장애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려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을 축하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정신적 장애, 정서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생의 시련과 힘든 인간관계 때문에 충격을 받고 일어나지 못한 채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우리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금년도 우리 교회의 표어 중 하나가 ‘일어나 섬기자’입니다. 기독교인의 기본적 생활은 자원해서 봉사하는 삶입니다. 

본문말씀에 온 몸이 마비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몸이 마비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제가 지난주에 치과를 갔습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잇몸에 마취제를 주사했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교회에 와서 결혼식 주례를 했습니다. 단 위에 올라가서 말을 시작하려는데 마취가 다 풀리지 않아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순간 아찔했습니다. ‘아, 이 작은 부위, 잇몸 하나를 마비시켰는데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구나!’ 그러니 팔다리가 마비되고 전신이 마비된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몸도 마비되고 마음도 마비되고 영혼도 마비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지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섬김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돕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의 마비된 사람에게는 도우려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몇 사람이 힘을 합해서 그를 돕기로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데리고 가면 이 사람의 장애를 고쳐줄 것이다. 그것이 영적 장애든, 정신적인 장애든, 육체적 장애든, 성격적 장애든 무엇이든지 예수님께 가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봉사하고자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게도 섬김의 마음을 주시길 원합니다.” 이런 기도가 여러분의 속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본문의 마비된 병자를 도운 사람들은 혼자 돕지 않고 협력하여 팀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사랑방, 선교회, 각종 위원회들이 있습니다. 혼자서 섬기는 것도 좋지만 조직원들이 협력하여 돕는 것이 더 좋습니다. 사랑방에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의논하고 마음을 합하면 작은 시작이 크게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의 경우도 친구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서로 협력을 하니 창의력이 생겼습니다.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가려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들은 생각 끝에 지붕을 뚫고 병자를 끈으로 묶어서 내려 보낸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논하면 창의력이 생깁니다. 혼자 보다 두 사람이 낫고, 세 사람보다는 사랑방이 더 낫지요. 

예수님께서는 천장에서 내려온 마비된 병자를 보시고 “친구여, 네 죄가 사함을 얻었느니라!” 선포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 외에는 죄를 용서할 수 없는데 저 자가 죄를 용서하다니 참람하다. 신성모독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한 번 판단해 보라.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라’는 말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우냐?” 어느 쪽이 더 쉬울 것 같습니까? 못 걷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 것이 훨씬 더 어렵지요. 

죄 사함은 영적인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고 영원히 사해주셨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면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의 대가를 스스로 지불할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 쪽에서 이미 우리 죄의 대가를 다 지불하시고 용서하셨기 때문에, 이제 용서를 선언하고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장애는 더 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를 향하여 걸을 수도, 다가갈 수도 없는 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죄 사함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을 열고 주위의 영적 장애인들에게 죄 사함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들은 영원한 자유와 영원한 치유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수명은 70정도요, 좀 더 건강하면 80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70~ 80세 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물어 보십시오. 그 연세가 될 때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를. 잠깐입니다. 화살처럼 날아가요. 저도 이제 알겠더라고요. 저도 내년에 70입니다. 어느새 지나갔는지, 너무 빠릅니다. 그러나 영원은 이 땅의 70년, 80년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땅의 고난은 잠깐입니다. 이 땅에서 장애가 있어도 하늘나라에 가면 몸과 마음과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완전해질 것입니다. 거기에는 눈물도 고통도 아픔도 장애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한 몸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주님을 보는 순간 “너희가 그와 같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성격적 장애나 정신적 장애나 육체적 장애를 막론하고 예수님 때문에 완전히 새로워지는 축복이 여러분과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죄 사함 받아 영혼의 장애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장애를 먼저 고쳐 주셨습니다. “친구여,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저는 이 시간,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영원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앞에 다시 선포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영원히 용서를 받았습니다. 완전한 세계와 완전한 생명이 여러분과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제는 완전해진 우리의 모습, 비록 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보혈공로로 우리를 죄 없다고 인정하심으로써 우리 내면의 모든 장애를 완전히 씻어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의 장애를 고치신 후에 육신의 장애를 고치셨습니다. “일어나서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 명하는 그 순간에 이 사람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의 몸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일어나 걷고 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의 몸이나 마음, 성격, 어디라도 장애 요소가 있다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네 침상을 들고 일어나라.” 일어나 걷고 새롭게 되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은총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장애가 치유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옆에서 보던 사람들도 “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걸을 수 있게 되었나?”, “예수께서 치유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든지 예수님께로 가져오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시는 그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께 해답이 있습니다. 그분께 오면 어떤 장애라도 해결됩니다.” 죄로 인해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을 깨끗하게 씻음 받아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시련들이 있지만 장애가 반드시 우리를 괴롭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미국의 니치라는 사람은 양팔이 없고 발가락도 두 개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장애는 불편하지만 내 의지를 깨뜨리지는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고 새로운 삶을 얻어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육신의 장애는 없으나 영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장애가 불편하긴 하지만 우리를 해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의 은혜를 알고 주님께서 우리 영혼을 치유해주시면 우리에게 새로운 전망과 힘이 생겨서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 삶 속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프렌치스 파크만은 시력장애 때문에 글자를 크게 써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큰 글씨로 미국 역사서를 20권이나 썼습니다. 장애가 반드시 우리를 낙심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장애는 정서적 치유와 영적 치유를 받으면 위대한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토마스 에디슨은 발명가이자 청각장애자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젊은 날에 귀머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연구에 몰두할 때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연구 중에 무슨 소리가 들리면 방해를 받지만, 듣지 못하는 에디슨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수많은 발명을 할 수 있었다는 간증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주님을 알고 영적인 장애에서 해방되고 치유를 받으니 육신의 장애마저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밀턴은 시각장애인이었지만 영국최고의 시인으로 칭송을 받았고,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소아마비 지체장애인이었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대부분 장애를 가지게 됩니다. 50세만 넘어도 신체에 다양한 장애가 나타나지요. 제 아내는 참 아름다운 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부드럽고 예뻐서 제가 그 손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 아내의 손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렇게 아름답던 손이 어떻게 저렇게 됐나?’ 나이가 들면서 관절염이 온 것입니다. 손을 자유롭게 쓸 수가 없어요. 여러분 중에도 무릎이나 팔목, 허리의 통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크고 작은 신체적 장애를 겪게 되지요. 우리가 장애인을 무시하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장애인 후보자나 마찬가지인데, 우리보다 먼저 장애인이 된 사람들을 잘 돌봄으로써 모두에게 축복이 되기를 원합니다. 장애인을 잘 섬기는 일을 우리 교회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앞장서서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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