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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보리빵 다섯, 물고기 둘 (요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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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물고기 둘 (요 6:1~13)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요6:9)

  예수님을 향한 신앙의 역사는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푸신 사랑과 선포하신 구원의 복음은 지금 전 세계적인 역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인류구원과 축복의 역사가 넘쳤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삶의 역사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기적과 같은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역사는 넘치는 역사입니다. 이 역사는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가운데 재연되고 있습니다. 곧 기독교 역사자체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서 나타난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 조그마한 지방 나사렛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역사는 전 세계를 향한 역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아야 할 믿음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서 나타난 역사입니다. 이 역사가 어떻게 일어났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럼 이 역사는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예수님께 손에 드려짐으로입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예수님께서는 ‘디베랴’라고도 불리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복음을 전하고 각종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곳에는 오천 명 이상의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음에도 그들은 그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마14:15) 예수님은 갈 것 없다면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으로 오천 명 이상의 수많은 대중을 배불리 먹이고 남은 것을 열두 광주리나 거두는 기적의 역사를 만드셨습니다. 

  한 어린 아이가 내 놓은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가난한 가정의 한 도시락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질 때 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이 예수님에게 드려졌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처럼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질 때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필요한 일에 인간의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드려진 인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하여 넘치는 역사를 만드십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출신의 보 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드려진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그의 후손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들처럼 번창했습니다. 내게 부족한 것 일지라고 하나님의 손에 드려진 것이 될 때에 큰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국의 최초의 우주인이 된 ‘이소연’ 양은 광주성지교회 이길수 안수집사와 정금순 권사와의 슬하에서 1남2년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정 권사님은 소연씨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세계적인 인물로 자라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장성한 후에도 매일처럼 소연씨와 큐티를 나누며 신앙의 관리자 역할을 충실히 맡아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들려진 인생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광주과학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전 카이스트로 진학한 후에나, 우주인으로 선발되어 러시아에서 훈련받는 기간에도, 고향을 방문하는 길이면 ‘소연’ 씨는 반드시 모 교회를 찾아와 교우들과 기도제목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자녀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되도록 키우는데서 그 아이는 하나님의 큰 역사를 만들어낸 보리빵과 물고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건강 지식과 물질이 예수님께 드려진 것이 될 때에 수천 명을 먹인 보리빵과 물고기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는 것이 되도록 

  예수님께서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실 때 기적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축사 하다는 말이 본문에서는 ‘유카리스테오’라는 말로 쓰였는데 이는 ‘감사를 돌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공관복음에서는 ‘율로게오’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축복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감사의 대상이 되고 축복하시는 삶을 살 때에 큰 역사를 만드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기를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면서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막10:13-16)

  예수님의 축복하실 때 보리빵과 물고기는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놀라운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예수님이 축복하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615 예수행복 3000’도 예수님께서 축사해 주시는 것이 되어야 보리빵과 물고기의 역사와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예수님께서 축사해 주시는 성장이 되어야 그들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보리빵과 물고기처럼 위대한 인물들이 될 것입니다.    큰 역사를 일으키는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축사하시는 삶을 살아가는데서입니다. 그리스도의 기뻐하시는 감사의 대상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시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곳에 보리빵과 물고기의 놀라운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대로 쓰이는 것이 되도록 하는데서 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빌립은 각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 줄 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빵으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동자의 200일 품삯의 빵으로도 부족하겠다는 것입니다. 빌립은 숫자적으로 계산하며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는 한 아이의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는 데,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빵과 물고기가 예수님께 쓰이는 것이 될 때에 수많은 사람을 먹이고는 남는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쓰이기 위해서는 순종이 요청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잔디 위에 떼를 지어 앉게 하라고 하실 때 그렇게 순종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순종할 때에 쓰이는 것이 되어 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며 그의 뜻을 따르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통치권에 맡기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쓰임의 대가는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쓰임은 하나님의 역사자체입니다. 

  고기 잡는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았으나 잡지 못하고 빈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시몬인 베드로는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依支)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 고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주님의 쓰임이 되었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것은 순종에 의한 쓰임이 주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베드로에게 더욱 놀랍고 큰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름에 순종한 베드로가 주님께 쓰임 받음으로 한 번의 그의 설교로 3000명을 회개시키는 전도자와 사도의 사명을 다하는 크고 위대한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은 하나님께 쓰이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순종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위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지는 순종은 인류구원에 쓰임으로 인류역사의 가장 위대한 일을  만들었습니다. 

  예) 장애아와 정상적인 아이들을 함께 교육하는데서 축복의 역사를 보았다. 정상적인 아이가 장애아를 도와야 할 필요를 느끼는 데서 크고 훌륭한 성품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1910년대에 전도를 목적으로 삼은 여성선교단체로 ‘십일조회’란 것이 있었습니다. 영어로 ‘Tither's Class' 혹은 'Tithing Class' 라고 표기된 이 단체는 1909년 평북 영변에서 활동 중이던 미 감리회 여선교사 에스티(E.M. Estey)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에스티 선교사는 혼자 힘으로는 넓은 지역을 모두 순회하며 여성 집회와 사경회를 인도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한국인 가운데 자질이 있다고 여겨지는 여인들에게 특별훈련을 시킨 후, 그들에게 각자 시간의 10분의 1을 주님께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1년 52주 중에 5주간을 전도사역에 바친다는 뜻에서 ’십일조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교육 및 파송을 전담하는 모임을 ’십일조회‘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 십일조회는 한국여성교인들의 자발적인 ’시간헌납‘을 기초로 한 제도였습니다. 1910년말 전국에 199개의 십일조회가 조직되어 있었고, 1719명의 십일조 부인이 5647명을 만나 전도한 결과 830명의 신입교인을 얻었습니다.       

  주님께 쓰일 때에 보리빵과 물고기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쓸데가 없는 사람입니다. 노년의 비참함은 스스로 쓸데없는 인생이 되었다고 쓰임에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쓰심에 순종하고자 하는 적극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 축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쓰시는 신앙의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쓰시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곳에 인간의 기대감으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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