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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권한 (요일 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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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권한 (요일 5:13~15)

어느 나라에 끔직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전쟁에서 죽어갔으며, 
또 수많은 부상병들이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살던 어느 가난한 농부는 어느 날 
부상당한 한 병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농부는 비록 찢어질 정도로 가난했지만 아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상당한 병사를 그냥 모른 채 할 수가 없어서, 농부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병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지극 정성으로 그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다행히 차도가 있어 그 병사는 많이 호전이 되었습니다. 
농부와 병사는 서로 좋은 대화의 상대가 되었고, 우정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나 깊었던지 그 병사는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농부의 정성스런 간호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병사는 죽으면서 고맙다는 인사로 작은 쪽지를 한 장 주었습니다. 
농부는 그것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면서 벽에 붙여 놓고 가난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 농부는 글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쪽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수십 년을 가난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누군가 그 집을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쪽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엄청난 갑부의 아들이 건네 준 백지수표였던 것입니다. 

“자기를 정성껏 돌보아 준 이 농부에게 원하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넘겨준다.”는 내용과 함께 말입니다. 
그러나 이 농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가난하게 평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이야기입니까? 
자기가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누리지 못한 불행한 이야기입니다. 
혹시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이야기는 아닌가요? 

미국 대통령에게 어린 아들이 있다면 
그 어린 아이는 과연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알까요? 
또 자기가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지 알까요? 

성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거룩한 이름입니다. 
세상 사람과는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요한복음1:12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한 것처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한을 얻게 됩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한문으로 풀이하면, ‘거룩한 무리’라는 말이며, 영어로는 ‘Saints’, 즉 ‘성자들’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도라는 이름보다 존귀한 이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은 
자기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받았으며, 
얼마나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백지수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 
현금으로 바꿔 쓰지 못하고 그냥 한 장의 쪽지로만 알고 있었던 농부의 불행처럼, 
미국의 대통령의 아들이면서도 
자기 아빠가 얼마나 엄청난 권세가 있는 분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또 그 성도에게 주신 그 엄청난 권한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도는 받은 축복이 큽니까? 받을 축복이 큽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 13절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은 왜 이 편지를 썼답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성도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즉 그들이 영생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이를 알도록 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은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Eternal Life. 

그러면 영생은 무엇입니까?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영생이란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시간의 길이를 가리키는 말처럼 들립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할 때 
시간의 길이를 전혀 배제할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성경은 그보다는 좀 다른 차원에서 영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17:3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영적인 교제와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죽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죽음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숨이 끊어지거나, 
피를 많이 흘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것을 영적으로는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높아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지도 않은 채, 그냥 세상 풍속을 좇고 부귀와 영화를 위해서 살아간다면 영적으로는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생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깊은 교제를 가지며, 
그분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목적에 맞추어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주님과 함께,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영생이요, 
천 년을 살아도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세상 정욕을 위하여 산다면 
그것은 곧 죽음인 것입니다. 

시편84:10에서는 영생의 의미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군의 여호와여 주게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12) 

   ♬ 세상 속에서 천 년을 사느니 내 주와 함께 하루를 살겠네. 
      주를 사랑하는 자 복이 있나니, 주께 의지하는 자 복이 있나니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곧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이 영생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와 같이 영생을 축복을 얻은 성도에게 있어 주어진 권한이 있습니다. 
이 권한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 담대히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히10:19f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높이 쌓여진 장벽이 무너져 내렸기에 
이제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 앞으로 나아갈 때 눈치를 보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담대히 나아가 당당히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쓰러져 가는 자에게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는 소망을 
       미움이 있는 곳에는 사랑을 가득 채워 주시네. 

우리가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주님은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성도에게만 주어진 놀라운 권한입니다. 이를 알아야 합니다. 

   15절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영어 성경을 보면, “He hears us whenever we ask him.”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들으실 뿐 아니라, 구할 때마다 들으십니다. 
하나님께는 통화중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성도들이 이 권한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 
그러나 이제 사용하십시오. 구하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구한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 나오는 John's Story- ‘구하지 않아서 천국에 쌓여있는 축복’ 

   요한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성도의 권한을 사용하는 것은 성도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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