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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가 무엇이냐? (요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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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무엇이냐? (요 18:38)

I. 들어가는 말 

1. 우리가 매주 예배 시간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이외에 두 인물이 언급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동정녀의 몸으로 낳은 마리아이고 다른 하나는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여기에는 예수의 제자 중 대표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도 나오지 않고,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이나 쓴 바울의 이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불명예스럽게 등장하는 이름으로 본디오 빌라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께 말한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말씀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2. 빌라도는 당시 유대와 인근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로마가 파송한 총독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총독은 평상시는 황제라는 이름을 딴 해변가의 ‘가이사랴’에서 지내다가 명절이나 혹은 큰 민란이 날 것 같은 일이 있으면 예루살렘에 올라와 동정을 살피곤 했습니다. 예수 당시부터 70년에 유대가 망해서 완전히 로마 제국에 흡수되기까지 여러 명의 총독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우리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유독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빌라도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II. 빌라도 입장에서 본 이야기 

1. 먼저 빌라도 입장에서 본문에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여 4년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가이사랴에 머물다 빌라도는 유월절에 유대인들이 전 로마제국으로부터 몰려와 축제가 있었기 때문에 혹시 민란이 날까하여 예루살렘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수하에 있는 백부장이 새벽잠을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을 앞세워 유대인들이 어떤 죄수 하나를 끌고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죄수만 관정으로 들여보내고 자신들은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이들이 왜 관정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지를 이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미쉬나에 따르면 이방인의 거처에 들어가면 제의적으로 정결하지 못하여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먹으려면 정결례를 행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곧 유월절 음식을 먹는 절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 때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2. 빌라도는 유대지역의 총독으로서 여기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치안을 유지할 책무가 주어져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사건은 유대인 대제사장에게 다 위임해 놓았지만, 사형 판결에 해당된다든가 반역 죄 같은 것은 총독이 직접 관여해야 되는 일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에서 잘 훈련받은 대로 여기서 재판장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빌라도는 관정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유대인들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명절 때 유대인들을 자극했다가 혹시 민란이라도 나서 이것이 로마에 보고되면 자신의 직위가 위태로워 질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 먼저, 빌라도는 관정 밖으로 나가 테라스에서 유대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요 18:29) 
2)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8:30) 
3) 자신이 유대인의 종교적인 일 처사를 잘못해서 혹시나 유대인의 심사를 건드릴까 염려하여 빌라도는 이렇게 답을 줍니다.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요 18:31) 
4) 하지만 유대인들을 이 사람이 죽을죄를 지은 사람이기 때문에 데려 왔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할 수 없이 이 사람을 심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빌라도는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이 끌고 온 죄수를 심문합니다. 유대인들을 이 자가 스스로를 왕으로 칭하면서 반역죄를 저지를 사람이라고 고소했는데, 빌라도가 예수의 얼굴을 보니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경계하는 유대인의 독립을 외치는 열심당원의 모습도, 또 허리춤에 칼을 차고 다니면서 로마 병사와 로마에 협조하는 사람을 암살하는 시카리 파 같지도 않았습니다. 행색도 무슨 왕의 행색도 아니고 너무 초라해서 시골 농부 같았습니다. 빌라도는 여기에 어떤 모함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면 이 죄수를 방면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4. 이제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합니다. 빌라도는 우선 유대인들이 고소한 내용을 중심으로 심문을 진행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는 이 질문을 하면, 이 죄수가 곧바로 “그건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그것은 저를 죽이려고 밖에 있는 유대인들이 모함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죄수는 무엄하게도 자신에게 되묻습니다. “[이것은]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네게 한 말이냐”(요 18:34) 빌라도는 순간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때 비로소 직감하고 이 사건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5. 하지만 로마 파송 총독으로서 빌라도는 겉으로는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빌라도는 그래서 예수께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유대인이냐?”(요 18:35) 이 말은 자신이 예수를 고소한 것이 아니요 바로 유대인들이 그렇게 소고했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제 예수에게 직접 변호할 기회를 줍니다. “네 나라 사람과 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고소했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요 18:35) 빌라도는 이 질문에 이 사람이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면 놓아줄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 사람이 “나는 아무 죄가 없고 우리 율법에 관계된 일로 사람들이 나를 무고하고 모함하는 것이오.”라고 하는 말을 듣기를 바랐습니다. 

6. 그런데 빌라도는 의외의 대답을 듣습니다. 이 죄인이 “내 왕국은....내 왕국은....내 왕국은...”이라고 하여 자신이 어떤 왕국의 소유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안심이 된 것은 이 자가 유대 독립을 꿈꾸어 정치적 독립을 해서 그 나라의 왕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왕국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의외의 대답에 되묻습니다. “그렇다면 어쨌든 너는 왕이라는 것이 아니냐?” 물론 이 말에도 이 죄수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빌라도의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7. 그런데 이 자가 자신의 왕국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합니다. 자신은 바로 이 왕국을 위해서 태어났으며, 이 왕국을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진리를 증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갈수록 태산입니다. 빌라도는 이 세상에 속한 왕국이 무엇인지도 이해가 되지 않고, 어디에서 이 왕국의 사명을 위해서 왔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데 이제는 한 술 더 떠 진리를 증거하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빌라도는 “진리? 글쎄 진리가 무엇일까? 진리가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황제와 연을 맺어 총독으로 파송 받아 먼 유대지역에 와 있는데, 그 동안 자신의 정치적 경험으로 보면 정치 세계에서는 승리만 있지 진리는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복하는 승리가 곧 정의이지 진리가 따로 있다고 믿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절대적인 것을 믿는다는 유대인들조차도 대 제사장을 비롯해서 권력을 탐하는 자들은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도 뒤로는 자신에게 줄을 대려고 하는 그 흉흉한 마음을 자기도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진리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8.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지 궁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두려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승리하기 위해서만 삶을 살아왔는데 진리가 있다니...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 이 사람이 말하기를 진리에 속한 자는 자신의 말을 듣는다고 하는 것에 더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자신이 이 사람에게 무슨 좋지 않은 일을 행하면 진리의 심판에 처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에 마음에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얼른 유대인들이 몰려있는 관정 밖으로 얼른 나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겠노라.”(요 18:38) 그리고 이제 부임한지 4년이나 지나 유대인의 풍습과 종교를 이해하고 있던 빌라도는 유월절 명절마다 죄수 하나를 풀어주던 관례를 이용해 이 사람을 풀어주자고 먼저 유대인들에게 제안합니다. 빌라도는 이제 정치적 센스도 많이 발달한 것입니다. 언제 유화 정책을 쓰고, 또 어느 시점에서는 강압정책을 펴야 할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요 18:39) 그런데 사람들이 또 예기치 않은 반응을 보입니다. 소리를 치면서 “이 사람이 아니라 [강도] 바라바라”고 한 것입니다. 

9. 빌라도는 사면초가에 처했습니다.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사람에게 무슨 잘못된 일을 했다가는 자신에게 무슨 큰 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엄습해 오는데, 유대인들은 이 사람을 처단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벌기 위해 관정으로 다시 들어옵니다. 일단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죄수에게 매질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를 유대인들이 몰려 있는 관정 밖으로 데려 가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여러분 보기에도 이렇게 초라한 사람이 무슨 큰 죄를 졌겠느냐? 내가 심문해 보니 아무 죄도 없다.” 하지만 이 말에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합심하여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계속 외쳐댑니다. 빌라도는 이를 막아보려고 “너희가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여 책임을 회피해 보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죄수에게 벌을 줄 수는 있지만 사형시킬 권한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나서 또 이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는 고소도 추가합니다. 빌라도는 더 두려웠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위해를 가하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 같은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10. 빌라도는 이번에는 더 자세히 심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너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자냐?”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권위 있는 물음에 이 자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화가 난 빌라도는 예수를 위협해 보려고 했습니다.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이렇게 위협하면 순순히 무슨 말을 할 줄 알았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이외였습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였다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으리니...” 빌라도는 이 사람이 하늘의 어떤 큰 권세와 연결되었다는 것을 직감하고 다시금 유대인들을 설득해서 이 사람을 놓아주려 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유대인들이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자이사의 충신[친구]가 아니니라.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이제 빌라도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는 자를 풀어주었다가 반역죄를 다스리지 않은 죄로 자기가 로마로부터 죄를 추궁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한 번 더 기회를 정식으로 재판석에 앉아서 유대인들에게 한 번 더 묻습니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목 박으랴”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하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고 계속 외칩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허용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11.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처형했지만 번민에 싸였습니다. 그래서 죄수가 십자가에 달리는 머리 위에 패를 하나 써 붙였습니다. 헬라어, 아람어, 라틴어로 기록하여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와서 앞에 자칭이라고 써서 이것이 죄 패임을 나타내라고 했지만 빌라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을 처형하면서 최소한 자신의 책임을 모면해 보려고 유대인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자신이 마땅히 쓸 것을 썼다고 이야기 합니다. 

12. 요한복음은 빌라도와 예수의 만남 이야기를 여기까지 이야기 합니다. 다른 역사책에 의하면 빌라도는 유대 총독으로 그 후에도 6년이나 더 있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자신이 처리한 사건에 대해서 계속 번민했습니다. 그래서 성격이 이상해져 폭군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을 과잉 대응해서 수많은 사마리아인을 처형했습니다. 그 때문에 유대인들은 시리아에 있던 더 높은 총독에게까지 가서 데모를 하게 되고이 일로 빌라도는 로마에 송환됩니다.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는 후에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III. 우리 앞에 있는 진리 

1. 빌라도는 진리 자체이신 예수 앞에 서서 결국 진리를 회피하고, 진리를 죽임으로서 진리의 반대편에 서고 말았습니다. 비록 어느 정도 양심을 살아 있어서 진리를 좇지는 않아도 진리에 대항하려 하지 않으려 했지만 자신의 직위가 위태로워질 때 진리를 회피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빌라도가 당시 유대인 당국자들처럼 진리를 정면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결국 진리를 올바로 대한 것은 아닙니다. 

2. 오늘 우리에게도 진리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진리를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철저히 배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그런 사람들은 의외로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더 많은 것은 진리를 회피하는 것입니다. “진리? 그게 정말 있을까?” 물론 어느 날은 깊이 고민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지만 어차피 내 친구도, 내가 아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또 다시 진리를 회피합니다. 특별히 이 진리 때문에 내 앞길이 막힌다면 그것은 절대로 따라가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승리가 진리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3.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서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어차피 진리를 믿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예1) 말세지말을 전하는 사람이 대궐 같은 집을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2) 고관들이 서민의 정치를 표방하지만 고관 중 서민은 별로 없습니다. 예3) 아파트, 대학입시 정책을 내 놓는 것을 보면 약자를 배려하는 것 같은데 결국은 모두 강자 편에 서서 강자를 옹호하는 것으로 실천됩니다. 예4) 우리 주위에 보면 대재 정치적인 목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지 진실로 행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김동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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