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약속 (행 2:14, 36~41)

  • 잡초 잡초
  • 494
  • 0

첨부 1


하나님의 약속 (행 2:14a, 36~41)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속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이 누가라는 사람이거든요.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하고 나중에 다시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선택된 사람들을 들어서 크게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 가운데 대표적인 분들이 베드로, 바울, 스데반, 빌립… 이런 분들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으로 변화되어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들어서 크게 사용하시는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 2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유대교인들은 누구든지 일 년에 세 번, 언제 언제죠?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 이렇게 세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종교적인 의무였습니다.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에는 유대교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근동지역에 흩어져 있던 유대교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다 모여 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예수님께서 어린 양의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에도 예루살렘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습니다.
그때가 유월절이었거든요.

그 후 50일이 지나고 오순절이 되었을 때에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도 많은 유대인들이 직접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유월절과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모여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자그마치 14개국 내지는 16개국에 흩어져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각기 다른 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는 이 사람들의 귀에 베드로의 설교가 다 자기네 나라 말로 들리는 거예요.
자동으로 동시통역이 되었던 것이죠.
모든 사람들이 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서 새 술에 취했다고 놀려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딱 잘라 말을 했어요.
“지금 시간이 몇 시냐? 제 3시(오늘날 우리 시간으로는 오전 9시)가 아니더냐? 지금 누가 술을 마시고 술이 취했다고 하는 거냐? 이것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신 대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할렐루야!)

요엘서 2장 28절 이하의 말씀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그러면서 뭐라고 예언을 했습니까?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할렐루야!)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말을 들어봐라!
너희들도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에게 큰 권세와 능력을 주시지 않으셨느냐?
너희에게 여러 가지 기사와 이적들을 베풀어 주시지지 않으셨더냐?
그런데 너희가 예수를 - 요샛말로 한참 잘 나가던 그 예수님을 무지막지한 로마 군병들에 손에 죽게 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뭐예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뜻이 계셔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죄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는 분이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겁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수천 년 전에 살았던 다윗도 오실 메시야 그 분에 대해서 예언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현욱 집사님께서 일어나셔서 사도행전 2장 25절로 28절 말씀을 크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썪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아멘!)

자, 저를 쳐다보세요!
지금 베드로 사도가 설교를 하고 있는 겁니다.
“너희 조상 다윗도 예수께서 우리들의 구주가 되실 것을 이미 예언을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예수님께서 썪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도 이미 다윗에 의해서 예언이 되어 있지 아니하냐?” 

다윗이 예언한 대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 살리셨어요?
32절 말씀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하나님께서 오른 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들어서 존귀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오늘날 우리들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의 역사가 우리 교회를 통해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성령 충만해서 -능력을 받아서- 방언을 말하는 것도 하나도 이상할 것도 없고 하나도 어색할 것이 없는 겁니다.

다 성경에 예언되어진 말씀을 따라서 되어진 것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이 누구예요? 
바로 당신들이라는 겁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셔서 너희들의 구주가 되게 하셨고 너희들의 임금이 되게 하셨다”는 겁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대단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갈리리 어부요, 배우지 못한 일자 무식쟁이였잖아요?
예수님의 수제자라고는 하지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사람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실 때에는 무서워서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 코빼기도 안보이던 사람이었는데,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나더니 사람이 확 달라졌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져버렸습니다. -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전 어디 학교에 가서 공부 한번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었는데, 얼마나 유식한 사람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권세와 능력을 주시는 거예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양심에 가책을 받기 시작을 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37절)

베드로 사도의 설교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듣는 사람은 멀뚱멀뚱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찔림을 받았다는 말씀은 감동을 받았다는 건데,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고는 찔림이 오니까 그걸 가지고 상처받았다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참, 별 일도 많아요?
찔림을 받았으면 그 다음 단계는 뭐예요?
돌이켜야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39절 말씀에,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나에게 주신 약속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에요.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그래서 오늘 이 말씀대로 저 멀리 부산에서도 한 분이 오셨습니다.
저 먼데 있는 사람들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불러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우리 하나님께서 부산에 있는 수영로 교회를 놔두시고 이 산골짜기에 있는 우리 교회에 와서 복음을 전해 듣게 하실 게 뭐예요, 글쎄?
이러나 저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어딜 가서든지 복음을 전해 듣고 구원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베드로가 여러 말로 확증하면서 권면의 말씀을 전하는데,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시오!”

그날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통해서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삼천 명이나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큰 도전을 받았어요.
베드로는 한번에 3천 명씩 전도를 했다는데…, 저 대도시에 저 큰 교회들은 몇만 명, 몇십만 명이 몰려든다는데…

그러나 그것은 누가 하는 거예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큰 모양새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겸손함이 더 훌륭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손과 발이 모든 일들을 다 하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몸속에서, 나타나지 않는 곳에서 소중한 자기 몫을 감당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심장도 그렇고, 허파나 간이나 몸 속에 있는 동맥과 정맥 같은 것들이 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얼마나 소중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대도시의 큰 교회들이 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일들을 우리 교회가 감당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베드로처럼 하나님께서 영적인 권위를 허락해 주십니다.

십년도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마는 덕산교회에 어떤 부부 이야기입니다.
아내는 교회에 열심히 잘 나오면서 얼마나 성실하고 살림을 잘 하는지 한 푼이라도 아껴서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데, 신랑이라는 사람은 아주 못 돼 먹어서 꼭 기생오라비 마냥 하고 돌아다니면서 하고 한날 다방에만 가서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다가 한 밤 중이나 되어야 집에 들어오곤 했답니다.

그러니 집안이 조용할 날이 있었겠어요?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좀 심하게 싸웠나 봐요.

특히 여자 분들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남자들은 자기가 잘못해 놓고서도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벌컥하는 성질이 있거든요.
괜히 달려들었다가는 여자만 손해를 봐요.

가끔 눈탱이가 밤탱이가 돼서 다니는 여자분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거의가 다 여자가 잘못해서 맞은 것이 아니라 남자가 잘못한 걸 가지고 그걸 꼬치꼬치 따지다가 그만 얻어맞아서 그렇게 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렇다고 알면서도 속고 살라는 말은 아니고요, 남자들의 성질은 잘 파악을 해서 지혜롭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자가 자꾸 달려드니까 신랑이 홧김에 여자를 한 대 쥐어박고 떠민다고 떠민 것이 그만 여자가 넘어지면서 문지방에 뒷머리를 꽝 부딪히고 만 거예요.

여자가 벌러덩 나가 동그라졌는데 보니까 눈알이 휙 뒤집어져서 허옇게 된 데다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몸을 부르르 떨더랍니다.
이거 보니까 영락없이 뇌진탕이잖아요?
신랑이 겁이 나니까 교회로 전화를 했습니다.

이 목사님께서 전화를 받으시고는 교회차를 끌고서 그 집에 가서 보니까 상황이 아주 급하게 되었더래요.
그래서 운전을 하고 가시면서 속으로 기도를 하신 겁니다.
“하나님 우리 아무개 집사, 이거 죽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진주에 다 가도록 그렇게 기도를 계속하셨는데, 진주에 있는 병원에 가서 CT(단층촬영) 촬영을 해 보니까 말짱하더랍니다.(할렐루야!)

한번은 또 덕산교회 조 장로님 아들이 한 여름에 낮잠을 자다가 귀에 무슨 풍뎅이인지 무슨 벌레가 들어갔더래요.
귀가 얼마나 예민합니까?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엄청나게 아프거든요.
이 아들이 조 장로님의 외아들인데, 자다 말고 아파서 죽는다고 데굴데굴 구르고 난리가 난거예요.

이걸 뭘로 파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밤 중 같으면 귀에다가 후레쉬를 비춰주면 벌레가 기어나오는 경우도 있다는데, 대낮에 후레쉬를 비춰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장로님이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 되셨습니다.  
어쩌겠어요? 이호준 목사님께서 장로님의 외아들을 차에 태워가지고 가시면서 기도를 하셨다죠?
그랬더니 이놈의 벌레가 진주로 가는 도중에 어떻게, 어떻게 기어 나왔나 봐요.

귓속이 얼마나 좁아요?
앞으로 들어갔던 벌레가 그 속에서 유턴은 못 했을 것이고, 어기적어기적 뒷걸음을 쳐서 빠꾸(back go)로 나왔나 봐요.

하나님의 종에게는 특별한 능력을 주십니다.
베드로처럼 갈릴리 어부요, 일자 무식쟁이였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성령 충만해지면 능력의 종이 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실 적에 베드로는 자기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으라고 말씀하시니까 정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갔어요.
그런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걸 보더니 겁을 집어 먹고서는 물속에 꼬르륵 빠져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가 망신을 톡톡히 당했죠?  

한평생 어부였던 고기잡이 전문가가 밤새도록 고기 새끼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잖아요?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아 올렸습니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내가 전문가라고 큰 소리를 쳤었는데 예수님 앞에서 베드로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깨달은 거예요.
나는 하나님 앞에 더러운 죄인일 수밖에 없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죄인들입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아무개처럼 재산이 몇 조원씩이나 되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서면 더러운 죄인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떳떳해질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이 아니라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면 부족한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돌이켜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성령 받은 사람과 성령 받지 못한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남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요, 내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잉, 또한 모든 먼데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불러서 복주시려고 작정하신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시고 돌이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신 후에 성령의 능력을 받으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