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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훈련을 받았다면 (출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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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받았다면 (출 3:1~10) 
 
  훈련을 받아야 할 이유 

오늘은 본 교단 총회가 정한 군선교주일입니다. 저도 군목으로 섬긴 적이 있지만 군대는 60만의 젊은이가 거쳐 가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입니다. 우리 모두 군선교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총회가 군선교주일을 정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군대 있을 때 제일 궁금했던 것은 왜 저렇게 늘 병사들을 군대말로 '빡세게' 훈련시키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군인들은 밥만 먹으면 훈련입니다. 때만 되면 팀 스피리트 훈련이다 사단 훈련이다, 연대, 대대 훈련까지 늘 훈련의 연속입니다. 

저는 부대에 있다가 훈련이 있으면 훈련지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초코파이 나누어 주면서 위문을 하면 되지만 우리 병사들은 늘 훈련 받으러 산으로 들로 나가 있어야 하니 너무 힘들어 보였습니다. 게다가 큰 훈련 끝나고 좀 쉴 만하면 이번에는 진지보수다 대민봉사다 해서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휘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연대장님, 왜 저렇게 늘 병사들을 쉬지도 못하게 훈련만 시킵니까?" 그랬더니 육사 출신 연대장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군인이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쟁이 없어도 저렇게 쉬지 않고 훈련을 하는 겁니다."

저는 그 순간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전쟁이 없지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 군인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날을 위해 늘 훈련을 받으며 준비가 되어 있어야 전쟁이 나면 전쟁터에 나가 잘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데 그제야 허둥지둥 준비하는 사람은 결코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언제 있을지 모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비해 미리 훈련하고 준비한 사람은 부르심이 있을 때 언제든지 나가 능력 있게 일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에 나온 말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쟁이 없어도 군인은 훈련을 열심히 합니다. 훈련이 없으면 진지를 구축하고 총과 군화를 닦습니다. 언제 있을지 모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당장 전쟁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냐며 훈련과 준비를 게을리 하는 군인은 전쟁이 나면 아무 소용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때를 대비하여 준비되고 훈련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버림 받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입니까? 다시 물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부름 받을지 모르지만 주님이 언제든지 부르시기만 하면 나가 잘 싸울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습니까? 어떤 훈련입니까? 말씀훈련, 기도훈련, 전도훈련, 봉사훈련 등등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할 훈련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게을리 하거나 부족하면 우리는 절대 귀하게 쓰임 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훈련 받아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오랫동안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요즈음 사병은 훈련소에서 4주간 기초훈련을 받고 이등병 작대기를 하나 답니다. 하지만 저는 장교로 임관하기 위해 기초 군사훈련만 12주에 행정훈련과 병과훈련까지 총 18주에 걸쳐 훈련을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사병에 비해 네 배가 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까? 병사들을 통솔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진 장교이기 때문입니다. 사관학교 생도들은 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학 4년 기간을 훈련 받아야 합니다. 훈련이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강도도 사병들보다 훨씬 셉니다. 100킬로미터 행군을 포함해 훈련이 여간 세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귀하고 중요하게 쓰임 받기 원한다면 더 긴 기간, 더 센 강도의 훈련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정도 훈련도 안 받고 귀하게 쓰임 받겠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십니다. 어떻게 준비도 안 된 사람, 훈련도 안 받은 사람을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 내보내겠습니까?

6.25 때 전쟁터에서 가장 많이 희생된 사람들이 바로 소위 계급장을 단 소대장들이었다고 합니다.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소대장은 병사들에게 "돌격 앞으로!" 명령하고 자기는 뒤에 남아있으면 안 됩니다. "모두 나를 따르라!" 하고는 제일 앞장서서 돌격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소대장들이 많이 희생되었고 이렇게 소대장이 많이 죽어 부족하다 보니 미처 충분히 훈련시키지 못한 사람들을 소대장으로 최전방에 내보내서 또 많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되 영적 전쟁의 최전방에서 싸우려면 희생도 따르고 고난도 많습니다. 그만큼 훈련을 더 철저하게 강하게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오랜 훈련을 마다하지 마십시오. 강도가 센 훈련을 피하지 마십시오. 그만큼 여러분이 하나님께 더 귀하게 더 중요하게 쓰임 받기 위해 꼭 필요한 훈련입니다.

훈련 기간과 훈련 강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일하던 모세를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막중한 사명을 모세에게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막중한 사명을 맡기려다 보니 훈련기간이 꽤 길어졌습니다. 모세는 애굽 궁전에서 왕자로 40년 동안 훈련 받고, 그 다음에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40년, 도합 80년이나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훈련도 여간 센 것이 아니었습니다. 

애굽 궁전에서는 애굽의 일류 학자와 개인교사를 통해 세계 최고의 학문을 배우고 또 최고 지도자 훈련도 받았습니다. 또 미디안 광야에서는 척박하고 거친 광야에서 목자로 일하면서 인생의 가장 바닥을 체험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나긴 세월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모세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은 몇 년이었습니까? 고작 40년입니다. 80년씩이나 훈련받고 40년만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비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매미 애벌레가 땅속에서 보내는 기간은 보통 6년입니다. 어떤 종류는 심지어 땅속에서 17년을 보내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땅 속에 있다가 성충이 되어 겨우 가을 한 달 동안 맴맴 울다가 바로 죽습니다. 얼마나 허무합니까? 모세의 삶이 이 매미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너무도 중요하고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정말 제대로, 진하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준비를 해야 하고 많은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훈련이 싫어서 이만하면 충분히 훈련 받았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훈련이 필요 없답니다. "내가 수십 년 교회 다니면서 성경공부도 얼마나 많이 하고, 기도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이만하면 됐지 또 뭘 훈련을 받으라는 거냐?"고 말입니다. 어떤 분은 "내가 장로인데, 권사인데 이제 이만하면 충분히 배우고 훈련 받은 것 아니냐"고 합니다. 큰 착각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한 훈련은 끝이 없습니다. '이제 그만'이 없습니다. '충분'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천국 가야 끝납니다. 

그러므로 평생 쉬지 않고 계속 훈련 받아야 합니다. 요즈음 군대에 가보면 나이 든 장교들이 연병장에서 열심히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국방부가 장교 체력검정이라는 것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위 중위 대위 같은 위관급 장교들뿐 아니라 소령 중령 대령 같은 영관급 장교, 심지어 별을 단 장성들까지 모두 팔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 1.5km달리기를 실시해서 불합격하면 진급에 불이익을 줍니다. 한마디로 배불뚝이 장교는 진급을 못 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기를 쓰고 달리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작년에만 384명의 장교가 불합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옛날에는 어느 정도 계급만 달면 배가 나오든, 몸이 뒤뚱거리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공무원들도 철밥통이니 뭐니 하던 시대가 다 지났습니다. 근무자세가 불량하면 사정없이 퇴출시키는 시대입니다. 교사도 대학교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모두 낙오합니다. 하물며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겠습니까? '이만하면'은 없습니다. 평생 뛰어야 합니다. 평생 땀 흘려 훈련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이를 핑계로, 또는 교회 직분을 핑계로 훈련 받기를 중단하는 날부터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훈련은 받았는데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훈련만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훈련만 열심히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훈련 받은 것을 사용해야, 써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랜 기간 훈련을 받고, 아무리 철저하게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해도 정작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써먹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서 감옥에 수십 년 동안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하도 시간이 안 가고 심심해서 그 사람은 개미 한 마리를 잡아 훈련을 시켰습니다. 수십 년 동안 훈련을 시켰더니 개미가 명령만 하면 그대로 따라합니다. "앞으로 가!" 하면 가고, "서!" 하면 서고, 물구나무를 서고 재주도 부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십 년 감옥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석방을 받은 그 사람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며 자기가 훈련한 개미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재주를 부리게 합니다. 앞으로 이 개미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돈도 꽤 벌겠다며 너무 신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웨이터를 불렀습니다. "웨이터, 이 개미 좀 보세요." 그러자 웨이터는 "손님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순식간에 개미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죽이고 말았습니다.

허무한 얘기지요? 비록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오늘날 교회에서 훈련 받은 성도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 성도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당연히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전혀 훈련 받지 않은 성도보다는 훈련 받은 성도가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교회 오래 다니면서 이런저런 훈련을 많이 받은 사람들, 말씀훈련, 기도훈련, 전도훈련 받고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정말 훈련이란 훈련은 다 받았는데도 전혀 쓰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 개미는 바로 이런 성도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수십 년 훈련 받으면 뭐 합니까? 아무리 기가 막힌 훈련을 받으면 뭐 합니까? 써먹지도 못하고 썩히고 있는데 말입니다. 물구나무도 서고 재주도 부리지만 웨이터 손가락에 순식간에 눌려 죽은 개미와 다를 바가 뭐가 있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오래 다니다보면 자의든 타의든 훈련을 받게 됩니다. 내가 받고 싶어서 훈련을 받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시켜서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만 해도 교사들은 무조건 교사대학을 수료하라고 합니다. 찬양대도 찬양대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답니다. 이번에 뽑힌 항존직 피택자들은 자그마치 6개월 동안이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훈련 받아야 할 때가 이렇게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의든 타의든 일단 훈련을 받았다면 써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훈련을 받고도 못 써먹습니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못 써먹는 분이 너무 많은데 그렇다면 이 개미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몇 년 동안 실컷 훈련 받았는데 이제 좀 교회에서 써먹어야지 하는데 갑자기 "목사님 저 이민 갑니다." 하고 맥을 빠지게도 하고(물론 이민 가서도 어느 교회에선가 쓰겠지만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처녀 때 정말 신앙생활 열심히 하며 훈련도 많이 받았는데 어찌 하다 보니 안 믿는 사람에게 시집가서 훈련 받은 것 써먹기는커녕 교회도 못 나갑니다. 학교 다닐 때 전공한 것, 내가 학원 다니면서 배운 기술도 다 교회에서 써먹으라고 하나님이 훈련시키신 것인데 지금은 하나도 달란트를 사용하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훈련은 받았는데 못 써먹으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손해가 막심합니다.

우리나라 육해공군 사관학교 생도 한 사람을 4년 동안 양성하는데 약 2억 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돈이 많이 든 사관생도들에게 본전을 뽑기 위해 옛날에는 최소한 소령 중령까지는 진급을 시켰습니다. 오래 복무하면서 본전을 내놓고 가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서 아무리 사관학교를 나와도 진급이 안 되면 제대해야 하고 심지어 소령 중령도 못 달아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적 낭비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훈련을 받도록 그 오랜 세월, 그토록 많은 투자를 한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훈련을 받고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막대한 손해요, 천국 재정에도 큰 손실을 끼치는 일이 됩니다.

영광스러운 사명을 위해서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다섯 번이나 거절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크게 귀하게 쓰려고 80년 동안이나 공을 들여 훈련을 시켜놨는데 정작 이제 나가서 일하라고 하시니 온갖 핑계를 대가며 거절한 것입니다. 모세는 처음에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습니까?"(3:11) 하며 거절합니다. 겸손한 말처럼 보입니까? 아닙니다. "나 같이 못난 놈이, 이렇게 늙고 쭈글쭈글한 늙은이 목자가 무슨 그런 엄청난 일을 합니까?" 하는 뜻입니다. 나이 핑계 대고 능력 없다고 핑계 대는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핑계 아닙니까? 우리가 자주 쓰는 핑계지요.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에게 도대체 하나님의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3:13) 하고 핑계를 대고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를 안 믿으면 어떻게 합니까?"(4:1) 하면서 계속해서 발뺌을 합니다. 이런 핑계들이 안 통하니까 나중에는 "전 본래 말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말입니다."(4:10) 하고 이것도 안 통하니까 아예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4:13) 하고 뒤로 나자빠집니다. 모세만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사명과 부르심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요나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자신이 어떻게 적국의 수도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하는 핑계를 대며 하나님의 낯을 피해 멀리 도망가 버립니다. 

청년 부자 관원도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좆으라"(마 19:21)는 예수님의 초청에, 자신의 많은 재물을 포기할 수 없어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그의 재산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마다한 핑계가 된 것입니다. 

잔치에 청함 받은 사람들이 나는 밭을 샀는데 지금 나가봐야 한다며,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지금 시험하러 나가봐야 한다며, 나는 장가를 갔는데 아내를 즐겁게 해줘야 하니 못 간다 하면서 초청을 거절합니다(눅 14:18~20). 모세와 이 사람들이 댄 핑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핑계들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발뺌을 할 때 주로 대는 핑계가 다 나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고자 부르실 때 온갖 다양하고 그럴듯한 핑계로 그 부르심을 피하곤 합니다. "바쁩니다, 돈이 없어서요, 가족 때문에요, 건강 때문에요, 아직 젊어서요, 너무 나이가 많아서요" 등등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제가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꼭 하겠습니다, 돈 좀 벌면요, 생활이 좀 안정되면요, 애들 좀 키우고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분들이 나중에 돈 벌고 애 키우고 나면 일하느냐? 그 때도 안 합니다. 그 때마다 또 새로운 핑계가 등장하곤 합니다.

여러분, 세상 일 중에도 물론 보람 있고 영광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일보다 더 보람되고 더 영광스런 일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세상 일들은 다 사람을 위해서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일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다른 일들은 다 사람들 자신이 자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일 만큼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맡기셔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다른 일들은 다 이 땅에서의 제한된 삶을 위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일은 영원한 삶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선택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영광스런 일이요, 그래서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들을 뽑아 특별한 훈련을 시켜 이 일에 사용하십니다.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훈련 받기 싫어 이 사명을 피한다면, 또는 훈련을 그렇게 많이 받고도 온갖 핑계를 대며 써먹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장 좋은 특권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나를 불러서 위대한 일을 맡기실 그날을 대비하여 오늘도 쉬지 말고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시고, 그 훈련을 받은 후 반드시 내가 받은 훈련의 120%, 내 능력의 200%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위해 사명 감당하는 복 받은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오합지졸은 아무리 많이 모아 놓아도 싸움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훈련을 잘 받아 일당 백, 일당 천의 용사로 쓰임 받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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