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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빌 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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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빌 2:25~30)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임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방법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일을 하시고 계시고 또한 여러분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을 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아름답게 동역을 할 때 하나님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혼자되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함께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연합, 동역, 이런 모습은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과 요나단, 엘리야와 엘리사, 바울과 디모데, 등등 여러 사람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동역관계를 보여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 속에서 바울과 에바브로 디도의 관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자 빌립보 교회 사역자였던 에바브로 디도는 교인들이 거둔 성금을 가지고 로마로 왔습니다. 

옥중에 갇혀있는 사도 바울을 돕기 위하여 직접 그 머나먼 로마에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사도 바울의 옥중 생활 뒷바라지를 계속했습니다. 그의 헌신과 돌봄이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바울사도를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를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사람 관리를 보게 됩니다. 
비록 몸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사람관리를 잘했습니다. 반면에 에바브로 디도도 감옥에 있는 바울을 지성으로 돌보며 섬기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람 관리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어떻게 사람을 관리 했는가를 살펴보려 합니다. 
그는 어떻게 사람을 관리 했기에 그토록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1. 인정과 칭찬으로 관리했습니다. 

사람관리에서 최고 중요한 것은 수고와 노력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울 사도는 디도의 수고와 헌신을 알아주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바울은 에바브로 디도를 어떻게 대해 주었나요? 

25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1)형제로 대해줍니다. 

25절에 “그는 나의 형제요” 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영적 관계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주 하나님의 자녀로서 형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을 형제, 자매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영적 가족들이기 때문입니다.  옆 사람이 여러분의 형제요. 자매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형제님” “자매님” 불러보세요. 
“형제님 반갑습니다.” “자매님 반갑습니다.” 

손도 잡아 주시고 형제우애를 갖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2장 49~50절에서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서로 형제자매 됨의 관계를 인식하면 사람관리에 분명 성공하게 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동역자로 대우합니다. 

25절에 “함께 수고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헬라어로 'sunergon"'(순엘곤)인데 “동역자”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힘을 모은 동역자입니다.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방향을 향하여 힘껏 노를 젓는 동역자입니다.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 졌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 디도가 자기를 위해 수고하고 돕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감사했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니고 주인과 노예관계도 아닌데 하나님의 종이라는 그 사실만으로 수고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동역자”란 함께 수고하는 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도 여러분의 동역자입니다. 같은 편이고 그 사람이 잘되면 나도 잘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성공이 여러분의 성공입니다. 

‘라이벌’이 아니고 ‘동역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 원수로 대하지 말고 동역자 마인드를 갖고 있을 때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3)전우로 대우합니다.  

25절에 “함께 군사된 자요”라고 했습니다. 
‘군사’는 전투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습니다. 싸움을 위해 존재하는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영적 전투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에바브로 디도 역시 그리스도의 군사였습니다. 바울과 함께 기꺼이 영적 전투를 누볐던 용맹스러운 군사였습니다. 이두사람은 전우입니다.  

전투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아주 위험스러운 행위입니다. 
바울과 함께 ‘군사 되었다’ 라는 말에는 함께 목숨을 걸고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극히 담대함으로 영적 전투의 현장을 누빈 에바브로 디도입니다.  

우리도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영적 군대의 아군입니다. 적군은 사단 마귀뿐입니다. 
그런데 아군인 우리끼리 싸우면 패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군사 된 동지요. 전우입니다. 한편입니다. 

그러기에 생사고락을 같이 하여야 합니다. 저는 군대에서 오지 말라 해서 안 갔는데 군복무를 한 분들 말을 들어보면 군대 동기나 친구는 남다른 감회가 있다고  합니다. 동료로 생사고락을 같이 한 전우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옆의 다른 그리스도인이 고생하고 어려움 당하는 것을 구경하고만 있다면 주님은 절대로 용납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우리 편이 실수했어도 같은 편이 되어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 성도는 여러분의 적군이 아닌 아군임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적군은 오직 원수 마귀이고 그의 조종을 받는 악한 세력들입니다. 그러기에 동지와 하나 되고 한마음 되기를 축원합니다. 


4)돕는 자로 인정합니다. 

25절에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했습니다. 
‘너희 사자’라는 말은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심부름꾼입니다. 에바브로 디도는 빌립보 교회에서 특별한 사명을 받고 파송된 일꾼을 입니다. 이는 디도가 사람을 섬기고 돌보는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고 재정을 관리 하는데도 믿을 만 한 사람이기에 부여받은 임무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혼자 조용히 지낸 사람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도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한 사람입니다. 그 일에 필요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디도를 보고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의 그 수고와 정성을 알아 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에바브로 디도는 예수님을 위해 바울을 섬겼습니다.  

30절을 보세요.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그는 바울이 훌륭하고 대단해서 그렇게 섬긴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종인 것을 알기에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섬겼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디도가 바울을 섬긴 것은 주님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주의 종을 잘 섬겨야 하고 보살펴야 하고 협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주변 사람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까요? 
형제로, 동역자로, 아군으로, 그리고 돕는 자로 알아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칭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사역에 승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사람 관리 

2. 기도로 사람을 관리했습니다. 

바울의 사람 관리는 알아주는 것이 최고였는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관리는 기도로 사람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내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말을 안 듣고 일부러 어깃장을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는 참 속이 상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면서 기도로 관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에바브로 디도가 바울을 시중들다가 병이 났습니다. 그것도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무엇을 했을까요? 감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근심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27절을 보세요.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여기 보세요.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다”고 했고 뿐만 아니라 “나를 긍휼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그 기도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기적같이 그를 치료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기도, 중보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합니다.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기도로 사람을 관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주변 사람을 기도로 관리해야 합니다. 기도로 축복하고 기도로 섬기고 기도로 하나님께 그 사람을 맡기면 하나님이 그 사람 마음을 직접 움직여 일을 하십니다.  

느헤미야를 보세요. 
그는 바사왕 밑에서 고위 관리로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루살렘 소식을 듣습니다. 성이 다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때 그는 곧바로 왕에게 달려가 부탁하지 않습니다. 달려가서 몇 마디 부탁만 하면 될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금식 기도하고 부르짖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여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지식으로, 말재주로, 돈으로 또는 리더십으로 관리하는 것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 관리에 최고는 기도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기도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기도로 관리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한 달에 한번 이상 기도해 주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대략 500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과 자녀들 가족들, 그리고 화동의 제자들과 교수들, 그리고 제 사역에 함께한 동역자들……. 그 기도의 폭을 넓히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일은 잘되고 내 주변 사람은 내게 주시는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3. 매사에 끝마무리를 잘하였습니다.  

29절을 보세요.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 디도를 옆에 두고 싶었으나 빌립보 교회가 그를 걱정하고 염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히 빌립보로 돌아가도록 조치합니다. 
그것은 자기 개인 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 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빌립보 교회에 서신을 보내 그 에바브로 디도를 주안에서 기쁨으로 영접하고 명령하고 이와 같은 자를 존귀하게 여기라고 특별히 부탁을 합니다. 

물론 에바브로 디도가 바울을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섬겼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를 특별히 대우해 줄 것을 빌립보 교회에 부탁을 합니다. 

사람은 처음 만날 때도 잘해야 하지만 헤어질 때도 잘해야 합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헤어질 때 보아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게 이득인 사람, 네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 네게 뭔가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는 잘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두 번 다시 안볼 사람인 것처럼 헤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 관리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가계도 되는 가계와 망할 가계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되는 가계는 물건을 안사고 나가는 고객에게도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망할 가계는 다시 안볼 사람처럼 상대합니다. 그러니 망하는 것입니다. 

손님한 사람이 단순히 한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 뒤에 수십, 수백 명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식당에 가서 고기를 한번 먹었는데 정말 맛있고 많이 주더군요. 그래서 그 한번 갔던 일로 제가 그것을 6~7번도 더 간 것 같습니다. 혼자 가나요? 함께 데려갑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헤어질 때 잘 헤어져야 합니다. 맛도 좋고 친정해야 하고 다시 와야 하겠다, 다시 만나봐야 하겠다, 할 만큼 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이사를 가게 되어 교회를 떠나게 될 때도 잘 마무리를 하고 떠나야 합니다. 어떤 분은 말한 마디 하지 않고 사라집니다. 어떤 이는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상처와 충격을 주고 떠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회사를 옮길 때도 그렇습니다. 마무리가 좋아야 합니다. 
어디서 누구와 헤어지든지 마무리가 잘되면 그 사람은 그 사람관리 때문에 결국 성공합니다. 

그러나 원수처럼 헤어지고 불편하게 하고 헤어지고 하면 미련한 사람입니다. 다시 안 만날 것 같으나 반드시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잘못된 헤어짐 때문에 손해를 보고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 때가 있게 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만납니다. 안 만난다구요? 천만에요. 반드시 만납니다. 어디서요. 우리 그리스도인이기에 천국에서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의 끝마무리도 잘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에 끝이 안 좋으면 영원한 지옥에 들어갑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바울이 그토록 위대한 사도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이유 중에 하나는 사람관리를 잘한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사람관리에 성공해야 합니다. 

이렇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1)내주변의 모든 사람은 내게 복의 통로다. 
2)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내 동역자이고 아군이다. 
3)그러기에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내 성공의 성패가 달려 있다. 아멘? 

그러기에 그들을 알아주고 그들을 기도로 관리하고 그들과 마무리를 잘하여 헤어질 때 잘 헤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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