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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10~12)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복 있는 사람은?

산상수훈의 팔복은 실상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자를 누가 복이 있다 하겠습니까?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이런 사람들은 바보 같고 빼앗기는 사람들이지 결코 행복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구나 오늘 마지막 여덟 번째 복은 더 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의 때문이라고 하지만 욕먹고, 매 맞고, 채찍질당하고, 굶주리고, 빼앗기고, 쫓겨나고, 머리 둘 곳 없이 이곳저곳을 헤매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합니까? 차라리 이 길은 피해야 할 길처럼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소망이 이 세상이고, 이 생뿐이었다면 그들은 가장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그들이 핍박을 받은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의를 위하여” 입니다. 의는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성경은 10절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와 11절의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를 같이 나란히 기록함으로써 의를 위한 핍박과 예수를 위한 핍박을 같은 선상에 놓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예수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부귀나 공명, 안전을 목표로 살았던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었다면 차라리 사업을 하거나 다른 길로 가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할 것입니다. 

그들의 목표는 예수였습니다. 그들의 심령이 가난해진 까닭은 그 안에 예수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애통한 까닭은 예수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온유한 까닭은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다른 욕심은 없는 청결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세상에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이제 핍박을 당하고 모욕을 당해도 참는 것은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려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도덕적 수양이나 경건한 인격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팔복을 마치 그런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인물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선함이 없음을 압니다. 우리의 의지로는 선한 존재가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소위 도덕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또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쉬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 때문에 한다면 우리는 편협한 종교인에 지나지 않은 것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의의 근원입니다. 예수님은 의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처럼 예수님을 좇아 살면 결국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인격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른편 뺨을 맞으면 왼편 뺨마저 돌려대는 사람이 될 것이며, 자기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인격은 철저히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를 닮은 사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예수를 많이 사랑할수록 우리는 산상수훈에서 말씀하는 인격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없이 의만 좇다가는 우리도 바리새인처럼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외식하는 자의 자리에 앉게 되고 말 것입니다. 겉은 사람들 보기에 어떨지 모르지만 속은 메마르고 완고하거나 또는 불안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많이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산상수훈의 인격이 형성되지 않는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도 없고 인내도 없고 자기만 알며 물질과 성장에만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에 대해서 산상수훈은 그들은 결코 예수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습니다. 그런데 만약 열매가 좋지 않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주여! 주여!” 했지만 실상은 자기 욕망을 사랑한 자들입니다. 예수로 위장된 세상의 복을 구했던 자들이든지 아니면 인간이 만든 사상이나 전통이나 교리를 사랑했던 자들입니다. 

신앙인의 실존

의의 길을 좇아간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핍박입니다. 그 핍박의 내용이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이는 제자의 길이 세상으로부터 결코 환영을 받지 못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세상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않으며, 세상이 사는 방식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질보다 예수를 구하며, 그들은 힘의 논리보다 사랑과 용서의 논리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 사람과 전혀 충돌이 없이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면 어쩌면 지금 우리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논어』에 보면 공자와 자공 간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습니다. 자공이 질문하였습니다. “마을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신앙인의 실존은 이래야 합니다. 마냥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의에 대해서는 세상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4-36)고 말씀합니다. 물론 우리는 가족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의를 따르는 길에서는 가족 또한 갈라설 때가 있고, 이 때문에 핍박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경계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마저도 가르고 맙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과연 의를 인하여, 또는 예수를 인하여 받는 핍박이 있나?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날은 초대교회처럼 추방이나 고문, 매 맞고 순교를 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전세계 곳곳에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고 불이익을 당하는 신앙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물리적인 핍박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그런 노골적인 핍박은 없지만 보이지 않게 우리를 위협하는 핍박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어쩌면 좀 더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핍박이 눈에 보인다면 오히려 신앙은 힘을 더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순교의 시대에 터툴리안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들은 우리들을 십자가에 매달고 고문하고 때리고 죽이라. 너희들이 하는 짓이 극심할수록 우리들은 더욱 더 큰 효과를 거둔다. 참으로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앗이다” 실제 핍박이 심했던 곳에서 마치 씨를 뿌린 것처럼 교회는 더 왕성하게 자랐습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에는 초기 복음이 전파될 때의 1만 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의 순교가 바탕이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사단은 이제 더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핍박합니다. 자본주의의 물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효율과 경쟁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뒤쳐지고 고립되어 간다는 소외감입니다. 물신주의는 많은 돈을 소유해야 행복하다는 가치관입니다. 그래서 이 대열에서 낙오된 사람에게는 불안감을 심어주고 무능력자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경쟁보다는 사랑과 조화의 길을 가는 사람은 패배자가 된다며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심어줍니다. 우리 자녀들이 성적 지상주의에 물든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바로 이런 경쟁의 논리들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목표가 되기보다는 덩치를 키우고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까 하는 데 모든 관심이 집중되게 합니다. 그래서 큰 교회를 이룬 사람은 능력이 있고 충실한 종이며, 그렇지 않은 목회자는 무능력한 존재로 인식이 됩니다. “교인 수가 얼마나 됩니까?”가 상투적인 질문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따르고 있습니까?”가 질문이 되면 안 됩니까? 목회자들에게는 성장에 대한 부담감이 핍박입니다. 사단의 교묘한 핍박입니다. 주님의 길보다는 세상의 길을 좇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난은 이렇게 개척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편하고 갖추어진 곳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는데 이 먼 곳까지 출석하고 이 불편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 개척교회가 주는 여러 부담감이 있는 곳이지만 이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책임 맡은 목회자도 아닌데도 속으로 교회 부흥에 대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이 또한 저는 의를 위한 고난이라 생각하며 이 고난에 동참하신 여러분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제 형편에 대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밤낮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평균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력이 낮거나 배우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장래가 보장된 것도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울 때는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저는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교회들이 지하에서 교회를 운영하며 미자립 상태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근 50%에 가깝습니다. 생계비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후원을 받거나 친척들로부터 보조를 받는 부끄러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신문을 돌리거나 택배, 택시 운전 등 투 잡(two jobs)을 하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과잉상태입니다. 목회자도 많고 교회도 많습니다. 한 블록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무슨 교회가 이렇게 많으냐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생활도 곤궁하고 목회에 대한 자긍심을 갖기 어렵습니다. “누가 목사 하랬나?” 하거나, 정리해야 될 개혁 대상에 올라가면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돈? 아닙니다. 돈이 목적이라면 목회를 버리고 다른 사업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행복? 그것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 더 나을 것입니다. 명성? 교회 목사가 무슨 명성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입니까? 예수님? 맞습니다. 예수님이 좋고 예수님 말씀대로 살며 예수님을 예배하는 삶을 위해서 이 일을 내 천직으로 알고 뛰어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당하는 이런 생활의 어려움 절망, 부끄러움...... 이런 것이라면 이것은 오늘 말씀처럼 의를 위한 핍박이나 고난이라고 저는 규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성장과 안전의 유혹이 핍박임을 알아야 우리는 제대로 적과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가 다 핍박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제자의 길을 가는데 우리 앞에도 여러 선택의 길이 존재합니다. 조금만 눈감으면 편한데 조금만 타협하면 쉬운 데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리에 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당했던 핍박은 대부분 종교적인 핍박이었을는지 모릅니다. 교회에 나간다는 이유로 가정이나 사회에서 당했던 핍박과 불이익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인정하는 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 의를 이루려다 핍박을 받는 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많은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런 헌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일에는 헌신적이고 희생을 보여주지만 사회적인 의에 대해서는 불감하고 자신을 던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악과 불의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에 맞서 고난을 각오하고 싸워야 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고 말씀합니다. 

초대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일례로 초대교회 당시는 향락문화가 주류였습니다. 고대 올림픽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음란하고, 무절제한 그런 문화에 크리스천들이 함께 하지 않으니 당시 세상 사람들이 화를 냅니다. “너희만 잘났냐?”. “너희만 깨끗하냐?” 하며 왕따 시켰고 결국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사회나 직장에도 관행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 관행을 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뇌물이나 촌지를 받는 것이 일상화 된 곳에서 혼자만 깨끗하게 살려고 하다가는 욕먹습니다. 부정과 반칙이 만연한 곳에서 자기만 정도로 걷는다면 손해보고 뒤쳐집니다. 어떤 직장이나 단체의 불의를 지적하다가는 십중팔구 거리로 내 쫓기고 맙니다. 어둠의 논리를 벗어나면 세상은 가차 없이 우리를 핍박하고 위협합니다.

의롭게 살려면 이런 핍박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다면 그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손해 볼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먹을 것 입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어두움과 타협하는 수가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천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천국의 실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지만 저는 그 천국의 모습 중 하나가 바로 교회 공동체라 생각합니다. 교회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들이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며 어려울 때는 서로 나눌 수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우리는 지치지 않고 의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라

주님은 이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합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할 때 이 동사는 현재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주어질 약속이 아니고 현재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너희가 이 땅에서 고생하고 모욕을 당했으니 장차 천국에서 그 고생을 갚아주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거래요 복수와 같습니다. 지금은 고생한 것 나중에 보상 받겠다는 태도처럼 보입니다. 아닙니다. 천국은 곧바로 주어집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부터 맛보며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의를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첫째 그들은 옳은 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옳은 일은 다른 대가를 필요하지 않습니다. 옳기 때문에 그 일이 보상입니다. 일제 시대 조국 독립을 위하여 싸웠던 독립군들이 장차 조국이 해방되면 한 자리 해보겠다고 독립운동을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일이 옳기 때문이고 옳은 일을 하다 설사 손해가 나고 목숨을 잃을지라도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다른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핍박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일이 무슨 보상을 주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옳기 때문에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이유도 자녀들이 커서 내 노후 대책을 해줄 거라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사랑해서입니다. 그뿐입니다.

만약 핍박을 받더라도 의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끄러운 사람들이 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세 번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고 세 번 대답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물어보신 이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베드로의 뼈아픈 과거를 치유해주기 위해서입니다. 핍박이 무서워 의의 길을 회피한 베드로에게 다시 재기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의의 길을 가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의에 길에서 돌아서고 나면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서 더 심한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2세기 중엽 폴리캅이라는 교부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재판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재판관은 만약 폴리캅이 황제를 두고 맹세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석방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자 폴리캅은 답변하기를 “내가 86년 동안 그를 섬겼으나 나를 한 번도 저버리신 일이 없다.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저주할 수 있겠는가?”하고 거부하였습니다. 재판관이 이번에는 그를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하니까 폴리캅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이 붙인 불은 순간이지만 지옥의 영원한 불길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화형을 당하게 된 폴리캅은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내가 이러한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잔에 참예할 수 있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를 인해 당신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옳은 길을 가는 것 자체가 충분한 보상입니다.

둘째, 핍박을 받는 순간 천국의 기쁨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예수가 우리 안에 임한다는 뜻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는 순간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12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명령만이 아니고 실재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성 프랜시스의 예화입니다. 
성 프랜시스가 그 제자와 함께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가 성 프랜시스에게 사람에게 참된 기쁨이 어디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프랜시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우리가 아무리 거룩한 덕과 감화의 모범을 보여준다 해도 거기에 완전한 기쁨은 없소.”
그렇게 추위를 견디면 걷다가 다시 프랜시스가 말했습니다.
“형제여, 우리가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고, 마귀를 내어 쫓으며, 죽은 자를 다시 살린다 한들 거기에는 완전한 기쁨이 없소.”
또 좀 더 가다가 프랜시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여, 우리가 온갖 말과 지식에 능통하고, 장래일과 심지어 인간 양심의 비밀을 꿰뚫어 본다한들 거기에도 완전한 기쁨이 없소.”
한겨울 살을 에는 바람은 연이어 불고 있는데 묵묵히 걷던 프랜시스가 또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여, 우리가 선교에 아주 능하여 이교도와 불신자들을 모두 회심시켜 그리스도를 믿게 한다할지라도 거기에도 완전한 기쁨이 없소.”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가다 어느 집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문지기가 나오더니 다짜고짜 “이 거렁뱅이 도둑놈들아” 하며 욕설을 하며 뺨을 때리며 몽둥이로 그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렇게 쫓게 나면서 비로소 성 프랜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바로 여기에 완전한 기쁨이 있소.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달게 참아 내고, 이것이 바로 복되신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던 가난과 고통, 모욕이라 생각하고 즐거워한다면 바로 거기에 완전한 기쁨이 있소”(『성 프란치스꼬의 잔꽃송이들』 중에서)

우리가 성자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예화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거나, 능력을 행하거나, 신비한 지식을 깨닫거나,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들보다 참된 기쁨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데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에 있는 것들이 자신을 자랑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반면에 고난은 철저히 자기 부인과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무엇보다 고난당하는 자들과 함께 합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행5:41)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게 된 것이 그들의 기쁨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기뻐해야 할 이유는 그들 앞에 천국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12). 이 말씀은 제자들이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그들이 받을 것은 세상의 상급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이 버리고 비운 만큼 하늘에서 받을 것은 더 커집니다. 기독교의 타락은 천국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면서 시작됩니다. 요즘 우리들의 모습은 이 땅에 쌓는 부와 영광과 인정을 바라지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의를 인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 땅이 우리가 머무를 곳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상급이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만족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가며 그 기쁨을 맛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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