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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 vs 불순종 (신 28: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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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vs 불순종 (신 28:1~2, 15~19)

1. 그리심산과 에발산

지난 주중 <날마다 솟는 샘물>의 본문이었던 신명기서 28장은 제게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28장의 전체 내용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과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저주와 심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왜 제게 충격이었는가 하면,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저주와 심판이 너무나 세밀하고, 구체적이고, 처참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전해진 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불순종할 경우, 그 결과가 어떠하냐, 즉 불순종할 경우 그들이 잃는 것과 치러야 할 대가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함으로서 궁극적으로 더더욱 순종의 길로 가게 하려는 것이 모세의 의도였습니다.

신명기서는 모압의 들판에서 요단강을 앞에 두고 건너편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모세가 그 생애의 마지막 설교를 한 것입니다. 그의 ‘신명기 설교’의 주제를 한 마디로 한다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그 나라를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에 알리는 백성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동안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던 말씀이 오늘 본문에 이르러서는 복과 저주, 번영과 패망이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여부에 달려 있음을 역설합니다. 

즉 가나안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두 가지 길이 있으니, 그것이 곧 복과 저주의 길인데, 그것을 선택하기는 이스라엘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모세는 실물 교훈으로 이스라엘을 가르쳤는데요.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그 백성을 둘로 나누어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세우고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때에 그대로 실행되었습니다(수 8:30-35).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이 두 산은 세겜 성 근처에 있는데,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북 방향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그리심 산은 해발 855미터, 에발산은 920미터 정도 되는 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산을 택하신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붙어 있지만, 그리심 산은 삼림이 무성하며 생명의 기운이 왕성한 곳이요, 에발산은 거의 황폐하다시피 한 돌산입니다. 그리심 산은 일조시간이 길어 항상 밝은 곳이요, 에발산은 햇빛이 잘 들지 않아서 그늘진 곳입니다. 눈으로 보기에 명백하게 차이가 나는 이 산들에서 하나님은 복과 저주를 선포하라 하신 것입니다. 항상 밝고 푸른 숲이 우거진 그리심 산에서는 순종하여 받게 될 복을 선포하고, 항상 그늘지고 생명이 거의 없는 불모지 같은 에발 산에서는 불순종할 경우 받게 될 저주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2. 순종에 대한 축복과 불순종에 대한 저주

1) 순종에 따른 축복(1-14)

그럼 먼저 그리심 산에서 선포된 말씀, 즉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에 관한 말씀부터 살펴봅시다. 1절에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이러이러한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약속하는 복들은 주로 물질적이며 현세적인 것들입니다. 

여러분, 구약 성경은 주로 이처럼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강조하고, 신약 성경은 내적이며 영적인 복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죠? 그런데요, 중요한 것은 그 복이 ‘물질적인 것이냐, 영적인 것이냐’가 아닙니다. 인간이 바라는 복이 무엇이든, 그 복은 인간이 추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시며 복 자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순종하는 성도에게 주시는 복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는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2). 순종하는 자만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성공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복은 ‘어디서나, 무엇에나, 언제든지’ 복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3~6). ‘어디서나’라는 말은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라는 말씀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성읍”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알 수 있는 공개적이고도 큰 축복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들”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할지라도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성읍'과 '들'은 사람이 살면서 접하는 모든 환경과 장소를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어디에 있든, 그리고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입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에 ‘항상’ 복을 받는다는 것은 6절에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들어와도 복을 받는다”는 말은 일을 마치고 귀가하거나 또는 휴식을 취하러 집으로 들어올 때에도 하나님의 복을 입을 것이며,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하여 일터로 나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그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이 말씀은 나가고 들어오는 그 모든 행위 자체가 주님이 주시는 복된 행동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리고 “모든 것”에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자녀, 소산, 가축, 떡반죽 그릇 등이 그것인데요. 가축이 그 수효가 많아져 번성하고, 식생활을 만족시켜 주사, 가나안에서는 개개인의 구미에 맞는 음식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도록 하시며(수5:10~12), 늘 잔치하듯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복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복입니다(7). 적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하여 한 길로 왔다가 이스라엘에게 패배하여 일곱 길로 도망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7'이란 숫자는 '완전'을 뜻합니다(창2:1~3;마18:21,22). 따라서 이 말은 대적들이 완전히 패배하여 뿔뿔이 흩어지리라는 뜻입니다(32:30;레26:7,8). 

네 번째 복은 창고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8).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면 수고와 노력이 헛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성도에게는 자신이 노력한 대로 얻고 누리게 하실 뿐 아니라, 노력하고 수고한 그 이상의 것을 누리게 하시는 데, 이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9~10). 여러분 이 복만큼 중요한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창세기 38장에는 요셉이 성공한 가장 결정적인 비결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물리치시고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것은 세상 전부를 소유한 것보다 더 큰 복입니다.

여섯 번째 복은 ‘풍성함’의 복입니다(11~12). 하나님께서 “자녀들, 가축의 새끼, 토지소산”을 많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땅은 더욱 비옥하게 하사 소출이 풍성하게 하시고, 모든 하는 일은 더 많은 결실을 거두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복은 순종하는 자로 하여금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13). 여기서 '머리'는 '명예'와 '존귀'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꼬리'는 '부끄러움'과 '비천'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순종하는 자는 경쟁에서 이기며 그 하는 일이 남들과는 다른 더욱 탁월함을 나타내도록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순종하는 자가 받게 될 복의 목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명기서 28장은 이 복에 관한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 68개 구절 가운데 순종하는 자가 받게 될 복에 관한 말씀은 14개 절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순종하는 자들이 받게 될 저주에 관한 말씀으로 복보다 약 5배 가량이나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저주의 목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불순종에 따른 저주(15~68)

15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3절부터 6절에 나오는 '순종에 따른 축복'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으로서 이것이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저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저주가 의인화되어 불순종하는 자를 끝까지 '따라 다니는'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네게 미칠 것이니․․․.” 그러면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저주의 목록은 어떻습니까?

불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첫 번째 저주는 어디에서나, 언제나, 무엇에나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16~19). ’어디에서나‘라는 것은 성읍과 들, 즉 가정과 일터에 저주가 임한다는 것이요, ’언제나‘라는 것은 들어가도, 나가도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며, ’무엇에나‘라는 것은 광주리, 떡반죽 그릇, 자녀, 토지소산, 우양의 새끼까지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집 안팎으로 저주를 당할 것이요, 씨앗의 종자와 음식이 모두 저주를 받게 될 것이며, 자손, 땅의 소출, 짐승의 새끼들에까지 저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저주와 공구와 견책이 내려 망하고 파멸한다’는 것입니다(20). 여기서 저주란 '장애물로 에워싸는 것, 저항하기에 무력한 것, 생산성을 즐기는 것이 금지된 것'이란 의미로서 복이 오지 못하도록 저주와 악담으로 꼭꼭 묶어두는 상태요, 그래서 축복이 끊겨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공구”란 이스라엘의 적들(신7:23)이 이스라엘을 혼란과 불안과 파멸에 빠트린다는 뜻입니다.
“견책”이란 '비난, 질책'을 의미합니다.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늘 비난하는 자와 책망하는 자가 따라 다니면서 일이든 무엇이든 제대로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잘 하는 사람도 비난을 받거나 책망을 들으면 금방 기가 죽어서 제대로 못하는데, 따라 다니면서 야단치고 비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세 번째 저주는 질병입니다(21~22,27~28,35).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염병, 즉 기근에 이어서 사람으로서는 손을 쓸 수 없는 전염병이 돈다는 말입니다. 폐병, 즉 결핵이 번질 것입니다. 열병이 생길 것인데, 이 열병은 심한 열을 발생시키는 '염증'을 가리킵니다. 

상한, 학질, 한재, 풍재, 썩는 재앙, 애굽의 종기, 치질, 비타민 C의 결핍으로 인해 빈혈이나 출혈 증상이 생기고, 전신 피로 혹은 무기력 증세가 따르는 괴혈병, 피부가 마름으로 인해 생기는 '가려움증'인 개창, 그리고 미침, 눈멂, 이유 없이 자주 깜짝깜짝 놀라는 경심증, 무릎과 다리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종기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나게 하시는 것 등입니다. 그 외에도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질병으로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61).

네 번째 저주는 자연 재해입니다(22~24).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아주 극심한 가뭄'이 임하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서 애써 길러놓은 농작물이 말라버릴 것이며, 잘 자라던 식물이 “썩는 재앙”을 당할 것입니다. “하늘은 놋이 되고 땅은 철이 될 것”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땅이 쇠 덩이처럼 굳어 버리는 극심한 한발(旱魃) 현상을 표현한 말입니다. “티끌과 모래”는 황폐한 토양에 강한 바람이 불 때 일어나는 흙먼지를 가리킵니다. 그 논이나 밭이 이렇게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지요. 

다섯 번째 저주는 전쟁에서의 패배입니다(25~26). 전쟁에서 패배하여 한 길로 공격하러 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하여 온 땅에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여기서 흩어진다는 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란 의미로서, 이스라엘이 전쟁에 패배하여 흩어질 뿐 아니라, 땅의 모든 나라들이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공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시체가 새나 짐승의 밥이 되나 그 짐승들을 쫓아 줄 사람조차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될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영적 어둠, 압제와 강탈당함, 구원자가 없는 저주입니다(29). “백주에도 더듬는다”는 말은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분별력이 없어지고 혼란 속에 헤맬 것이라는 뜻입니다. “구원할 자가 없다”는 말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버린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표현입니다.

일곱 번째 저주는 약혼자가 다른 남자와 자고, 새로 산 집에 타인이 거하며, 포도를 다른 사람이 먹는 것입니다(30).

여덟 번째는 자녀, 소, 나귀, 양을 빼앗기고 약하여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31~32).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소, 나귀, 양을 대적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곧 경제적 파산(破産)을 의미합니다. 또한 무기력하여 대적들의 노략질에 대하여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하고 앉아서 당하기만 하는 무능한 상태가 될 것이며, 그 자녀들이 이방 민족에게 포로가 될 것입니다. 

아홉 번째는 토지소산과 자신이 수고한 것을 타인이 먹는 저주입니다(33~34).

열 번째는 백성들과 왕이 다른 나라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저주입니다(36).

열 한 번째는 먼 곳에 있던 잔인하고 사나우며 흉악한 민족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징벌입니다(47~57). 이들 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그들은 독수리처럼 잽싸게 날아와서 이스라엘을 덮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노약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의뢰하는 성벽을 다 헐 것입니다. 너무나 굶주리고 괴로운 나머지 자녀를 더 이상 자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먹을 고기 덩어리로만 보는 극악한 마음의 상태까지 이를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얼마만큼 야만적이며 짐승과 같이 될 것인가를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열 두 번째는 끝까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망할 때까지 치시는 저주입니다(58~61). 

열 세 번째 재앙은 포로된 땅에서 평안함을 얻지 못하고, 발바닥이 쉴 곳도 찾지 못하며, 마음은 벌벌 떨리고, 눈은 쇠하고, 정신은 산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65). 불순종하는 자는 육신도 편하지 못하고 마음과 그 영혼도 편치 못하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는 허약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레26:36,37).

여러분,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저주의 목록을 보시니까 어떤 생각이 듭니까? 너무 끔찍하여 소름이 끼치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자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사무엘상 15장에는 사울 왕의 불순종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멜렉을 쳤는데, ‘모든 것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아각 왕을 살리고 좋은 가축을 남겼습니다. 그리고는 ‘좋은 가축을 남겨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22절)”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신(神)에게나 무엇을 드리고자 합니다. 무엇을 갖다 바치는 것이 그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더 우선으로 여기십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것이 예배보다 낫다는 것이고, 말씀을 듣는 것이 예물보다 좋은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이 말씀과 연결하여 아주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그것은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23절)”라는 말씀입니다. “사술”이란 점쟁이, 토정비결, 무당이니 굿이니 하는 사악한 미신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불순종은 사악한 미신행위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다는 것입니다. 

즉 불순종은 사악한 미신행위와 우상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불순종을 미워하시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3. 복으로 가는 길, 순종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임금이 신하들에게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우물물을 길어 저기 독에 가득히 채우시오.” 그런데 그 독은 밑 빠진 독이었기 때문에 물이 채워질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은 처음에는 바짝 힘을 내다가 다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한 충성스러운 신하는 오직 임금의 명령만 생각하면서 밤낮없이 우물물을 길어다가 독에 부었습니다. ‘하다보면 독이 차거나, 두꺼비가 깨어진 부분을 막아주든지, 아니면 우물이라도 마르겠지!’ 그렇게 열심히 하던 어느 순간, 그만 우물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물 바닥에 무엇인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금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신하는 우물 바닥에 있는 금덩어리보다는 자신이 항아리를 채우지 못한 것 때문에 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임금님, 용서하소서. 독에 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물 바닥에서 이 금덩이를 건졌나이다.” 임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겠다고 우물이 바닥나도록 수고했구려. 그대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요. 그 금덩이는 그렇게 순종하는 신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오.”

여러분, 이 이야기처럼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이 따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저주가 많은 이유는 일종의 경고로서 그리로 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순종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꿀이 있는 잔과 독이 있는 잔이 놓였는데, 거기에 독이라고 적혀있는 잔을 마시겠습니까? 아니면 꿀이라고 적혀있는 잔을 마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원리와 같습니다. 이 길은 복된 길이라고 밝혀두었고, 저 길은 저주의 길이라고 밝혀두었는데, 그것 무시하고 부득부득 저주의 길인 불순종의 삶을 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 앞에도 두 길을 두셨습니다. 여러분 앞에도 순종의 길과 불순종의 길이 있습니다. 때로는 순종의 길이 어려워 보이고 힘들어 보이고 실제로 희생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불순종의 길, 말씀과 관계없는 길은 쉽고 편해 보이는 길로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축복의 산 그리심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저주의 산 에발로 가시겠습니까? 순종으로 축복의 산에 이르러 그것을 누리고 그 축복의 영토를 자녀들에게 물려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불순종의 길로 가서 저주의 삶을 살고 저주를 대대로 물려주시겠습니까? 

오직 순종, 절대 순종의 삶을 살아,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모든 복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어 축복의 산 그리심에 거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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