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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직분]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엡 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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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엡 4:1~16)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 과정에서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이 성령을 통한 죄인을 불러주심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5장 1절에 『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5장 32절에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고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 『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새 생명으로의 초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구속 경륜 속에 만세 전부터 예정된 자들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는다고 했습니다(행 13:48).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1-24).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목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영적 공동체인 교회생활에서 신행일치와 바른 관계의 삶을 의미합니다. 

Ⅰ.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신앙인격입니다.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구속적 소명입니다. 부르신 목적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 '합당하게' 란 말은 어울리게, 혹은 어떤 기준이나 목표를 향하여 가는 정해진 바른 규범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1) 모든 겸손입니다. 
본문 4장 2절에 『 모든 겸손과… 』라고 했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객관적 가치 이하로 낮게 생각하는 나머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습니다(빌 2:7). 겸손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신앙 인격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2) 온유입니다. 
본문 4장 2절에 『 …온유로 하고… 』라고 했습니다. 
온유는 결코 연약하거나 모자라는 것을 말하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억제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3) 오래 참음입니다. 
본문 4장 2절에 『 …오래 참음으로…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죄인을 대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로마서 2장 4절에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6절에 『 …그리스도께서…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말씀을 본받아 능히 응징하고 복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인내하는 마음입니다. 

4)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본문 4장 2절에 『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라고 했습니다. 
오래 참음이 더욱 성화된 상태로 사랑으로 용서까지 하는 단계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덕행은 온 몸에 익어야만 합니다. 

Ⅱ.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그리스도 안에 서의 일체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를 일곱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몸이 하나라고 했습니다. 
본문 4장 4절에 『 몸이 하나이고…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모든 세대의 유형무형의 교회와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을 의미합니다. 

2) 성령이 하나라고 했습니다. 
본문 4장 4절에 『 …성령이 하나이니… 』라고 했습니다.

3) 소망이 하나라고 했습니다. 
본문 4장 4절에 『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4) 주(主)도 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4장 5절에 『 주도 하나이요…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외에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다시 없습니다(행 4:12). 

5) 믿음도 하나라고 했습니다. 
본문 4장 5절에 『 …믿음도 하나이요…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믿음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6) 세례도 하나라고 했습니다. 
본문 4장 5절에 『 …세례도 하나이요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만을 믿는 신앙고백으로 인하여 공적 의식인 세례를 통하여 교회는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28절에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고 했습니다. 

7)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4장 6절에 『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라고 했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하나님 존재의 유일성을 말합니다. 교회의 통일성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자이시며 만유의 아버지이시고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가 제도와 문화와 역사와 관습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교회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적 본질의 차이는 용납되어서도 안 되고 용납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차원에서 교회 연합 운동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믿든지 어떻게 믿든지 관계없이 무조건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의 교회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종교적 유희에 불과할 뿐입니다. 

Ⅲ.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은사(기능)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문 4장 7절에 『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 은혜는 은사와 동일시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절에 『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은사의 다양성은 교회의 조화를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받은 직분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부흥을 위해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 운동을 위하여 직분을 주셨습니다. 

1) 교회에는 다양한 직분이 있습니다. 

본문 4장 11절에 『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1) 사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현장 제자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이 땅의 초대교회 창립 멤버들입니다.

(2) 선지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설명하고 죄를 지적하고(고전 14:24), 교회를 훈계했습니다(행 15:32). 예컨대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이 있었고(행 13:1), 유다와 실라(행 15:22), 빌립집사의 네 딸(행 21:8-9), 선지자 아가보(행 21:10)들이었는데 이들 역시 초대 교회 설립의 조력자들이었습니다. 

(3) 복음 전하는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각지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순회선교사로 빌립과 디모데 같은 자들입니다(행 8:26-40; 딤전 4:1-16; 딤후 4:6-8). 

(4) 목사와 교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들에게 먹이고 교회를 양육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직분입니다. 교사는 그 말씀을 실제 생활에 적용시켜 나가도록 가르치는 직분입니다. 

(5) 장로가 있습니다(딤전 3:1-7). 

(6) 집사가 있습니다(행 6:1-6; 딤전 3:8-13). 

(7) 교회 정치와 행정 원리에 따라 생겨난 직분들도 있습니다. 

준 직원 강도사(교회 정치 8장 64조), 임시직원 전도사(교회 정치 66조), 권사(교회 정치 9장 69조)가 있고 교회의 원활한 활동을 위하여 다양한 조직과 기관들이 있습니다. 


Ⅳ.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성숙성을 요구 하고 있습니다. 

본문 4장 13-14절에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0절에 『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5장 14절에 『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고 했습니다. 

1)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 4장 12절에 『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라고 했습니다. 
온전케 한다는 말(카타르 티스몬, )은 완전하게 하다, 세우다(built)의 뜻 이외에도 찢어진 그물을 수리하다(마 4:2)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교회 직분자를 세우는 것은 성도들의 양육을 위한 일차적인 목적 외에 성도들의 본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2)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 4장 12절에 『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 봉사라는 말은 '하인'에서 유래한 말로 집사의 직을 뜻하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그 신앙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의 본래적 기능인 예배, 전도, 건덕(edification), 섬김, 헌물, 이웃에 대한 관심 등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본문 4장 12절에 『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교회 직분은 하나님의 나라(교회)건설에 결정적인 수단이 됩니다. 교회 직분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충만케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교회 직분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충만케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 4장 13절에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라고 했습니다. 

교회 직분자들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이와 병행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충만을 위하여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결코 교회 직분은 명예의 수단이나 기복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교회 직분이 우리와 무관한 것도 아닙니다. 교회 직분은 바로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영광스러운 축복의 직분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절에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은 그 직분이 삶의 목적이 되기 때문에 직분에 대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에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 전에 택하시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부르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교회라는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목적에 어울리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의 대 주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12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각양 은사(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유형무형의 달란트(은사)를 주셨습니다. 선천적인 달란트와 후천적인 재능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재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재능(은사)을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데 제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롬 12:1). 우리는 이것을 언필칭 목적으로서의 교회요, 수단으로서 은사라고 합니다. 
이 일을 함에 있어서 어린아이와 같지 말고 갈수록 성숙도를 더 가져야만 합니다.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한(어울리는, 기준에 일치하는, 고상한 이상을 실천하는 자세) 성도님들, 장로님들, 집사님들, 권사님들, 교사들, 찬양대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의 구원을 걱정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전도지를 들고 나서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있기에 교회는 소망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전도하는 모습은 마치 고독한 이들에게 그들을 통하여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 우체통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삶의 방식이 비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상당한 과정이 없이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사기이고 거짓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과정도 목적화 되어야 합니다. 마치 과녁을 향해 쏘지 아니한 화살이 과녁에 맞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입은 성도의 삶은 언제나 거룩해야 합니다. 정직한 과정 속에 은혜가 있고 축복이 있고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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