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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굳게 선 자리 (고전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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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굳게 선 자리 (고전 15:1~11)

  존 스미스라는 사람이 시골에서 가출을 해서 뉴욕에서 성공을 해 보려고 했습니다. 10년을 발버둥치다가 허송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라도 지어야겠다고 결심하였으나 차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임승차를 했다가 차표검사를 하는 차장에게  걸렸습니다. 

스미스는 “나, 뉴욕 타임즈 기자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기자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옷을 갈아입다가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둘러대자 차장이 말했습니다. “마침 잘됐네요. 지금 특등실에 당신네 신문사 편집국장이 타고 계시니까 가서 확인합시다.” 이 사람 큰일 났습니다.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이 나고 개망신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판사판으로 특등실로 가서 편집국장이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편집국장이 말합니다. “어 자네 웬일인가? 출장중이구만! 그래, 수고가 많네.” 차장이 가고 난 다음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딱한 처지에 있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어서 고맙다며 어떻게 그렇게 하셨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대답이 가관이었습니다. “사실은 나도 가짜요.”

여러분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까? 
시편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따라야 할 길이 있습니다. 서야할 곳, 앉아야 할 자리가 따로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굳게 서야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서야합니다. 

인류의 두 조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처음 사람인 이들에게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단의 꼬임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단의 말을 들어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둘째 아담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이 유혹할 때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이라고 하여 자신의 모든 행동을 성경위에 두었습니다.  

로마서5:17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 노릇하였은즉,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한 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사는 길이 생명의 길이고,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욕심을 따라 사는 길이 죄와 죽음의 길입니다. 
이 시간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인이 서야할 자리를 함께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는, 과거의 자리입니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집단 수용소에 갇혀있던 ‘시몬 비젠탈’은 배고픔과 피로, 굴욕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용소 동료들과 함께 임시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학교 건물로 작업을 나갑니다. 그런데 적십자 소속의 간호사가 나타나 그가 유대인지를 확인하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합니다. 간호사는 그를 어느 방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은 임종실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비젠탈은 온통 흰색 붕대에 감싸인 채 미동도 않고 침대에 누워 있는 한 독일군 병사를 보게 됩니다. 그는 비젠탈에게 자기가 이제 얼마 못 살거라고 말하면서 죽기 전에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일을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어서 그를 불렀다고 말합니다. 

카를이라는 이 SS대원은 자기 자신이 저질렀던 끔찍한 일들을 털어놓습니다. 명령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동료들과 함께 수 백 명의 유대인을 한 곳에 몰아놓고 바깥에서 문을 잠그고 반대쪽에서 기관총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는 수류탄을 안에 던져 넣었습니다. 카를은 아비규환의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2층 창문에서 어린아이를 안은 남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옷에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는데, 한 손으로 아이의 눈을 덮어 가린 채 거리로 뛰어내렸습니다. 카를의 동료들은 기관총을 발사했고요. 
카를은 죽음에 직면해서야 양심의 괴로움이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유대인 중 누구에게라도 고하고 용서를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 일생을 살아오는 동안 지은 죄가 어디 그 ‘카를’ 뿐이겠습니까? 
사람들은 과거에 지은 죄를 인하여 죄책감에 시달리는 현재를 삽니다.   
요한일서1:8-2:2입니다. 
“우리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면,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며,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그 분은 신실하시며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되게 하는 것이며, 그 사람에게는 그 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죄를 짓지 않도록 그러는 것입니다. 너희가 죄를 지으면 아버지 앞에 계신 예수그리스도, 곧 의로우신 대언자가 계시니 그 분은 우리 죄를 위하여 속죄 제물이 되셨는데,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속죄 제물이시기도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누구나 죄가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죄를 위한 속제제물이 되셨습니다. 셋째, 회개하는 죄는 반드시 용서받는다. 
 
누가복음17:3,4에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너희의 어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지적해주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그가 하루에 일곱 번 죄를 범하고도, 네게 돌아와 말하기를 ‘내가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라.”

고린도전서15:3에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써있는 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죄 없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잠깐 동안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심이 고발하는 정죄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작은 손으로 자기의 을 가리고 태양이 없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태양같이 밝은 하나님의 빛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순간에 자신의 죄를 가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지은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약속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어떤 죄라도, 아무리 많이 반복된 죄라도 용서받는다.”

혹자는 말합니다. “기독교의 용서는 너무 싸구려로 남발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간단하게 용서를 남발하기 때문에 죄짓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아닌가! 
정말 그럴까요? 성경이 말하는 용서가 그렇게 싸구려인가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당신이 하늘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죄인처럼 오셔서 죄인처럼 처형당하셨습니다. 그 값으로 내 죄의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내가 지불하는 것만 정당한 것입니까? 
저에게 간혹 멀리에서 찾아오시는 선교사님이나 목회자들이 오시면 식사를 대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무처에서 식당을 예약하고 대금을 미리 지불 합니다.저는 식사 대접을 하고 오면 됩니다. 그러면 나는 공짜로 밥을 먹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정당한 값을 다 지불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값을 지불하셨으니 이제는 마음껏 죄를 지으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속죄의 은총을 입고 감사함으로 충성하며 살 것입니다. 그 값에 걸맞게 인생을 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서야할 과거의 자리는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은 자리입니다. 


둘째, 미래의 자리입니다.   

고린도전서15:4말씀입니다. 
“성경에 써있는 대로 (땅에) 묻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서야할 자리를 명확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원을 바라보고 오늘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바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승리인 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감사함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활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32의 말씀입니다. 
“죽은 이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먹고 마시자, 우리는 내일이면 죽을 몸이다.’ 할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인생은 마치 하루살이와 같습니다. 오늘이 좋으면 그만이고, 육신이 즐거우면 되고,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만 있다면 야바위꾼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최근에 두 사람의 살인자들의 뉴스를 접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초등학생을 유괴 살해한 일과 어머니와 세 딸을 함께 살해한 일, 그리고 자기목숨까지 스스로 끊은 슬픈 일, 사람을 이만큼 잔인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앞 심판대 앞에 서야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자신이 반드시 법정에 서게 된다는 사실만이라도 믿는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행하는 일들을 자기 양심이 보고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그 사실을 보시고 게시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기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12:13-21에 참 불쌍하고 어리석은 한 부자 농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열심히 농사한 결과 그 해 소출을 엄청나게 많이 거두어들이게 됩니다. 너무 많은 소출로 인하여 창고를 늘여짓고, 지은 창고마다 수확한 소출로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영혼아, 너는 몇 해를 쓰고도 남을 재산을 넉넉히 가졌다. 
이제부터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어리석은 것아, 오늘 밤에 네 목숨을 거두어가면, 그렇게 모아둔 것이 누구에게 돌아가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재물을 쌓아두지 않은 자는 이와 같다.”

세상에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늙은 어른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힘이 없어 전적을 돌봄을 받아야 할 때가 자신에게도 다가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가 있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데는 아주 소홀히 하면서도, 자신은 아들 낳기를 원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저지르는 죄가 언젠가는 대낮에 밝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은밀한 죄를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육신의 죽음이후에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것인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거저 육신만을 위하여 그날그날의 만족을 추구하는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서10:37입니다.  
“잠시 잠간 후에는 오실 분이 오실 것이며, 결코 늦추지 않고 오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날 날이 곧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날은 결코 오래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연회에서 은퇴하시는 한 선배 목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은퇴라는 것, 예상된 것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니까 굉장히 낯설고 갑작스럽다.”

사랑하는 여러분, 
갈라디아5:15-20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심해서 주목하되, 어리석은 자들처럼 하지 말고, 슬기로운 자들 같이 하십시오.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시대는 악합니다. 따라서 분별없는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자가 되십시오.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그 속에서 생깁니다. 도리어 영으로 충만해져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얘기를 나누며,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시로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모두를 위하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 서야할 미래의 자리는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지혜롭게 사십시오.  


3.현재의 자리입니다. 

고린도전서15:10말씀은 언제 읽어도 은혜가 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성경 본문을 기록한 저자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미숙아와 같은 자”(고전15:8)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사도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교회를 핍박하는 등 못할 짓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능력이거나, 실력이 아니라, 오직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겸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정직한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정직하면 하나님의 하신 일이 보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보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선 현재의 자리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간혹 극단적인 도피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인의 길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쉽고 편한 길을 찾지 않습니다. 
군목으로 일 할 때 한번은 인시주임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왔습니다.  
“신학대학생이 군수과에 배치되었으니 필요하시면 교회에서 일하게 하십시오.” 
그래서 왔는데 지나보니까 아니올시다. 그래서 몇 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학교 교수님이 어떤 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군 생활을 하면 아주 편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디에 가면 문제가 없고 고난이 없겠습니까?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되겠습니까? 어떤 분은 새벽기도 때문에 목회가 힘들다고 합니다. 
세상에 무풍지대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현재는 무풍지대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기 때문에, 상황에 주어지면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더욱 기도합니다. 더욱 겸손해집니다. 더욱 강건해집니다. 더욱 은혜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때로 우리가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실망이 되고 낙심이 되는 일이 없지는 않겠지만,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크십니다. ‘人間萬事 塞翁之馬’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일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보다 더 확실한 약속이 있습니다. 
로마서8:28이다. 
창세기50:20이다. 

당신은 예수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셨습니까? 
과거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용서받은 기쁨의 자리에 서십시오.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부활의 확신과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바라보고 소망의 자리에 서십시오. 
현재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나아가, 믿음으로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2004년 우리교회가 중국 북경에 교회당 하나 건축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며 건축을 마쳐서 봉헌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갔을 때 우리일행은 적지 않게 실망하였습니다. 완공된 교회 건물에는 저를 포함하여 몇 명의 교회대표 밖에는 들어가지도 못하였습니다. 교회당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공원 한쪽에서 봉헌예배도 아닌 예배를 드리고 돌아설 때 마음이 몹시 서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선교를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동행 했던 교우들과 함께 ‘북방선교후원회’를 구성하고 선교비를 모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우리교회 북방선교계획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몽골에 2억 5천 만 원을 드려서 신학교를 건축하여, 9월에 준공식과 더불어 봉헌하게 되고, 금년 7월 20일에는 몽골선교사를 파송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을 향한 선교의 발판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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