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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소망 (고전 1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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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소망 (고전 15:20~24)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기에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
상만 바라보고 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 하시는 날,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부활할 것을 믿으며 삽니다. 그 날, 무덤 속에서 잠자던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여 예수
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그날을 기다리며 그날의 영광을 생각하며 사는 사
람들입니다. 이렇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환란과 핍박을 당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비록 
죽음이 온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보십시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
의 얼굴은 천사와 같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다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죽음이 와도 
기뻤을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노인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 때 노인은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 병실이 
이 땅에서 내가 마지막 머무는 방입니다. 그 다음의 제 방은 천국이 될 겁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으신 분
입니까! 그는 구원의 확신, 부활의 확신, 천국의 소망이 분명한 노인입니다. 

1973년 우간다에는 이디 아민이라고 하는 독재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디 아민 대통령을 반대
하는 무리들은 모조리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살단이 키파샘판디 목사가 담임을 하고 있
는 교회로 쳐들어 왔습니다. 그날은 부활절 아침이었습니다. 그들은 목사님을 죽이려고 총을 들이댔습니
다. 그러자 목사님은 싱글싱글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잠깐만 기
도할게요. 그런 다음에 죽이세요” 암살단은 곧 죽을 목숨이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님이 하시던 대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여기 이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
릅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이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멘” 이렇게 기도했더니, 목사님을 암살하려고 했
던 사람들이 “기도해줘서 고맙습니다.” 는 말을 하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렇게 죽음 앞
에서 웃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죽음 앞에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에게 부활
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보스턴 교외에는 고든 코넬 신학대학원이 있습니다. 이 코넬 신학 대학원은 럿셀 코넬이 세운 대학
입니다. 그는 시민전쟁 당시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후퇴하다가 그만 지휘도인 칼을 버리고 
오게 되었습니다. 지휘도를 잃어버린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 코넬 대령은 링이란 소년을 시켜 칼을 가져
오도록 했습니다. 이 소년은 목숨을 걸고 칼을 가져오다가 그만 총에 맞았습니다. 링은 천막까지 칼을 가
지고 들어와 코넬 대령에게 바치고 마지막 눈을 감았습니다. 그 때 소년은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
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의 친구이기에 난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
다.” 이 죽음을 홀로 지켜 본 무신론자이자 회의주의자였던 코넬은 감동을 받아 소년의 시체 앞에 무릎
을 꿇고 “오, 주여! 이 어린이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여, 이 어린이가 찾은 하나님을 위
하여 제가 몸을 바치겠습니다.”라고 결단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신학을 공부했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신학원을 세웠습니다. 그는 템플 대학까지 세워 수많은 지도자를 양성했다고 합니다. 

부활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죽음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부활의 소망이 
없습니다. 어떤 종교도 부활의 소망은 없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않
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다가 죽는 것이 최선이라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어느 날 궤변 철학자인 디오게네스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줄 것이니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좋으니 영원한 것을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알렉산더
는 “그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디오게네스는 “그런데 왜 당신은 세상을 다 정
복하려고 하십니까? 그것을 다 즐긴다는 한순간의 보장도 없으면서…” 과연 알렉산더 대왕은 16세에 마
케도니아의 치리자가 되었고, 18세 때 승리의 장군이 되었으며, 2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33세 때
에 그는 미친 듯이 술을 퍼 마시다가 죽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거지처럼 살았지만, 대왕보다는 지혜로
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영생이라는 인간의 근본문제를 가지고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공을 하
고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서 산다면 몇 년이나 살까요? 죽으면 영원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 이 세상 사람이 얼
마나 어리석습니까? 

어떤 사형수가 있었는데, 이 사형수는 죽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소원은 고기를 실컷 먹
고 죽는 것이었습니다. 고기를 사먹을 돈이 없는 그는 죽은 뒤 자기의 시신을 병원에 바치기로 하고 10만
원을 선금으로 받았습니다. 사형수는 그 돈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는데, 3만원 어치 밖에 못 먹었답니
다. 그리고 그 다음날 사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입니까! 부활의 신앙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 사형수처럼 허무한 인생을 살다가 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활의 신앙을 믿지 않는데, 우리 성
도들은 어떻게 부활의 신앙을 믿을 수 있을까요? 

부활의 신앙을 믿는 이유는? 

1.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
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
엘을 구원하실 분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되길 바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
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때 그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너무 슬프고 절망적이어서 눈물을 흘렸
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돌아가신지 사흘째 되던 날, 주님의 시신에 향유를 부어 드리기 위하여 예수
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큰 돌이 옮겨져 있었고, 주님
은 부활하셨습니다. 

2. 성령에 예언된 말씀 그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서 15:3~4을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
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습니다. 예
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선지자들이 구약에서 예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도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오셨고, 말씀대로 죽으
셨고, 말씀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29~32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
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
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
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고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설교할 때, 시편 16:8~11을 인용합니다. 

마태복음 24:35을 보면,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
니다. 마태복음 5:18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한 참 진리의 말씀입니다. 반
드시 그대로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도 그대로 이루어졌고, 미래에도 그대로 이
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
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실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있었던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8:11~15을 보면,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
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
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제자들을 통해
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고, 하나는 경비병들을 통하여 시체를 도둑질해갔다는 거
짓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5절 말씀처럼 군인들이 돈을 받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다 
퍼졌지만, 거짓말은 끝까지 지킬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지 못하는 것은 부활 
후에 예수님이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3~8 말씀을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
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
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
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
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이 너무 많습니
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부활 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서 15:20~24을 보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
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
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부활의 순서를 기억해 두십시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예수 믿고 죽은 성도들이 부활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부활을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부활을 생명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부활이기 때문입
니다. 둘째 부활은 천년왕국이 지난 후에 있습니다. 그 날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생명책에 기록
된 대로 심판을 받아 영원히 지옥 불못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부활을 심?! 
퓽? 부활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5:28~29을 보면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
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예수님은 말
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선한 일은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다. 참 신자답게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이 가장 
선한 일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을 합니다. 또한 악을 행하는 것 중에서 최고의 악한 일은 
하나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며, 죄 가운데 살고, 우상 숭배하고,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이 악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심판의 부활을 합니다. 


5.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4:13~31을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일어난 모든 일을 이야기 
하면서 걸어갔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거셨습니다. 그들은 이 분이 예수님인지 몰
랐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동행을 하다가 때가 저물었을 때에 제자들이 권하여 한 마을에서 머물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저녁을 잡수실 때 축사하시며 떡을 떼어 주셨는데, 그 때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순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이지 않
으셨습니다. 이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과 함께 이야기하신 것처럼,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때로는 말씀도 하십니다. 때로는 책망도 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의 눈을 만드신 분이기에 보지 못하는 것이 없고, 우리의 귀를 만드신 분이
기에 듣지 못하시는 것이 없고, 입을 지으신 분이기에 말씀하지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처
럼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가운데 분명히 살아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저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일을 체험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사는 일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 금식 기도할 때, 주님은 조용히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서 살아줄 수 없겠느냐?”하고 세 번이나 애원하듯이 말씀하셧습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들을 때, 도저히 죽을 수가 없어서 죽음을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될 때, 제 마음 속에 교만한 생각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네가 잘나서, 네가 설교를 잘해서 이 교회가 부흥이 되는 줄 아느냐? 이 교회를 내가 
세웠다. 성도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도 내가 모아주는 것이다.” 주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서 저는 주님께 “주님을 이 교회에 당회장으로 모시겠습니다. 저는 다만 교육 전도사 같은 마음으로 충성
만 하겠습니다.”고 고백을 하고 지금까지 주님을 모시고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속을 썩이는 집사가 있어
서 “아버지, 오늘밤에 저를 불러 가시던지, 그 집사를 불러 가시던지 둘 중에 한 사람을 택하여 데리고 가
십시오.” 이런 기도를 하며 밤새도록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새벽녘에 주님이 제게 찾아 오셔서 “네가 
문제다.”하고 책망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문제가 없는 목사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제게 문제가 있다고 책망하시자, 저는 주님께 울면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붙들고 목회를 하고 있지, 그 집사를 붙잡고 목회를 하고 있는 것
이 아니다. ! 교회가 부흥이 되고 안 되는 것은 너에게 달렸다. 그 집사는 내가 너에게 맡긴 양이다.” 저
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다시는 성도를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문제인
줄 알고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교회에 어떤 문제도 없었습니다. 
교회가 부흥되고 안 되는 것은 성도들의 문제가 아니라 저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주님을 만난 체험이 많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에도 이런 체험이 많은 줄 압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함
께 하시는 것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언제나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부활
의 주님이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기 바랍니다. 

지난 이천년 동안 교회는 많은 환란과 핍박을 받았고, 얼마나 많은 위기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스탈린이
나 김일성 같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 교회가 당장 없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만 한줌의 흙
이 되었을 뿐 교회는 여전히 강건하게 서서 부흥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
니다. 어떻게 교회가 부흥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주님을 기억하고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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