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8)

  • 잡초 잡초
  • 957
  • 0

첨부 1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8)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여러분은 하늘의 별을 보신 적이 언제입니까? 서울은 공기가 탁하고, 불빛이 너무 강해 별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제가 군대시절 보았던 별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합니다. 새벽 2시 무렵에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하다 무심코 하늘을 보았는데, 마치 별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손으로 잡으면 잡힐 것 같았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저는 여행을 가거나 시골에 가면 습관적으로 하늘을 보며 별을 찾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별의 장관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성지순례 가서 한 밤중에 시내 산을 오르다 그 장관을 다시 한 번 접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사막에서 보는 은하수와 별똥별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왜 우리는 별을 잘 볼 수 없을까요? 왜 사막에서는 그렇게 아름다운데 서울 하늘에서는 그런 별을 볼 수 없을까요? 사막에 뜬 별 하고 서울에 뜬 별이 달라서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너무 오염되어 있고, 우리 주변이 너무 밝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별을 보려면 대기가 청결해야 합니다. 또 주변의 불빛이 너무 강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에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더러운 때가 가득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에 팔려 있으면 주변의 빛이 강하여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청결해야 할 곳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

모두가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부지런히 닦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마음의 거울을 닦지 않고 자기 외모만 닦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실제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 이들은 겉만 번지르하게 닦지 안 곧 마음을 닦지는 않습니다. 밖은 사람들이 보지만 안은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하나님은 밖은 별로 보지 않고 우리 안이 어떤지를 보십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이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까지 말씀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우리 중심은 어떻습니까?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합니까 하나님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까? 그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의 중심이 사람의 평판을 더 중요시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을 깨끗이 하면 겉도 깨끗해집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과 실력입니다. 외모와 겉으로 보이는 형식이 아닙니다. 내용이 있으면 겉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속이 알차고 깨끗하면 반드시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외모만 중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병폐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너무 지나치게 예민합니다. 그래서 없어도 있는 채 해야 합니다. 학벌은 무조건 좋아야 합니다. 명품을 좋아하고, 어디에 사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의 최고 관심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외모입니다. 여기에 명품 가방이나 고급 브랜드 신을 신어야 기가 삽니다. 그래서 요즘은 또 남자 성형수술조차 유행이지요.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 중에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이 토크쇼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입니다. 2004년도에는 276명의 방청객 전원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취지로 3천만 원 대의 차를 무료로 선물하는 깜짝 쇼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윈프리가 흑인이고, 평범한 얼굴입니다. 몸도 뚱뚱한 편입니다. 외모가 별로예요. 그렇지만 오프라 윈프리는 실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진실됩니다. 누가 자기는 어렸을 때 성적인 학대를 당한 상처가 있습니다 하니까? 윈프리가 울면서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상처가 있습니다.’ 하며 그 사람을 껴안았습니다. 윈프리의 이런 공감의 능력과 솔직함이 그녀를 토크쇼의 여왕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마 윈프리가 한국에 태어났으면 성공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앵커들은 다 깎은 인형처럼 예뻐야 하고 자기 본모습은 숨기고 아름다운 모습만 드러내야 성공하니까요.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치장하는 데 관심을 갖기보다는 자기 스스로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자기 내적인 수양을 더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내적인 것은 평생을 가지만 외적인 것은 사람의 기호에 따라 바뀌기 십상입니다. 인간의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의 평가기준이 자기 안에 있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추구했던 행복은 바깥 곧 사람들의 판단에 매어달린 행복이었습니다. 이런 행복은 회칠한 무덤의 행복일 뿐입니다. 겉은 번지르하지만 속은 썩은 시체 냄새, 곧 불안, 미움, 정죄의식으로 가득합니다. 진정 자기에 충실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려고 노력할 때 행복은 거기에 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

마음이 더러워지는 이유는 욕심과 악한 생각 때문입니다. 마음속의 더러움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인류 최초로 로켓을 타고 대기권 밖을 비행했던 사람은 구소련의 유리 가가린이었습니다. 그는 우주로 날아가 지구를 내려다보면서 지구의 푸른 모습을 처음으로 눈으로 목격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늘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고 믿는 기독교의 신앙을 조롱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미국의 한 소녀가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그때 아저씨의 마음은 청결했나요?” 우리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하늘 끝에 간다한들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겉만 깨끗하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씻고 있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바로 정결법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손에 죄를 묻히지 않기 위해 음식을 먹을 때나 바깥에 나왔다 들어오면 부지런히 손을 씻었습니다. 혹시 죄가 자기 안에 들어올까 두려워서였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먼저 마음을 깨끗이 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15:18-20)

실제 그래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옷이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이나 외모가 아닙니다. 그의 인격입니다. 외모는 잠깐입니다. 최종적으로 사람에 대한 평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의 인격입니다. 우리 인격은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 육체적인 정욕, 그리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명예욕 등이 우리 마음을 복잡하게 하고 어둡게 합니다. 이렇게 마음의 빛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싸웠던 것도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제사나 절기를 잘 지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오를 때 깨끗한 예복과 값진 재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시편24:3-5)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는 그 행실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그 마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곧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시온의 대로가 열린 사람들입니다. 대로에 돌멩이들이 흩어져 있거나, 비포장 도로 이거나, 그 길이 굽어 있으면 속력을 내어서 달릴 수 없습니다. 생활 속에서 경건한 삶을 산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향한 길에 놓인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무엇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부활은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부활 생명에 참여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말합니다. 내 욕심이 줄어든 만큼 우리는 부활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내가 감정 기분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 할 때 우리 인생에는 부활생명이 넘치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단순하게 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순하게 해야 합니다. 주변의 불빛이 많으면 별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세상을 향한 욕심의 불빛, 세상의 쾌락의 불빛, 여러 가지 분주한 일의 불빛이 너무 강합니다. 마음을 청결하게 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단순하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정리할 때 마음도 단순하고 청결해 집니다. 초대교회와 중세시대 수도자들이 모든 재산을 다 기증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막으로 들어갔던 이유는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 입니다. 물질에 얽매이고, 인간관계에 얽매이니 마음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 떨쳐버리고 사막으로 간 것입니다. 한창 전성기에는 이집트에 사막이 수도자들로 꽉 찰 정도였습니다. 사막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순하게 살아가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지요. 이 단순함 속에서 수도자들은 하나님을 보고 그분과 하나가 되는 지복을 맛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보다 가나안 땅에서 타락했습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문명의 도시로 그곳에는 이스라엘을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서에는 하나님께서 풍요와 음란 문화에 물든 가나안을 떠나 행복했던 광야로 돌아가자고 이스라엘을 설득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를 꾀어서 빈들(광야)로 데리고 가겠다. 거기에서 내가 그를 다정한 말로 달래 주겠다. 그런 다음에 내가 거기에서 포도원을 그에게 되돌려 주고, 아골 평원이 희망의 문이 되게 하면, 그는 젊은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거기에서 나를 기쁘게 대할 것이다”(호2:14,15)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랄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 마음을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록 옛날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지만 가끔은 TV 소리가 없는 곳, 사람 소리가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끔은 기도원에 올라가십시오. 우리 마음의 소리들이 잠잠해지고, 욕심들이 가라앉고 나면 그때서야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자기 자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누구인가? 오직 자기 마음을 완전히 예수에게 맡기고 그가 홀로 마음을 지배하게 하는 자이다.” 우리 마음이 청결하려면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과 관심사가 복잡하면 마음이 산란해집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교회 이전을 결정하고 그곳에 십자가를 세우려고 하니 상가 상인들과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들과 타협하여 세 단짜리 종탑을 한 단으로 낮추기로 하였습니다. 이것도 제대로 세울 수 있을는지 지금으로서는 모르겠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십자가 종탑이 혐오 시설이나 자기 집 전망을 가리는 불편한 것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 일을 하면서 온통 관심이 십자가에 가 있다 보니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난 주간 내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깔린 느낌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만 고민하니 성경을 보아도, 기도를 해도 집중이 안 되었습니다. 주님을 묵상하려 하는데 주님은 떠오르지 않고 어떻게 이 종탑을 세우나 하는 염려와 근심만이 가득합니다.

이처럼 에너지가 분산되니 주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마음에 평화가 없었습니다.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이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청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활을 단순화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는 일이 너무 많으면 안 됩니다. 또 여러 일을 할지라도 그 목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모든 일이 주님을 향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전에 한 번 언급했던 로렌스 형제의 글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서 성자 로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노동시간은 기도시간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일하는 주방은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것저것 찾느라 분주하다. 그 속에서도 나는 말할 수 없는 평온함 중에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다. 무릎 꿇고 성찬을 받을 때와 똑같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단순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주님을 향하는 것 이것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아주 동화 형식으로 쓴 아주 얇은 책인데 마음이 청결한 삶이 어떠한지 잘 보여줍니다. 이 글은 저자가 그리스도께서 자기 마음의 방에 찾아오신 것을 상상하면서 쓴 글입니다. 주인공은 먼저 그리스도께 자기 서재를 보여 드렸습니다. 서재는 바로 우리 생각의 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보니 그 책 선반에는 쓸데없는 책과 보기에 부끄러운 책들이 꽂혀 있습니다. 얼굴을 붉힌 채 서 있는 저자에게 주님은 유익하지 않고, 깨끗지 못하며, 좋지 않고, 참되지 못한 것들은 다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 선반에 성경을 꽂아 놓고 그 말씀을 묵상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자 자기 생각이 정돈이 되고 중심이 잡히고 것을 경험합니다.

이번에는 주방을 보여 드렸습니다. 주방은 식욕과 욕구의 방을 상징합니다. 저자는 예수님을 앉혀 놓고 평소 자기가 먹던 음식들을 내어 놓았습니다. 돈 학위 증권 등이 그 주식이었고, 반찬으로는 명성과 행운에 관한 신문기사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때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하고 말씀하시며, 우리 영혼의 양식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바꾸라고 명령하십니다. 지금 우리 영혼의 양식은 무엇입니까?

세 번째는 거실입니다. 저자는 이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성경을 보기로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일과 시험으로 바쁘다 보니 예수님 혼자 거실에 앉아계신 경우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과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음은 작업실입니다. 작업실은 곧 우리의 일터입니다. 그런데 그 작업대에는 형편없는 작품이 놓여 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하시면서 주인공의 어깨와 손을 잡고 친히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세상일도 주님과 함께 하면 우리는 능숙한 사람들이 됩니다. 오락실은 자기만의 놀이터를 의미합니다. 저자는 이곳에 주님을 모시기 싫어합니다. 왠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불편할까봐서 그렇습니다. 마지못해 주님과 함께 했는데 그 예상과는 달리 너무 기뻤습니다. 주님은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하며 자신이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참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라 말씀하십니다. 저자의 침실에 들어가서는 주님은 이성 교제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도와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여드렸던 것은 벽장이었습니다. 벽장 안에는 온갖 더럽고 죽어 냄새가 나는 것들이 있어서 그것이 온 집안에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열쇠를 받자마다 벽장을 깨끗이 청소하시고 도배까지 하셨습니다.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한 것은 명의 이전이었습니다. 도무지 자기 스스로 자기라는 집을 관리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열쇠를 주며 이렇게 간청합니다. “주님 당신은 손님이었고 제가 주인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제가 하인이 되겠습니다. 당신이 저와 이 집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이렇게 명의 이전이 되고나서야 진정한 평화가 주인공의 영혼에 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삶은 그 모든 것의 주권을 그리스도에게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청결하게 할 수 있나?

마음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욕심을 죽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욕심은 죽이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강력하게 저항합니다. 욕심이 솟아나는데 그 욕심을 틀어막기가 어렵습니다. 수도관이 터졌는데 이것을 손으로 막으려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율법의 방식입니다. 율법은 한 마디로 “하라” “하지 말라”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죄악이 솟구치는데 율법으로 강제로 틀어막을 수 없습니다.

욕심을 끊으려면 은혜의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은혜의 방식은 아예 욕심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식욕의 욕구가 강한 사람이 다이어트에 성공하기는 어렵지요. 이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내적으로 식욕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다이어트 방법 중에 식욕억제제를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식욕억제제를 먹고 나면 밥 생각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살을 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둘째는 그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내가 왜 살을 빼야 하는지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거나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분명한 목표가 보여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취한 사람은 은금패물과 명성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은혜 받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삭개오 같은 사람은 욕 먹어가며 평생 동안 모았던 재산을 아낌없이 내어놓았습니다. 정욕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키에르케고르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정욕의 유혹이 많았습니다.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창녀가 생겨 그 유혹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 유혹을 이겨낸 비결을 키에르케고르는 자기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진정한 마음의 깨끗함은 오직 한 가지 목적에 몰두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목적에 내가 몰두할 때 나는 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이 정욕을 이기게 만듭니다. 정욕이나 욕심을 없애기보다는 그보다 더 좋고 더 달콤하고 더 행복한, 하나님과 그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세상 욕심이 사라집니다. 예배를 사모하고 아침마다 말씀보고 부지런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맛에 푹 빠지십시오. 그러면 더러운 욕심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청결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에 상승하여 하나님을 보면 볼수록 우리 마음은 더욱더 청결해질 것입니다. 마음을 청결히 함으로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인생이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