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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십자가 (갈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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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갈 6:14)

1.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상징물이 무엇일까요? 

십자가 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경을 짜보면 피가 흐른다” 고 했습니다. 참깨를 짜면 참기름이 나오지만, 성경 66권을 짜면 피가 나옵니다. 십자가 상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 말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곧 십자가입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사회에서 십자가는 사형집행기구입니다. 이 형틀은 너무나 잔인하기 때문에 로마시민들에게는 십자가형을 집행하지 않았고 종들과 천민, 저급한 범죄자들에게 십자가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얼마나 잔인한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십자가형이 언도되면, 죄인은 가죽끈으로 된 채찍으로 채찍질을 당한 후 성문 밖 사형 집행장까지 노예처럼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집행장에 도착하면, 발가벗긴채 십자가와 함께 땅에 뉘어 팔 또는 손이 묶이거나 못박혔습니다. 그리고는 죄인을 십자가에 매단채로 십자가를 높이 세웁니다. 이 상태로 기운이 빠져 죽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이미 머리에 가시로 만든 관을 쓰셔서 얼굴에 피가 흘려내리셨고, 온 몸에 심한 채찍을 받으시어 피투성이가 되셨고, 양손 양발에 대못을 박히시면서 피를 많이 쏟으셨습니다. 그러니 십자가에 달려서 오래 버틸 수 없었습니다. 6시간만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2.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가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사야 53:5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 탄생 700여년 전에 이미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아 대신 아파하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우리 대신 아파하시고 고통당하시고 죽임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아픔이, 우리의 슬픔이, 우리의 질병이, 우리의 고통이,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로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나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기뻐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이것이 우리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과거의 무거운 짐을 벗겨주었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씻어주었습니다. 과거의 실패에 얽매이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현재,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생의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현재의 복을 누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찬 기대를 갖는 것, 
이것이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새 사람의 삶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새사람이 되게 합니다. 

3. 그런데, 새 사람이 계속 유지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된 기쁨과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헌 사람이 되어버렸지는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자동차를 구입하면, 한 달 정도는 차를 만져보고 자주 닦아주고 좋아합니다. 길게 가야 한 달입니다. 전자제품도 길어야 1주일입니다. 새 집도 길어야 6개월입니다. 그래도 가장 오래 가는 것이 부부간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가슴 뛰는 사랑도 1년 반에서 길어야 2년 반이면 사라집니다.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사랑의 감정은 뇌의 화학작용” 이라며 “남녀가 만난지 2년 정도 지나면 대뇌에 항체가 생겨 더 이상 사랑의 화학물질이 생성되지 않는다” 고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감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의지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 남편은 내 남편이니 평생 내가 사랑하고 섬겨야 할 사람” 이라고 “이 사람은 내 아내이니 미우나 고우나 평생 내가 섬기고 사랑해주어야 할 사람” 이라고 굳게 믿고 억지로라도 사랑을 표현하며 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례받고 새 사람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기뻐하며 감격하였지만, 그것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 가기조차 싫어지기도 하고, 교회 사람들이 별로 반갑지 않아지기도 하고, 교회 생활의 즐거움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새 사람을 계속 유지하기가 힘듭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언제부터인가 헌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세례받으신 분들은 세례받은 기쁨과 감격이 있겠지만, 이미 세례받으신 분들은 오늘 예식을 통해 수십년 전에 여러분이 받은 세례의 기쁨을 재확인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새 사람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 사도는 새 사람의 감격과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비결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이렇게 그의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나 바울은 죽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욕망, 이기심, 탐욕은 죽었다. 내가 뭘 하고자 하는 의지도 죽었다. 대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신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할 것이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는 것, 이것이 새 사람이요, 새 사람을 계속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오늘 세례받으신 분들, 그리고 오래 전에 이미 세례를 받으신 분들,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예수님 때문에 세상이 죽었습니다. 세상에 나에게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는 죽었습니다. 세상과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길과 나의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명견을 훈련시킬 때,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바닥에 고깃덩어리를 갖다 놓고 주인의 허락이 없이 고기를 물 때에는 사정없이 매를 가합니다. 몇 번의 훈련을 반복시킨 다음 다시 고깃덩어리를 떨어뜨립니다. 그때 개는 고깃덩어리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바라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 그분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가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주님이 무엇을 원하실까, 그분의 원대로 사는 것, 이것이 새사람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4. 두 번째로, 십자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십자가 은혜를 받아 새 사람이 된 성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십자가를 질 줄 압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예수님 때문에 손해보는 것입니다. 

내당교회에서 반고개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다보면, 자동차 시트 판매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장님은 내당교회 집사님인데 탁구동호회를 통해 전도를 아주 열심히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인가 관심이 있어서 그 집에 자동차 시트를 교체하러 갔습니다. 자동차 시트를 깔끔하게 잘 해주시면서 몇 만원을 할인해주셨습니다. 목사님이기에 디스카운트 해준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오면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면서 예수 믿으면 자동차 시트를 공짜로 해준다고 한답니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요 싸구려 제품을 사용해서가 아니라, 좋은 제품을 사용하고 최상의 서비스를 해주면서도 단지 예수님 때문에 할인해 준다는 것입니다. 소위 Jesus Discount 입니다. 그 분 덕분에 주위 사람들이 은혜를 입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조금씩 손해보는 것,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연약합니다. 완벽하지 못합니다. 실수가 많습니다. 부족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실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예수님의 은혜가 매일 필요합니다. 십자가 은혜를 매일 누리는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통해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워집니다. 

우리 다같이 “십자가 그 사랑” 이란 찬양을 불러봅니다.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무너진 나의 삶 속에 잊혀진 주 은혜
돌같은 내 마음 어루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주 나를 보호하시고 날 붙드시리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주 나를 보호하시고 날 붙드시리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의 자녀라.” 

바울 사도는 나를 붙드시는 십자가, 나를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되게 하는 십자자, 그 십자가를 자랑하며 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십자가를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알려줍시다. 십자가를 전해줍시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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