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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천만인의 부흥도 한명의 변화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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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한국교회는 부흥을 모토로 한 행사들을 연이어 개최했다. 1907 평양대부흥 1백주년을 맞아 한국에 다시 한번 큰 부흥이 일어나길 바라는 염원이 뜨겁게 표출된 것이다.

성도들은 평양대부흥 1백주년이라는 의미가 주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기대 이상으로 열성을 가지고 동참했다. 참가비가 3~5만원 되는 ‘트랜스포메이션2007’ 대회에 5천여 명이 모였고, ‘역사를 이루는 기도 Revival2007’ 집회에서는 4만여 명이 졸린 눈을 비벼가며 24시간 연속으로 기도했다. 예장통합 예장합동 산하 교회들도 3주간 전국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열었다.

한국교회가 가장 주목했던 날은 평양 장대현교회에 폭발적 성령역사가 있었던 1월 14일이었다. 한국교회도 이날을 기점으로 각종 집회를 개최했고, 성도들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이번에 연이어 개최된 행사들에 들어간 예산이 어림잡아 10억이 된다. 부흥만 온다면 이 정도는 아깝지 않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심정이다.

그렇다고 우리 삶에 갑자기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신천신지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좁은 취업문도 넓어지지 않았고, 음침한 뒷골목의 범죄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국민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국가적 위기가 일순간 해결되지도 않았고, 개개인의 탐욕, 교만, 시기 등의 죄성도 그대로다.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수년을 준비했지만 이렇다할 가시적인 부흥, 변혁은 아직 없다. 이유가 뭘까.

1907년 평양대부흥은 계획되거나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가난한 심령과 회개의 마음 위에 성령이 역사해 자연적으로 발생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2007년 한국교회가 보이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1백년 전의 사건을 기리며 그것을 재현해 보고자 하는 하나의 운동적 성격을 띠고 있다. 2007년 1백주년이 우리에게 의미있는 시기와 동기가 되어주긴 하지만, 그것 자체가 부흥과 변혁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부흥을 일으키는 것은 1907년 성도들에게 있었던 것과 같은 가난한 마음, 진실한 회개, 성령의 역사다.

1월 대형 부흥집회를 주도한 목회자들은 집회를 마치며 공통적으로 “평양대부흥 1백주년 기념행사를 멋있게 치러냈다”고 자평했다. 수억을 들인 집회 자체가 부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어 그들은 “부흥운동, 이제 슬슬 시작해 보자”라고 했다. 소속되어 있는 소그룹에서, 가정에서, 혹은 자기 스스로의 내면에서 진정한 회개와 변화, 부흥을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평양대부흥의 재현을 꿈꾸는가. 혹은 더 나아가 한국사회 전체를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킬만한 성령의 강한 임재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이제 어디서 큰 부흥의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리지만 말고, 나부터 정직하게, 정결하게, 삶을 바꿔 보자. 1천만인의 부흥도 한사람 한사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민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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