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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전의 명수 하나님(2) (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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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명수 하나님(2) (사 61:1-3) 
 
 
❚역전의 명수 하나님

지금은 프로야구에 눌려 조금 시들해졌지만 제가 중고등학생 때만 해도 고교야구의 인기가 정말 높았습니다. 제가 졸업한 선린중학교도 선린상고와 같은 학교인데 선린상고가 얼마나 고교야구 명문학교입니까? 그래서 화랑대기니 봉황대기니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니 하는 전국대회가 있을 때마다 정말 응원이 대단했습니다. 지금도 야구장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서울의 선린상고뿐 아니라 전국에 팔도마다 고교야구 명문학교가 있었지요. 

영남에는 부산고나 경남상고, 대구상고, 호남에는 군산상고나 광주일고, 충청도에는 천안북일고 등 명문이 참 많았습니다. 포항에도 포철공고가 꽤 야구를 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혹시 이 중에 여러분 졸업한 학교가 빠졌더라도 너무 섭섭해 하지 마세요. 그런데 그 중에 군산상고는 이런 별명이 붙어있었습니다. ‘역전의 명수!’ 예, 1968년에 창단된 이 학교 야구부는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호남 고교야구사상 최초의 우승을 거두었는데 이 경기가 참 대단했습니다. 군상상고가 부산고에 9회 말 투아웃까지 4대 1로 뒤지다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군상상고는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었고 실제로 그 후에도 꽤 많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 미션 스쿨 고등학교의 교훈은 꽤나 길기로 유명합니다. 부득이 영어로 읽을 수밖에 없는데 “Bottom of the ninth, down by three, bases loaded, two outs full count. No fear!” 제가 비록 발음은 좀 안 좋아도 다 알아서 해석하기 바랍니다. 뜻이 이렇습니다. “9회 말, 석 점 뒤지고 있는데 투 아웃, 주자는 만루,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풀 카운트,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은 비록 석 점 뒤지고 있지만, 또 투 아웃이지만 홈런 한 방이면 순식간에 4점을 내서 역전승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구나 운동경기뿐 아니라 정말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 삶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 바로 9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의 역전입니다. 그래서 “9회 말 투아웃에서 역전승”이라는 말은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극적인 인생역전을 거둔다는 뜻으로 종종 쓰이곤 합니다. 기독교계인 미션스쿨 교훈이 이런 말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학교가 야구부가 있어서 그랬을까요? 아니요. 바로 성경이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난 주일과 오늘까지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볼 우리 하나님, 바로 ‘역전의 명수’ 하나님을 믿자는 뜻인 것입니다. 이 역전의 명수 하나님을 믿게 되면 지금은 별 볼 일 없고, 지금은 힘들어 보여도, 지금은 비록 희망이 없어 보여도 반드시 하나님이 9회 말 투아웃의 역전승을 거두게 하실 줄 믿으라는 뜻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전승

오늘 본문을 봅시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불러줍니다.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봅시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이 노래는 당시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희망과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이 희망의 노래를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인용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6~19)

예수님은 안식일에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의 회당(유대교의 집회장소, 교회와 같음)에 들어가 구약성경 두루마리를 펴서 회중들에게 읽어주는데 그 본문이 바로 오늘 본문인 이사야 61:1~3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하필 이 구절을 읽으셨느냐? 그냥 손에 잡히니까 펴서 우연히 읽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셨는지, 왜 메시야로 오셨는지 사명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이 성탄절에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첫째 주일인데 이 말씀이 참 의미가 큽니다(제단장식팀 수고).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오셨는가? 왜 메시야가 오셨는가? 이사야서 61장 본문을 봅니다. 1절에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란 성령을 뜻하지요. 그래서 누가복음 4:18에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님에게 사명을,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주셨다는 뜻인데 그 사명이 대체 무엇입니까?

1절 :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누가복음=복음)을 전하라고, 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라고(누가복음=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라고)

2절 :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라고

3절 :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라고 성령께서 예수님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을 종합해 보세요. 예수님이, 메시야가 왜 오셨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역전’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 눈 먼 자, 눌린 자, 이 모든 사람들은 다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실패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늘 삶이 슬프고 고통스러울 수밖에요. 

그런데 이렇게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3절에 나온 대로 슬퍼하는 자에게 재 대신 화관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부으시고,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입히시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재는 큰 슬픔이나 고통을 당할 때의 상황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 슬픔이나 위기가 닥쳐오면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그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며 금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메시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이 모든 슬픔을 역전시켜 기쁨으로 만들어주시고, 재를 뒤집어쓰는 대신 빛나고 아름다운 화관을 씌워주시고, 근심과 한숨 대신 찬송을 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3절에서는 그 사람들, 이 상하고 아프고 실패한 사람들을 의의 나무, 즉 여호와께서 심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로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한 마디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셔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 인생역전을 일으키시고, 슬픔과 고통으로 물든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개입하셔서 메시야를 통해 기쁨과 영광의 역사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일을 누가 하십니까? 바로 하나님이 하십니다. 메시야이신 구세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서 역전을 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역전의 명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역전의 은혜를 반드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삶의 모든 슬픔은 다 기쁨으로 변하는 줄 믿습니다! 고통이 행복으로 변하는 줄 믿습니다! 한숨과 근심이 찬송으로 변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역전의 경험

단테의 명작 <신곡>(神曲, La Divina Comedia) 중 ‘지옥’편을 보면 지옥문에 이렇게 써있다고 합니다. “이곳에 들어오는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만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정말 영원한 불이 타는 지옥도 있지만 이 땅에서도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만 남으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전에 한 번 인용한 이야기지만 오늘 본문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하니 포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6.25전쟁 직후 미국의 윌리엄 E. 메이어 박사가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혔던 1000여명의 미군들로부터 수집한 증언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강철이나 콘크리트 벽은 없었지만 정신적인 독방에 갇혀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습니다. 포로들 사이에는 극단적 절망이 자포자기 병이 되었습니다. 

이 병에 걸린 포로들은 담요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막사 구석에 홀로 쪼그리고 앉아서 이틀도 못 넘기고 죽어갔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자포자기병’은 후에 ‘미라스무스’(mirasmus)라는 병명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일종의 정신병으로 절망 때문에 저항력과 인내심이 없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무서운 것은 바로 이 병으로 당시 미군 포로 38%가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메이어 박사에 따르면 미군이 수용됐던 북한군 포로수용소는 생각보다 신체적 학대가 적은 편이었지만 많은 포로가 수용소에서 죽어나갔습니다. 철조망 안에 갇히지도, 무장한 적군의 감시를 받지도 않았지만 아무도 탈출을 시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북한군이 사용했던 교묘하고 무서운 심리전술 때문이었습니다. 

규칙을 위반한 동료를 밀고할 때마다 보상으로 담배를 줌으로써 밀고를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규칙을 위반한 자에게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아 그 규칙 위반자가 북한에 포섭된 첩자인 것처럼 의심하게 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폈습니다. 또 자아비판을 통해 포로를 모아 자신이 했던 나쁜 짓을 동료에게 고백하게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포로들 사이에 신뢰감 존중감 관심 포용력을 사라지게 하고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을 빼앗아갔습니다. 

고향에서 날아온 애정이 담긴 편지는 전해주지 않았지만 친척 중 누군가가 죽었다거나 남편을 기다리길 포기한 아내가 재혼을 결심했다는 부정적인 편지들은 곧바로 전달됐습니다. 포로들은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신과 국가는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에 대한 믿음까지도 송두리째 상실해버렸습니다.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과 포기만 있는 곳, 바로 그 수용소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밥을 굶겨도, 고문을 해도 견뎌내던 포로들이 결국 버텨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 미군 포로들처럼 절망병, 좌절병에 걸려 자포자기하고, 모든 희망을 버리고 싶을 때가 꼭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희망을 버리면 정신적으로 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희망입니다.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놓아버리면 정말 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끝까지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세계적인 대형교회인 호주 시드니의 힐송 처치(Hillsong Church) 브라이언 휴스턴 목사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The best has not come yet!” 그러면 교회에 모인 엄청난 숫자의 성도들이 따라 외칩니다. “The best has not come yet!” “최고의 것은 아직 오직 않았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면 희망을 잡을 힘을 얻게 됩니다. 절망을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왜요? 더 좋은 것, 최고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지금보다 더 나은 것, 가장 최선의 것이 내게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 지금보다 더 좋은 미래가 나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합니까? 내 힘으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하나님이요? 예, ‘역전의 명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지금의 내 인생을 역전시켜 반드시 가장 좋은 길로 최선 최상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이름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름은 ‘풍성한 은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기쁜 삶을 살았습니까? 너무 가난하고 굶주려 온 가족이 모압으로 이민을 갔지만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다 잃고 과부가 된 두 며느리만 데리고 고향으로 빌어먹으러 돌아가야 했으니 돌아올 때 고향 사람들이 “저게 누구야? 나오미잖아?” 하고 알아볼 때 “나를 나오미(기쁨)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쓰다, 괴롭다)라고 부르라”(룻 1:20)고 하지 않습니까? 모든 희망이 다 없어진 것이지요. 

한나 역시 아들을 못 낳아 안 그래도 괴로운데 라이벌인 또 다른 부인 브닌나가 약을 올리고 분노하게 하여 괴롭힙니다. 그러니 이 여인들의 삶은 기쁨과 풍성한 은혜라는 이름의 의미와는 거리가 정말 멀지요. 이름의 뜻과는 정반대로 슬픔과 한탄의 나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 여인들의 삶을 그렇게 끝나게 하시던가요? 하나님이 나오미의 삶을 역전시켜 손자를 얻고 위로를 받게 하시지 않습니까? 한나의 삶을 역전시켜 위대한 사무엘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역전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고 탄식하며 좌절하고 계십니까? 모든 기회가 사라졌다며 절망하고 있습니까? 아무 기쁨도 희망도 없다고 한숨 쉬고 계십니까? 심지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받습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게임 끝나지 않았단 말입니다. 더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역전의 명수 하나님이 멋지게 9회 말 투아웃에서 내 인생을 역전시키시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현재 나의 절망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통, 고난, 실패, 좌절, 경제적인 문제, 건강, 가족, 자녀, 사업과 직장 등등 너무 많습니까? 넋 놓고 앉아계시지 말고, 한숨만 푹푹 쉬며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 이렇게 외치십시오.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나를 도와주옵소서!” 그렇게 외치니 사자 굴에 있던 다니엘이 구원을 받아 원수들이 사자 굴에 빠지고,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다 감옥에 들어간 요셉의 인생을 역전시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하시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이 말을 좀 남들에게 많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이상해! 저 사람은 언제나 마지막에 역전을 하네, 저 가정은 다 끝난 것 같은데 늘 9회 말 투아웃에 역전하네, 정말 역전의 명수야!”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내가 역전의 명수가 아니라, 내 가정이 역전의 명수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역전의 명수십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볼 때 운이 좋아 한 순간 벼락출세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한 방에 인생을 멋지게 역전시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그게 결코 한 순간에 된 것이 아니라 소망과 기도로 오랫동안 씨를 뿌리며 준비해 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크게 쓰임 받기 원하신다면 환경을 탓하지 말고, “뭐 때문에 안 되고, 이래서 저래서 괴롭고 힘들고...” 하며 부정적인 일들만 나열하며 탓하지 말고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며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역전의 경험이 있는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역전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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