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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화 성화 영화의 구원 (롬 8: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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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 성화 영화의 구원
본문: 롬8:26~30

내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나는 구원을 받았을까?” “나는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구원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었다.

구원의 길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 어느 것도 내 자신이 합당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하나님,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안에는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존재하고 있고, 또 실제로 죄를 반복해서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원을 받았다면 이런 갈등도 없어야 하고, 죄를 짓는 삶도 살지 말아야 하는데,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 전이나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 교회를 다녔다. 

그러다가 20살 청년 시절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들은 설교 말씀을 통해서  이 모든 고민을 떨칠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 그 날 목사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세 단계가 있다고 전하였다. 구원의 세 단계란 의화, 성화, 영화였다. 나중에 성경을 깊이 알고 난 후에 보니까 목사님의 설교는 로마서를 근거로 한 말씀이었다. 여러분 중에도 혹시 구원의 확신이 아직 없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경청하기 바란다.


1. 의화의 구원

의화라는 것은 의롭게 된다 라는 뜻이다. 죄인이었던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항상 우리에게는 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살아가는 발자취마다 죄의 얼룩이 묻어있고,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지은 죄에 대한 죄값으로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우리가 죄의 형벌을 받지 않는 방법은 나 대신에 누군가가 대신 죄의 형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우리를 죄의 형벌로부터 구해낼 수가 없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도 공의를 지키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택한 방법이 십자가였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죄의 형벌을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옛날에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훌륭한 왕이 있었다. 왕 때문에 백성들이 너무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런데 왕에게는 근심거리가 하나 있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 아들이 너무나 말썽꾸러기이다. 그러다가 한 번은 큰 죄를 짓고 말았다. 백성들은 이 사건을 보면서 왕이 어떻게 처신하는지 두고 보았다. 

왕은 공명정대한 사람인지라 비록 자기 아들이라도 재판정에 세워서 죄값을 물었다. 아들에게 곤장 40대를 때리라고 했다. 백성들은 역시 훌륭한 왕이라고 칭찬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왕이 보좌에서 내려와 왕관과 왕복을 벗어버리고 아들이 서야 할 자리에 서서 자신에게 매를 때리라고 하였다. 매를 다 맞았다. 

어린 아들은 40대의 매를 맞으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대신 맞아서 살 수가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에 감동을 해서 새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 때문에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되었다. 아버지가 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것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핵심은 왕이 스스로 공의를 지키면서도 자기 아들을 죄의 형벌로부터 구해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 모두의 죄값을 지불하셨다. 스스로 공의의 법도 지키면서 동시에 우리를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케 하셨다. 그래서 우리를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케 하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난 것이다. 얼마나 절묘한 하나님의 방법인가?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이다.  

내가 지은 죄, 앞으로 짓게 될 죄에 대해서 어떤 형벌로 받지 않는다. 예수님이 대신 모두 다 받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화의 구원이다. 의인이 된 것이다.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천국 백성이 된 것이다. 오늘 죽어도 그대로 내 영혼은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실을 믿고 감사하시기를 바란다.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에 예수 믿는 자를 잡아서 가두고 매로 때리고 핍박하는 일에 일등 가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죄인 중에 죄인이었다. 그런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밝은 빛 가운데 예수님을 만난 후로 자기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죄를 짓고 살았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다메섹에 들어가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만나서 그에게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기 죄를 회개했다.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세례를 받았다. 구원을 받았다. 

그는 비록 과거에는 자신의 고백대로 죄인 중에 우두머리라고 할 정도로 예수님을 대적하는 큰 죄를 짓고 살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후로는 하나님이 그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이 자신을 의롭다고 인정해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짓고 살았다 할지라도 죄인 중에 괴수였다고 할자라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은 그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신다. 죄인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화의 구원이다. 칭의, 득의라고도 한다. 의인으로 칭한다. 의롭다함을 얻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감사하면 살아야 한다. 이제 나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천국 백성임으로 확신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 확신과 감사가 나를 더욱 기쁘고 즐겁게 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2. 성화의 구원

성화는 거룩하게 된다 라는 뜻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국 백성답게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성화이다.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셨다. 성화의 삶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요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성화는 어떻게 사는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내 결심과 의지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부어주셨다. 성령은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우리 안에 오시어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이끌어주신다.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성령이 내 안에 계시지만 내 안에서 성화의 삶을 방해하는 것도 있다. 그것은 내 육체이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내 영혼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새로운 영혼이 되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혼으로 바뀐다. 언제라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거룩한 영혼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내 안에 있는 영혼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만 반대로 내 육신은 여전히 죄의 욕심을 가지고 있어서 자꾸 세상의 법을 따라서 죄를 짓고 살려고 한다. 

(롬7:25)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았음에도 내 영의 소원을 따라서 살지 않고 내 육신의 소원을 따라 살게 되면 구원 받기 전의 나와 다를 바 없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롬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처럼 우리 안에는 두 가지 마음이 있다. 육신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요 영의 소원을 따라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 두 가지 마음의 갈등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안에 부어주신 성령을 통해서 갈등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면 육신의 소욕을 다스리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어떤 가난한 목사님 가정이 있었는데 사모님이 너무 옷 사 입기를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사모님께 아예 백화점에 가지 말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사모님이 시내 백화점에 또 가서 아름다운 새 옷을 입고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그 때 목사님이 “그렇게 부탁했는데 왜 또 옷을 사 입었소. 내가 부탁한 말 기억나지 않았소.”라고 말했답니다. 그 때 사모님이 "기억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아름다운 옷을 보는 순간 사탄이 저를 유혹하지 뭐예요." 
"아니, 여보,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소. 성경 말씀대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소리쳤어야지." 

그 때 사모님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사탄이 내 뒤로 가더니 '뒤에서 봐도 아름다운걸!' 그러지 뭐예요." 

이 목사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참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이 아이에게 그 유혹을 이겨야 한다고 늘 말했는데 그날 저녁 아이 방으로 가는데 아이가 기도를 하고 있었답니다. 기도하는 내용을 들어 보니 잠자기 전에 "하나님, 내일 아이스크림 장수가 올 때 제발 제가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리더라는 것입니다. 

사모님은 성령을 좇아 행하지 않고 여전히 육신을 좇아 행하므로 욕심대로 옷을 사고 말았다. 하지만 어린 아들은 기도함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아이스크림의 유혹을 이겨내고 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내 힘으로 거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은 나를 이끄시어 거룩한 삶을 살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신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거룩한 길을 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어느 정도로 성화에 이르러야 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러야 한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각자가 성화에 이르는 수준이 다를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성화의 삶을 살았느냐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상급으로 주어질 것이다. 성화의 삶을 높은 수준까지 이른 사람은 더 많은 상급과 면류관을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오늘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눈을 들어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화의 삶을 이뤄가기를 축원한다.


3. 영화의 구원

의화를 받았고,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가면서, 결국 이르게 될 구원의 단계는 영화의 단계이다. 영광스럽게 되는 단계이다. 특히 우리 육체가 예수님의 부활하신 육체처럼 영광스러운 육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특별히 죄의 본성이 사라진 거룩하고 완전한 육체를 입게 된다. 질병이나 죽음도 없는 영원한 육체를 말한다. 죄와의 관계에서 말하면 죄의 본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영화의 구원은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이뤄진다. 죽었던 사람들의 몸이 부활한다. 그 다음으로 살아있던 사람들은 산 채로 육체가 변화된다. 그래서 영화의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영화의 구원은 우리에게 소망이다. 우리가 영화의 구원을 받는 날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살아야 한다. 

(롬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빌3:2)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나이가 들면 육신의 여러 곳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아픈 곳이 많아진다. 이럴 때 우리가 이 소망을 붙잡으면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래서 연약한 이 육신이 영광스러운 육체로 변화되어서 주님과 영원히 동거동락하며 살게 하소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다. 한 번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처음에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해주시고 떡을 떼어 축사하셨다. 그 순간 예수님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예수님이 공간을 이동해서 다른 곳으로 가셨다. 

또한 제자들이 한 집에 문을 닫고 모여 있을 때 예수님이 닫힌 문을 통과해서 들어오셨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반가와 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면서 대화를 나누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는 이처럼 공간을 초월해서 움직이셨다. 우리가 입게 될 육체도 바로 이런 육체이다.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영화의 구원은 우리에게 강력한 소망이다.

말씀을 정리하자. 구원에는 이처럼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의화, 성화, 영화가 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의인이 되었다. 의인이 된 우리는 이제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우리는 영화의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죄와의 관계에서 설명하면 의화는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 성화는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 영화는 죄의 본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세 가지 단계의 구원을 오늘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먼저 나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자.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삶에 힘쓰자.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육체를 입게 될 영화의 구원을 우리의 간절한 소망으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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