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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니 (습 3: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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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니 (습 3:14-20)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요시야가 왕으로 통치하던 시기였습니다. 요시야 왕에 대하여는 열왕기하 22장 2절에서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 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에 나타난 다른 왕들 보다 요시야 왕에 대한 평가가 아주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시야가 왕으로 통치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스바냐 선지자의 스바냐서를 읽어 보면 1장부터 3장까지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하나님의 징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다윗 같이 선한 길로 행하는 훌륭한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하나님은 왜 선지자 스바냐를 통하여 징벌을 선포하고 계실까요? 또한 스바냐서와 열왕기의 말씀 내용이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요시야가 아직 종교 개혁을 일으키기 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다윗과 같이 선한 길로 행할찌라도 그것이 모든 사회와 종교 영역에 파급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것과 다윗의 길로 행하는 것이 아직까지 백성들의 삶 전반적으로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2장과 23장을 보면 요시야의 종교 개혁에 대하여 자세히 나옵니다. 그 주요 내용은 이방 우상과 이방 예배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 이전의 역대 유다 왕들을 비롯하여 일반 백성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이방 우상과 이방 예배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던 시대였습니다. 도시를 비롯하여 시골 구석구석까지 우상의 제단이 설치되었고 백성들은 거기에서 이방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들 중에서도 전업하여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 일을 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유다 왕 중 므낫세는 그 정도가 가장 심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전 마당에 우상의 제단을 세우고 자기 아들들을 우상의 제물로 불 태워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상과 이방 예배에 물들어 있던 유다 사회에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징벌의 날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응답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킨 왕이 바로 요시야 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기쁨의 노래입니다. 14절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선지자는 시온의 딸들에게 기쁨의 노래를 부를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15절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하나님께서 형벌을 제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형벌이 제거되는 것에 대한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형벌을 유다 백성들 스스로 제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3장 9절에서도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라.” 깨끗하게 하시고 부르게 하시며 섬기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아마도 여기서 요시야의 개혁을 미리 바라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시야에 의해 유다 사회에 만연한 우상과 이방 예배가 제거되고 모든 백성들이 다시 여호와의 제단에서 하나님을 부르며 섬기게 되는 일을 바라 본 것입니다. 요시야의 개혁이 성공하게 된다면 시온의 딸들은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우상과 이방 예배가 제거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유다에 내린 형벌도 제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요시야를 통해 우상에 물든 유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또한 15절에서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다고 선포하면서 그 왕이 바로 우리 가운데 계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도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 말씀들에서 왕이 왕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왕궁에서 나와 백성들 가운데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성전에 계신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나와 유다 백성들 가운데 계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왕 되신 하나님은 성전을 버리고 백성들 가운데 살기로 하셨습니다. 17절에서 백성들 가운데 살기로 한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며 백성들을 기뻐하며 그들을 잠잠히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요시야를 통해 유다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개혁을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혁이 일어나는 곳에 여호와께서 계십니다. 이 개혁을 위해 여호와께서는 성전을 버리고 백성들 가운데 거하기로 하셨습니다. 

이제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교회력에 따른 성서 일과(읽어야 하는 성경 본문)에 보면 대림절에 읽어야 하는 성경 말씀들 중 하나가 바로 본문의 말씀입니다. 교회 전통은 아마도 본문 14절에서 20절까지를 장차 오실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 하던 시기가 요시야 시대였고 요시야 왕은 스바냐 선지자의 선포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 말씀에 자극을 받아 곧 종교 개혁을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한국 교회에는 개혁에 대한 갈망이 있는 반면에 개혁에 대한 두려움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있어 사랑과 평화를 강조합니다. 사랑과 평화라는 것이 인간사에 있어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 대한 적응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히 교회 내에서는 사랑과 평화가 변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오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스바냐가 선포한 메시야는 개혁을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세상을 향하여는 사랑과 평화를 선포할지라도 교회 내에서는 변화와 개혁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처럼 새로운 종교 개혁이 한국 교회와 광야 교회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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