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멍에를 메고 배우라 (마 11:29-30)

첨부 1


멍에를 메고 배우라 (마 11:29-30) 

배우는 이를 흔히 학생(學生) 이라고  합니다.  학생이라면 초중고대학생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만 깊은 의미에 있어서는 모든 인생은 학생입니다. 인생학교에서는  죽을 때 까지 배워야합니다. 짐승은 나오자 마자 어미 소를 따라 들어가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본능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배워야 합니다. 걷는 것도 배워야하고 밥 먹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오늘날은 조금만 게을리 배우면 시대에 뒤떨어집니다.

소크라테스는 노령에 악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유명한 정치가 케토같은 사람은 86살에 헬라어를 배웠다고합니다, 문예부흥시대에 퓨주타같은 사람은 70살에 라틴어를 배웠다고합니다. 기업가도 계속 배우지 않으면 뒤떨어집니다. 가난한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병든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배우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경에서는 배우는 것을 엄청나게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는 절하고 엎드려 빌기만 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라 

[신 4: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신 17: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② 진리를 배우라   

[신 5:1]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③ 선행을 배우라 인사법도 배우라 

[사 1: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④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 왕실의 교육 왕자 공주 교육이다. 

[렘 12: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르쳐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배우라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⑥ 예수님의 사람들이란 제자로 배운 자 들이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⑦ 기도도 배워야 한다.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선지자의 탄식은 이백성이 멸망하는 것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망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모세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큰 선지자는 학사 에스라선지자입니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와한가지 큰 결심을합니다. 그것이 에스라 7:10에 나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⑧ 예수님 닮는 것도 배워야한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을 배우는 자세 - 명에를 메라 는 말속에 있는 세 가지 뜻

"나의 멍에( zugov"(쥐고스)  멍에 yoke, 저울 balance.쉬다, 휴식하다.   를 메고 내게  배우라" 멍에란 밭을 가는 짐승의 등에 얹는 도구입니다. 멍에를 메면 딴 짓을 할 수 없고 자신의 힘이 바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딴짓을 하면서 주님을 따라가면 더 힘듭니다. 그러나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면서 힘써서 따라가라는 말입니다. 새의 날개가 땅에 있을 때는 무거운 짐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날 때는 그 날개로 나는 것입니다. 멍에가 무거운 짐이지만 그 멍에로 주님의 뜻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배우려면 등록금을 내야 배울 수 있습니다. 학원에도 수강료를 내야합니다. 배우는 자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우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와 책임과 자세는 멍에를 메고 배워야한다는 것입니다.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 말씀 속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합니다. 

1). 하나가 되어 배우라!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 나라에서는 한마리의 소가 밭을갑니다마는 이스라엘 경우에 밭을 갈때는 두마리의 소가 함께 갈게되어 있습니다. 두마리의 소를 함께해야 박토나 자갈밭을 갈기 쉽습니다. 이때 둘이를 함께 힘을 합치기 위해서 연결하는것이 멍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배우고 일을 할때에는 꼭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배워야합니다. 함께 멍에를 멜줄알아야 합니다. 
가룟유다는 기도하러 갈때 혼자 빠져서 제사장만나 돈받았습니다. 배반하고 마귀가 그마음에 들어갔습니다. 

다윗은 임금이 되어 봄이 되어 훈련에 나가지않고 혼자 남아 왕궁을 거닐다가 이웃집 여인 목욕하는것 훔쳐보고 음욕이 생겨 간통을하고 살인을 합니다. 예수님을 배우는 학생들은 예수님과 함께 가야합니다. 십자가나 겟세마네나 함께 가야합니다. 닮아야합니다.

백년전 한국에 복음이 들어와서 처음에는 평양에만 교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 좋은 여성이 진남포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대 평양에서 진남포까지는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토요일에 가서 월요일에 돌아오곤하였습니다.  그러던중 아들도 둘이 낳아 이 둘을 데리고 어느날 토요일 이날도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평야으로 가기위해 달구지를 타고 가다가 아이들이 막대기를 가지고 놀다가 막대기가 튕겨서 갓을 쓰고 말을 타고가던 말의 눈에 막아 말이 놀라서 뛰니 타고가던 노인이 땅에 떨어져 중상을 입게 되자 두아이도 경찰서에 끌려가 검찰청에서 재판정으로 넘어가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막대기를 뜅겨서 말의 누네 튀게한자가 누구냐? 큰아이가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 동생은 절대 잘못이없습니다”  동생이 아닙니다. 우리 형님은 그런 장난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저를 벌주시고 변상을 하겠습니다. 그때에 증인으로 본사람은 없고 재판은 해야겠고 서로 자기 책임이라고 주장하니 판결이 어려웠습니다.  

이때 판사가 옆에있는 어머니에게 물어봅니다. 어머니는 현장에 있었느냐? 예. 당신보기에 누가 그런 못된 장난을 한것 같은가? 실은 저도 확실히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벌을 받아야 한다면 작은아이가 받아야합니다. 보지도 않았다면서 어떻게 그런말을 할수있느냐. 실은 제가 이 가정으로 개가를 했온자입니다. 큰아이는 전처의 소생이요, 이작은 아이는 내가 낳은 아이입니다. 내아이에게 벌을 주시는게 좋겠습니다. 

판사가 이말을 들어보니 세상에 이런 부인이 어디있나 자기 자식 귀하다고 하는데 이럴수가있나. 감동이 되어서 물어봅니다. 당신은 이럴때 이렇게 하라고 하는걸 어디서 배웠으며 뭣하는 사람이냐? “저는 예수믿는 사람올시다.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멍에는 자기가 메라고 했씁니다.”

예수 믿으면 다 당신 같이 됩니까? 예. 판사가 벌떡 일어나 자기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돈을 주면서 평양까지 가지 말고 이 진남포에 이돈으로 교회를 세우시요. 그래서 진남포에 교회가 세워졌다고합니다.  

2). 섬기는 자세로 배우라!

요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눅 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성경은 온통 부메랑 이야기로 가득하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리라"고도 했다. 빈 평안이 그 사람에게 합당하지 않으면 나에게로 되돌아올 것이라고도 했다. 섬김과 베풂은 절대 공짜가 없다. 하나님은 베푸는 자에게 베푸신다. 

예수님은 돈과 명예 권력 무력 무엇을 가지고 세상을 이끌어 가셨을까? 섬김입니다. 섬김의 리더쉽만이 오래 갑니다. 만약 무력이나 신분 직위를 가지고 군림한다면 다시는 안본다는 멍에는 밭을 갈기 위해 쟁기를 달거나 짐을 나르는 수레를 끌기위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아무리 덩치큰 소라도 멍에를 메지 않고는 일을 할 수가 없고 시킬수도 없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멍에를 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우려면 제일먼저 멍에를 메고 배워야합니다. 이는 편안하기 위해서 예수 믿고 잘살고 잘 먹기 위해서 예수 믿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봉사하기위해서 헌신하기 위해서 섬기고 도움을 주기 위한 마음의 자세로 출발해야합니다.

성지 이스라엘에 가면 갈릴리바다와 사해 두 종류의 바다가 있습니다. 갈릴리바다에 가면 물고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해에는 고기가 한마리도 없습니다. 이유는 사해는 요단강 물을받고 주는데가 없습니다. 흘러 보내는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인 물이 썩어서 냄새가나고 고기가 살지 못합니다. 배우는 목적은 쓰기위함입니다. 옛날 분들은 흔히 이런말을 합니다. 아무개는 공부는 많이했지만 암글이되었다. 쓰먹지를 못한다는 뜻입니다. 교인은 숫글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봉사와 헌신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평안북도 정주에  머슴살이를 하던 청년이 있었다. 눈에는 총기가 있고,  동작이 빠르고 총명한 청년이었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쓸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다. 그는 아침이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씻어서 햇볕에 말려 다시 안방에 들여놓았다. 주인은이 청년을 머슴으로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고 그 청년을 평양의 숭실대학에 입학시켜 주었다.공부를 마친 청년은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다.요강을 씻어 숭실대학에 간 그가 민족의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님이시다.후에 사람들이 물었다. 머슴이 어떻게 대학에 가고 선생님이 되고 독립운동가가 되었냐? 고“주인의 요강을  정성들여 씻는 정성을 보여라.”그렇게 대답하셨다.남의 요강을 닦는 겸손과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아량 그게 조 만식 선생님을 낳게 했다.

3). 순종하며 배우라는 뜻입니다.

(눅 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요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히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온전하게 되었은즉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멍에를 멘 소는 주인의 뜻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천천히 가라하면 천천이가고, 빨리 가라하면 빨리 가야합니다. 

예수님을 닮으려면 배워야 합니다. 

* 교도소 미남 재소자 - 초등 중퇴 배우면 사람 폭행전과로 들어온다. 구실 하지 않겠나? - 가르쳤더니 공문서 위조하고 다시 들어오더라. 

한국이 선진국이 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는 교육입니다. 

교회도 계속 배우지 않으면 뒤떨어집니다. 일본시대에 교회는 시대에 앞섰습니다. 계속 배우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교육이 제일 뒤떨어져있습니다. 배울려는 자세가 없습니다. 개신교가 발전한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배우기에 힘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멍에가 쉽다는 말이 멍에가 잘  맞는다. 멍에는 본래 소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도 농사가 있고 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멍에를 만듭니다. 소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은  멍에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소의 사이즈를 측량합니다. 그 다음에 소의 사이즈에 따라서 멍에를 만들어요. 종종  팔레스타인에서는 두 마리의 소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나의 멍에를 구멍을 두 개 뚫어서 한 멍에 안에 두 개의 소를 함께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그랬을 때   이 멍에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말씀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어렸을 때의 아버지였던  요셉은 목수였습니다. 목수. 전설에 의하면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이  일하고 있던 목공소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을 지  모릅니다. 우리 목공소에서 만드는 멍에는 잘 맞습니다. 잘  맞습니다. 

예수님은  이 멍에가 무엇인지 잘 아시는  분이예요. 아버지를 도와서 일을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멍에는 쉽다. 내 멍에는 잘 맞는다. 또 소가 두 마리가 함께 일하게 될 때 참 중요한 것은 한 마리의 다른 소가 빨리 리더를 결정한다고 해요. 저는 소가 우둔한 줄 알았어요. 저는 제  아내 함께  사는 제 아내, 여자가 성이 우 씹니다. 좀 신경질 나면 성씨가 우씨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해를 하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우씨라 그렇다. 소  우씨라 그렇다. 제가 이렇게 제  아내를 종종 핍박을 합니다. 

그런데 소가 그렇게 미련한 동물만은  아니라고 그래요. 두 마리가 함께 일하면 빨리 리더를 결정한대요. 빨리 리더를.  자, 그리고 한 마리는  따라 갑니다.  자 두 마리의 소가 일할 때 편안한 멍에를 걸머지고 또 한 소 방향을 정확하게 하는 소를 따라 갈 때 두 사람이 함께 일하는 두 사람이 아니라 두  마리 소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오. 목적지를  향해서 편안한 멍에를 지고 효과적으로 일하는 소. 소 중의 하나가 리더쉽을 쥐든 아니면 주인이 뒤에서 이 두 마리의  소를 리더하든.  여러분, 더군다나  이 소를 리더하는 그 주인이 편안한 분일 때,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일 때 그 분의 리더쉽을 따라서  목적지를 향해서 편안한 멍에를  걸머지고 밭을 갈며 일하는 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예수를 믿어 면서도 힘든 이유:

1. 세상과 같이 멍에를 메기 때문입니다. 

두 마리의 소가 함께 밭을 갑니다. 이때 밭을 갈려면 두 마리소의 크기와 힘도 비슷해야합니다. 그러나 한 마리는 세고 한 마리는 약하면 둘 다 애를 먹습니다. 바울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한쪽을 선택해야합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 멍에가 맡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멍에는 쉽고 가볍다. 예수님이 만들어주신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멍에를 지고 따라갈려고 합니다. 상처가 나고 피가나고 째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내생각 내 방법을 버리기 바랍니다.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십니까?

(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3. 주님을 내가 끌고 갈려고 하기 때문에 힘듭니다.

멍에를 메고 갈때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와 예수님을 끌고 갈려는 자가 있습니다. 구의령목사님 만진주에 선교하셨다. 선교사중에 한국말을 제일 잘하시는 분이시다. 찦차에 시골영감님 할머니 차를 타고 짐을 머리에 지고 있다. 왜 그럽니까? 사람이 염치가 있었야지요. 몸만 타는 것도 미안한데 어떻게 짐까지 신세를 지겠소. 체면이 있었야지. 주님께 너의 염려를 다 맡겨버리라.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