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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성탄의 의미 (눅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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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의미 (눅 2:11-14)

어느 선교사님 한 분이 크리스마스 즈음에 태국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나라인 태국에 가서 다니면서 선교지로서의 탐사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태국 항공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해서 얼마쯤 있다가 스튜디어스에게 물었습니다. “Do you know Jesus Christ?(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그랬더니 이 스튜디어스가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한 참 후에 돌아왔습니다. 와서 하는 말이 “아무리 찾아봐도 승객 중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분이 탑승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매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드는 생각은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은 알지만 예수는 모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알지만 이 날이 무슨 의미를 지닌 날인지는 모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성탄절기에 시내의 유흥가 한 중심, 떠들썩한 거리의, 사람이 바글바글 한 어느 술집에 ‘축 성탄’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어울리지 않는 내용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캐롤, 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선물, 산타크로스, .... 모두 상품화 된 것들입니다.  덴마크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매년 150만 그루씩 수출하여 덴마크 국가 재정의 상당부분을 채울 만큼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기독교 국가들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재미를 많이 보는 날, 일 년 중 가장 큰 대목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이슬람 국가나 불교 국가 사람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축제일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각 백화점마다 수 천 만 원 짜리 대형 트리를 만들어 놓습니다. 교회에 한 크리스마스 장식보다 백화점 앞에 한 장식이 수 십 배 더 크고 비용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몇 년 전, 서울 신세계백화점에 다니시는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백화점 외부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데, 1억이 든답니다. - 성탄절, 크리스마스, 이 말은 ‘그리스도’(Christ)란 말과 ‘마스’(Mass), 곧 ‘만나다’ ‘예배하다’ 란 말이 합해서 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날, 예배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야 어떻든 이 뜻 깊은 성탄절에 예배드리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11~12절)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곧 이어서 하늘에서 찬송 소리가 났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의 탄생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분명 이 땅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 땅과 하늘, 영원한 시간과 유한한 시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입체적이고도 구속사적인 섭리가 들어있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이 지니는 신비입니다. 오늘 성탄절 아침에 성탄절의 의미에 대하여 두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1.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사랑도 내용이 다르고 알고 보면 그 격이 각각 다릅니다. 헬라사람들은 기질이 나누고, 쪼개고, 분석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랑도 4가지로 나누어서 분석을 해 놓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육신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헬라 사람들은 ‘에로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랑은 감정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너무 빨리 불이 붙고, 그런가 하면 또 너무 빨리 식어지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뜨겁던 사랑도 한번 식어지면 갑자기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가 하면 우정이라는 사랑도 있습니다. 이 사랑은 형제애의 사랑이고, 인류애의 사랑이고, 친구간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을 헬라 사람들은 ‘필리아’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참된 우정은 굉장히 좋은 재산입니다.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고, 값이 있고, 깊이가 있고, 의리가 있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랑에도 약점과 한계가 있습니다. 이 우정도 변하고 변질이 되면 친구도 이용하고 속이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런가 하면 사랑에는 서로 피를 나누어서 형성된 사랑도 있습니다. 이 사랑을 ‘스톨게’라고 하는데 이 사랑은 혈정으로 연합된 사랑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여기에 속하는 사랑입니다. 이 특히 모정은 참으로 질기고도 하고 모질기도 하고 위대한 사랑입니다. 이것이 스톨게라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에도 하자는 있습니다. 모성이 아무리 지극하고 위대하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 자식에게만 위대한 것이지 남의 자식에게는 전혀 마음이 열리지 않는 한계를 지닌 사랑입니다.  그것이 내 자식일 때만 희생을 하고, 헌신을 하고, 지극하고, 위대할 수 있는 것이지 길거리의 아이들, 남의 아이들에게는 관심조차도 가지 않는 약점이 있습니다.  오늘에 와서는 이 사랑도 많이 세속화되어 버렸습니다. 이 사랑도 완전할 수가 없는 사랑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다음으로 완전한 사랑의 모델을 소개했음. 그것이 바로 ‘아가페(Agape)’라고 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완벽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소위 하나님의 사랑이고 십자가에서 주님이 발휘하신 바로 그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전적인 사랑이라고 해서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이 아가페의 사랑,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조건이 없고, 대가가 없는 무상의 사랑입니다. 인간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의 인간에게 베푸신 사랑의 극치”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학적으로 좀 관심을 가지고 보면 이 십자가의 사건은 이렇게 신비 중의 신비에 속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만든 예민한 기계들이나 첨단 장비들을 보고는 그 효능에 감탄을 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신비에 비추어 보면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 각광을 받고 있는 미사일 하나만 놓고 보아도 인간으로서는 대단한 발전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이미 자연 미사일을 아담 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박쥐입니다. 박쥐는 캄캄한 굴속에서도 잘 날라 다닙니다. 박쥐의 눈에 반창고를 붙여 놓아도 어두운 굴속에서 한 번도 벽에 부딪히는 일없이 잘 날라 다닙니다.  왜냐하면 날갯죽지 가운데에 안테나가 붙어 있어서 그것으로 전파를 쏘아서 돌아오는 파장으로 앞에 장애물이 있다 없다는 것을 계산해서 날아다니기 때문에 한 번도 장애물에 부딪히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눈앞에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는 순간적으로 부딪혀 오는 파장을 계산해서 장애물을 비켜 나가는 그 계산능력은 컴퓨터가 계산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정확하고 빠르다고 합니다. 이 땅에 미사일이 생기게 된 동기가 바로 사람들이 이 박쥐를 보고 연구해서 미사일을 발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씩 발명품들을 만들어 낼 때마다 감탄을 하고 그러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마치 어린아이들이 모래성을 쌓아 놓고 자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신비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 같은 과학의 신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신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 방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비밀이 들어 있고, 신비가 들어 있고,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로움이고 사랑의 진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2. 성탄절은 “인간의 값을 나타낸 사건이라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값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탄절만 되면 인간의 값이 얼마나 귀한가를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인간의 값이 얼마나 귀하면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서 희생시키면서 까지 구원하려 했겠습니까. 인간의 값이 보잘 것이 없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까지 하면서 인간을 구하여 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서 희생을 시키면서 까지 인간을 구원하려 할 때는 거기에 엄청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값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이 같은 값을 모르면 그 인생은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 허무하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은 모두 이 값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보면 자신의 생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값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모른다고 하는 것이 이렇게 답답한 일입니다. 

여관집 주인을 보십시오. 자기 집 마구간에서 태어난 어린아이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들이 700년 동안이나 그렇게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그 메시아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습니다. 그곳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살고 있는 자기 집의 안인데도 말입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태어나신 메시아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만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모르면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결국 모른다고 하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성탄절은 우리의 진정한 값을 알게 하신 날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본 훼퍼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 구원받은 값비싼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아침 우리들이 성탄과 함께 알아야 할 교훈입니다. 

1870년, 프랑스와 독일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여기 저기 총탄이 날아다니고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에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병사들은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저마다 고향 생각에 잠겼고, 성탄의 낭만과 추억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계신 주님과 그분의 오심을 묵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프랑스 군의 참호에서 한 병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총과 칼을 내어던지고는 아름다운 테너의 목소리로 하늘을 향하여 감격에 찬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거룩한 밤 별빛이 찬란하다 우리 주 예수님 나신 이 밤” - 이 찬양을 듣고 있던 독일군 병사 하나가 참호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도 총을 던지고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바리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죄악에 얽매여서 헤매던 우리 위해 오셨네 - 온 땅이 주의 나심 기뻐하며 희망의 아침 밝아 오도다, 무릎 꿇고 천사와 화답하라 오 거룩한 밤 - 주님 탄생하신 밤 이 밤 거룩한 밤 거룩한 밤”

이 사건 때문에 전쟁터에는 잠시 휴전이 선포되고, 크리스마스는 예수님 때문에 평화를 누리는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사건, 이 성탄은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의 사건인 것입니다. 오늘 2012년 성탄절, 이 뜻 깊은 날에 우리는 이러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드리며, 주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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