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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복 있는 사람이 됩시다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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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이 됩시다 (시 1:1-6)
본문: 시1편

시편 1편은 시편 23편 다음으로 성도들이 좋아하고 암송하는 말씀이다. 그 만큼 1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은혜를 준다. 특히 시1편은 복에 대해서 말씀을 전한다. 시1편을 새해 첫 주일에 묵상하는 것은 참 유익한 일이다. 과연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가? 어떻게 하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나?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본문에서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을 대조적으로 선명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1. 먼저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마치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고 했다. 

(시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참 행복한 나무이다. 비가 오지 않아서 가물어도 걱정할 게 없다. 설사 시냇가의 물이 말라서 흐르지 않아도 시냇가 밑으로는 항상 물이 흐르기 때문에 땅 밑으로 뻗은 뿌리가 물을 흡수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잎이 파릇파릇하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된다. 

여기서 시냇가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심겨진 나무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의 삶의 뿌리를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뻗으면 인생의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다.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항상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삶이 항상 잎이 파릇파릇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그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된다.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하신다. 복 되게 하신다. 이게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이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삶을 살기를 원한다. 2013년이 이런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2. 그러면 복 있는 사람의 반대로 복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다. 겨가 무엇인가? 알곡을 타작하고 남은 껍데기이다.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이다. 껍데기만 남은 겨는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정처가 없다. 한 곳에 붙어있지를 못한다. 결국 농부들은 바람에 날아다니는 겨를 모아서 아궁이에 넣고 불에 태운다. 겨울철에 땔감으로 쓴다. 

복 없는 사람의 삶에는 열매가 없다. 껍데기뿐이다. 이 세상에서 정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리고 세상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의 불로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인가? 

우리 중에는 이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란다. 모두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중에 누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복 없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겠는가? 하지만 누군가는 복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왜 그 사람은 복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까? 성경은 복 없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없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라간다. 죄인의 길에 서게 된다. 결국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버린다. 점점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처음 출발은 악인의 꾀를 듣고 그것을 따라가는데서 시작되었다. 악인의 꾀가 마음에 새겨지니 어느 순간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아예 교만한 자리에 앉기까지 되었다.  

나쁜 꾀를 듣고 따라 간 것이 나쁜 행동을 낳았고, 나쁜 행동이 나쁜 습관을 낳았다. 나쁜 습관은 결국 복 없는 사람이 되게 한 것이다. 

누가 나쁜 꾀를 우리 귀에 속삭이는가? 마귀이다. 마귀란 놈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우리 귀에다가 나쁜 꾀를 속삭인다. 에덴동산에서도 그렇게 했다.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열매를 보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함을 느꼈을 때 마귀가 하와에게 속삭였다. “선악과 열매를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이것은 나쁜 꾀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귀의 나쁜 꾀였다. 하와가 나쁜 꾀에 마음을 빼앗기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선악과 열매를 따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을 남편 아담에게 건네주어 먹게 하고 자신도 먹고 말았다. 결국 죄로 인한 저주와 불행이 시작되고 말았다. 

만약 마귀가 하와를 유혹했을 때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가정해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면 마귀의 나쁜 꾀를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창2:16)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지만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마귀의 나쁜 꾀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결국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타락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이게 바로 복 없는 사람이 된 과정이다. 그러면 반대로 복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3.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마귀의 나쁜 꾀를 따라가지 말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2절의 말씀에서 두 가지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1)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한다. 

여기서 율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우리는 말씀을 즐거워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육신은 말씀을 즐거워하기 싫어한다. 말씀보다는 세상 것들을 더 즐거워한다. 텔레비전, 영화, 신문, 소설, 특히 요즘에는 스마트 폰이 등장했다. 우리 육신은 이런 것들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율법을 즐거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시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 지니라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지킨 것은 바로 이 말씀 때문이다. 그들은 집안 곳곳에 성경 구절을 붙여 놓았다. 안식일이 되면 남자들은 성경을 손가락에 매고, 팔뚝에 감았다. 이마에도 붙였다. 그들은 삶에서 매우 가까이 성경을 접하게 되고 성경을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가 음식도 이와 비슷하다. 진짜 몸에 좋은 것은 처음에는 입맛에 맞지 않고 먹기 힘들어도 자꾸 접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맛을 알게 된다. 한국 사람이 왜 김치를 좋아하는가? 물론 어린 아기 때부터 잘 먹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잘 먹지 못하는 아이도 부모가 몸에 좋다고 자꾸 먹게 하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가 스스로 맛을 알고 찾아서 먹는다. 평생을 김치 없이는 못살게 된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이 처음부터 즐겁고 재미있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 영혼과 육체에 모두 좋은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 싫더라도 억지로라도 자꾸 가까이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성경의 맛을 알게 되고, 성경을 듣고 읽고 묵상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까이 접하게 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주변에 성경을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한다. 시간을 정해놓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틈이 나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형제가 13명이었다. 그의 어머니 수산나 여사는 아이들 양육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러나 성경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기 위해서 지혜를 모았다. 집안 곳곳에서 성경을 펼쳐두었다. 잠깐씩이라도 시간이 나면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성경을 사랑하는 부모님 밑에서 13남매 모두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났다.


2)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성경을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성경을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묵상하는 것은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이다. 성경을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이다. 

여기에는 과학적인 원리가 있다. 사람이 눈으로 읽는 것과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은 우리 생각에 각인 되는 효과가 큰 차이가 난다. 소리를 내서 읽을 때 눈으로 읽고 소리로 듣기 때문에 두 배 이상의 효과가 나타난다.

말씀이 우리 생각을 지배하면 우리는 말씀대로 말을 할 것이요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말과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습관은 결국 우리 인생을 바꾸게 된다. 그래서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면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윗은 복 있는 사람이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였다. 인생의 가뭄이 와도 끄덕 없이 잎이 청청하고 열매를 맺는 인생이었다. 그가 복 있는 삶을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시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다윗이 성경을 얼마나 사랑하고 즐거워했는지 알 수 있는 고백이다. 그는 성경을 사랑했기에 날마다 그 성경을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묵상했다. 

(시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서 도망 다니다가 겨우 사울의 추격을 피해서 동굴에 숨어 있을 때가 있었다. 사울은 군사들과 함께 동굴 입구까지 진군해왔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엉뚱하게도 사울 왕은 혼자서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무언가 볼일을 보기 위해서 들어왔다. 

동굴 안쪽에서 숨어 있던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들킬 쌔라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사울은 아무것도 모른 채 무방비 상태로 동굴 안에 있었다. 다윗의 옆에 있던 부하들이 다윗에게 “지금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니 허락만 하시면 단칼에 사울을 베어버리겠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을 것이다. 사울을 죽이면 지긋지긋한 도피 생활을 끝내고 편안하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부하의 말은 옳은 말이 아니었다. 다윗은 부하의 말이 사단의 유혹인 것을 분별하였다. 다윗은 말씀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쳤다. 

(삼상24:3)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다윗이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를 실족하지 않도록 지킨 것이다. 

2013년에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을 자세하게 가르쳐주셨다.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실천하는 일만 남아있다. 


3) 세 가지를 실천 방안 

① 성경을 항상 내 주변에 두자. 
스마트폰, 책상, 자동차, 화장실, 사무실, 거실

② 성경 읽기표를 가지고 1독 목표를 세우라.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최소한 1년에 신구약 성경 1독을 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세우자.

③ 매일 일정 분량의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라. 
매일 일정 분량의 성경을 읽고 묵상하자. 새벽기도, 큐티 책, 성경 필사, 스마트폰 활용 등 여러 방법을 통해서 일정 분량의 성경을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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