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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벽재건을 위한 느헤미야의 기도 (느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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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재건을 위한 느헤미야의 기도 (느 1:6-11)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을 보호하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훼파되어 방치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안타까움만 가진 것이 아니라 이방 땅에서 고국의 무너진 모든 것을 되살리고자 몸부림쳤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재건과 백성들의 영적인 회복을 소망하며, 이를 위해 노력한 일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이 시대에 무너진 영적인 성벽재건과 영적인 부흥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느헤미야가 성벽재건과 백성들의 영적인 회복을 위해 한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도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기 백성들이 큰 환란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이 무너져 황폐되어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 울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고국의 어려운 형편과 예루살렘 성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왜 우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고국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울었던 것은 나라와 백성의 고통이나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었던 신앙의 성벽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영적인 내부의 성벽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의 성벽, 그것이 무너져 외부의 성벽도 무너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 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 무너진 성벽을 여러 번 다시 세웠습니다. 문제는 마음의 성벽, 영적인 성벽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눈에 보이는 나라의 성벽도 무너집니다. 믿음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예배가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지고, 기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는 울다가 고국과 자신의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처해있는 형편은 당장 고국 땅으로 달려갈 수 없고, 어떻게 손을 써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민족의 아픔과 슬픈 사연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시작합니다. 식음을 전폐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면 기도하기를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인 부흥과 신앙 재건의 출발은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울고 고민하며 슬퍼하다가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울고 슬퍼하며 고민하며 근심하다가 그것을 드디어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에게 신임을 받아 수산 궁에서 술 맡은 관원으로 있었습니다. 요즘의 경호실장이나 비서실장과 같은 직책으로서 독살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왕을 보호하고, 왕과 함께 앉아서 국정을 논하는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포로로 끌려간 사람이 후손으로서 출세하기 쉽지 않았지만,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페르시아 제국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조금도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떠나온 고국이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져 있거나, 성문이 불타 버렸더라도 이러한 것은 그의 삶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엔 가본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민족과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를 바꾼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기도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느헤미야 역시 역사를 바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백성들의 신앙회복을 위한 역사는 느헤미야의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나의 무너져가고 있는 신앙을 위해, 우리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슬퍼하고, 근심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아픔과 슬픔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책망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할 때에 무너졌던 모든 성벽들이 재건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우리 주변의 무너져 가는 것들을 놓고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회복이 됩니다. 기도하면 무너졌던 것들이 재건이 됩니다. 기도가 역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믿으시고 올 한해 우리의 신앙회복과 영적인 부흥을 위해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기도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느헤미야의 기도는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는 회개의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는 자신이 범한 죄만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라고 했고,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다”라는 표현처럼 느헤미야는 지금 백성들과 자신과 조상의 죄를 모두 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느헤미야는 왜 죄를 자복하고 있습니까? 결과론적으로 보면 죄를 자복하지 않으면 죄를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그 죄가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단순히 한 개인을 파괴하는 정도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죄는 공동체 전체를 파괴합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아간을 보세요. 여리고를 점령하고 나서 아간이 여리고 성의 탈취물을 도적질한 죄로 인해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참패를 당했습니다. 이처럼 고백되지 않은 죄는 관계를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공동체의 하나됨을 파괴합니다. 공동체에게 패배를 몰고 옵니다. 죄는 공동체의 거룩성을 파괴합니다. 죄는 이렇게 관계를 파괴하고, 하나됨을 파괴하기 때문에 철저히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케 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907년 한국 교회의 대부흥운동도 그러했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는데 많은 성도가 모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많이 모였다고 영적인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첫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둘째 날 설교 후 기도하는 시간에 그 교회의 길선주장로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1년 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구가 죽기 전 재산을 정리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을 처리하다 상당한 돈을 사취했다고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고백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면 아무도 몰랐을 일을 그는 스스로 나가서 자신이 아간이라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길선주장로가 고백을 마치자 많은 성도들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그렇게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방해의 장벽이 무너지고 거룩하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다른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갈등과 분쟁과 분열의 원인은 항상 나에게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의 근본은 언제나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아간이요, 나 때문에 우리에게 축복이 없고, 나 때문에 우리 중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너 때문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울리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나 때문입니다’하고 내가 우는 것이 은혜입니다. 

언제나 남의 잘못을 비판하고 평하기는 쉽지만 자기 자신이나 단체와 자기 민족의 잘못과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자신의 잘못보다는 남을 탓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기백성의 죄를 자기가 지은 것처럼 회개하고 있습니다. 6절 말씀 하반절에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백성들의 신앙이 무너진 것은 ‘내 탓이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우리 국가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혼란하고,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환경이 파괴된 것은 나하곤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지 않고 이렇게 된데는 내 책임이 있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이렇게 된 것, 우리 교회가 어려움을 만난 것, 우리 직장이 힘든 것에 대하여 ‘나의 죄,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까?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하여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아니하고 책임의식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먼저 회개하고, 기도하고, 헌신하고, 순종하고, 충성해야 영적인 회복과 부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느헤미야 기도의 특징은 자신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일꾼으로 써 달라는 헌신의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여기서 이 사람들은 아닥사스다왕과 신하들을 가리킵니다. 왕 앞에 은혜를 입게 해 달라는 것은 자신이 고국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도록 왕으로부터 허락을 얻어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 덧붙인 글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본문 11절의 맨 끝입니다.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이렇게 고백한 것은 느헤미야가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의 술 맡은 자리에 오르게 하신 것이 바로 오늘 백성과 예루살렘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미리 예비하신 것임을 깨닫게 되었음을 밝힌 것입니다. 

왕의 술을 관리하는 관원이란 왕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술 관원은 단지 왕에게 술잔을 올리는 일만 아니라 왕이 드는 모든 식물과 음료의 품질과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왕을 가장 가까이서 항상 모셔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왕과 직접 대면할 기회가 가장 많은 사람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자기 민족과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을 주신 것입니다. 느헤미야에게 “네가 지금 갖고 있는 직책이 무엇이냐? 그 이점을 최대한 살려 왕의 마음을 움직이면 예루살렘 성벽과 네 민족을 다시 일으키는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말씀하신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기도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이 되도록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왕궁에서 왕의 신임을 받으며 높은 지위를 얻어 평안한 삶을 살고 있는데, 그 모든 지위와 안락함을 다 버리고 고국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고국에 가는 것은 결코 형통하고 평안한 길이 아닙니다. 험난한 길입니다. 

또 고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 지위와 편안한 삶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느헤미야는 고국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고국 이스라엘로 가는 길이 열렸고,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만 하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기도한 대로 내가 주님의 도구요, 일꾼이 되어서 험난한 길이라도 끝까지 가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나는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미약하나마 내가 민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내가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부흥을 위해 기도한다고 해도 내가 헌신하고 전도하고 섬기지 않으면 교회부흥을 위한 기도는 헛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내 가정을 사랑하여 기도했다면 어떻게 하면 내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찾아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기도만 하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위선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기도처럼 위선적인 기도일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너진 성벽을 누가 재건하겠습니까? 내가 해야 합니다. 무너졌던 성벽들을 회복하고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는 일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올 2013년 한해 영적인 부흥과 신앙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도들이 공적예배를 회복하고 예배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말씀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기도의 회복과 영혼사랑을 회복하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느헤미야처럼 구체적으로 이를 위해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올 한 해 동안 믿음으로 함께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공적예배 참석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주일 오후 찬양예배와 수요예배도 많이 참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전교인이 올 한해는 말씀 회복을 위해 성경을 1독 이상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를 회복하기 위해 새벽기도 주 4회 이상 참석하도록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항존직과 제직들은 필히 새벽을 깨우셔서 우리 교회가 기도의 부흥이 일어나도록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혼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전교인 최소 2명 이상 전도하도록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기도와 실천을 통하여 올 한해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무너진 영적성벽이 재건되고,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는 놀라운 한해가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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