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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옛사람 새사람 (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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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  새사람 (엡 4:17-24)

    
무디 성경학교의 교수인 해롤드 푸스(Harold J Foos) 라는 분이 말하기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교회의 전체적인 모습과 기독교인 개개인의 모습 가운데서 주변 문화와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고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삶의 모습을 대충 훑어보거나 통계를 통한 세밀한 관찰 - 예를 들어, 이혼, 학대, 사업 윤리 등을 통해 볼 때 기독교인을 명백하게 구분해 내는 것이 힘들다" 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1984년의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거짓말, 사기, 그리고 도둑질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사안들에 대해서 신자나 불신자나 그 행동 양상에 있어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고 했고, 1990년 행해진 로퍼 여론조사에서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회심 경험 이전과 이후의 도덕적 행동의 양상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런 조사들을 통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아주 조그마한 부분에서도 그들의 삶을 바꾸지 않고 있으며 기독교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유행하는 사이비 복음은 기독교 복음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며 교회를 편하게 대하도록 하기 위해 되도록 평화와 안락 행복과 개인적인 만족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 제자도의 부담, 심판의 실제성과 죄의 비참한 영향력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리하여 쉽게 믿음을 고백하게 하고 그 대가로 영원한 구원에 대한 확신을 너무도 헐값으로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앙고백에 따른 영적인 생명력을 보이지 못하는 많은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유행하는 이런 현상에 대해 토저(A. W. Tozer)라는 신학자는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에게서 아무런 변화도 일구어 내지 못하는 그런 류의 신앙은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 질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껏해야 입술로만 경배드리고 진정한 제자가 되기에 실패한 회심자로 남기보다는 성경이 명하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소유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케 하는 믿음이란?  죄를 인정하고, 자신이 의롭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십자가에서 완성된 대속의 사역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생활의 변화가 없는 회심, 제자의 삶이 없는 구원의 확신을 제공하는 경박한 복음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할 사이비 복음입니다.  참된 믿음은 변화의 삶을 보여주면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말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 과거의 잘못된 죄악의 삶 속에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성령을 소유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전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로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을 제시합니다.  제 4장 전반부(1-16)에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 주의 몸을 세우며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울은 17절 이하에서 성도들이 더 이상 이방인들처럼 행하지 말고(살지 말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곧 성도다운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새사람으로 지음 받았으니 이제 새사람에 걸맞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마치 더럽고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처럼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1.  그렇다면 우리가 벗어 던져야 할 옛사람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22절 말씀대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 의 생활방식입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옥중서신입니다(3:1; 4:1; 6:20 참조).   하나님을 믿지 않던 세상 풍조 속에서 살다가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여전히 옛날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위험성을 안고 있었던 에베소의 기독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결국 에베소서는 옛날의 습관으로 되돌아 갈 가능성을 늘 안고 사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약 3년 간 선교활동을 했기 때문에 에베소 교인들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행 20: 31 참조).  에베소 교인들은 종교적인 옛 습관으로 돌아갈 위험성을 안고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주전 11세기에 건설된 소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로서 특히 우상숭배가 성행하던 도시였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의 대표적인 우상이던 아데미(Artemis)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이었으며(행 19: 23-41 참조)  '아데미 여신의 전각'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서 길이가 128 미터, 폭이 66 미터의 면적 위에 높이 18 미터의 기둥 127개를 세워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건축물입니다.  이런 아데미 여신과 신전은 에베소 사람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구심점이 되어 이들의 일상 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데미 여신을 비롯하여 여러 우상들을 섬기던 사람들이 개종하여 교회로 들어왔지만 마음을 새롭게 해서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면 또 다시 옛날의 종교적 습관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와 같이 헛된 신을 섬기며 우상숭배 하던 종교적인 낡은 습관의 옷을 과감히 벗어 던질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베소 교인들은 회심 이전에 극심한 도덕적 타락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에베소는 수많은 극장들을 자랑하던 도시였는데 어떤 극장은 동시에 2만4천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고 합니다.  이런 극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온갖 저질스러운 공연과 폭력적인 투기(鬪技), 음란한 쇼 등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에 있었던 '아고라'(Agora)라고 하는 큰 시장은 황금에 눈이 먼 장사꾼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처럼 에베소 지역은 온갖 음행과 사기와 희롱과 황금에 대한 유혹, 더러운 말들이 판을 치는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 속에 있던 사람들이 개종하여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들이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과거의 나쁜 습관으로 돌아갈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와 같은 도덕적 구습의 옷을 깨끗이 벗어 던질 것을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 하에서 바울은 17절로부터 19절에서 우리가 벗어 던져야 할 옛사람의 삶의 특징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첫째로 그들은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허망한 것'이란 일시적이고 유한한 것이며 공허하고 헛된 것을 말합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헛된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듯 많은 현대인들도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헛된 우상에 심취되어 그들의 영혼과 몸을 맡기고 살아갑니다.  

둘째로 총명이 어두워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지식의 혁명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총명은 갈수록 어두워져만 갑니다.  총명이 어두워졌다함은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상실하였다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이 없다고 선언하며 사는 자들의 삶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인데 이방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아니하고 경외하지 않으므로 무지함에 빠져 살아갑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자처하지만 실상은 어리석고 우둔한 자가 되고 맙니다.  이들은 마치 소경이 암흑 속에서 길을 더듬는 것처럼 어두움에 싸여 방황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마음이 굳어짐입니다.  '마음의 굳어짐'이란 말은 마음이 마비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삐뚤어지고 뒤틀리고 마비되어 있는 상태가 바로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몸이 뒤틀려 정상적으로 걷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뇌성마비환자들을 볼 때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뇌성마비 환자들의 정신은 그렇게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몸이 삐뚤어지고 말이 잘 안되는 것이지 정신은 정상인보다 훨씬 맑고 깨끗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삐뚤어지고 양심이 마비된 강퍅한 심령입니다.  이들이 옛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떠난 자들입니다.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존재, 이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의 최대 비극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나무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단절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인 것입니다.  이들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육체적으로는 살았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이것이 옛사람의 실존입니다.

넷째는 감각이 없어짐입니다.  19절에 보면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하였습니다.  감각 없는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신앙의 감각, 진리의 감각, 도덕성에 대한 감각이 점점 무디어져 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를 나병에 비유합니다.  나병은 감각이 없는 병입니다.  신경을 갉아먹기 때문에 감각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죄는 문둥병과도 같습니다.   문둥병은 그 자체가 아픔이어서가  아니라 감각이 없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도라 자처하지만 자신만을 위하여 살려고 하면 죄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죄란 묘한 것이어서 빠져들면 들어 갈수록 감각이 상실됩니다.   죄에 대하여 둔감해지고 이것이 지속되면 죄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인 것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입술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마음은 더욱 거짓과 탐심으로 강하여 집니다.   외면적으로는 화려한 교회 생활을 하지만 심령이 새롭게 되지 못합니다.   갈수록 감각이 없기 때문에 더 흉악해집니다.  그래서 자기만이 잘한다고 착각하는 위선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사실은 감각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각만 발달하는 감각문화가 우리 주위에 가득합니다.  말초신경을 위한 감각만이 발달되고 하나님을 향한 감각, 의와 진실을 향한 감각이 없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정직함과 진실함에 대해서 점점 둔해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과 짝하여서 세상과 마귀의 종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강퍅하고 굳어진 마음은 죄에 대한 고통을 느끼기를 중단합니다.  도덕적 감수성이 무디어지고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흐려져 결국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자신을 방탕에 맡기고 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영적 무지와 죽음 속에 거하는 옛사람의 삶은 온갖 욕심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행하는 삶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삶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 허망한 것을 좇아 사는 옛사람은 굳어진 마음이요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입니다.   영적 무지는 도덕적 무감각을 가져오며 결과적으로 자신을 방탕에 내어버리는 자포자기의 삶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옛사람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세상에서 행했던 온갖 못된 습관들은 '욕심으로 우리를 타락하게 만들고 또한 우리를 속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와 같은 욕망에 넘어져서는 안됩니다.  속아서는 안됩니다.  깨끗이 버려야만 합니다!   새옷을 갈아 입기 위해 낡은 옷을 벗어 던지듯이 깨끗이 벗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2. 그러면 이제 우리가 예수 안에서 새롭게 입어야 할 옷은 어떤 옷입니까? 

20절을 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와 같이 배우지 아니 하였느니라"  성도는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삶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배웁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의 스타일은 이방인의 삶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배웠습니까?  그리스도를 배웠다는 말은 단순히 그리스도에 관해 배웠다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다는 말입니다.  배웠다면 그리스도가 행하신대로 해야 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이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듣고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22절 이하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이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지는 것이며,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바울은 옛 사람을 벗어 던지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을 하기 전에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거에 하던 모든 버릇들을 벗어 던지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옛날과 똑같은 마음, 똑같은 정신 상태를 가지고서는 결코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변화되면 생각이 변화되고  생각이 변화되면 행동이 변화됩니다.  행동이 변화되면 우리의 습관이 변화됩니다.  습관이 변화되면 마침내 우리의 인격이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격이 새롭게 변화되려면 마음에서부터 먼저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지 않고서는 결단코 새 사람의 옷으로 갈아입을 수 없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니 이 옷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의 옷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옷은 하나님을 따라 새롭게 창조된 옷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수양을 쌓아 얻어지는 옷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심을 통하여 얻게 되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어진 신령한 옷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새 옷을 입는다는 말씀은 무엇을 말합니까?   옛날에는 내 욕심과 내 유혹에 이끌려 되는 대로 살았다면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지난날에는 남보다 더 잘 살고 더 높아지고 더 유명해지고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사는 것만을 추구했지만 이제 새 옷을 입은 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함에 합당한 일이 무엇인가를 묻는 생활로 바뀌는 것입니다.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으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인격과 본성, 의지가 변화되라는 말씀입니다.   속사람은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겉옷만 화려하게 입어서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아름답게 되는 것은 우리가 속으로, 영혼으로, 마음으로 옷 입을 때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늘의 신령한 옷을 입음으로써 사람들이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합시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22절과 24절에 우리가 벗어 던져야 할 헌 옷과 새 옷이 아주 분명하게 대조되어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벗어 던져야만 할 옷은 옛 사람의 옷입니다.   과거에 아직 하나님을 모를 때 세상에서 내 멋대로 살았던 육신의 옷을 말합니다.   이 옛 사람의 옷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옷'입니다.  이 옷은 반드시 벗어 던져야만 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새 사람의 옷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성령을 따라 사는 새 생활의 옷인 것입니다.  이 새 옷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옷'입니다.  이 옷은 반드시 입어야만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옷을 입고 계십니까?  옛 사람의 옷입니까?  새 사람의 옷입니까?  오늘날 예수 믿는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사람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듣고 배우셨습니까?  예수께서 걸어가신 그 삶의 길을 따르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이 길에 진정한 생명이, 영생이, 평안과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삶의 전부로 고백하고 그 분을 닮아 살기를 힘쓰는 사람이 새 사람인 것을 잊지 맙시다.   그러나 여전히 옛 사람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순결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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