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땅에 엎드리신 예수님 (막14:35-38)

첨부 1


땅에 엎드리신 예수님 (막14:35-38)

막14: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막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열한 제자들을 데리시고 감람 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절박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겟세마네에 이르셨을 때, 여덟 명의 제자들로 하여금 동산 입구에 앉아서 그 곳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세 제자, 곧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시고 동산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들 세 명은 제자들 중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다른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예수님은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신데,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신데,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죄가 되셔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과 영원히 하나이신데,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모든 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한꺼번에 다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신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를 데리시고 동산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들을 동산 한 곳에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기도하시는 동안, 그들도 깨어서 함께 기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과 예수님이 기도하시던 사이에 제자들에게 돌아오셔서 그들을 돌보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는 그만큼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또한 죄인들인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막14: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예수님은 세 제자를 어느 한 곳에 머무르게 하시고, 혼자서 동산 안으로 조금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과만 함께 계실 장소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눅22:41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서 돌 던질 만큼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30m 정도 더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땅에 엎드리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눅22:41 말씀처럼, 처음에는 예수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처럼, 예수님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나중에는 마26:39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아예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갈수록 더욱 애절한 모습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히5:7 말씀처럼,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눅22:44 말씀처럼, 이 때 예수님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 힘써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사노라면, 심히 놀랍고 슬픈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될 지경에 이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도 겟세마네의 시간을 가지며,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무엇을 구하셨습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먼저 예수님은 이와 같은 단서를 다셨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이 말씀의 뜻은 “가능하다면, 할 수만 있으면, if possible”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다른 방법으로는 죄인들을 구원할 길이 없는지를 하나님께 여쭈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하나님께 구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으실 만큼 약해지셨기 때문입니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때”에 예수님은 어떤 일을 당하셔야 했는지를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절로 해답이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를 알지 못하십니다.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죄를 차마 보지도 못하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죄가 되셔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비록 일시적이긴 했지만,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한꺼번에 몽땅 다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예수님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지 않으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기에, 예수님이 이와 같이 구하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의 거룩하심이 가리어질 뻔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까, 그저 쉽게 십자가를 지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실 만큼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로 인한 모든 고통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행여 지금 우리 자신의 겟세마네를 겪고 있지는 않습니까?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우리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할 만큼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으십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서 고통의 멍에를 벗기시며, 우리에게 기쁨과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위로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늘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맡기셨습니다.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여기에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짤막합니다. 그러나 다음 절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실제적으로는 이 때 예수님이 한 시간 정도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먼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빠”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를 그대로 음역한 것입니다. 그 뜻은 우리말의 “아빠”와 같습니다. 아버지를 좀더 친숙하고, 좀더 가깝게 부르는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주기도문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봅니다.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기에 앞 절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하나님께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이와 같이 이어집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사51:17 말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때의 잔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합니다. 이 기도를 앞 절에 있는 말씀으로 나타내면, “이 때가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가 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셨습니까? 왜 예수님은 “이 잔”이 자신에게서 옮겨지기를 기도하셨습니까?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는 결코 예수님의 연약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이 이러한 기도를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은 죄가 되셔야 했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몽땅 다 받으셔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리켜서 앞 절은 “이 때”라고 표현을 했고, 여기서는 “이 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토록 하나이십니다. 예수님은 의로우십니다. 그러니 어찌 예수님이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지 아니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께 이 잔을 자기에게서 옮기시도록 기도하신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단지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에,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으시거나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으시고서도 죄인들을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는지를 하나님께 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기도는 이와 같이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비록 “이 때”가 형언하기 힘들 만큼 어렵고, 또한 “이 잔”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다 맡기셨습니다. 

요4:34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또한 요6:38 말씀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이렇듯 예수님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일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가차 없이 베드로를 심하게 나무라셨습니다. 

마16:23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이 때 베드로는 사람의 일을 생각했지만, 언제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국은 텅 비고, 지옥은 가득 찰 것입니다. 죄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말이 되며, 성경도 믿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문제가 심각해질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와 같은 결단의 기도를 드리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결코 죄가 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하나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도무지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진실로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도 날로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기도하면서 우리의 품은 뜻이 하나님의 뜻과 같이 되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지도하실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돌보셨습니다. 

막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잊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돌보시기 위해서 세 제자에게로 돌아오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 제자에게 돌아오셨을 때, 예수님은 그들이 자는 것을 보셨습니다. 왜 그들이 잠들었습니까?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40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잠든 이유를 이와 같이 밝힙니다.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 날 저녁 그들은 유월절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런 후 그들은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와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먼 거리를 걸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깊은 밤중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눅22:45 말씀과 같이, 그들은 슬픔으로 인하여 잠들었습니다. 그들의 동료였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셔서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릴 것이며, 베드로는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영광은 이제 물 건너가 버린 듯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상황이 그들을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잠들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잠을 자버림으로 모든 슬픔을 잊어버리려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베드로와 함께 있던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듣도록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이 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시몬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지어주신 새 이름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영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를 그의 옛 이름인 시몬으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드럽게 나무라셨습니다.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제자들의 눈은 심히 피곤하고, 그들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막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깨어 있어야 기도하며, 또한 기도해야만 시험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잡히실 때,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베드로도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시험에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와 같이 기도하셨다면,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더 많이 더 간절하게 기도해야 옳았습니다. 

벧전5:8 말씀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려면 깨어 있어 기도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전투 중에 군인이 정찰을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적들이 공격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가 혼자서 적들과 싸우려 드는 것은 무모한 짓입니다. 즉시 지휘관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지휘관이 군대를 동원해서 능히 적들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마귀를 대적해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때, 우리는 마귀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늘 깨어 기도해야만 합니다.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은 부드럽게 제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깨우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측은히 여기시면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제자들이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버리지도 아니하며, 예수님을 부인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마음으로는 예수님과 함께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지를 못했습니다. 이 때의 실패를 거울삼아, 제자들은 육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쓰면서, 예수님만을 힘 있게 의지했습니다.  

롬7:23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의 지체에 원하는 마음과 약한 육신이 공존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는 약한 육신을 이기고 마음의 원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롬7:24에서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곧이어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롬7:25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긴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사노라면, 우리도 여러 번의 겟세마네를 겪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땅에 엎드려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뜻에 맡깁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은 예수님 안에서 거듭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는 이번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며,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