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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자의 얼굴 (마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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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얼굴 (마 7:12)

“노숙자가 밥 그냥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음식점하는 분의 질문이었습니다. 신자인 줄 알고 돈을 요구합니다. 불쌍하다고 받아주면 장사는 끝입니다. 노숙자 몇 명만 와도 냄새 때문에 다른 손님은 안 옵니다. 음식점뿐이 아닙니다. 신자는 모든 곳에서 여러 모양으로 떼쓰는 사람을 만납니다. 사랑을 실천하라고 강요당합니다. 

사랑에도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음식점은 정상적 손님들이 돈 내고 대접 받고자 갑니다. 노숙자 대접은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원칙만 앞세우고 사랑은 실천하지 않나요? 신자를 위한 행동 강령 황금률을 주께서 주셨습니다. “너희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하나요? 

1. 친절이 대접 

사람들은 황금률이 좋지만 이행하기가 어렵다고들 생각합니다. 대접은 받지만 대접하기는 싫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 누구나 무리하게 대접 받기는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돈이 없다고 다른 사람이 자기 집을 팔아서 내게 준다면 좋아할까요? 정신 나간 사람 아니면 그런 걸 원치 않습니다. 그건 대접이 아닙니다. 비정상일 뿐입니다. 

정신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무리하게 내게 잘 해 준다면 기쁨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몰론 이건희씨 같은 분이 나를 좋게 보아서 몇 억 원을 선물로 그냥 준다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유 없이 주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친절이나 도움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싶은가요? 친절입니다. 친절은 재산을 주고 목숨을 주는 게 아닙니다. 따듯한 태도와 말입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예수님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요. 우리는 누구나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주기를 원합니다. 

중량구에 초등학생의 친절로 지어진 교회가 있답니다. 어느 날 노인이 길에 쓰러집니다. 모두 그냥 지나칩니다. 초등학생이 다가갑니다. “할아버지, 어디 아프세요? 저를 잡으세요.” 노인은 창피하지만 고마워하며 아이 손을 잡고 갑니다. 정신을 차린 뒤 묻습니다. “너 참 착하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가 할 수 있으면 들어줄게.” 

아이가 말합니다. “우리 교회를 건축했으면 좋겠어요.” 노인은 상당한 재력가였습니다. 교회를 지어줍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보려고 교회 교인이 됩니다. 친절은 힘들지 않습니다. 단지 습관만 하면 항상 됩니다. 재산 주고 내 목숨 주는 게 아닙니다. 사람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해야 합니다. 세상도 마음도 삶도 밝아집니다. 


2. 원칙 있는 친절 

다시 음식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노숙자가 말합니다. “먹을 것 좀 주세요. 교회 나가는 사람답게 하세요.” 교회 나가는 죄로 어깃장을 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여기는 노숙자 대접하는 곳이 아닙니다. 장사하는 곳입니다. 그것도 깨끗한 사람이 와야 합니다. 그러기에 분명히 원칙과 기준을 정하세요. 그리고 꾸준히 지켜야만 합니다. 

원칙이 무너지면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친절하게 그리고 따듯하게 말합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됩니다. 규칙에 어긋납니다.” 규칙은 항상 누구에게나 같아야 합니다. 두 가지, 온유함과 원칙입니다. 그래야 질서는 분명히 확립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를 미워하십니다. 황금률은 이렇게 적용됩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불친절입니다. 불친절은 상대에게 모욕으로 느껴집니다. 안 된다는 말보다는 그 표정과 말투가 원한을 가지게 만들어요. 어떤 부부가 웅장한 교회에 출석했어요. 그러나 아무도 아는 척을 안합니다. 인사하는 이가 없어요. 모두가 자기 맡은 일에 바빴어요. 모두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도 참고 본당까지 찾아갑니다. 

뒤편의 안내위원이 주보를 줍니다. 그러나 옆 사람과 대화할 뿐 이 부부에겐 관심이 없어요. “아무도 우리를 환영하지 않는구나!” 예배 마친 후에 그 부부는 영영 교회에 가지 않았어요. 무관심 역시 불친절입니다. 배우자가, 친구가, 교우가 내게 무관심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친절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합시다. 첫째 상대를 귀하게 여겨주어 친절하게 말하는가? 둘째 원칙을 지키는가? 이 둘이 제대로 되면 세상의 질서도 제대로 됩니다. 교회에서는 큰 돈을 꾸어주지 않아야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돈을 꾸겠어요? 이 원칙은 분명히 하세요. 친절하게 거절하세요. 모욕 주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3. 사랑의 실천
 
사랑에서 나온 원칙과 친절을 계속 적용하면 인격도 삶도 좋아집니다. 가까울수록 말을 조심해야 하지요. 부부간에 자녀에게 교우에게 말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하세요. 모르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친절하게 말하는가? 상대를 높여주는가? 먼저 인사하세요. 인격자란 크게 희생하는 게 아닙니다. 항상 친절하면 그게 인격자입니다. 

알파코스라는 신앙프로그램이 있어요. 신자는 서로 목회적으로 돌보아야 한다고 3대 자세를 말합니다. “격려하고, 들어주고, 화평케 하라.” 격려는 위로하고 칭찬하고 소망을 줍니다. 들어주기는 말 뿐 아니라 상대 마음까지도 이해합니다. 화평케 하려면 나와 다르다고 공격하거나 가르치려하지 말랍니다. 끝까지 말로 이기지 마세요. 

이러한 내용을 알아도 행동에 옮기려면 역시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의지하세요. 그러면서 이러한 원리와 목회적 돌봄을 적용해 보세요. “격려하고 들어주고 화평케 하자. 예수께서 나를 대하듯이 또한 내가 남들에게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나도 친절하자. 특별히 가까운 사람부터 그렇게 하자.”    

동경 신주꾸에 고오야라는 거리가 최고로 비싼 땅이랍니다. 소유주는 상아이회사의 사장인데 여직원의 친절로 사게 되었답니다. 본래 땅 주인 노파가 안 팔겠다고 회사를 찾아갑니다. 그날은 폭설이 내렸어요. 짜증나 싸울 태셉니다. 그러나 여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털어주며 흙투성이 신발을 벗기고 자기 슬리퍼를 신깁니다. 

“어서 오세요, 할머니! 이 눈길에 얼마나 힘드셨어요. 넘어지지는 않았나요?”하며 3층 사장실까지 부축해 줍니다. 땅임자 노파는 감격합니다. 접수 아가씨가 이렇게 훌륭하다면 사장님도 훌륭한 분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땅을 넘깁니다. 친절은 이처럼 신기한 기적을 줍니다. 원칙에 따른 수준 있는 친절이 신자의 얼굴입니다.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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