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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뒷모습 (출 3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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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뒷모습 (출 33:12-23)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모세가 하나님 얼굴을 보여달라자 나온 대답입니다.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 하나님은 그를 바위틈에 두고 자기 뒷모습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뒷모습, 하나님 찾는 이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입니다. 세상눈으로 볼 때 너무 하나님 같지 않아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뒷모습에 실망하고 돌아섰던지요. 

“새 마음으로 신앙생활 잘 해보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리라.” 그러나 이상해요. 결심하고 나서면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신앙생활하기 어렵도록 좋지 않은 일이 나타납니다. 복의 뒷모습입니다. 이것을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이라 불렀어요. 영광과는 반대로 수치와 혐오입니다. 십자가는 죽이는 형틀입니다. 

1. 세상 영광 아니다 

하나님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 보려고 나서면 아주 멀리 느껴집니다. 신앙 가지려고 결심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기대한 것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교회 나가면 하나님 보이나요? 성직자들에게서 하나님이 보이나요? 교인들에게서 보이나요? 성경에, 찬송가에 보이나요? 어디나 하나님의 뒷모습뿐입니다. 

세상에서 교회를 향해 얼마나 비난의 소리를 퍼붓는지요. 신자인 우리가 생각해도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옛날부터 목사들은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요. 교회 나온 사람치고 목사, 장로를 포함해서 교인들에게 상처 안 받아본 경우는 없습니다. 낙심해서 교회 출석을 중단합니다. 그러나 다른 데는 더 가능성이 없어요.  

일단 참고 교회 나오는 신자들에게도 현실적인 문제를 봅니다. 열심히 예배하고 봉사하고 기도해도 일이 금세 잘 풀리지가 않아요. 재정적으로 사업적으로 가정적으로 오래 문제에 눌려있는 이들도 있어요. 왜 좀 하나님이 통쾌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시나요? 성경에는 기적이 많이 나타나는데 우리 삶에는 그런 게 없나요? 

2013년 마음을 다짐하고 나서지만 영광은 보이지 않아요.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시77:8)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왜 그 얼굴을 보이지 않으시나요? 어떻게 우리로 믿으라고 하시나요? 

십자가, 하나님 찾는 사람이 만나는 흉한 형틀입니다. 요즘은 금과 보석으로 장식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래 십자가는 수치와 멸망의 상징입니다. 더럽고 흉측합니다. 저주가 서려있어요. 영광의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먼저 나오는 게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뒷모습입니다. 여기서 놀라고 실망해서 얼마나 많이들 돌아섰는지요. 


2. 십자가를 잡으라 

이 문제로 고민한 신자들 많습니다. 루터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선행 금욕과 기도 속에서 학문에서 오직 하나님 만나기 위해 헤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만나는 하나님을 자신이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얼굴은 십자가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볼품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통쾌한 하나님이 아니었어요. 

얼굴을 돌리고 영광의 하나님을 찾으면 또 초라한 얼굴이 보였습니다. 항상 보이는 것은 십자가요 약한 예수뿐이었습니다. 전혀 하나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께 제자 하나가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대답뿐입니다. 이 인간 예수를 통하고 십자가를 지나야만 하나님을 본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오셨나요? 우주의 왕이 가난한 집 자녀로 마구간에 납니다. 그를 만나려면 마구간에 들어가 말구유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가 자라날 때도 저 변두리 갈릴리의 나사렛에 가야 합니다. 구원사역을 시작하면서 왕과 귀족들에게 거부당합니다. 가장 흉악한 죄수를 못 박아 죽이는 십자가에 나가야 만납니다. 

예수께서 하늘에서 직접 오셨으면 어떨까요? 하늘을 열고 억만의 천군이 위엄을 갖춥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눈부신 광채에 쌓여 구름타고 내려옵니다. 물론 그러면 모두가 엎드리지요. 그것이 인간이 생각하는 영광의 모습입니다. 아담부터 그 영광을 찾다가 스스로 하나님 되고 망합니다. 교회도 그 목표로 도전하면 헛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어요. 자신이 하나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그 눈이 변질되었어요. 세상 영광을 하나님으로 봅니다. 인간이 찾는 영광은 다 그림자입니다. 생명이 없어요. 금세 사라집니다. 그 영광에 절은 신자는 복음 설교를 이해 못합니다. 세상 영광 말하는 설교는 좋아해요. 그러나 하나님은 영영 못 만나요. 


3. 끝까지 의지하라 

하나님은 인간의 현주소로 내려오십니다. 그러나 죄의 눈은 하나님의 영광이 안 보입니다. 뒷모습만 봅니다. 사실 초라한 교회, 문제 많은 신자들, 모두 나의 모습입니다. 말구유예요. 그러나 참고 들어가야 합니다. 마구간 같은 교회를 사랑하여 겸손히 봉사해야 합니다. 뒷모습만 보이는 하나님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려야 삽니다. 

참된 교회, 참된 신앙은 어떤 것인가요? 세상 영광을 말하지 않아요. 내 교만한 마음 충족시킬 설교나 예배나 큰 교회 찾지 마세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세상 영광은 마실수록 목이 탑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말씀입니다. 

칼빈에 의하면 참된 교회에 가까울수록 두 가지가 분명합니다. 바르게 복음말씀이 들려지고 성례전이 집행됩니다. 둘 다 십자가와 예수를 받습니다. 거기서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참된 영광을 찾습니다. 마구간과 말구유, 고난과 십자가, 우리는 이것을 사랑하고 자랑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참되고 영원한 영광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렇다면 그 영원한 영광 가졌음을 어떻게 압니까? 그냥 고난과 십자가를 참는 건가요? 우리 속에 주어지는 세상이 모르는 신기한 기쁨과 확신 능력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 

2013년, 하나님이 다시 주시는 기회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외형적인 영광을 찾지 마세요. 교회와 신자들 신앙생활에서 영광의 하나님대신 초라한 뒷모습만 보더라도 믿음을 버리지 마세요. 겸손히 하나님의 옷자락을 잡고 순종하세요. 영광의 하나님은 오직 마구간에 내려와 무릎을 꿇은 사람만 봅니다. 그 풍성함은 말로 다 못해요.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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