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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출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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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출 2:1-25)

1. 기원전 1530년경, 애굽 투트모세 1세 왕이 통치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두려워 이스라엘 민족의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유아 살해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여 태어나는 남자 아이들을 살려둡니다. 이에 왕은 자신의 유아 살해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악어가 득실거리는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령합니다. 

이러한 왕의 명령이 시행될 당시 한 레위 지파 가정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나 예쁘고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준수했습니다. 그 아이 어머니는 서슬퍼런 왕의 명령이 두렵기는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를 석 달 동안 숨겨두고 길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몰래 키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벌써 우는 소리도 커졌고 활동 범위도 넓어져서 한 귀퉁이에 숨겨두고 키울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할 수 없이 갈대상자를 만들어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해서 아기를 담아 나일 강가 갈대밭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의 누이 미리암이 갈대 상자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서 있는데 때마침 애굽 왕의 딸 공주가 목욕하러 나왔다가 그 상자를 보고 시녀들에게 건져오도록 했습니다. 공주가 갈대 상자를 열어보는 순간 히브리 아기인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왕의 명령에 따라 히브리 남자 아기들은 모두 나일 강에 버려져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주는 비록 히브리 아기이지만 너무 불쌍히 여겨 양아들로 입양할 생각이었습니다. 공주는 당시 왕인 투트모세 1세의 무남독녀인 핫셉슈트였습니다. 그런데 이 공주는 남편 투트모세 2세와의 사이에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 아기가 히브리 아기이지만 양아들로 입양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를 알아채린 아기의 누이 미리암이 엿보고 있다가 냉큼 달려가 공주에게 그 아기를 기를 유모를 알선하고 공주는 유모에게 삯을 주어 아기를 맡겨 기르게 합니다. 미리암이 알선한 유모는 다름아닌 아기의 친어머니, 곧 요게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일 강에서 공주가 건져낸 아기는 외형적으로는 공주의 아들이지만 실제는 친어머니 품에서 친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히브리 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된 것입니다. 이 아이가 젖을 떼는 3살 정도 되었을 때 친어머니 품에서 애굽 공주에 되돌려졌습니다. 그리고 공주는 그 아기를 ‘물에서 건져내었다.’해서 ‘모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후 모세는 40년 동안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 궁중의 모든 학술과 학문을 익혔습니다. 이를 사도행전7:22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행7:22-23)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이제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제반 국정(國政)에 참여할 위엄과 지략을 충분히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가 한 번은 동족의 근황을 살피러 나갔는데 애굽 사람이 고된 일을 하고 있는 자기 동족을 채찍으로 후려치는 것을 목격하고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을 살펴본 후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파묻어버렸습니다. 모세는 분명 애굽 공주의 아들로 왕자의 신분이었지만 히브리인으로 양육받은 그로서 학대받는 동족들의 비통스러운 모습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비록 왕궁에 살았지만 항상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동족의 삶을 지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튿날 다시 나가보니 이번에는 히브리인 두 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오?” 라며 화해시키려 하자 그 사람은 오히려 대들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오? 당신이 애굽 사람을 죽이더니, 이제는 나도 죽일 작정이오?” 이렇게 대드는 말에 모세는, 어제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 두려웠습니다. 자신이 어제 살해한 애굽인을 감쪽같이 파묻어버렸는데 그 사실이 폭로된 것에 모세는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이 사실이 애굽 왕에게 보고되자 왕은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습니다. 

결국 모세는 어쩔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의 신분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 하나 죽인 사실은 그 자체로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애굽인 살해 사건이 모세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당시 애굽 궁중의 정치 세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의 살인 사건 당시 애굽의 왕은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 B. C. 1504-1448)였는데, 그는 부친 투트모세 2세와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투트모세 2세의 왕비인 핫셉슈트(Hatshepsut)는 아들을 낳지 못하자, 모세를 강에서 주워 자신의 양자로 입양 시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 투트모세 2세가 일찍 죽자 모세를 입양시킨 투트모세 1세의 무남독녀 핫셉슈트가 애굽의 실권을 장악했고 아울러 모세의 지위도 격상되었습니다. 그러자 핫셉슈트에 눌려 섭정기에 있었던 야심에 찬 투트모세 3세는 자신의 확고한 왕권 구축을 위해서 최대의 정적(政敵) 모세를 제거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이 궁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왕비가 입양한 아들 모세를 제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차 모세의 애굽인 살해 사건이 터지자 이것을 민족적 감정으로 비화시켜 정치 쟁점화함으로써 모세를 제거코자 했고, 이에 모세는 어쩔 수 없이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나이 40세에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디안 광야로 내몰린 것이었습니다. 애굽의 막강한 실세 왕자로서, 그리고 40년 동안 갈고 닦은 학술과 학문, 경륜을 통해 동족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민족을 해방시키고자 했지만 자신의 의협심이나 인간적인 힘이나 노력, 혈기 등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해 모세는 그 사건을 통해 인간적인 자신의 방법이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훗날 신약시대에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을 때, 구약 역사 속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던 사건들, 즉 아브라함의 선택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을 설교할 때,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증거할 때 모세와 관련하여 이렇게 설교했습니다.(행7장)

(행7:20-29)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25절,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 스데반의 증언처럼 모세는 자기의 손, 다시 말해 자신의 능력이나 권력 등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시리라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을 빌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서의 해방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사건 당시로부터 650년 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이삭과 야곱에게 재 확인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의 복귀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찾아야 합니다. 650년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 창세기15:13-14을 보겠습니다. 

(창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 말씀을 약속하신 때가 다 되어 하나님께서 애굽의 유아 살해 정책이 시행되는 와중에서 모세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나갈 지도자로 모세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왕자로서 갈고 닦은 무술이나 학술, 그리고 그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막강한 권력 등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코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으로 이스라엘 해방하시려고 모세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세를 40년 동안 애굽 왕궁에서 자라게 하시고 그것만으로는 될 수 없기 때문에 미디안 광야로 모세를 내몰아 40년 동안 이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겸손한 지도자로 연단하고 훈련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를 80년 동안 교육하고 연단하며 훈련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노동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습니다. 출애굽기2:23-25을 보겠습니다.

(출2:23-25)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650년 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그 동안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이삭과 야곱에게 재확인하신 말씀,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하신 말씀대로 어디로 가든 항상 함께 하셔서 지켜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때가 되어 그 약속을 마침내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2.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기까지 어디로 가든 항상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신 성도 여러분이 어디로 가든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런데 간교한 사탄이 하와를 유혹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며 금단의 열매를 먹으라고 유혹합니다. 이에 하와는 냉큼 그 열매를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권하여 아담 또한 금단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죄책감을 느끼고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 날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죄책감을 느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여기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먹고 범죄했음에도 하나님께서 동산에 거니셨다는 것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계셨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그 이름 뜻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도 여러분이 때로 실수와 허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변함없이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나도록 아들을 얻을 수 없게 되자 아내 사라의 권고를 받아들여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이른 바 종의 자식을 낳은 것입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창17:1-9)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는 반드시 지킬 것이니 하갈을 통해 자식을 낳으려는 인간적인 방법이나 연구를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하나님의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더 이상 쓸데없이 믿음 없는 생각을 품지 말고, 너는 내 언약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시고 그 언약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언약으로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26:1-4입니다.

(창26:1-4)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말씀하신대로 그 가나안 땅에 거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함께 하셔서 그 해에 농사하여 백 배나 얻었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창26:12-15)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농사짓는 땅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농사경험이 전혀 없는 이삭일지라도 한 해에 농사를 지어 백 배의 결실을 수확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업종인 목축업이 창대하고 왕성하게 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이삭의 우물들을 메워버렸지만 이삭은 다른 곳, 그랄 골짜기에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엄청난 우물 물이 터져나왔습니다. 이를 본 그랄 목자들이 찾아와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삭은 할 수 없이 싯나라는 곳에 우물을 팠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물이 터져나왔습니다. 이렇게 이삭은 다툼을 피해 메마른 땅 어디를 파도 우물 물이 터져나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창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느 곳을 파도 샘의 근원이 터지듯이 축복의 샘물이 터지는 것입니다. 이삭의 우물을 빼앗았던 족속들은 이삭이 어디로 가서, 어디를 파든 물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이삭을 찾아와 이삭에게 화해 조약을 맺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창세기26:28-29입니다.

(창26:28-29)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그들은 이삭이 어디, 어느 곳을 파도 우물 물이 터져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심을 분명히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으로 찾아와 화해조약을 부탁한 것입니다. 참으로 약속의 자녀들은 어디를 가든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삭처럼 하나님의 언약과 함께 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언약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약속의 자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떨기나무 가운데 부르시면서 자신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3:6-10)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야! 모세야! 하시며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츨3:4)

 이에 모세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츨3:13) 

이같은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3:15) 

여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그 이름,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 자존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인생은 피조물이요 만물도 다 지음 받았지만 오직 하나님만은 지은 바 되지 않은 스스로 계신 자라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며 자신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시는 자존자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만물을 다스리시고 여러분 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주관하고 계십니다. 

자존자 하나님이라는 말은 지금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의 모든 것과 인류의 모든 역사를 알고 계시며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언행심사를 모두 알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약점과 허물, 장단점 모두를 익히 알고 계십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인생을 지은 분이시라 인생의 마음 깊은 곳까지라도 통찰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이름 여호와라는 이름은 나의 모든 것을 듣고 계시는 여호와이십니다. 나의 진실과 거짓말을 듣고 계시며, 나의 감사와 원망하는 말도 들으시고 나의 기쁨과 탄식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그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시고 그 고난 중에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우고를 알고 계시는 분이심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의 자손들과 항상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 약속의 때가 되어서 그들을 “(출3:8-10)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에 데려가려 하신다, 그래서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650년 전 모세를 준비하셨고, 그 모세를 애굽 바로의 궁전에서 40년, 그리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준비시킨 목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의 광야 생활은 결코 시간을 헛되이 소모하는 허망의 연속이나 좌절로 실의에 빠진 나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흘 길 건너편에 있는 동족의 탄식을 듣고 있었으며,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자기백성에 대한 생각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때 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 그 뜻과 목적을 이루시고자 환경을 섭리하여 사람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과연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곧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22장 1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사랑하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이삭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때에 얻었던 금덩어리 보다도 소중한 독자 아들이었습니다. 재산의 일부를 바치라면 바칠 수 있으며, 인생을 살만큼 산 나이 지극한 아브라함 자신을 바치라면 그리 하겠나이다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어떠하였습니까?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순종하였습니다. 그 순종은 성경에서 으뜸이 가는 순종이었습니다. 그는 순종할 때에 기회를 놓칠세라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창세기 22장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왜 일찍 일어났습니까? 머뭇머뭇 하다가는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요, 어물어물하다가는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아침 해가 뜨는 즉시 일찍 모리아산을 향하여 갔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순종이며 멋진 순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종하십시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칼을 들어 이삭의 가슴을 내리치려는 순간에 하늘로부터 급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나님이 말씀하시길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 

아브라함의 믿음이 합격하였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았을 때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대신에 그 숫양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땅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이름한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준비하시는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같은 죄인 살리기 위해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창세전부터 준비하신 분이십니다. 그 이름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행복과 축복을 준비해두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하셨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앞날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축복을 예비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도록 그 언약의 말씀과 함께 하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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