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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생수 되신 예수님(요 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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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수 되신 예수님(요 4:3-30)


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이 아이는 친구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에 
양복점에 취직하여 재봉일을 하다가 17세에 양복점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구두 수선공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이 청년과 결혼한 구두 수선공의 딸은 문맹자인 남편에게 매일 저녁 글을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스런 아내가 가르쳐주는 공부는 신혼처럼 달콤했습니다. 
드디어 공부에 취미를 붙인 그는 밤새워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테네시 주지사를 거쳐 상원의원이 되었고 나중에 미국의 대통령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선거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미국이 전 세계 돈의 75%를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알레스카를 소련으로부터 720만 달러에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제17대 미국 대통령인 ‘엔드루 존슨’입니다. 
존슨은 아내 한 사람 잘 만나 세계를 움직이는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 한 사람 잘 만나도 인생이 달라지고 변화되는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와 회복의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오늘 이 아침 저와 여러분도 그런 상상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와 회복의 역사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인생이 놀랍게 변화되고 축복 받은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 여인은 누구입니까?
7절에 보니 그 여인은 그저 이름 모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나요? 
이 여인이 예수님을 사모함으로 찾아 나아왔나요? 아닙니다. 
7절 이 여인이 이 우물에 물 길러 오기 전 예수님이 먼저 오셔서 이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나요? 

3-4절을 볼까요?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갈 때 베뢰아쪽을 통과하여 가든지 혹은 다른 길을 선택하여 감으로 사마리아 지역을 피하여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이 사마리아 지역은 원래는 한 민족이였고 한 핏줄이였지만 주전 720년경 앗수르 군대의 침략속에서 유대인들을 말살 시킬 정책으로 이 지역에 이방인들을 많이 이주시켜 유대인들과 강제로 혼인하게 함으로 혼혈이 되게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이 지역 즉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도 하지 않고 심지어 이 지역을 지나치지도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대인들이 상종도 하지 않고 지나가지도 않는 이 지역 사마리아 한 가운데 수가성에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들어가셨고 그 우물가에서 바로 이 이름 모를 한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은 이 여인이 사람들이 다 나몰라라하고 혀를 쯧쯧차며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돌멩이라도 보이면 야 더러운 년아 하고 닥치는대로 바로 던지려고 하는 그런 여인이었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버리고 다 외면하고 다 욕하고 다 조롱해도 오직 예수님 한 분은 이 여인의 예수님이 되기 원하셔서 바로 그 버려진 땅, 바로 그 수가성 우물곁에서 그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00명 1000명 10000명의 사람이 다 여러분을 버리고 욕하고 조롱하고 떠나가도 주변의 돌멩이를 들고 여러분을 향해 죽일 듯이 던져대도  예수님 한 분만은 여러분 옆에서 여러분을 감싼 채 그 돌멩이를 함께 맞아주실 주님이심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처음으로 깨닫게 되는 영생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모든 사람이 다 버려도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으실 한 분 예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이 아침도 이 예수님이 모든 사람이 다 떠나고 다 버리고 다 외면하고 다 손가락질해도 오직 우리를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는 나의 예수님이심을 믿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 여인이 이 사마리아하고도 수가라는 한 성에 이 우물가에 6절의 표현을 보면 육시라고 하는 정오의 시간에 물을 길러 나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이 이름 모를 가련한 여인을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변함없이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두 번째 영생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먼저 찾아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 그 여인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했을 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찾지 않았을 때 여인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2000년전 이 사마리아 여인 뿐 아니라 오늘 이 시대 우리를 향하여서도 영생수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해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지 않아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먼저 찾아오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이 아침에도 이 예수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이 아침 여러분의 아픔이 무엇이고 상처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무엇 때문에 눈물 흘리며 때로 가슴을 치는 지 무엇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낙심하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참된 행복을 경험하게 된 것처럼 오늘 이 아침 우리 모두가 다시 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참된 행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렇게 여인을 기다리던 예수님은 7절에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이 제일 먼저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을까요? 
그냥 물도 아니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주실 수 있는 예수님께서 왜 굳이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신 것일까요? 말씀 드린 대로 예수님은 이 여인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지금 이 여인이 뜨거운 한낮 12시에 이 우물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몰래 조심스럽게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물 때문이 아닙니까? 물이 아니었다면 물이 필요 없었더라면 이 여인은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오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여인에게 있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그것은 바로 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이 여인만의 필요가 아니라 곧 예수님의 공통 관심사요 공통의 필요였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 번째 영생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정확하고 세밀하게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무엇입니까? 흔히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게 되고 그리고 그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청년회에 나오면 예쁜 아가씨를 사귈 수 있겠다고 생각한 한 청년이 무던히 애를 썼는데도 영 성과를 올리지 못하자 그 방면에 도사인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친구 : "내 하는 것을 잘보고 배워." 마침 한 예쁜 자매가 다가와 샬롬하며 인사를 하자 
친구 : "저~ 자매님은 제가 어떤 찬송가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찬송가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힌트를 드리면 401장에서 410장 사이에 있 어요.
"자매1 : "음~ 혹시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송 아닌가요?" 
친구 : "우와~ 자매님은 오늘 저녁 저와 저녁 식사를 같아하는 행운에 당첨 되었습니다. 79번째만에 처음으로 맞추셨군요." 
그리곤 그 청년에게 친구 : "봤지? 이렇게 하면 되는거야." 
방법을 터득한 청년은 맘에 드는 어떤 자매를 찾아가서 
청년 : "저~ 자매님은 제가 어떤 찬송가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찬송가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힌트를 드리면 401장에서 410장 사이에 있어요.
" 자매2: "혹시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이 찬송 아닌가요?
" 청년 : "아깝네요. 저는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405장이라고 하셨으면 저녁 식사에 초대를 하려고 했는데..." 그리고는 "난 어째 단번에 안 되지? 79번째가 될 때까지 계속 다녀야될라 나?"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랑은 관심의 표현이고 공통의 관심사에 관심을 기울일 때 사랑은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장 필요로 하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이 아침 영생수 예수님께서 반드시 그 필요를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이 여인의 필요를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 표면적인 필요보다 더 중요한 본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물을 달라고 요구하는 예수님의 부탁에 대해 여인은 11절에 보니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그 생수를 얻겠냐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13절-14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 우물물보다 본질적으로 더 중요하고 필요한 물이 있다는 것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 샘물인데 그것은 바로 당신 예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처음에 무엇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 나올 수 있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무엇이 아니라 그 무엇을 통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주시는 이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마시게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그토록 목말라하는 그 물 때문에 목마르거나 힘겹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의 목마름을 조금 해결 받는 것 정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마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형통의 고기 몇 마리 얻는 것 정도가 아니라 언제든 형통의 물고기를 낚아올릴 수 있는 형통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28-30절입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처음 이 우물에 왔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물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28절 이제는 그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자기의 가장 중요한 필요가 이제는 내동댕이 쳐져도 아무렇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것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그것이 이제는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치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의 그 뛰어난 학식과 그의 자라온 인생의 배경등을 다 배설물로 여긴것처럼 이제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 여인이 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저녁이나 아침 선선한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 낮 12시에 온 것입니까? 사람들의 그 뜨거운 시선을 견디기 어려워서였습니다. 만나면 수근 대고 손가락질하고 침을 뱉고 욕하는 그 사람들을 견디느니 차라리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견디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렇게 사람들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고 그렇게 숨고 싶고 나서고 싶지 않던 이 여인이 어떻게 동네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이 예수를 와서 보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또 그 선언으로 30절에 보니 동네에서 그들이 예수 앞으로 올 수 있었을까요?

영생수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이제는 그 누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고 그 누구앞에서도 숨고 싶지 않고 그 누구 앞에서도 나서고 싶지 않은 과거 죄 많고 한 많고 슬픔 많은 외로운 여인이 아니라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고 행복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진정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왜 만나야 할까요? 그것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조금 채워지길 바라는 간절함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부족한 그 무엇을 어떻게 겨우 조금 채울 수 있을까 간신히 바라고 꺼져가는 촛불 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나 자신이 완전히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누구 앞에도 설 수 없던 자가 그 누구 앞에도 설 수 있는 자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자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고개를 들고 살 수 없는 자가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자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세상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일본에 한 어린소년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를 기를 수가 없어서 자기 남편의 본처에게 그 아이를 맡겼습니다. 이 어린 소년은 전혀 얼굴을 모르는 이복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 다른 형제들은 이 소년을 괄시하고 멸시했습니다. 너는 기생의 아들이지, 너하고 우리는 근본이 달라. 너에게는 더러운 피가 섞여 있어. 그들은 그를 핍박했습니다. 이 어린 소년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우연이 마루턱에 앉아있는데 속에서 울컥하고 끓어 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토해서 잡아보니까 붉은 핏덩이였습니다. 놀래서 병원에 갔더니 그는 이미 폐결핵 3기였습니다. 중증환자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치료해줄 사람도 없고 치료 받을 돈도 없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만 기다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밖에서 북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달려갔습니다. 구세군 전도대가 북을 치면서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한 여인이 앞에 서 있습니다. 아줌마 나 같은 기생의 아들도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나요? 그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고귀한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날로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의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은 더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나아지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내가 하루를 살아도 남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살아야지 그는 자기 짐을 다 정리해서 리어카에 실었습니다. 다리 밑 빈민굴에 내려갔습니다. 빈민군에는 폐병환자들, 걸인들, 노숙자들이 몰려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그들을 섬겼습니다. 발을 씻겨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약을 구해다주고 그들을 섬겼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일 년을 못 넘긴다고 했지만 이 사람은 75세가 넘도록 장수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일본 교회가 자랑하는 성자 가가와 도요이코 목사님 잘 모르시겠죠? 우찌무라간조이십니다. 우리는 그를 내촌감상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는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비운의 운명이였지만 그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서 복되고, 선한 일을 하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행복한 생애를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영생수 예수님을 만남으로 여러분의 삶의 이런 놀라운 변화와 회복과 축복이 함께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자 이제 마지막 가장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도대체 어떻게 이 여인에게 이런 놀라운 변화와 기적이 있게 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15절-16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이 여인은 이 영생수를 경험하기 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남편을 데려오라.. 
여인은 이 말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 분이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지? 여인은 17절 남편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18절 예수님은 이 여인이 정말 깜짝 놀랄 말씀을 하십니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여인이 이 남편의 문제에 대해 해결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으로 가지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부분에 보면 20절 이후 바로 예배에 대한 부분이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23절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배를 통하여 회복될 때 변화가 있음을 기적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의 인생이 변화되지 않을까요? 끓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물은 아무 때나 막 끓어오르지 않습니다. 물은 반드시 일정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야 수증기로 변화되게 됩니다. 오랜 시간 그릇 속에 담겨있다고 해서 그릇속의 물이 수증기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릇속의 물이 정말 뜨겁게 가열되었는지가 그 물을 변화시키는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변화되려면 우리의 삶이 변화되려면 오랜시간 교회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에 진정한 변화는 뜨거운 회개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앞에 내 남편을 부끄럽지만 다 데리고 올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 남편을 집에 남겨두고 있는 한 여전히 우리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 여러분의 남편은 누구, 혹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 막고 있었던 죄악의 쓴 뿌리, 깊은 내면의 불순물은 무엇입니까? 오늘 이 시간 그 남편을 주님 앞에 고백합시다. 주께서 용서하여 주시고 주께서 자유케 하여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사람들이 다 포기하고 손가락질하고 조롱하고 돌멩이를 던지켜 내쫓던 그 한 여인을 위해 유대인들이 돌아가는 그 땅 조롱받는 그 땅 사마리아속으로 수가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포기하고 조롱하고 돌멩이를 던지는 그 여인을 기다리시고 만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0명 100명 1000명 만명의 사람들이 다 뭐라고 하고 조롱하고 욕하고 심지어 돌멩이를 던진다 할지라도 오직 나의 주 예수님만은 나와 함께 함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은 의인의 예수님이 아니요 죄인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오늘 이 아침 어떤 모습으로 왔든 괜챦습니다. 우리가 오직 우리에게 은혜 베푸실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주실 예수님을 믿고 그 분 앞에 나아간다면 주께서 반드시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켜주실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남편입니다. 나의 남편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드러내고 데리고 와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 남편을 주님은 알고 계시기에 그것을 고백하며 그것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진정한 예배가 오늘 이 시간 회복된다면 우리는 진정 놀라운 변화와 회복의 주인공으로 진정한 행복과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아침 간절히 기도합시다. 우리가 남편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시도록 오직 우리 주 예수님만 우리의 남편으로 삼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럴 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 예수님께서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성령의 생수를 부어주실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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