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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옷을 입으세요! (골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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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옷을 입으세요! (골 3:12-17)

<우리의 주름살은 영광의 훈장>

오늘은 2012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또 한해가 속절없이 지나가는군요. 너무나 신속하게 왔다가 너무도 신속하게 사라지는 세월이 아쉽기만 합니다. 늘 그랬지만 2012년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하루도 그치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경제적으로 너무도 어려운 한해였습니다. 

한때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로 이름이 높았던 그리스가 국가부도 상태에 내몰릴 정도로 구라파의 경제사정은 최악이었습니다. 이제 전 세계가 한몸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유럽의 경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안방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현실에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서민들의 살림이 참 어려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교우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심심한 위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이제 그분들에게는 다가오는 2013년도가 경제적으로 재기하는, 소망 가득 찬 새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그밖에 자녀문제를 비롯한 가정문제나 건강문제, 사업문제, 이런저런 문제로 고통당하신 분들께도 우리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반드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해의 끝자락에 서면 우리는 거울 앞에 비췬 우리의 모습을 관찰합니다.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됨에 따라 머리카락도 그만큼 더 희어졌습니다. 전에 없던 주름살도 몇 개 더 생겼습니다. 나이는 못 속인다고 했는데, 정말 우리의 외모야말로 가는 세월을 속일 수가 없게 만듭니다. 아무리 의술이 좋아졌고 젊어지는 건강식품을 섭취하고, 또 주름살을 없애준다는 화장품을 날마다 바른다고 할지라도 눈에 띄게 늙어가는 우리의 외모는 누구도 감출 수 없습니다. 

성탄절에 누구인지 모르지만 우리 교인 한 분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내리교회에 오셨을 때 머리카락 새까맣게 젊었는데 흰 면류관을 쓰셨네요. 우리 주님께서 황금면류관을 씌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참 아름다운 격려의 메시지였는데 그 메시지를 읽은 뒤, 손거울을 들고 사방으로 돌려가며 제 머리카락을 유심히 살펴봤더니 정말 흰머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늘 마음으로 젊다고 생각했는데 머리카락은 그렇지 않았구나, 새삼 나이가 든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머리카락이 허옇게 세기는 하지만 잘 빠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머리 세는 것은 보지 않고 머리숱이 많은 것만 보고 감사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나이 한 살씩 더 먹게 되면 사람들은 거울을 멀리 하게 됩니다. 그 옛날 아름답던 모습이 시들어져 초라해지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도 이마 위에 여러 개의 선을 그리고 있는 주름살이 보기 싫어서 일부러 거울을 멀리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주름살을 내 젊음을 빼앗아간 원흉으로 보지 말고 영광스러운 훈장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 온갖 세월의 풍상을 하나씩 이겨낼 때마다 주름살이 하나 둘 생겨났다면 그 주름살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나이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한해의 마지막 주일에 외모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각자 나름대로의 인격과 지내온 내력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곱게 자란 사람, 험하게 자란 사람, 모두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 링컨이 사람이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악한 사람이 선한 표정을 지을 수는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얼굴은 우리의 마음과 인격과 교양과 신앙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외모를 더 젊어지고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각종 비타민을 섭취하고, 주기적인 운동을, 심지어 보톡스 주사를 맞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고 해서 우리의 얼굴이 더 사랑스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속에 사랑과 평화가 넘쳐나서 우리의 모습은 저절로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다섯 벌의 황금옷> 

사도 바울은 오늘 봉독한 골로새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름다운 내면의 옷을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옷이 날개라는 속담도 있듯이 어떤 옷을 입는가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구한말 서양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그 때 훌륭한 옷을 입은 양반들이나 궁중귀족들의 모습은 지금 봐도 참 멋집니다. 그런가 하면 가난한 상민들의 사진은 짚신을 신고 아무렇게나 옷을 입은, 참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상민들에게 양반이나 왕족의 옷을 입혀놓으면 전혀 딴 모습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우리의 타고난 생김새는 아주 특출하게 잘 생긴 사람도 있겠지만, 다 거기서 거기이지요. 다만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가꾸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좋은 옷을 입으면 분명히 우리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세상의 좋은 옷은 돈이 많이 듭니다. 또한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부단히 더 좋은 새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오늘 바울 선생이 말씀하시는 옷은 세상의 옷과는 전혀 다릅니다. 돈 주고 살 필요도 없고 화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옷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옷입니다. 믿음의 옷입니다. 황금처럼 빛나는 옷입니다!

신기하게도 이런 옷을 입으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나이 많아 머리카락이 세고 주름살이 늘어가도 신기하게 평온하고 우아해 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존경심과 평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세상의 화려한 옷을 입고 좋은 화장품을 발라 꾸며낸 얼굴은 뭔가 깊이가 없어 보이는데, 바울 선생이 추천하는 이런 내면의 옷을 입으면 우리의 인격이 고매해집니다. 향내가 감돌고 시들지 않는 기쁨을 선사합니다. 여러분, 오늘 한해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이런 옷을 입고 새해를 맞고 싶지 않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12절에서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에 적합한 옷을 입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자기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옷은 우리의 신분과 직업을 보여줍니다. 의사는 의사의 옷이 있고, 판사는 판사가 입어야 할 옷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친히 선택해주셔서 거룩하고 사랑받은 자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옷은 어떤 옷입니까? 12절에 보니까 다섯 가지의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이지요.

우리가 날마다 옷을 갈아입는 행위는 참 당연하고도 익숙합니다. 가장 오래된 습관처럼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면 제일 먼저 아무 생각 없이 으레 옷부터 갈아입기 마련 아닙니까? 이제 하나님이 선택해주셔서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옷을 입듯이 아주 익숙하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생활 속에 나타내야 합니다. 옷을 입는 행위가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한 습관이 되듯이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이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한 생활 습관이 되게 하라는 당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

이 다섯 가지 옷을 입으라고 부탁한 바울 선생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을 강조합니다. ‘용서’와 ‘사랑’과 ‘평화’와 ‘감사’입니다. 먼저 13절을 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당신을 못 박는 원수들을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용서해야 합니다. 세상은 온갖 윤리와 도덕 규칙과 규범을 만들어 고발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갖지 못한 미덕이 바로 용서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을 뒤따르는 우리 교회는 용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그 어떤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용납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14절을 보세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바울 사도에게 사랑은 으뜸가는 기독교의 주덕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으므로 이제는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독일 히틀러의 나치정권에 저항해서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가 나중에 튀빙겐 대학교와 함부르크 대학교의 총장자리에 까지 올라간 헬무트 틸리케의 자서전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퍽 교만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스’라고 하는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자기보다 뒤에 쳐진 친구들을 깔보는 교만기가 있는 아이였습니다. 어느 날 틸리케를 비롯한 친구들이 한스를 혼내주려고 학교 정문 뒤에 몰래 숨어서 한스가 등교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의 유지이자 교육감인 한스의 아버지가 때마침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나란히 나탔습니다. 그 도시에서 가장 존경받는 교육자였던 한스의 아버지는 아들과 헤어지기 전에 몇 번씩이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뺨을 만지작거렸고, 또 학교에 들어서는 한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몇 번이나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한스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잔뜩 벼르고 있던 친구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 그만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한스가 그 아버지에게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어떤 신성불가침의 ‘기이한 위엄’(Luther)을 느꼈던 것이지요. 틸리케는 이 어린 시절의 체험을 두고두고 자기의 설교시간에 소개했습니다. 한스의 아버지가 그 아들을 뜨겁게 사랑했듯이, 하나님 역시 우리를 눈동자처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흠이 많고 불완전하다고 해도 순전히 이 뜨거운 사랑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가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은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자녀입니다. 이제 그 사랑을 이웃에게도 나누어주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15절을 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평강은 너무도 소중한 선물이지요. 그런데 이 평화의 선물은 우리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도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라고 했습니다. ‘주장한다’는 말은 마치 운동경기를 주관하는 심판이 경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듯이 그렇게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가라는 당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17절 말씀을 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감사는 내 마음을 낮은 곳에 둘 때 생깁니다. 높은 곳에 마음을 두면 언제나 불평과 원망이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부부 사이에 늘 티격태격 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남편 하는 일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교사인 아내가 볼 때 남편은 꼭 밉상스러운 일만 골라서 했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것은 기본이고 술과 담배에 까지 찌들려 사니까 너무 싫었습니다. 이렇게 미워지기 시작하니 연애할 때 그렇게 멋있게 보였던 넓은 이마와 쭉 뻗은 콧잔등까지도 보기 싫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있고 주변 사람들의 눈총도 있고 해서 그렇다고 쉽게 갈라설 처지도 못되었기에 그야말로 ‘한 가족 두 지붕’으로 억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늘 이렇게 아웅다웅 다투던 부부가 어느 순간부터 눈에 띄게 금슬이 좋아졌습니다. 등산을 같이 다니는가 하면 서로의 취미와 습관도 존중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에게 그 비결을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저 여자들 말만 잘 들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여자들이라니요?” “한 사람은 아내이고, 다른 여자는 네비걸, 내비게이션에서 길안내를 하는 여자인데 이 두 여자의 말만 잘 들으면 만사형통입니다.” 

그랬습니다. 어느 순간 남편이 아내의 눈높이로 내려와 아내가 하는 말은 무조건 “당신 말이 맞소!” 하고 맞장구를 치니까 싸울 일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오늘 여러분도 어떤 처지에 있든지 마음을 낮추시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제 결론을 맺습니다. 

여러분, 2012년을 보내면서 새해에는 더욱 더 젊어지기 원하십니까? 우아하게 보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쁜 옷을 입으셔야 합니다! 바울 선생이 추천하는 옷을 입으십시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으십시오! 여러분이 이 옷을 입는다면 분명히 여러분의 모습은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이 옷에서부터 여러분의 인격이 아침햇살과 같이 찬란하게 온 세상을 두루 비추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옷을 입는 순간 여러분의 인격 깊은 곳에서부터 용서와 사랑과 평강과 감사의 샘물이 흘러나와 이 세상을 더욱더 활기차고 아름답게 만들 것입니다. 

지금은 새해 맞을 준비를 할 때입니다. 새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새마음으로 새소망 가운데 희망에 가득 찬 새해를 맞이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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