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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세례를 받으세요! (사 43:1-7; 눅 3:15-17, 21-22; 행 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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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를 받으세요! (사 43:1-7; 눅 3:15-17, 21-22; 행 8:14-17)     

<말씀의 능력으로 예수 믿고 물세례를 받은 사마리아인들> 

오늘은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이면서 수세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세례 받으신 날로부터 시작되니 주현절기에 세례와 관련된 말씀을 읽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오늘 저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말씀을 중심으로, 특별히 물세례가 아닌 성령세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8장은 이방인이 최초로 성령세례를 받은 놀라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고 업신여기던 사마리아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사람들은 단지 이방인, 외국인이라는 개념 그 이상으로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사람들이지요. 이런 이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와 똑같이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말은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성령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역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민족경계나 지역경계를 넘어 어떤 민족 어떤 지역에도 두루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먼저 8장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사마리아 지역에 놀랍게 역사했습니다. 4절로 8절을 보면 사마리아 지역에 놀라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곳저곳을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는데 빌립이라는 제자가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빌립의 말씀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빌립이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했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말씀 안에 역사했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들이 쫓겨나갔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았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표적으로 나타났던 것이지요. 

그래서 6절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빌립이 전하는 말을 따랐습니다. 빌립이 선포하는 말씀에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는 말이지요. 오늘도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이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있는 말씀이 되면 여러 가지 표징이 일어나고, 그 능력있는 말씀에 사로잡혀 듣는 사람마다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술사 시몬도 예수 믿고 물세례 받고 빌립을 따라 다니다>

이제 9절로부터 25절까지 사도행전에 나온 이야기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9절로 10절을 보세요. 사마리아성에 시몬이라는 한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마술을 부려 “자칭 큰 자”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도 신기한 마술을 많이 부리니까 높은 사람에서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 마술사 시몬을 칭송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10절)라고 칭찬하며 시몬을 따랐습니다. 11절은 높으나 낮으나 신분에 관계없이 왜 수많은 사람들이 시몬의 추종자가 되었는지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힙니다.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시몬이 행하는 마술을 보고서는 놀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습니다. 사람들이 높여주니 마술사 시몬 역시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자칭 큰 자”라고 으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어떤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능력인지 사람이나 귀신으로부터 온 능력인지를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나 귀신의 술수로부터 온 능력은 언제나 자기를 높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능력은 그 능력의 원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오직 하나님만 높이게 됩니다. 갖가지 마술을 부려 사마리아의 영웅이요 인기 스타가 된 시몬은 속임수를 통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와 같은 거짓과 술수를 순식간에 드러나게 하는 빛이신 예수님의 복음이 사마리아성에 들어오니 마술사 시몬이 맥을 못 춥니다. 12-13절을 보세요.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들어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복음”을 전했더니 남녀노소가 다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이방인 지역이 뒤집어졌다는 말이지요. 이 엄청난 말씀의 능력에 휩싸여 마술사 시몬도 엉겁결에 복음을 믿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칭 큰 자가 빌립의 제자가 되어 따라다닙니다. 

이제 참으로 중요한 말씀은 14절 이하에 벌어지는 사건에 있습니다. 사마리아성 전체에 말씀의 능력이 임하여 너나할 것 없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자 마술사 시몬도 그렇게 했습니다. 시몬의 문제는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 물세례만 받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군중심리 때문에 분위기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술수를 부리는 마술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의 능력에 이끌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성령세례를 받아 완전히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는다면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고 물세례를 받는 것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사람들이 그랬고, 무엇보다도 마술사 시몬이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에도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 예수를 믿고 물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성령세례 사건>

14절로 17절을 보세요. 사마리아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본부를 둔 사도들에게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시찰단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성에 급파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보니 정말 사마리아사람들이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 예수를 믿고 물세례를 받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성령세례를 안 받은 것이지요! 그래서 두 사람은 사마리아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세례를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세례를 받습니다! 

16절을 보세요.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즉, 물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도 함께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오늘 봉독한 누가복음에 보니까 물세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이 예수님 위에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처럼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동시에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물세례를 받은 이후 나중에 가서야 성령세례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 여기 사마리아사람들이 꼭 그랬지요! 예수 믿고 물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세례는 받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에 보면 성령은 바람이 자기 멋대로 불듯이 성령 역시 자유롭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역사할 수도, 물세례를 받은 후 나중에 가서야 성령세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성령 역시 임의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지요! 성령은 우리 맘대로 오고 가게 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사마리아사람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했더니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제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이 광경을 지켜본 마술사 시몬의 반응입니다. 18-19절을 보세요.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를 했더니 사람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술사였던 시몬이 전직을 못 속인다고, 자기도 한 번 성령받게 하는 능력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주면서 자기에게도 그런 권능을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여기 시몬은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 예수를 믿고 물세례까지 받았지만 아직 성령세례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직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 했습니다. 마술해서 사람들을 속여먹던 옛 습관을 청산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성령의 능력도 살 수 있다고 착각했지요. 돈 주고 성령의 권능을 살수만 있다면 자기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의 능력을 받고 자기는 또 다시 사마리아성에서 가장 유명한 인기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이와 같이 천박한 상업주의적 생각을 품고 있는 시몬에 이고 베드로가 심하게 꾸짖습니다. 20절로 23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성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돈으로 살려고 한 당신은 돈과 함께 망할 것입니다!” 돈을 주고 성령의 권능을 사서 그 성령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 이름을 높이려고 했던 시몬은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시몬에게 회개와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러잖아도 말씀의 능력을 접하고 난 뒤 예수를 믿고 물세례를 받았던 시몬이 또 한 번 사도 베드로의 일갈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24절에 보니까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베드로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과연 시몬이 진실로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났는지, 베드로가 시몬의 중보기도 요청을 들어주어서 시몬에게 화가 미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는 그 결말을 알 수 없도록 미완성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중보기도를 요청한 것으로 보아 베드로가 그 기도를 들어주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성령을 돈 주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시몬으로부터 아주 유명한 영어 단어 하나가 생겨납니다. “SIMONY”라는 말이지요. 거룩한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물매매”, 혹은 “성직매매”를 “시모니”라고 부르지요.   

<“빌립” VS “시몬”, “빌립의 복음” VS “시몬의 마술”>  

① 빌립과 시몬의 대결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해봅시다. 사마리아성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끈 두 사람이 있습니다. 빌립과 시몬입니다. 빌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갖가지 표징을 일으켰고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시몬은 마술을 통해서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습니다. 하지만 빌립이 전한 복음의 능력이 시몬의 마술을 이겼습니다. 

빌립과 시몬의 차이, 아니 빌립이 전한 복음과 시몬의 전한 마술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복음은 하나님의 통치를 알리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마술은 이런저런 돈거래를 해서 사람들을 속여서 자신의 인기와 이득을 챙기는데 있습니다. 적어도 빌립과 시몬의 대결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마술이 복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자칭 큰 자”라는 착각 속에 살아왔던 시몬은 복음의 능력을 접하고 자기보다 훨씬 더 큰 분이 계심을 알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세상의 속임수가 진리의 복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② 성령세례의 중요성

그 다음에 성령세례의 중요성입니다. 마술사 시몬은 다른 사마리아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었고 물세례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옛 습관을 청산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장논리에 충실한 그가 성령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베드로에게 돈까지 건넵니다. 

여기 예수 믿고 물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세례는 무늬만 크리스천으로 만들지, 속 알맹이는 아닙니다. 오직 성령세례를 받을 때 속사람이 거듭날 수 있습니다. 진짜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아무 값없이 사모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들에게 오늘도 성령은 선물로 주어집니다! 주의 종이 안수할 때 임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바람같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오늘 이 시간에도 성령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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