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천국은 마치(4) : 밭에 감추인 보화 (마 13:44-45)

첨부 1


천국은 마치(4) : 밭에 감추인 보화 (마 13:44-45)

한국 견문기에 "루벤츠 오프"는 "조선은 금이 지상에 노출되어도 캐지 않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켄베르"의 조선소개 기록 중에서 조선은 금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 왕실과 교섭해야 캘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페르트"도 조선은 금이 가장 많은 나라라고 소개했습니다. 청나라 장수 "원세개"의 수행 참모들이 기록한 문서에도 평안도에서는 금이 돌처럼 굴러다닌다고 했습니다. 
선교사들의 보고를 중심으로 엮은 "달레"의 한국교회사에도 조선은 땅을 조금만 파도 금이 나오고 심지어 냇가의 모래에서도 나온다고 했습니다. 

명나라는 조선에 황금을 요구했고 이에 견디지 못한 조정은 금광이 모두 폐쇄되었다고 선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황금의 나라로 소문이 나자 유럽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종은 내탕內帑을 금광 대여로 충당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운산금광은 미국인에게, 은산금광은 영국인에게, 선천금광은 독일인에게, 수안금광은 일본인에게 넘어갔습니다. 
전국에는 금노다지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금노다지 발굴에 미쳐서 급기야는 문전옥답과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금광발굴에 쏟아 붓게 되었습니다. 조선 팔도에는 벼락부자는커녕 벼락거지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투자가 아닙니까. 제가 사는 동네에도 금을 채굴하기 위해 파놓은 굴이 있는데 그곳에는 아직도 반짝이는 돌들이 눈에 많이 뜨입니다. 아마 채산성이 없어서 폐광시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은 이미 보화를 찾은 두 유형의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밭에서 일하다가 땅속에 묻힌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보화를 캐서 자기가 가져갈 수 없는 것은 그 땅에서 출토된 보화는 그 땅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보화를 다시 땅에 묻어놓고 와서 자신의 전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땅을 샀습니다. 

또 한 종류의 사람은 진주를 구하러 다니는 장사꾼입니다. 마침 그는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이 비유가 주는 메시지는 하늘나라(교회) 운동은 자신의 전 소유를 팔아 보화를 찾는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이 두 사람 모두 비 보통의 상태로 보일 수밖에 없는 행동입니다. 이러한 행위를 일컬어 미친 짓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고 했습니다. 

Ⅰ. 복음진리를 발견한 기쁨의 광기입니다. 

본문 13장 44절에 『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 13장 45절에 『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라고 했습니다.
근동에서는 약탈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보화를 땅에 감추어 두는 예가 흔했습니다. 만일 일꾼이 일하다가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면 당연히 그 밭주인의 소유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Derrett).

이 비유에서 밭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감추인 보화나 극히 값진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농부나 상인은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교회)의 최상의 가치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라고 했습니다(고후 4:7).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 만국의 보배 』라고 했습니다(학 2:7).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 『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 보배로운 산돌 』이라고 했습니다(벧전 2:4). 『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이라고 했습니다(벧후 1:4). 『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신다 』고 했습니다(욥 22:25).
밭에 묻혀있는 보화를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희귀성에 놀라고 그 가치에 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두 배입니다. 
감추어져 있는 보화가 누구에게나 공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살후 3:2).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고전 1:21).
불교는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자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안다고 합니다. 희랍인들은 진리를 타고났기 때문에 이런 저런 간섭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기독교는 인간 스스로 진리를 소유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전하는 것과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육체가운데 장애가 있으면 안되는 기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듣는 귀입니다. 듣지 못하면 안됩니다. 기독교를 계시 종교, 타율주의 종교라고 할 때 듣는 기능의 필연성이 전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곧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 진리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했습니다(요 8:32).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Ⅱ. 복음진리를 소유한 기쁨의 광기입니다. 

본문 13장 44절에 『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 13장 46절에 『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고 했습니다.

보화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귀한 보화를 소유하고자 하는 애착이 함께 빚어낸 기쁨의 광기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고 했습니다.

소유적 욕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신 있게 진단한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유를 겨냥한 실존을 유일한 생존방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유에 대한 분별력이 없이 소유 지향적 사회는 타락한 불신앙적 사회입니다. 예컨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일은 소유와 돈마저 금기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일요일은 즐기는 날, 소비의 날, 자기 자신으로부터 무한정 도피되는 쾌락의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결코 소유가 존재를 앞서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소유 윤리의 기본입장은 공유와 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이타적 윤리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소유 윤리는 자기 주권을 포기하는 윤리입니다(마 5:39-42; 눅 6:29이하).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마 5:44-48; 눅 6:27).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레 19:18). 네 이웃을 심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마 7:1-5; 눅 6:37). 

욥기 22장 24-25절에 『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 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11장 1절에 『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고 했습니다.

복음을 소유함에 있어서는 양보나 타협할 수 있는 대용품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에 『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6-27절에 『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두 절대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진리 하나만을 절대화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상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복음진리는 자신의 전 소유를 다 팔아서 사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만이 아니고 자신에게 있어서 교환가치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주고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 즉 자신의 몸까지도 드려서 사야 되는 복음진리입니다. 이것이 신행일치의 순교적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고 나서 자신에게 남는 것이 없어야만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요청대로 가루 한 움큼과 병에 조금 남은 기름을 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엘리야의 말대로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했습니다(왕상 17:8-16). 내 마음과 내 가진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이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1장 4절에 『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에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빌 4:4). 지극히 가치 있는 복음진리를 소유할 때 기쁨이 넘칩니다. 그러나 이와 병행해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29절에 『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2절에 『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2절에 『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1절에 『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Ⅲ. 복음진리를 체험하는 기쁨입니다.

본문 13장 44절에 『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 13장 46절에 『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고 했습니다.
복음을 믿으려면 자기의 모든 소유가 복음보다 말할 수 없이 천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7-8절에 『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땅에 살지만 불신자들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의무적 삶을 넘어서 사명적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명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잠언 2장 1-12절에 『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진리를 찾아 소유한 그 가치는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지옥에서 천국입니다. 영벌에서 영생입니다. 멸망에서 구원입니다. 저주에서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구원의 복음을 소유하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보화가 묻힌 밭(교회)을 사고 극히 값진 진주를 사는 결단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결코 미친 것이 아닙니다. 미쳐야 미칩니다. 미치지 못하면 미치지 못합니다. 
부자 청년은 자신의 소유가 아까워서 자신의 소유로 진리를 살 수 없었습니다(마 19:20-22). 자기 소유를 다 판다는 것은 자기 주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곧 자기 부정, 자기 파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남편까지도 포기하고 생활의 도구인 물동이까지도 내려놓았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아모스는 뽕나무 밭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모세도 왕자의 신분을 포기했습니다. 
예수 제자들도 생업인 고기 잡는 그물을 버리고 자신의 특기를 내려놓고 주를 따랐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주를 따랐습니다. 

미국령이 된 오늘의 알래스카는 옛 제정 러시아로부터 미국이 샀습니다. 제정 러시아가 재정난으로 인해 분쟁이 생겨 당시 캐나다를 장악하고 있던 영국의 해군이 언제든지 알래스카를 침략해 올 경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알래스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알렉산드르 2세는 이 영토를 미국에 팔기로 결정했고 1867년 3월 초에 주미 러시아 공사 예두아르트 스테클에게 미국 연방 국무 장관 스워드와 협상에 들어가도록 지시했습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스워드는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제국과 협상을 벌여 알래스카를 불과 720만 달러로 매각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 춥고 황량한 땅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러시아도, 심지어 그 땅을 산 미국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쓸모없는 땅으로 알려졌던 이곳에서 금이 발견된 것뿐만 아니라 은, 아연, 석유, 철광석 등 각종 자원과 금속들이 계속하여 발견되었는데 당시에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철광석만으로도 720만 달러의 몇 배나 되는 4,000만 달러나 되었다고 합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러시아가 땅을 치고 후회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거기서 나는 자원(지하, 수산)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보화가 묻힌 밭을 삽시다. 고요하게 아무도 모르게 삽시다. 나의 전부를 쏟아 부어 삽시다. 하나님 나라 곧 교회를 산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절대 하나님 중심, 절대 성경중심, 절대 교회중심의 생활에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극히 값진 진주를 삽시다. 이제는 그만 돌아다녀도 됩니다. 극히 값진 진주를 구했으니까 말입니다. 

이제는 밭에서 보화가 발견될 때마다, 극히 값진 진주를 만날 때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사는 순서만 남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에 일거리가 생길 때마다, 나에게 사명이 부여될 때마다 내가 나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나의 소유를 다 팔아 나에게 부여된 사명을 감당하라는 말입니다. 샀으면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자식에게 빼앗기고, 인정에 빼앗기고, 육체에 빼앗기고, 재물에 빼앗기고, 명예에 빼앗기고 자신의 교화가치를 위해 이른바 스펙 쌓기에 빼앗기면 안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 『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