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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느 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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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느 2:11-20)

2008년 2월 11일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노숙자의 방화에 의해 불에 타 전소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전 국민이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전에도 대형붕괴 사고들이 많이 있었지만 숭례문 화재사건이 우리 국민들에게 특히 큰 충격을 준 것은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600년 역사를 지닌 국보 1호가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질 때 이를 지켜보던 우리 국민들의 마음도 다 무너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복원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5년째가 되는 지금 얼마 있지 않으면 복구된 숭례문을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무너진 국민들의 자존심을 복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제 드디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온 것은 오직 한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왜 이토록 강력하게 성벽 재건을 추진하려고 하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허물어지고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이토록 강력하게 추진한 것은, 예루살렘 성벽이 백성들을 보호하는 기능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무너진 성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너진 신앙적 자존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수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너진 성과 불타버린 성문을 볼 때마다 이방인들은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17절 말씀에서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향하여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언급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은 단순한 건축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무너진 신앙적 자존감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재건을 그토록 간절하게 소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와서 보니 성벽재건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느헤미야가 파악한 성벽재건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벽이 오래 시간동안 무너져 있었고, 그 무너진 정도도 심하기 때문에 재건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벽은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 건축하는 것처럼 완전히 다시 쌓아야만 했습니다. 

둘째는, 백성들이 성벽재건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세워야 할 것은 무너진 성벽뿐만 아니라, 무너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입니다. 어쩌면 성벽을 다시 쌓는 것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너진 마음을 재건하는 일이 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는,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원수들이 끊임없이 방해하고 위협합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동족가운데서도 이들과 동조하여 성벽공사를 방해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느헤미야는 성벽에 대한 조사를 비밀리에 마친 것입니다. 

그러면 느헤미야는 이처럼 어려운 환경가운데서 성벽을 재건하기 구체적으로 행한 일들이 무엇입니까? 

느헤미야는 유다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일을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맡은 예루살렘 성벽재건공사가 아무리 중요하고 급하다 해도 곧바로 그 일을 서둘러 시작하지 않고,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느헤미야가 단순히 여행의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쉬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전에 행하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이 며칠간은 마음에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성벽재건이라는 큰일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느헤미야가 사흘 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해야 살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교회의 영적인 부흥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이 더디 이루어지고 있다면 이유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느헤미야처럼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 기도함으로 감동을 받은 헌신된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사람이 된다면 나로부터 우리 교회는 크게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흘의 준비기간이 끝나자 느헤미야는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12-16절에 보면 느헤미야는 한밤중에 일어나 몇몇 측근들만 데리고 예루살렘 성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 더욱이 느헤미야는 자신의 계획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남들이 다 자는 한밤중을 택해 성을 답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답사를 해보니 예루살렘성의 형편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성벽은 온통 무너지고 성문은 다 불타버렸습니다. 무너져 내린 성벽의 잔해로 길이 메워져서 나귀가 지나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너무 심각한 상황을 보면서 느헤미야의 마음속에 실망이 아니라, 그러기에 더더욱 성벽을 재건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개인적인 영적부흥과 교회적인 영적인 부흥을 꿈꾸고 있다면 먼저 우리의 영적인 현실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신앙의 현주소와 우리교회의 영적인 현주소가 어떠한지 믿음의 눈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나누어 드린 신앙점검표를 활용하셔서 나의 영적인 현주소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렇게 답사를 다녀온 후 성벽재건에 대한 의지가 더욱 확고해지지만 16절에 보면 방백들, 즉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한 일을 금방 알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훼파된 채 140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럭저럭 지내왔었습니다. 그래서 성벽 재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성을 중건하려고 시도했을 때마다 원수들의 공격과 음모가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너진 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재정적인 부담을 져야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은 결코 쌓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혼자 애쓴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은 재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살핀 느헤미야는 겉으로 보이는 성벽 재건보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잃고 절망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고 회복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줄을 깨달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곤충학자인 로스 차일드 박사가 벼룩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벼룩은 자기 키의 400배 높이를 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에 넣고 위에 투명 유리막으로 막아 놓으면 처음에도 높이 뛰다가 차츰 높이가 낮아지고 나중에는 유리막을 제거해도 그 높이만큼 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계를 통하여 좌절감을 경험적으로 습득하여 더 이상이 높이는 뛰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못 살아서, 힘들어서, 바빠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헌신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안 되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인원이 적거나 재정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교회당 건물이 적다고 해서도 아닙니다. 돈이 있어도, 힘과 능력이 있어도 마음이 무너져서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자신감과 자부심이 무너지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먼저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영적인 자신감과 자부심이 회복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여러분, 느헤미야는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무너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세우려 한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설득합니다.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이 말은 지금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있고, 성문이 불타 훼손되어 있는 것이 남의 문제가 아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의 문제임을 환기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지도자를 향하여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아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정신적, 정치적 구심점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하신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벽이 다 무너지고 문이 다 불타 없어진 채로 긴 세월 동안 방치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일은, 이 수치와 곤경은 우리 자신의 문제로 우리 스스로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민족적인 자부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이를 통해 잠자던 이스라엘 민족의 가슴 속에 다시 하나님의 백성, 선민으로서의 자존심과 성전 재건에 대한 의지가 불일 듯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느헤미야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성벽재건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열정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열정과 함께 지금까지 일어났던 자신의 간증을 들려줍니다.

오늘 본문 18절 전반절에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 단순이 자신의 개인적인 열정이나 인간적인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며, 모든 진행 과정에 하나님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백성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18절 후반절에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하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헤미야의 계획을 하나님의 일로 인정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제시한 일을 ‘선한 일’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관점입니까? 이 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일로 여기고, 온 백성과 방백들이 한 마음, 한 뜻, 하나가 되는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가 부흥하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성도들의 각 개인이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되는 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입니다. 이 선한 일을 위해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함께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한 번의 연설로 침체되었던 유대인들의 분위기를 단숨에 반전시킵니다. 지금까지는 불가능해보였지만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는 분위기로 바뀝니다. 그런데 이 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는 집요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나타납니다.

10절과 19절에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당시 사마리아 총독으로 상당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호른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입니다. 도비야는 유대인의 피가 섞인 암몬족의 족장이면서 산발랏의 참모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 게셈입니다. 그는 사마리아의 산발랏과 암몬의 도비야와 동맹을 맺은 자로 애굽 북동쪽에서 팔레스타인 남쪽까지 제법 광활한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 영주 출신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성벽을 재건함으로 지나치게 강성해 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이 세 사람은 공모를 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공사를 방해합니다. 

19절에 보면 느헤미야를 비웃고 업신여깁니다. 또 비난하고 협박합니다. 4장에서는 그들의 방해공작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사람들을 선동하여 느헤미야와 이간을 시키려고 합니다. 성벽 재건공사를 포기하도록 의욕을 감퇴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협박과 공갈을 치기도 하고, 느헤미야를 암살하려고 계략을 꾸미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벽 복원공사가 완공될 때까지 계속 걸림돌 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 밖에서만 이런 원수들의 방해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6장에 가면 이스라엘 지도자와 귀족들 중에도, 심지어 예언자나 제사장 중에도 이들과 결탁하여 느헤미야를 해치고 성벽재건을 방해하려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내부의 적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뜻하신 예루살렘 성벽재건은 안팎으로 수많은 방해와 공격을 받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좀 부흥하고 잘되려고 하면, 또 영혼구원을 위해 전도나 선교에 주력하려고 하면 반드시 방해와 공격이 있는데, 교회 밖에서는 악한 사단들의 집요한 공격과 방해가 계속되고, 교회 내부에서도 사단이 성도들을 유혹하여 방해를 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성장과 믿음생활을 잘하려고 하면 반드시 우리의 원수인 사탄이 훼방을 놓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일을 만들어 신앙이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신앙이 자라고 성숙해지는 것을 마귀는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해와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면 절대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은 정말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줍니다.  

본문 마지막절인 20절에 보면 이런 원수들에게 느헤미야가 한 말이 나옵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이 말에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시리니”입니다. 즉 우리는 지금 사람의 뜻이나 사람의 힘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성벽재건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방해하고 공격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셔서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일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이 일을 마쳤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받게 됩니다. 기업과 권리가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공격하고 조롱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방해하고 비웃는 사람들은 결코 어떤 기업도 권리도 없고, 그 이름이 기억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서 제외된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분깃도 축복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잘 기억하셔서 산발랏과 도비야처럼 영적인 부흥을 위한 하나님의 일에 방해자가 되지 마시고, 협력자가 되셔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성의 성벽을 재건하여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살 수 있습니다. 영적인 부흥과 신앙의 재건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까’하는 마음으로 영적부흥을 위해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이 시대의 느헤미야일 것입니다. 

허물어진 성벽을 재건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거할 성을 수축하듯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히 예배드리고, 믿음생활 할 수 있는 영적인 성벽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은 바로 이 시대의 느헤미야일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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