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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려면 (막 1: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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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려면 (막 1:21-28) 
  
예수님은 악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마25:41下)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마귀는 사탄을 말한다. 마귀의 사자들은, 귀신들을 가리킨다. 본래 사탄과 귀신들은, 모두 천사로 지음을 받았다. 

천사들은 하늘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천사장 가운데 하나인 루시퍼가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그때 천사들의 1/3이 그를 따랐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하늘에서 내쫓기고 말았다(계12:4). 

귀신은 영적 존재이기에, 사람처럼 죽는 법이 없다. 사람처럼 장가가거나, 시집가는 법도 없기에, 수가 줄지도 않고, 늘지도 않는다. 처음 창조되었던 수에서, 조금도 변함없이, 그 수대로 유지된다. 또 사람처럼 육신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에, 쇠약해지거나, 고단함을 느끼지 않는다. 

잠을 자면서 쉬는 법도 없고, 휴가를 가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악한 일만, 계속 할 뿐이다. 본문에 더러운 귀신이 나온다. 이는 귀신들 중에는 더러운 귀신이 있고, 상대적으로 깨끗한 귀신도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귀신은 더러움 자체이기에, 언제나 더럽고, 악한 짓만 한다. 

더럽다는 말의 뜻은, 용서받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탄과 귀신들은 선을 행하거나 깨끗함이 없다. 회개도 없고, 죄 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다. 따라서 영원한 불못에 던짐을 당할 수밖에 없다. 성경을 보면, 귀신은 사람을 미혹한다. 

(딤전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귀신에게 미혹되면, 더러운 사상과 태도를 갖게 되고, 더러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귀신 들린 사람은, 3가지의 특징이 있다. 

(1) 귀신은 몸 안에 거한다(25下).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으시며,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했다. 이는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가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2) 귀신은 몸을 지배한다(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그 사람의 발성 기관을 사용해서, 소리를 질렀다. 

(3) 귀신에게 괴로움을 당한다(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귀신은 나오면서, 그 사람을 해치려고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귀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영원한 불못에 던지실 줄 알기에, 두려워 떤다. 따라서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은 귀신이지, 우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귀신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마라.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롬8:31下)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그래서 귀신들은 예수님을 볼 때마다, 큰 소리를 지르며 부르짖었다. 그만큼 귀신들은 예수님을 무서워하면서, 두려움에 떨었다. 이 믿음으로 항상 승리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어떤 점이, 귀신들을 떨게 만들었는가? 

1. 예수님의 말씀이,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었다(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가르치셨다.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쳤는지, 본문은 밝히지 않았지만, 무엇을 가르쳤을까? 

(눅4:16)을 보면,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이는 예수님의 첫 설교로, 성경을 읽고, 성경을 가르쳤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은혜를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는 내용이다. 

(눅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했다. 

(눅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도, 성경을 읽고 가르쳤다. 따라서 가버나움에서도 예수님은, 늘 하시던 대로 성경을 읽고, 성경의 내용인, 구원자 되시는 메시아를, 가르쳤을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성경을 가르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랐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서기관들은,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했기에, 율법에 박식했다. 그래서 율법사라 불리기도 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쳤기에, 랍비(많이 아는 자, 선생)이라 불렸다. 그러나 그 당시 서기관들은, 권위 있게 성경을 가르치지를 못했다. 

그들은 과거의 이름난 랍비들의 견해를 인용해서, 성경을 가르칠 뿐이었다. 예를 들면, 이 구절을 ○○랍비는 이렇게 보고, ○○랍비는 저렇게 보았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달랐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전연 인용하지 아니했다. 언제나 예수님의 권위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했다. 

성경의 저자가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경의 저자다. 따라서 언제나 하나님의 권위와,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치셨다.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마침’이라는 단어는 ‘곧, 즉시’라는 단어이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치실 그 때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성경을 읽고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그 이유는, 두려움 중에 떨었기 때문이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회당에 있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후11:14). 

이처럼 귀신들도, 광명의 천사들로 가장하며, 사람 안에 숨어서, 은밀하게 역사하기를 좋아한다. 또 그 당시 회당에서 활동하던 유대교는, 진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형식만 남고 내용이 없는, 거짓 종교였기에, 귀신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회당에 들어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경을 읽고, 가르치자, 더러운 귀신은, 정체를 드러냈다. 쓰고 있던 가면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 정체가 드러나자, 두려움에 떨면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 더러운 귀신이 떨며, 소리 질렀는가? 예수님이 성경을 읽으시며, 예수님이 성경을 가르치실 때였다. 

예수님이 성경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던 것처럼, 또한 성경으로 귀신을 떨게 만드셨다. 우리가 무엇으로, 귀신을 떨게 만들겠는가? 세상의 학문이 아니다. 신비한 체험이 아니다. 열심 있는 봉사도 아니다. 특별한 은사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언제나, 성경만 순전하게 전파되어야 한다. 그래야 더러운 귀신들이, 교회 밖으로 내쫓기고,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이 자리에 들어오지 못한다. 오로지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2. 예수님의 심판이,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었다(24上).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이 말은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에게 하는 말이었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 했다. 

이는 ‘나사렛 사람 예수’, 혹은 ‘나사렛에서 온 사람’이란 뜻으로, 회당에 들어왔던 귀신은 예수님에 대해 ‘나사렛 사람’임을 강조하여,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으며, 따라서 천한 신분을 가졌음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메시아임을 부정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다. 

당시 일반 사람들의 통념 속에서는 ‘나사렛’이라고 하면, 경멸의 뜻으로 인식되어졌다. 왜냐하면 그곳은 종교, 문화적으로, 선민적 특권을 누리던 예루살렘과는, 동떨어진 이방의 초라한 마을이었다(사9:1-2). 나다나엘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무시하는 말을 했다(요1:46-47). 

(1)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더러운 귀신은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다른 모든 귀신을 대표해서,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께 물었다. 그 뒤에 나오는 질문이,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준다. 

  귀신은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했다.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는 “우리가 당신에게 무엇인가? 홀로 두라”는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니니까, 내버려 두라는 말이다. 더러운 귀신은 주님과 연관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지 않도록 만든다. 

(2)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이, 그들을 영원한 불못에 던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옛날 사탄과 귀신들이, 하늘에서 내쫓겼다. 그때 하늘에서 그들을 내쫓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다. 

따라서 귀신들은, 앞으로도 때가 되면, 예수님의 심판으로, 그들을 영원한 불못으로 던짐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임할 예수님의 심판을 두려워했다. 때가 되면 심판 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못에 던짐을, 알고 두려워 떨었다. 우리는 악한 자들을 불못에 던지는, 그 날과 그 때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에, 그 날과 그 때를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그 때가 언제 임하더라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믿음의 삶을 살자. 그래서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 칭찬을 받으며, 영원한 상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거룩한 분이다. (24下)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고 불렀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불렀다. 더러운 귀신은,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거룩하심을 알았다. 반면에 귀신은 더럽다. 

언제나 더러운 자는, 거룩하신 분을 두려워하며, 떨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신, 예수님의 거룩하심 앞에, 두려워하며 떨 수밖에 없었다.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을 때 떨었다. 

제자들은 변화 산에서,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을 보았을 때, 무서워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거룩하신 예수님을 뵈었을 때, 두려워서 죽은 자 같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는, 두려워하며 떨 수밖에 없다. 

그러니 더러운 귀신이, 거룩한 예수님의 앞에, 어찌 두려워하며 떨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사탄과 귀신들이, 하늘에서 내쫓긴 것도,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예수님은, 더러워진 그들을, 하늘에서 내쫓으셨다. 

이와 같이 거룩하신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들을, 영원한 불못으로 내쫓으실 것이다. 따라서 더러운 귀신들은 언제나, 예수님의 거룩하심에 떨 수밖에 없다. 거룩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지금 앉아 계신다. 그것만이 아니다. 

(갈2:20上)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처럼 우리 안에 거룩하신 예수님이 사시니, 우리는 더러운 귀신을, 무서워할 필요가 전연 없다. 

지금 우리 안에는, 거룩하신 예수님이 사시기에, 오히려 더러운 귀신이, 우리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늘 거룩하신 예수님으로 충만해서,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밝히 드러내자. 그래서 더러운 귀신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능력과 권세가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바란다. 


3. 예수님의 권세가,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었다(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여기서 예수님의 권세가, 나타난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의 질문에, 아무 답변을 하지 않았다.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했을 때, 어떠한 말씀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향해, 2가지를 명령했다. ① 잠잠 하라. ②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1) 잠잠 하라.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더러운 귀신이라도 예수님에 대해 바르게만 증언하면, 얼마든지 괜찮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34下)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왜 예수님은, 귀신들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까? 사탄과 귀신들은, 다 거짓말쟁이다(요8:44). 이런 거짓말쟁이 귀신이 증언한들, 그 증언에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게다가 예수님을 배척하던 자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었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귀신들이 예수님을 증언하면, 더욱 더 거세게 배척하는 자들은, 예수님과 귀신들이, 한 패라고 비난할 것이니, 예수님은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2)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기 위해, 더러운 귀신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그를 설득하지도 않았다. 귀신 들린 사람의 몸을, 밧줄로 단단히 묶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어떤 주문도, 외우지 않았다. 안찰도 없었고, 안수기도도 없었다. 단지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향해,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했다. 이것이 전부였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명령할 때,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향하여, 명령하실 수 있는 권세가 있다. 모든 피조물은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할 따름이다. 예수님의 명령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잠잠 하라, 고요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바람과 바다와 물결도 순종하였다. 

이처럼 더러운 귀신도, 예수님의 명령에, 즉시 그대로 순종했다.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예수님의 명령에, 더러운 귀신은, 곧 그의 몸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가기가 싫었지만, 예수님이 명령하시니, 어쩔 수 없이 나왔다. 

그러나 귀신의 본질이, 더럽고 악하기에, 또 다시 그 사람을 괴롭혔다.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켰다. (눅4:35)에 의하면, 그 사람은 경련을 일으키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 사람은 상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그 사람이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주셨다. 

마침내 더러운 귀신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그 사람 몸에서 내쫓겼다. 그를 내쫓는 예수님의 권세에 떨며 나갔다. 예수님은 사탄과 귀신을, 하늘에서 내쫓았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사람의 몸에서 내쫓았다. 장차 예수님은 사탄과 귀신들을, 영원한 불못으로 내쫓으신다. 

예수님의 권세가,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었다.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또다시 놀랐다. (22)에서,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치심에, 이미 한번 놀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을 내쫓았기에, 더 크게 놀랐다.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에게 보였던 반응은, 예수님이 누구인 줄을 알고, 예수님 앞에 떨었다. 귀신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심판과,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예수님의 권세에 계속해서 떨었다.  

그러나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보였던 반응은, 계속해서 놀랄 뿐이었다. 그들은 그저 놀라면서, ‘이는 어찜이냐?’며 서로 물었다. 아직도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을 제대로 깨닫지를 못했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을 알고 떨었지만, 그가 가야할 곳은 영원한 불못이다.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놀라기만 한다면 그들이 가야할 곳도 역시, 영원한 불못일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쫓아냄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 보여주셨다. 

말씀을 읽고 배우라. 또한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나와 상관이 있게 만들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고, 날마다 그 앞에 떨며 나아가자. 

우리를 악의 세력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깊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며, 더욱 본받아 멋진 삶이 되어, 더욱 예수님을 널리 증거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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