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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민 6: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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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민 6:22-27)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시고, 우리교회를 건강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설날입니다.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 2013년이 시작되었습니다. 2013년을 계사년, 뱀의 해라고 하는데, 오늘부터 진짜로 뱀의 해입니다. 우리는 뱀을 사탄의 상징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뱀을 매우 부정적인 동물로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뱀처럼 되라고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이 때, 뱀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땅에 기어 다니는 뱀을 사탄이라고 때려잡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반공포스터를 그렸던 것처럼 간첩이 뿔을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듯이, 사탄은 뱀의 모습만 가진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훨씬 더 날렵하고, 예쁘고, 스마트합니다. 사탄은 인간을 속이고 유혹하는데 뛰어납니다. 그러니 우리는 뱀처럼 지혜로워야 합니다. 2013년 한 해, 지혜의 복과 치료와 회복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의 말씀을 다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는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며 오늘의 말씀을 읽고 전하는 것을 즐겨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미 그 내용을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실천하고 누려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나눌 때, 거의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시험 문제를 내겠습니다. 시험에 합격하면 설교하고, 합격하지 못하면 설교하지 않겠습니다.”

심방 가서 목사가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긴장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어서 “너무 긴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내는 문제는 95%가 틀립니다. 그렇다고 설교를 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내는데 문제는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이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힌트까지 주는데 힌트는 ‘95%가 틀리게 답한다.’는 것입니다.

시험 본다는 말에 긴장하였다가, 문제를 듣고 “이렇게 쉬운 문제가 어디 있나!”하였는데, 95%가 틀린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고 멈칫멈칫합니다. 어떤 분들은 힌트를 생각지 않고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용감하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대답은 틀린 답입니다.   
  
오늘 이 시간, 본문 말씀을 통하여 누가 축복하는 지, 축복하여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또 누가 복을 주시는 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누가 축복하는 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I. 축복 
  
오늘 말씀은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할 점이 많습니다.

먼저 누가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22절 말씀입니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누가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3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23a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직접 하여야 할 일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전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에게 전하여 주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23절 후반절입니다.

:23b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전하여 주어 그들이 하여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하게 하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제사장에게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1. 제사장이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제사장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기름 부으심을 받아 거룩하게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특별한 사람이기는 하였지만 그들이 또한 인간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인 사람에게 하나님의 백성인 사람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즉 사람이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축복한다.’는 말은 문제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축복한다는 말이 문제가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축복(祝福)이라는 말에서 축 자는 ‘빌다, 기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축복이라는 말은 복을 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하면 하나님이 하나님 보다 더 높으신 분이 있어서 그 분에게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라고 간구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성모독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세요!’라는 말을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발음상의 문제입니다. ‘축’의 ‘ㅊ’이 거센 소리 즉 격음(激音)이기 때문입니다. 평음인 ‘ㅂ’을 격음으로 ‘뽁을 주세요!’ 할 수 없으니, ‘축복하시옵소!’하여 보다 더 강력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말은 성경적으로도 국어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선수들이 공을 차는 경기를 축구라고 합니다. 공을 차는 경기는 ‘축구한다.’고 해야지 ‘축구찬다.’고 하면 안 됩니다. 축구(蹴毬)에서 축 자는 ‘차다’는 뜻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축구찬다고 하면 축구선수가 서로 엉덩이를 걷어차는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축복이라는 말에는 ‘빌다’는 뜻이 이미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축복’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따지는 이유는 어법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 하는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축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 누가 제사장인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전반절 말씀입니다.
: 9a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구약의 제사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아론의 계열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제사장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님이 그 안에 거시는 사람들이 곧 성전입니다(고전 3:16). 자신이 성전임을 믿고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왕 같은 제사장’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써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복을 비는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벧전 3:9a)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축복하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축복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어찌 감히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망설여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축복할 수 있는 자격은 다른데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27절 전반절입니다.
:27a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축복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축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축복하는 것입니까? 제사장은 하나님께로부터 축복하라는 특권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이름으로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축복은 사람이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2. 그 이름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축복하지만 축복할 수 있는 근거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는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축복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 이름’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힘입고 축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제사장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근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축복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축복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도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그 이름으로, 나를 제사장으로 삼아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축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축복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27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27b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축복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이 여기에 있습니다. 축복의 겉모습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내용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인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복을 빌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이 축복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복 주심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하려고 할 때 망설이는 것은 내가 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축복해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에서 망설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는 축복하는 사명이 주어졌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복을 주는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축복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시골의 동네 어구마다 서낭당 나무가 서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은 예외 없이 속이 비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속이 비었는지 아십니까? 나무가 오래 되어서 속이 썩어서 비었습니다.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을 달라고 비는데 복을 줄 수 없어서 속이 타서 속이 비었다’는 것입니다. 복을 비는데 줄 복이 없으면 속이 탑니다.

우리는 우리가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축복하는 내가 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우리는 축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축복하는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을 복을 비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성도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들임을 확신하고 축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내용으로 다른 사람에게 축복하여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축복하여야 할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II. 내용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복은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고, 오래 살고, 건강하고, 잘 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복을 단번에 받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여야할 복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그 분의 능력과 은혜와 평화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자 우리가 받아야할 복입니다.

우리가 빌어야 하는 첫 번째 복의 내용이 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신다고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키다[rm'v/솨마르]’는 본래 ‘둘레에 가시로 둥그렇게 울타리 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울타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축복해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축복하십시오.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들판에서 양을 치는 사람들은 양에게 풍성한 꼴을 먹이기 위하여 양떼를 이끌고 풀이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저녁이 되면 맹수들에게서 양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가시넝쿨과 돌멩이로 둥그렇게 울타리를 치고 그 안으로 양떼를 몰아넣습니다. 목자는 그 입구에 비스듬히 누워서 양떼를 지킵니다. 양떼들이 밖으로 나가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며, 양을 헤치려는 맹수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울타리 안에 있는 양떼는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의 삶을 볼 때, 그렇게 길지는 않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의 팔로 안아주셨습니다. 때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주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때로는 악한 것이 넘어들어 오지 못하도록 막아주심으로 보호하셨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이 있었지만, 이런 저런 어려움도 있었지만 권능의 팔로 지켜주셨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하나님께서 울타리를 치고 보호해 주시기를 축복하십시오. 자녀들의 삶에 악한 것과 더러운 것이 틈을 타지 못하도록 울타리 쳐 주시기를 위하여 자녀들에게 축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권능의 울타리를 둘러 주심으로 악한 세상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빌어야 하는 두 번째 복의 내용이 있습니다.
25절 말씀입니다.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신다고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은혜를 베풀다[@n"j/하난]’는 말의 본래 의미는 ‘구부리다’는 뜻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호의로 몸을 굽히다’는 뜻에서 ‘은혜를 베풀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2.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를 축복하십시오.

은혜의 본질은 위에 있는 분이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허리를 굽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허리를 굽히신 것입니다. 이를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또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자녀들에게 허리를 굽혀 맞아주시기를 원하는 어버이의 마음 그 이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은혜는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가장이 직장에서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자녀가 학교에서 지도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고, 사업하시는 분이 거래를 터주는 사람을 만나고, 청년이 인생의 멘토를 만나는 것이 은혜입니다. 

여러분의 삶과 자녀의 삶에 하나님께서 만남의 은혜를 베푸시기를 여러분이 축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빌어야 하는 세 번째 복의 내용이 있습니다.
26절 말씀입니다.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강’은 우리가 잘 아는 ‘샬롬’입니다. 하나님께서 ‘샬롬’을 우리 앞에 놓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앞길에 위험이나 저주나 걸림돌을 놓아두고 싶어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평안을 놓아주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3. 하나님께서 평강 주시기를 축복하십시오.

오늘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불확실성입니다.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잘 되었다고 해서 내일도 잘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달에 성공했다고 해서 다음 달에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잘 살았다고 해서 올해도 잘 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막연하여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탄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니 더욱 조바심을 내며 불안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빌어야 하는 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의 가는 길에 주의 평강 있으리
평강의 왕 함께 가시니
너의 걸음걸음 주 인도하시리
주의 강한 손 널 이끄시리
너의 가는 길에 주의 복이 있으리
영광의 주 함께 가시니
네가 밟는 모든 땅 주님 다스리리
너는 주의 길 예비케되리


2013년의 길을 떠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평강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평강의 왕이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걸음걸음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평강을 빌어주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보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기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평안을 빌 때,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 10:1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을 받을 만 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너희가 판단하지 말고, 너희는 다만 복을 빌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복을 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할 때 우리가 보아서 복 받을 만한 사람에게 복을 비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복을 빌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께서 지키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평안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사람들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많은 사람을 이렇게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축복하고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축복하는 여러분에게 이런 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런 복을 주십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음을 확신하고 다른 사람을 마음껏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명절은 바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명절입니다.
  
여러분이 축복하는 사람의 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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