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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기서 말씀만 하셔도 (사 38:16,20,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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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씀만 하셔도 (사 38:16,20, 마 8:5-13)
  

오늘은 말이 너무 많은 시대입니다. 말이 너무 앞서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말에 신뢰감이 떨어집니다. 말은 많은데 실천이 적고 신뢰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가짜가 많고 불신이 많습니다. 선거 때마다 많은 공약이 쏟아집니다. 선거가 끝나면 지켜지는 법이 없습니다. 지킬 수도 없습니다. 역부족입니다. 말은 많으면 탈이 발생합니다. 

본문을 보면 말 한마디가 얼마나 능력이 있고 권위가 있고 신비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 이야기를 끝내시고 본격적인 사역을 이루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시다가 지금 가버나움에 이르렀습니다. 가버나움은 선교 중심지입니다. 그리고 군사 요충지입니다. 그곳은 로마의 군단급 군대가 주둔하는 곳입니다. 당시 군단급은 병력이 700명 규모의 기병과 3천에서 6천 명가량의 보병으로 구성됩니다. 

그 군단급 부대 안에 한 백부장이 나옵니다. 이 백부장은 1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린 로마군 장교입니다. 이 로마군대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당시 중풍병은 나병과 같이 취급될 만큼 위급하고 불치의 병입니다. 그래서 백부장이 예수께 찾아와 내 하인을 고쳐 주소서 하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 요청을 받고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정색을 하면서 “우리 집까지 오심을 감당 못하겠으니 여기서 말씀만 하시면 낫을 줄 믿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연하여 설명하기를 “내게도 하인이 있고 군사가 있으니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갈 것이니 굳이 우리 집까지 가시는 고생을 할 필요 없고 여기서 말씀만 사셔도 고쳐질 줄 믿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님이 놀라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감탄하고 또 감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부연설명을 하셨습니다.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하시니 그 즉시 하인의 병이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이 시대에 많은 메시지를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 백부장은 이름도 없습니다. 직업과 직함만 나옵니다. 그런데도 이 백부장이 감동을 줍니다.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인간이 됨

이 백부장은 먼저 인간이 되었습니다. 하인이 병들었습니다. 중풍병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중풍병은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병환자와 동일시했습니다.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서 꼼짝을 못하고 누워있습니다. 그러면 버리면 그만입니다. 부모도 버리는 세상인데 자식도 버리는 세상인데 그까짓 종 하인이 병들었으면 버리면 그만입니다. 자신은 로마제국의 군대 백부장입니다. 로마제국의 관리이자 지배자이자 주둔군 장교입니다, 당시 종이나 하인은 주인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로마제국의 장교가 자존심을 버리고 유대인 예수를 찾아가 머리 숙여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내 하인을 고쳐달라고 호소를 하였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당시는 로마 시민권만 가져도 행세하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입니다. 지배하는 유대인인 예수님을 찾아갔다는 것만도 대단한 일입니다. 거기다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호소한 것은 더 큰 일입니다. 우선 이 백부장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인정도 하지 않는 하인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버리면 그만인 시대에 하인을 위해서 구차하게 예수를 찾아가 청원까지 하였습니다. 

신앙은 먼저 인간이 된 사람에게 믿음이 들어가면 배로 위력 발휘하게 됩니다. 빌레몬이 그런 경우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사람입니다. 에베소에 출장 왔던 차에 바울의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회심을 하게 됩니다. 돌아와 자기 집에서 예배드린 것이 후에 골로새교회가 됩니다. 그는 고상한 인격과 따뜻한 마음 그리고 인간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추수 때는 농부들과 함께 기거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성자가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속상할 때는 빌레몬을 찾아가 위로를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빌레몬의 얼굴만 봐도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었다고 합니다. 따뜻한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 믿음이 들어간 결과입니다. 여기 백부장은 먼저 인간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믿음이 들어가니까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여기 백부장은 먼저 인간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됨 

이 백부장이 예수께 찾아와 “내 하인을 고쳐 주소서”하고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럼 네 집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기서 말씀만 하셔도 내 하인이 고쳐질 줄 믿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대단한 고백입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 백부장은 믿음이 된 사람입니다. 오늘도 병자들은 의례히 몸에 손을 대고 기도해야 안수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아만이라는 나병환자가 화난 것입니다. 멀리 아람나라에서 엘리사를 찾아 갔는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았습니다. 나와서 몸에 손을 대고 안수기도 해 줄줄 알았는데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말만하였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것입니다. 오늘도 안수를 너무 남발하는 시대입니다. 아픈 부분에 굳이 손을 대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가장 어려운 점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감촉의 지배를 받습니다. 사람은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지 않은 채 믿으려고 하니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백부장의 믿음이 빛이 나는 것입니다. 

“내 하인을 고쳐 주소서”, “그러면 네 집에 가자” 얼마나 영광입니까. 내 집에 가면 내 집을 과시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종들이 도열하고 손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내 큰집을 보여주고 과시할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네 집에 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손사래를 치며 “내 집까지 가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말씀만 하셔도 내 종이 낫을 줄 믿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여기 백부장은 인간이 된 사람입니다. 믿음도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감동하신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런 믿음을 가진 자를 보지 못했노라.” 

믿음 본질을 깨달음

또 감동스러운 것은 이 백부장은 예수를 메시아로 보고 믿은 것입니다. “내 하인을 고쳐 주소서”, “네 집으로 가자”, “여기서 말씀만 하셔도” 이 모습은 백부장이 예수를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신적인 권위를 가지신 분으로 믿었다는 말입니다. 당시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나병환자, 장님, 중풍병자를 고치는 자는 메시아라고 했습니다. 치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세계는 말씀의 힘을 믿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시지도 않습니다. 예수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순전히 말씀의 힘을 믿는 세계입니다. “여기서 말씀만 하셔도 고쳐질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힘과 능력을 절대 신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때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보면 더 잘 믿을 것 같이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인 나 자신도 성도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알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본 사람들은 다 잘 믿었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출애굽 때 실감나는 기적을 체험한 유대인들, 홍해를 건너는 과정에서 실감나게 기적을 체험 유대인들,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불신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때 10가지 재앙의 기적을 보고 체험하였던 사람들입니다. 홍해를 건널 때 갈라진 물 사이로 건넜던 사람들입니다. 광야에서 바위에서 솟아난 물을 먹었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고 불기둥 밑에서 구름기둥 밑에서 잠자고 생활했던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뭘 보아야 만족합니까. 

그런데 그들은 모두 불신 때문에 죽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떡을 얻어먹었던 사람들, 병을 고쳤던 사람들,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기적을 보지 못해서 예수를 부인하였습니까. 가룟 유다는 기적을 본 것이 부족해서 배반을 하였습니까. 도마는 기적을 본 것이 부족해서 부활을 의심하였습니까. 그런데도 또 보아야 믿는다는 것입니까. 보는 것은 일시적이고 참고는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마에게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 되도다.” 여기 백부장은 “여기서 말씀만 하셔도 내 하인이 낫을 줄 믿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말씀만 하셔도”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주님 말씀의 권위를 100% 믿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상대방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여인은 그 고백을 듣는 순간 듣기 전과 상황이 엄청 다릅니다. 조금 전에는 없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이제는 그에게 내 일생을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신임 교사가 학교에 부임하여 첫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선생님“ 하고 부릅니다. 그 순간 그 교사는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지존파의 대부 김기환이 어려서 너무 집이 가난하여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져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야단맞았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다음엔 훔쳐서라도 가져와”하고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창피를 당한 김기환은 그때부터 필요한 물건은 훔쳐서 가져왔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 17년 후에 살인범이 되고 사형을 언도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최후 진술을 하면서 “내가 오늘 이렇게 된 것은 그 초등학교 때 교사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는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화장품 세일즈 우먼이 세일즈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언제나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기자가 그 비결이 무엇이냐 묻자 “이유는 너무 간단해요, 어느 집이든 가서 문을 열면 ‘엄마 계세요?’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후는 일사천리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말에는 이런 능력이 들어있고 독소도 들어 있습니다. 어떤 말은 살리는 힘과 회복의 능력과 소망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에는 죽이는 독소도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는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 백부장이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내 하인이 고쳐질 줄 믿습니다.”라는 이 백부장의 말에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우주적인 힘이 들어있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찾아가면서도 “예수가 과연 내 하인을 고칠 수 있을까 혹시 모르니 여기서 말씀만 해 보라고 할까?” 그래서 “말씀만 하옵소서.”하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만 하셔도 내 하인이 나을 줄 믿습니다.” 그 말은 100% 신뢰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과 권위를 믿었습니다. 

메시지 

이 백부장의 이야기는 몇 가지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먼저 믿은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유대인들은 그 시대의 기득권자들입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을 짐승 보듯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 백부장을 등장 시켜 이 백부장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너희들이 믿는 믿음이 정상이냐, 너희 믿음은 온전하냐, 이 이방인의 믿음 보다 낫냐, 너희에게 과연 이런 믿음이 있느냐, 너희들에게 이 백부장 같은 인간성, 인간의 도리, 하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또 너희는 이만한 안목이 있는가 하는 묻고 있습니다. 

백부장은 “여기서 말씀만 하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나을 줄 믿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메시아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믿은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이 백부장은 나를 본질적으로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저 이방인은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인정하고 고백하는데 너희는 왜 나를 믿지 않느냐“ 는 말씀입니다. 가짜를 밝혀내려면 진짜와 비교시키면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여기 백부장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너희는 진짜냐” 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보편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에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11).” 여기 본 자손은 그 시대 기득권자들 즉 선민이라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구원받고 싶으면 귀화하라고 설득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방인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은근히 선민임을 자랑하던 사람들입니다. 큰 위선입니다. 우리 유대인만 구원받고 우리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들만 천국갈 수 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입니다. 먼저 믿은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세계에서는 먼저 믿은 자는 무서운 책임이 따릅니다. 잘못하면 나중 믿은 사람들에게 밀리게 되고 뒤떨어지게 됩니다. 권위의식과 전통과 고참 의식 때문에 낙오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런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 유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지금 유대인들이 구원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유대인만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여기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게 될 것”이라는 말은 구원은 동서 그리고 이방인들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다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즉 구원의 보편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말씀은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물으십니다. “너는 어떠냐.” “너는 이 말씀의 권위를 능력을 믿고 신뢰하느냐” “너는 과연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느냐” “아멘 할 수 하느냐”, “아멘 한다면 그러면 왜 이 말씀을 읽지 않느냐” “왜 이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믿지도 않느냐” 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 시대의 기득권자들 바리새인들 제사장들에게 주신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우리만 선민이고 우리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방인을 짐승 보듯이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너 자신을 보라, 너 자신을 살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나 자신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이 백부장의 이야기는 오늘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형식은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메시지는 이 말씀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백부장만한 믿음이 있습니까? 이 말씀에 은혜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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