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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눅 2: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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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눅 2:41-47)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누가복음 2장 41∼47절)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란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이 일생 동안 주님을 섬기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1. 십자가 중심의 신앙

예수님은 열두 살이 되던 해 유월절에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눅 2:41).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 가운데 가장 큰 절기로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유월절 절기에 부모님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유월절의 유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생활하다가 출애굽 하여 자유와 해방을 찾게 된 날을 기념하면서 지키기 시작한 절기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중 마지막 10번째 재앙이 애굽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날 밤 재앙이 임하자 애굽의 첫 태생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에는 장자나 가축의 처음 난 것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첫 태생을 치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출 12:7)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13절에 보면 죽음의 사자가 그들을 넘어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기념하여 절기를 대대로 지키라고 출애굽기 12장 14절에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야훼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과 피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5장 7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어린 양의 피가 죽음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죽음으로부터 모든 인류를 구원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의지하면 죄와 사망과 저주와 질병이 우리를 넘어가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자유와 축복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신앙생활의 출발점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치료의 능력입니다. 용서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줍니다. 또 저주를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누리고, 질병을 물리치고, 사망을 철폐하고, 부활, 영생, 천국을 얻게 합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삼중축복을 줍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님의 신앙과 신학의 핵심은 십자가였습니다. 『영성의 거장을 만나다』라는 책에 보면, 십자가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부정한 자를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며, 갇힌 자를 풀어주고, 빈궁한 자를 높이며, 인간 사이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린다. 우리의 성품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바꾸어, 마침내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흰옷을 입고 서기에 합당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바울처럼 평생 십자가만을 말하고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십자가만이 우리의 소망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십자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교회 중심의 신앙

예수님은 12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부모님이신 요셉과 마리아와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눅 2:41∼42).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성전을 어머니같이 생각했습니다. 성전은 그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절기 때마다 성전에 모여 예배 드렸고, 기도할 때 성전에 올라가기를 힘썼고, 성전에 올라갈 상황이 못 되면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이 아닌 다른 신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자 굴에 던져 처형한다는 왕의 명령이 떨어졌어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은 말씀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영광을 받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유월절을 지키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았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야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눅 2:46). 이처럼 성전은 잃어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는 곳,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솔로몬 왕 당시 성전을 완성하고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임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에 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시는 처소임을 고백했습니다(대하 6:2). 성전은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그 이름을 두시며, 하나님의 눈과 마음을 두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곳이며,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곳입니다. 성전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잃어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고 왜 부모에게 걱정을 끼쳤냐고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예수님은 성전을 아버지 집으로 생각하여 예루살렘에 머물러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 2:17)는 말씀처럼 성전을 사모하셨습니다. 우리도 성전을 사모하면 주님을 만납니다. 시므온도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안나도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야곱도 집을 떠나 먼 광야 길을 갈 때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벧엘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 드렸습니다(창 28:18∼19). 

교회와 예배 중심으로 사는 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성령과 교제합니다. 예수님은 그분을 만나는 자의 삶을 통치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성전을 떠나면 예수님을 잃어버립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은 성전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교회와 멀어지면 신앙이 침체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망불평하고, 미워하고, 근심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전과 멀어져서 예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성전과 교회 중심의 삶을 사십시오. 예배를 통해 매일의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십시오. 삶의 우선순위에 예배를 두십시오. 성공적인 예배자가 되십시오. 늘 모이기에 힘쓰십시오. 교회는 영혼의 보금자리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넘치는 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사명으로 20년간 교회학교 사역을 해 온 김인환 목사는 그의 책 『예수가 이끄시는 성공』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이 임재하시는 예배에 목숨을 걸라. 어떤 예배도 소홀히 여기지 마라. 매주 최고의 예배를 드려라. 예배 때마다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인생을 바꾸실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가? 절대로 예배를 포기하지 마라”

3. 예수님 중심의 삶

예수님의 부모님은 유월절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동행하는 줄 알았다가 하룻길을 간 후에야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함께하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습니다(눅 2:43∼44). 하룻길을 가는 동안이나 예수님의 행방을 몰랐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예수님에게 무관심하며 안일했는지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삶 속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안일함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지’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 착각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의 봉사, 나의 헌신이 이만하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우리 신앙의 중심인 예수님과 늘 교제해야 합니다. 안일함을 거부하십시오. 늘 깨어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잘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십시오.

또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유는 분주함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방문한 요셉과 마리아는 유월절이라는 종교행사에 바빴습니다. 결국 그러한 분주함이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보다, 얼마나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르다는 섬기기를 좋아했던 사람인 반면에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들의 집에 오시자, 마르다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마리아가 자기를 돕지 않는다고 예수님께 불평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41∼42)

주님을 섬기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분주하게 주님을 섬기려다가 오히려 주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이와 비슷할 때가 많습니다. 안일함과 분주한 일상에 빠져 예수님을 잃어버립니다. 그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든 분주함과 안일함을 거부하고 다시 예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를 주름 잡았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열심히 충성하다가 연예계로 진출한 이후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고 주님과 멀어졌습니다. 주님과 멀어진 것도 모를 정도로 바빴습니다. 그러다가 광고 회사를 차리고 돈을 끌어 쓰는 과정에서 부도가 나고 결국 감옥에 갔습니다. 그 곳에서 그분은 서대문 순복음교회에 다니던 권사님 내외분이 보내준 성경을 통해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침례교 목사가 되었고 천국 갈 때까지 열심히 주님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언제나 십자가 중심, 교회 중심, 예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십시오. 혹 삶의 중심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면, 언제 예수님을 잃어버렸는지, 얼마나 잊고 살았는지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 예수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리하여 일생동안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목적도 없이 방황하면서도, 예수님이 곁에 계신 줄만 알고 멀리 멀리 세상을 향해 나아갔던 것을 용서하옵소서. 이제는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서 예수님 중심, 십자가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영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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