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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말렉과의 전쟁(신 25: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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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신명기 25:17-19
제목: 아말렉과의 전쟁

 “당신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길에 아말렉 사람이 당신들에게 한 일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당신들이 피곤하고 지쳤을때에, 길에서 당신들을 만나, 당신들 뒤에 처진 사람들을 모조리 쳐죽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입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 사방의 적들을 물리치셔서 당신들로 안식을 누리게 하실 때에, 당신들은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 사람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속속을 들라고 하면 아마 사랑일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은 사랑할 만한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나에게 잘해주고, 나와 좋은 관계에 있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를 미워하고 나에게 피해를 주고, 나와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기란 쉬운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받느냐에 따라 무엇을 주느냐가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주고,  미움을 받으면 미워하게 되는게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고,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성경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보신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얼마나 답답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까? 만약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은혜의 반에반만 받았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슨 걱정이 있고,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셔, 분명히 역사하셔, 난 마침내 승리할 수 있을거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을 우리의 눈으로 목격했다면 우리의 인생은 분명 지금보다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께 강력하게 역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지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연약한 사람인지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사람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절대로 하나님을 배신해서는 안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고 그 우상에 절을 하며 심지어는 자신들의 아들까지 제물로 바치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이게 용서가 됩니까? 한두번도 아니고, 이스라엘 역사는 한마디로 불순종과 죄악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번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적이 없었습니다.  집나간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애끓는 뜨거운 심정으로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고, 언제든 돌아오기만을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사랑, 저는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지금은 죄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들가운데 죄의 문제로 인해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잘못했다고, 죄졌다고 부모자식과의 관계가 끊어집니까? 절대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끊고 싶다고 해서 끊어지는게 아닙니다.  왜죠?  피로맺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한번 맺어진 관계는 영원한것입니다.  이 관계는 어느 누구도 끊을 수가 없는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죄인이기에 죄가운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남 욕하며 살 수 있습니다.  남에게 본의아니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남을 원망하고 원망하고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모습이 우리 마음가운데 있을지라도 여전히 우리가 믿는 믿음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신분은 변함이 없는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짓고 마음대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죄를 점점 멀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사랑이 마음속에 가득하다면 원수를 사랑하게 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것과 같이 우리도 용서하며 살아갑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들을 오늘도 여전히 사랑하시며 풍성한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 나옵니다.  다시한번 말씀을 봅시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 사방의 적들을 물리치셔서 당신들로 안식을 누리게 하실 때에, 당신들은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 사람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인은 이세상에 한명도 없을만큼 하나님의 사랑은 넓고 무한하신데 하나님은 지금 한 사람도 아니고 한 민족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시고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배은망덕한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으시던 하나님이 아니였습니까?.  그런데  왜 아말렉족속은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멸망당할 운명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창세기 36:12절에 보면 아말렉은 에서의 맏아들인 엘리바스가 첩인 딤나를 통해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쌍둥이 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곱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말렉족속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피로맺은 사촌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촌간인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공격을 한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맨 후미에는 약한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치고 힘들어서 앞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이와 아녀자들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냥 내버려둬도 혼자서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아말렉 족속들이 무자비하게 공격을 한것입니다.  아말렉 족속이야 마음먹고 공격을 했지만 무방비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가막힌 사건이었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해도 형제지간이 아닙니까?  남도 아니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잔인하게 공격을 하는것입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게 뭔지 아십니까?  내가 누군가를 믿었는데 그 믿었던 사람이 어느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를 배반하고 나를 공격합니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고 야비하게... 

  로마의 군인이었던 케사르가 정권을 잡고, 로마를 통치할 때 여기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케사르 암살작전을 세우고, 치밀하게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케사르가 군인출신이다보니까 주변의 호위병이 대단한겁니다. 섣불리 덤볐다간 폭약을 안고 불로 뛰어드는것처럼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적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케사르에게는 친자식보다 더 사랑했던 부르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적들이 이 부르터스를 돈과 명예로 자기편을 만들어 버린겁니다.   드디어 케사르 암살작전을 벌이는날, 적들은 케사르가 행진하고 있는 마차를 공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되는거예요. 추풍낙엽식으로 암살자들이 떨어져 나가는겁니다.  그때였습니다.  부르터스가 케사르의 마차로 뛰어 올라가더니만 케사르의 심장에 칼을 꽂았습니다.  검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콸콸 흘러내립니다.  그때 케사르는 자신을 찌른 부르터스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르터스 너마저”.  

  만약 여러분들이 그런일을 당했다고 생각해보세요.  믿었던 여러분들의 친구가 여러분들을 배반합니다.   평생을 함께 살았던 배우자가 나를 배신하고 있는 것 다 챙겨가지고 도망을 갑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친구였고, 동료였는데 오늘은 적이되어 칼을 나에게 들이댑니다.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아말렉족속이 멸망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아말렉족속은 최소한의 신의도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잔인하고 악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하나님의 적대자들이었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것을 보세요. 완전히 마귀랑 똑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말렉 족속은 마귀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의 대적인 사단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마귀는 아주 잔인합니다.  마귀는 아주 야비합니다.  우리가 인생가운데 피곤하고 지쳤다고 그냥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강할때보다 오히려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지치고 힘들때,  사는게 너무 어려워서 절망가운데 있을때,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할 장도로, 아주 잔인하게 공격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야비하고 잔인한 마귀와 영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겁니다.  마귀의 궁극적인 목적인 하나님의 뜻을 막는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의 뜻을 막기위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해서 공격하지 않는것도 아니고, 우리가 원한다고해서 싸우는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강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할때는 우리를 피합니다.  우리가 약할 때, 지칠때 공격하는거예요.  그래서 마귀에게는 틈을 보이면 안됩니다.   에베소서 4:26-27절에 보니까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마귀는 틈을 노립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24시간 훔쳐보고 있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살다보면 죄도 지을 수 있고, 또 피곤해서 쉬고 싶을때가 있잖아요?  교회에서도 항상 은혜받으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습니까?  때로는 본의아니게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시험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마귀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기회라는 겁니다.  마귀는 정확합니다.  밥이다 싶으면 앞뒤가리지 않고 무조건 쳐들어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지쳐 쓰러질때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치고 지쳐서 더 이상 못견디고 항복해 버리면 그 순간부터 마귀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는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아말렉을 진멸해라!  그러면 왜 진멸해야 할까요?  저는 한번 이런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무리 아말렉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고 죄악된 족속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 아닙니까?  일단은 용서하고 회개하고 돌아올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게 아닐까요? 그런데 그것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아말렉은 암덩이와 같은 존재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암이 작다고 그냥 내버려 둬보세요.  얼마가지 않아 그 작은 암덩이는 자라서 온몸에 퍼지고 말것입니다.  암은 한번 퍼지면 완치가 힘들다고 합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수술해서 다 제거한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한겁니다.  남아 있는겁니다.  그러면 그 남아있는 것이 빠르게 재생해서 결국 더 강력해져서 다시는 손을 못쓰게 만든다는겁니다.  그래서 암이 무서운겁니다.   

  제가 며칠전에 시장에 가서 딸기를 사온적이 있었습니다.  비싸게 주고 산터러 아껴먹을려고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냉장고에 넣으니까 괜찮겠지하고 마음놓고 있었는데 며칠지나서 먹을려고 보니까 밑에 있는 것이 거의 다 썩어 버렸습니다.  왜그런거 봤더니 밑에 있는것들 중에서 몇 개가 썩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그것들이 옆에있는 것들까지 다 썩게 만들었던겁니다.  가만히만 있으면 그래도 괜찮은데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른것까지 피해를 주기 때문에 문제인겁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의 나라의 암적인 존재였습니다.  아말렉은 그대로 남겨두면 그 죄악 때문에 두고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할 수 밖에 없는겁니다.  아말렉은 완전히 없어져야 할 악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반드시 아말렉 족속은 완전히 진멸하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설마 그럴까?  별로 안되는것들이 까불어 봤자 소용이 있겠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말렉을 얕잡아 봤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고두고 아말렉족속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사시대에는 아말렉의 침입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고, 왕정시대에도 아말렉 족속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포로기에는 아말렉의 후손인 아각사람 하만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살할 위험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설마가 사람잡는겁니다. 그래서데살로니가 전서 5:22절에 사도바울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과거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혹시 있습니까?  누구를 미워했는데 아직 용서하지 못했습니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아직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앞에 자백하지 않은 죄악된 행위가 있습니까? 비록 그것에 대해서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마귀는 절대로 그것을 잊지 않습니다.  필요할때마다 기억나게 할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죄의식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즉시 해결하십시오.  우리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아말렉과 전쟁을 벌이세요.  하나님앞에 다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용서할것이 있으면 용서하시고, 용서를 구할것이 있으면 용서를 구하세요.  그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살길입니다.   마귀는 잔인하고 야비합니다.  항상 틈을 노리고 우리를 공격할 기회만 엿봅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해야할 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우리를 힘들게 할것입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고통스럽고 참기 힘들겠지만 제거해야 할 것은 제거해야 합니다.  짤라야 할 것은 짤라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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