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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1) : 선구자 세례 요한 (요 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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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난 사람들(1) : 선구자 세례 요한 (요 1:29-34)

한국 교회 초기 교인 중의 한 분인 서상륜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13살 때 부모님을 여위었습니다. 삶의 여건이 좋은 부모 만나지 못했습니다. 가난합니다. 고아가 된 이 사람은 살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성에서 나는 고려인삼을 사 가지고 만주에 가서 팔았습니다. 인삼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다 31살에 장티푸스에 걸렸습니다. 열이 오르고 쓰러지고, 헛소리를 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돌보아 주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코트랜드에서 파송 된 메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었습니다. 죽어 가는 그를 살렸습니다. 서상륜에게는 메킨타이어가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는 가장 고귀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일년만에 세례를 받고 그의 인생은 변했습니다. 이제 가난이나 질병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번역인 로스 성경을 로스 선교사님과 함께 번역했습니다. 황해도 장면에 있는 송천(솔내, 소래)에 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합니다. 최초의 교회인 '송천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나 서울에 새문안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교회에서 처음 14명이 세례를 받았는데 모두 서상륜이 전도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황해도, 평안도 할 것 없이 부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평생 평신도로 살며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집을 헌납하여 교회를 지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언더우드 선교사님께서 그가 헌납한 집과 똑같은 기와집을 노년에 사주었다고도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바뀝니다. 그 자신만 바뀌는 것이 아니고 그가 거하는 가정이 바뀌며 사회가 바뀝니다.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생각과 태도, 지위와 조건, 태도와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세례 요한의 가장 큰 변화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오늘 성경에 나오는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소개하는 선구자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구약의 시대를 접고 메시아 시대를 예비하는 위대한 선구자로 살았습니다. 율법의 시대를 끝내고 은혜의 시대의 문을 연 선구자였습니다. 사람은 만남에서 내가 만난 상대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했습니까?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었습니까?
29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자기를 적대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 앞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세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진정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알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면 종교 사기꾼입니다. 모르고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면 미친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믿었습니다. 유대인만의 죄가 아닙니다. 인류의 죄를 지고간다는 말입니다. ‘지고 가는(아이론)’이라는 말은 ‘제거하다’, ‘말살하다’, ‘치워버리다’는 뜻을 가지는 말입니다. 

세상의 죄를 제거하고 치워버리는 어린양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느 말입니다. 이 말을 듣는 당시 유대인들은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대가를 지불할 제단의 어린양, 속죄 희생 제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죄는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합니다. 사회와 격리됩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모 재벌 그룹 회장이 감옥게 가는 것을 신문을 통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말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어도 죄를 지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죄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인간 문제의 뿌리는 죄입니다. 

이 죄가 개인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인류 사회의 평화를 깨뜨리고 우주적 질병을 앓게 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병들고, 내면은 썩게 합니다. 이 죄가 성품은 강퍅하고 왜곡시킵니다. 이 죄가 혈기를 부리게 하고 정서를 통제 불능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이 죄가 죄를 좋아하게 하고 정서를 삐뚤어지게 하고 의지를 나약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인간의 문제만 아닙니다. 죄를 조장하고 죄를 통해 인간을 움직이는 세력이 있습니다. 사탄이 죄를 가지고 인간을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시키는 방법으로 대신 죽게 하는 대속의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아담이 법죄할 때 동물을 죽이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것을 성경에서 보게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범죄하면 제사장 앞에 양이나 소, 염소를 가져다 주면 제사장은 그 짐승을 잡아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그 사람이 용서받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가정만 장자가 죽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지고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사53:7)으로 예언된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이 희생양은 창4장에서는 개인 즉 아벨을 위해 드려졌습니다. 출12장에서는 모든 권속을 위해, 레위기 16장에서는 전 백성을 위해드려졌습니다.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위해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뿐 만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됩니다. 

더 구체적으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었습니까? 3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선재성을 말씀합니다. 육신적으로는 세례 요한이 6개월 먼저 나셨습니다(15).

15절을 보십시오. 1장 2절을 보십시오. 태초부터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보다 모세보다 먼저 있었다고 예수님 스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마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죄 용서를 받습니다. 삶의 문제를 해결받습니다. 과거의 삶이 아무리 불행었도 예수님을 진정 하나님의 만나면 인생은 반전됩니다. 잘못된 만남을 통하여 지옥같은 인생을 살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 천국같은 삶으로 변화됩니다. 

아무리 괴로운 만남도, 아무리 슬픈 만남도, 아무리 풀리지 않는 만남도 예수님을 만나면 괴로움이 변하여 기쁨이되고 슬픔이 변하여 환호가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면 죽음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습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면 용서받고 용서하면서 살수 있습니다. 아무리 부모를 잘못 만나 가난하게 산다고 하여도 예수님 만나면 일시에 천국의 부자 됩니다.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영적 부자가 됩니다. 아무리 좋지 못한 친구를 만나 방황한다하여도 예수님 만나면 희망찬 인생길이 펼쳐집니다. 아무리 좋지 못한 배우자를 만났다해도 예수님 만나면 배우자를 사랑하게 되고 가정이 천국으로 변화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만남은 우리 예수님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면 가난이 인생을 파멸로 이끌지 못합니다. 예수님 만나면 질병이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가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 만나면 어떤 악조건이라도 절망하지 않고 행복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모든 만남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찬미 예수 946장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 보다 더좋은 친구없네 괴로울 때 다가와서 마음에 평화주는 신실하신 나의 참 친구 외로울 때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주는 사랑많은 나의 참 친구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까지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까지)

38년 동안 절망하면 병이 든자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 질병에서 벗어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떨고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됩니다. 장례 행렬이 멈춥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면 용서를 받습니다. 도끼로 인간을 죽인 살인만도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절망과 실패 가운데 자살을 결심한 사람도 예수님 만나면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한센씨병 환자가, 혈루증 앓는 여인이, 앉은 뱅이가, 나인성 과부가 예수님 만나 새롭게 됩니다. 행복해집니다.

병든 아들, 죽은 아들 만나 지옥같은 인생살이었는데 천국으로 화하였습니다. 세상에 누구를 만난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인생의 모든 풍랑을 단번에 잠재울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교회만 다니지 말고 예수님 만나야 합니다. 설교만 듣지 말고 예수님 만나야 합니다. 성경공부만 하지 말고 예수님 만나야 합니다. 봉사만 전도만 친교만 하지 말고 예수님 만나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님 만나지 못하면 헛된 것입니다. 예수 만나 봉사하고 전도하고 친교하여야 샘솟는 기쁨이 있습니다. (찬송가 449장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 말아라 영원한 주 능력이 붙드시겠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까?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전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요한의 어머니는 육신적으로 사촌지간입니다.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33절을 보십시오. 거듭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을 영적인 앎을 말하는 ‘기노스코’ 대신에 경험에 입각한 앎인 ‘에데인’인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 말은 당시 무지한 종교 지도자들처럼 자신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메시야인지 몰랐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임을 어떻게 알았다는 말입니까? 자신이 세례를 베풀 때 신비를 체험한 것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에게 물세례를 베풀게 한 하나님께서 성령이 내려 임하는 사람이 바로 성령 세례를 베풀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는데 바로 예수님이 성령 세례를 주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3:22)”라는 말씀으로 만인들 앞에서 선포해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하나님 체험을 할 때 계시된 말씀과 성령에 의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만남을 통해 인생이 달라집니다. 
요한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형식적으로 만나니까 교회 다녀도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교회 다녀도 즐거움이 없고 걱정 근심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형식적으로 만나니까 실제적인 삶의 변화와 축복이 없는 것입니다. 

루터나 칼빈, 쯔빙글리 등이 종교 개혁을 단행하기 전에 가톨릭이 아주 부패해 있었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 종교인으로 행세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중 아주 타락한 교황이 알렉산더 6세(1492-1503)입니다. 

1413년에 스페인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본명은 로드리고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대주교였습니다(알폰소 보르하) 대주교가 자기 친여동생과 관계에서 사생아로 로드리고를 낳았습니다. 아버지가 부친이면서 외삼촌입니다. 이 아이는 난폭한 아이로 자라나 12세 때에 친구를 칼로 살해하였습니다. 혼잡한 성관계로 젊어서 적어도 여섯 명 이상의 사생아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대주교였던 그의 아버지가 교황이 된 후, 당시 25세에 불과한 젊은 아들 로드리고를 발렌시아의 대주교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미인과부와 그녀의 두 딸까지 농락한 후 과부가 죽자 큰 딸을 강제로 수도원에 보내고 더 귀엽고 아름다운 어린동생을 데리고 살았답니다. 

또 그는 1461년 로마에서 18세의 아름다운 소녀 로사를 자기 여자로 만들고 네 아이를 낳았답니다. 당시 얼마나 타락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교황이 죽자 알렉산더 6세(본명 로드리고)는 궁전. 성. 보석. 땅. 등을 다 팔아 막대한 돈으로 교황 자리를 사려고 하였으나, 마지막 한 표가 모자랐답니다. 

그는 한 표를 돈으로 사려고 하였는데 그 한 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베니스의 한 수도사였답니다. 그 수도사는 5000크라운과 로드리고의 12살 된 딸 루크레씨아와 하룻밤만 자는 조건을 제시하였답니다. 로드리고는 그 조건을 받아들여 22명의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고 교황이 되었답니다. 즉 돈과 12살 된 자신의 어린 딸 루크레씨아를 하룻밤 빌려주고 로드리고는 드디어 교황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그가 바로 1492년에 교황이 된 알렉산더 6세입니다. 얼마나 추악하고 타락한 교황입니까? 15세 소녀를 불러들여 잠을 자고 죽인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로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17세의 자기 아들(세사레)을 발렌시아의 대주교로 임명하고 후일 15살 된 둘째 아들 후안을 또 추기경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의 체면이나 성스러운 교황의 직책에 별로 관심 없이 바티칸 궁전으로 첩들과 딸 루크레시아를 불러 들였다고 합니다. 그는 교황이 되기 위하여 쓴 많은 돈과 궁전 및 성들을 회수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답니다. 

당시 하루에 평균 14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살인범들을 사형에 처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받았답니다. 성직과 성물을 매매한 것입니다. 돈을 받고 근친상간을 눈감아 주었답니다. 한 귀족은 24000개의 금판을 주고 자기 여동생과의 근친 상간을 허락받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얼마나 타락했는지 주례를 서주고 신부를 자기방으로 데리고 가 초야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이 시대에 매독이 유럽 전역에 퍼져 1494년에는 교황청까지 침략하였는데 당시의 유럽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벌이라고 하였답니다. 교황과 교황의 젊은 아들 추기경은 물론 교황의 가족 및 첩들까지 총 17명이 매독에 걸렸다고 합니다. 진정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지 못한 형식적인 종교인들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실화입니다. 

오늘날도 무늬만 교인인 사람들이 별짓을 다하며 교회를 비난받게 만들고,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헤롯의 만행을 보면서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담대하게 그의 죄악을 지적한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진정 만난 사보나롤라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루터나 칼빈 보다 훨씬 앞서 종교 개혁의 도화선이 된 분입니다. 그는 교회와 사제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설교하였습니다. 그러자 음모와 계략에 도취된 교황은 그를 뇌물로 매수하기 위해 추기경의 직위를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순교자의 면류관 이외에 다른 면류관을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교황은 그를 파문하고 투옥시키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이단으로 몰아 45세 화형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그의 죽음을 축하하면서 귤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세례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우리가 진정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짐승이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받아들이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구원자다는 사실이라는 말씀을 들을 때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인생이 진정 변화되고 새로워집니다.

종교 개혁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사보나롤라도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가지도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기도중에 하늘이 열리는 것이 보았고, "밖으로 나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그리고 곧 세례 요한의 메세지를 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 

그는 무늬만 신앙의 옷을 입고 있던 당시 사회를 변화시켰습니다. 그가 타락한 플로렌스에 임할 심판에 관해 그가 설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성 마가 교회는 그의 설교를 듣고자 하는 군중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세 있는 통치자인 로렌조조차도 죽음을 앞두고 사보나롤라를 청해 그의 축복을 받고자 할 정도였답니다. 

프랑스가 이탈리아로 쳐들어와서 플로렌스를 위협하자 그가 프랑스 왕 앞에 나아가 그 도시를 침략하지 말 것을 요청하자 프랑스 왕이 침범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말은 권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집정관이 되어 범죄의 소굴을 소탕하고, 도박을 금지하고 사치스러운 옷이 금지하였습니다. 놀음과 음란서적, 음화를 소각하였습니다. 도시를 공화정으로 만들었고, 조세개혁을 시작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법정을 개혁했습니다. 

도박과 동성애, 부도덕을 혁파하여 밤을 새워 쾌락을 탐닉하던 도시는 점차 성스러운 도시가 되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암흑과 무지의 도시가 그의 설교를 듣고 변하였습니다. 수많은 군중들, 성직자들, 평신도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부패상에 대한 그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고 옛 생활을 벗어 버렸습니다. 3년 동안 플로렌스를 다스렸으며,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요한은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34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직 인생의 초점이 여기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만나기 전 요한은 예수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단한 설교자였습니다.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취한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잘못을 두려워하지 않고 책망한 사람입니다(눅3:19,20)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때 상황을 이렇게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마3:5-6)”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모여 들었습니다. 경상도에서도 오고 전라도에서도 온 것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까지 와서 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만 들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질적으로 성숙한 것입니다. 그는 모태에서부터 성령 충만을 받았고 성령충만한 사역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 ‘구약시대에 하늘의 불을 내리던 엘리야가 아닐까?’라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존경받고 인정받으며 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데 인생을 걸었습니다. 예수님께 미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예수쟁이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요한의 고백을 보십시오. 2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당시 예수님 보다 인기가 있을 때입니다. 자기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진정 성령 세례를 베푸실 분은 예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죄용서의 형식적 세례를 베풀지만 진정 죄용서를 해주시는 실제적 세례를 예수님이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제자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자신을 따르는 것보다 예수님을 따릅니다(36절). 이러면 사람의 속이 뒤집어 질 것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으려고 온 사람들이 이제 다 예수님께 가게 됩니다. 그 때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3장 26절입니다. 이 때 세례 요한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요3:29)” 

오히려 시기 질투 충만이 아니라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0절 보세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3:30)”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난 세례 요한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누군가에게 소개해 주어도 후회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소개해 주고 손해 보는 사람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주인이시고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변합니다. 구 소련의 의사 콘필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범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의사를 치료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에 한 중환자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죽음이 인생의 종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생의 소망을 품고 있으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신앙을 가지십시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의 간곡한 전도를 받고 신앙인이 되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후 닥터 콘필드는 어느 한 암환자를 수술해주면서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콘필드는 교도소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콘필드에게 수술을 받은 암환자는 극적으로 회생하여 독실한 크리스쳔이 되었습니다. 이 암환자의 이름이 바로 알렉산드르 이사비치 솔제니친입니다. 세계인이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세계가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면 인생이 바뀝니다. 가정이, 세상이 직장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행복한 세상,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 했는데 그것은 그 어머니 헬레나의 신앙적 감화력 때문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예수님을 만나 이름 모를 한 하녀로부터 예수님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이름 모를 하인도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자 소아시아와 유럽이 변화되었습니다. 이레니우스가 예수님을 만나자 프랑스가 복음화되었고, 영국에서 건너온 보니페이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독일이 기독교 나라가 되었습니다. 패트릭이라는 16살 난 포로 소년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아일랜드가 복음화되었으며, 언더우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한국 땅에 복음의 씨가 뿌리자 한국 땅이 변화되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미얀마가, 허드슨 테일러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중국이 변화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물질을 탐하던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강직하고 검소하게 살았습니다(막 1:6).

자신의 소명을 직시하고 그 소명에 투철하였습니다(막 1:4, 6). 오실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 하면서 자신은 예수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할만큼 겸손하였습니다(막 1:7). 비록 상대가 왕일지라도 그의 불의한 행동에 대해 단호히 책망할 정도로 담대하고 의로운 자였습니다(막 6:18). 부패한 권력자의 잘못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기회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헤롯이 두려워하며 그의 책망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을 만큼 그 생활이 의롭고 백성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막 6:20). 예수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사명을 다하다가 순교를 당함으로써 죽기까지 충성하는 성도의 본을 보였습니다(마 14:3-12;계 2:10). 그래서 예수께 '여인이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고 인정받았습니다(마11:11).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타작 마당을 정하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12)” 우리 예수님은 마침내 재림하여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그 때 손에 키를 들고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증언하면 사는 신앙인들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무게 중심을 두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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