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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벽재건을 방해하는 내부의 문제 (느 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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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재건을 방해하는 내부의 문제 (느 5:1-13)

사도행전을 보시면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루에 삼천 명씩 세례를 받고 성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교회의 분위기도 너무나 은혜스럽고 좋았습니다. 온 성도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모이기에 힘쓰고, 떡을 떼며 서로 교제하고, 기도하기에 힘쓰고, 심지어 자기 재산을 팔아 서로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는 놀라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자 곧 바로 교회에 큰 어려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행 5:1절 이하를 보면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헌금을 했습니다. 당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공동체가 함께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나니아 부부가 욕심으로 성령을 속이며 거짓말을 하다가 하나님의 징벌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성도들이 두려워하며 바른 신앙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다른 방법으로 초대교회를 흔들어 놓습니다. 행 5장 17절 이하에 보시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능력을 행하게 되자 종교지도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핍박하였습니다. 이런 핍박으로 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교회는 더 큰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사단의 공격이 멈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교회 공동체 전체를 흔들기 위해 교회를 공격합니다. 행 6:1절을 보면 교회 안에서 구제문제로 헬라사람들과 히브리사람들 가운데 갈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한창 분위기가 좋고 부흥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자칫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교회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들은 주저하지 않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집사를 택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스데반이 순교하는 등 계속적으로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합니다. 

우리 교회도 108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려고 할 때마다 사단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분열되고 성도 간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고, 선교사 문제로도 교회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앞으로도 사단은 우리 교회가 성장하려고 할 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방해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신앙성장과 믿음이 자라는 것을 싫어하여 온갖 방해와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주제는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벽을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이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사단의 방해가 멈추질 않습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살펴보면, 사단의 방해가 외부에서 일어났습니다. 산발랏과 일당과 이방민족들이 협박하고 무력으로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성벽재건 공사를 잘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사단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적들을 통한 외부의 공격이 실패하자 계획을 바꾸어 내부에서 분열을 일으키려 합니다. 내부에 존재하는 문제를 이용하여 성벽재건 공사를 중단시키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부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이 들어서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이 부르짖음은 원망과 탄식이 가득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후 백성들은 계속 가난하고 피폐한 생활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벽을 짓느라고 그나마 생업에 종사하지 못하므로 더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자식은 많은데 먹을 양식이 없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기쁨으로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성벽 재건에 뛰어들긴 했지만, 막상 성벽재건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생계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성벽을 재건하느라고 일을 할 수 없었으니 당연히 처자식들의 끼니를 공급하는 일이 막막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불평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을 보면 엎친데 겹친격으로 가난한 백성들이 더욱 힘들게 된 것은 흉년이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어려운 상황에 흉년까지 겹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식량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 밭과 포도원과 집을 담보로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서 식량을 구하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본문에 밭과 포도원과 집은 당시 백성들에게는 자기의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던 재산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살아야 하기에 밭이나 포도원이나 집을 팔수는 없고, 하는 수 없이 저당 잡히고 양식을 구하여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본문 4절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당시 세금이 너무나 과중하여 백성들이 세금의 부담을 많이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의 압제와 횡포를 그대로 말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은 급기야 자녀들이 종으로 팔려가는 일까지 생긴 것입니다. 자식이 종으로 팔려 가는 아픔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자세히 보면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과 원망이 꼭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 한 번 보면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라고 했고, 5절에는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가난한 백성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방인들입니까?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바사에서 파견된 고위 관료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 동족 유대인이었습니다. 그것도 귀인과 민장들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지도자들인 것입니다. 

백성은 굶주림과 과중한 세금으로 자식을 노예로 팔고 있는 상황인데, 오히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발생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발생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성벽 재건 공사를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둘러보았습니다. 6절에 보시면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느혜미야는 성벽건축에 전념하며 또한 외부적인 대적들의 공격으로 긴장하며 그저 외적인 문제에 집착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이렇게 같은 동족끼리 곪아 터지는 문제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느헤미야에게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다른 일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벽을 쌓는 일도 중요했지만, 그 성벽을 쌓는 일에 마음과 온 힘을 다해 헌신하는 백성들의 삶이 너무 가난하고 비참한 모습을 보며, 느헤미야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일만했던 자신에게 너무너무 화가 났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는 깊이 생각하고 대책을 강구한 후에 귀족들과 민장들을 불러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주 단호하고 분명하게 행동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잘못은 잘못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지금 이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 문제로 백성들과 지도자들 간에 서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화합이 깨지고, 형제애가 파괴되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성벽공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멋지고 튼튼한 성벽을 재건했어도 그 성속에서 서로 다투고, 원망하고, 갈라지면 이 민족은 절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형제보다 돈이 더 중요한가? 동족보다 돈이 더 중요한가? 동족들이 이렇게 고통당하는데 우리만 잘 살아서 되는가?”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을 못하게 합니다. 다시는 이자 받고 고리대금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빚을 못 갚는다고 재산을 빼앗거나, 자식을 종으로 삼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엄하게 꾸짖습니다. 

그러면서 느헤미야는 이런 악한 일이 생긴 근본적인 이유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9절 말씀에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러한 악행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경제적인 문제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먹을 것 없으니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돈을 빌리고, 그리고 빌린 돈을 갚을 길이 없으니 이자를 물어야 하고, 이자를 제대로 갚지 못하기 때문에 집과 포도원과 밭을 전당잡혀야 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결국은 자식을 노예로 파는 일이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더욱 이 어려움을 가중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진짜 이유가 아닙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될지 몰라도 제일 중요한 원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단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 사는 것 외에 무슨 다른 점이 있겠습니까? 이것을 놓치면 이방 사람의 비방거리 외에는 아무 것도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의 욕심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 받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보다 물질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잊으면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면서 지키지 않으면 모두가 헛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지도자들을 향하여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지도자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귀족들과 민장들은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침묵했습니다. 8절 하반절에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고리 대금을 한 귀인과 민장들이 느헤미야의 논리에 설복되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사실 그들의 죄악이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에 아무런 변명의 여지도 없이 다만 침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하는 말에 순종했습니다. 12절에 보시면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조치를 마치고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를 찬송하고 느헤미야가 말한 대로 행동했습니다. 이제 백성들의 힘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큰 분열로까지 번질 수 있었던 일이 은혜롭게 해결될 수 있었든 것은 하나님께서 도우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헤미야의 지도력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참으로 지혜롭고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매튜헨리는 그를 가리켜 “그는 왕관을 쓴 사람도 아니었고, 군대를 거느린 지휘관도 아니었으며, 명성이 높은 유명인사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헬라를 빛냈던 플라톤이나 크세노폰이나 데모테네스 보다 훨씬 훌륭하고 명예로운 사람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재건하는 동안 외부적으로 산발랏과 일당의 방해 공작이 점점 거세어지는 와중에,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이스라엘 백성들 내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백성들은 잘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의 유익만을 생각하고 남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못하는 악행을 고치도록 할 때에, 이스라엘은 성벽을 건축하는 것보다 더 강건한 민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가 외형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가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 중에 어려운 자가 없이, 실족하는 자가 없이, 소외되는 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서로가 책임지는 모습, 서로가 용납하는 모습, 서로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 하는 것이 사단의 방해로부터 교회와 우리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 당시에 역사하셨던 동일한 하나님이 지금 우리 교회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그 보다 더한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능히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영적성벽재건의 정신을 좇아 교회를 부흥시키고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 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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